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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 포르쉐복원 프로젝트

1988년 잘 포장된 필자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수집가용 자동차를 엄선해 수록한 두툼한 펄프용지 재질의 월간지인 4.95달러짜리 헤밍스 모터 뉴스지였다. 비록 잡지에는 21세기 날짜가 찍혀 있지만 매호마다 1950년대에 뉴멕시코 투컴카리의 싱클레어 역 화장실 변기 위에서 보던 잡지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싸구려 잡지를 아내가 선물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따분해 보여요,”라며 수잔이 웃는 바람에 머쓱해졌다. “또 집에 살림을 늘렸네요. 비행기를 만들더니만 이젠 모델을 가지고 노는군요.” (물론 이 모델은 가슴이 풍만한 버라이어티지의 모델이 아니라 1:48 축소형 플라스틱 조립 모델이다.) “또 프로젝트가 필요하겠는걸요. 이번엔 자동차를 한 대 사서 다시 조립해 보지 그래요. 페라리가 좋겠네. 당신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것 같은 애스톤 마틴이 괜찮겠네요. 아니면 코벳이나 코브라도 괜찮고...”

마침 필자는 차를 복원해 보고 싶었었는데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가 최고 제품부터 시작해 보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 부인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수퍼볼 경기를 보면서 결혼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 남편들은 자신들이 뭘 잊고 사는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비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국적인 차로 골치를 썩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필자는 차를 완전히 분해해 각 부품들을 잘 정비한 후 다시 조립하는 일을 늘 해보고 싶었었다. 물론 모네의 작품들보다도 비싼 전문적인 복원 작업을 감쪽같이 해내는 요즈음의 기준으로 본다면 필자의 솜씨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본은 된다. 필자가 원하는 차는 복원후 어느 정도의 성능을 낼 수 있는 것이었지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1950년대형 XK120이나 MG TD, 모건 같은 차가 아니었다. 마음껏 달리고 싶을 때 이런 차보다는 쌔근거리는 구형 사브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참에 자동차 경주학교 졸업생인 열아홉살짜리 자동차광인 딸이 “포르쉐, 포르쉐, 포르쉐”라고 뒤에서 외쳐대면서 선택이 한결 쉬워졌다. 그렇게 해서 필자는 복원형 포르쉐 911을 찾아나섰다.


아는 거라고는 배터리 수리가 고작

결국 필자가 작업할 차를 찾아낸 곳은 집에서 불과 65마일 밖에 안 떨어진 롱아일랜드시였는데, 뉴욕시에 인접한 지저분한 동네인 이곳은 라과디아 공항 근처로 길거리에는 깨진 병들과 식료품점 들이 널려 있고, 모퉁이마다 우유 배달차에 해체된 차들이 실려 있었다.

이 자동차 매매업소의 제품들은 “이국적인 차들”만 취급한다는 헤밍스지의 광고와는 달리 닥치는 대로 주워다 모아놓은 차들로 즐비했는데, 이중에는 칙칙한 재규어 마크 세단이나 흉측한 싸구려 페라리, 코브라 조립용 차와 낡은 로이스와 벤틀리, 폼만 잡는 팬테라스, 버려진 포르쉐와 포니 파이버글래스 MG들이 눈에 띄였다. 이 차들은 어두컴컴하고 악취가 나는 창고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곳 정비공들이 아는 거라고는 배터리 수리가 고작인 것 같았다.

필자가 고른 차는 처량한 생쥐꼴이었다. 정비공이 시동을 걸어 툴툴거리며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포르쉐 점검용 장비가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생각났다. 인테리어는 밋밋하고 운전자용 가죽 시트는 터진데다 발판은 주름져 더럽고, 세로로 금이 간 햇빛 가리개에 물어 젖어 바스러진 뒤쪽 칸막이, 출시후 앰프를 떼어내 느슨해진 전선들, 접개식 보조석에 조잡하게 고정된 붐 박스 스피커, 새어나온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엔진, 덜렁거리는 에어컨 호스, 이전 사용자가 앞범퍼를 보호하기 위해 부착한 뒤 떼지 않아 금이 가면서 희미해진 가드 레드 페인트 등 엉망이었다. 운전석 문을 열자 0.5인치쯤 처진 걸 보니 이전 사용자가 아마 몸도 뚱뚱해 문에 늘 팔을 올려 놓았던 듯 싶다.


완벽한 차량이다

필자는 전조등을 빼내고는 안쪽에 녹이 슬지 않았나 확인하고 충돌 사고로 인해 생긴 흠집을 펴기 귀찮아 떼우는 데 사용하는 플라스틱 접착제 본드가 사용되지 않았는지 확인차 자석으로 차체 이곳저곳을 훑었다. 금속성 차체에는 자석이 붙지만 본도 부위에는 붙지 않기 때문이다. 흙받이와 문짝들을 살필 때는 자동차에 햇빛이 수직으로 내리쬐도록 해 놓고 차체수리 흔적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차량번호판을 확인해 보니 1983년 여름에 미국 시장용으로 스투트가르트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이 차종으로서는 최신형 모델인 셈이다. 엔진이 그해에 제작된 것인지 엔진 번호도 확인했다. 전지함 밑으로 산이 스며나와 부식되었는지도 조사했다. 잭으로 차를 들어올려 송곳으로 벨리팬을 찔러보녀 녹이 슬어 금속판이 얇아지지 않았는지도 확인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조사하는 분은 본 적이 없어요”라며 감탄해서였는지 아니면 필자가 잘 알고 이런 확인을 하는 것이기를 바래서였는지 그 딜러가 말했다.

필자는 5분 정도 이 차를 몰고 똑바로 잘 달리는지 확인해 보았다. 압축기나 밸브 누출, 변속기, 충격 흡수도나 타이어 상태는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타이어는 일본제 저가 브랜드인 스미모토로 주로 방파제에 충격 흡수용으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필자는 중고차 구매자들이 신경을 쓰는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부품들은 차가 다시 주행을 하기 전에 새 것으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차를 평평한 트레일러에 실어 배송해 달라고 딜러에게 부탁했다. 애프터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으면 할인이 되는지 묻자 딜러는 애프터 서비스 같은 건 없다고 대답했다. 그냥 정비사를 직접 데려와 차를 자세히 검사한 후 구매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그가 말했다. 환불이나 애프터 서비스 같은 건 아예 없다는 얘기다.
어쩌겠는가? 채소 운반 카트도 아니고 프로젝트용 차인걸.


해체 작업시 필요한 부품 세척기

포르쉐 911 재조립 작업은 아주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직관적인 감각이 필요했다. 시간과 도구, 의욕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꼼꼼하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존경받는 포르쉐 기술 전문가인 브루스 앤더슨은 샌프란시스코 교외에서 소그룹 주말반 워크샵을 통해 포르쉐 911엔진과 변속기 재조립 방법을 강의한다. “의욕만 있다면 누구에게든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라고 그가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좋다. 그렇다면 실제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떻게 3만 달러나 하는 차를 재조립하기 위해 먼저 잘 분해할 수 있을까? 만약 재조립을 하고 나면 새 차처럼 보일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이제 시작해 보자. 엔진 분해는 쉽다. 금방 익숙해지는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볼트와 너트들을 풀기만 하면 된다. 위쪽부터 시작해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작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한 가지 충고해 줄 게 있다. 부속품들을 해체할 때 암기력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모든 부품과 조임쇠들을 가능한 한 따로 봉투들에 담아 두고, 각 봉지에 부품의 이름을 표시해 놓는다. 이름을 모를 경우 그냥 위치만 적어 둔다. 마침 더러운 손에 든 것이 오일 온도 센서일 경우 “엔진 일련번호 근처의 크랭크 케이스에 끼우는 것”이라는 식으로 기록해 두면 된다.만약 엔진 깊숙이에서 나중에 재활용할 부품, 즉 커넥팅 로드와 피스톤, 피스톤핀과 로커 암, 캠처럼 왕복이나 회전운동하는 중요한 부품을 빼낼 경우 어느 실린더의 어느쪽에 있던 것인지, 흡입밸브와 배기밸브 중 어디에서 분리한 것인지 번호를 기입해 둔다. 실린더 몸통과 헤드에도 번호를 써 두어야 하지만 밸브들은 재가공해 교체될 것이므로 일부러 번호를 기록해 둘 필요는 없다. 새 부품을 구입해 아무 실린더에나 영구히 설치한다 하더라도 번호는 매겨두는 것이 좋다.

마커 펜으로 기록하면 여러 가지 용제에 쉽게 지워져 버리기 때문에 드레멜 연장을 이용해 미세한 흠집을 내서 기록하는 전기식 기록 방법이 가장 좋다. 일련 번호는 기능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에 기록한다. 예를 들어 피스톤 덮개보다는 제일 꼭대기 아래쪽이 낫다. 이런 해체 작업시 필요한 또 한 가지 중요한 도구는 부품 세척기이다. 예전에 세들어 사는 필라델피아 아파트의 부엌 싱크대를 세척용으로 이용해 쁘리티쉬 매치리스 오토바이를 재조립해 본 적이 있었는데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몇 달 후 이사를 나가는데 집주인 여자가 뒤통수에 대고 멜로드라마에서처럼 “천벌이나 받았으면 좋겠어”라고 소리쳤다.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특이한 이별 인사였다. 그런데 그때 그 여주인이 필자가 30년 후에 전립선암에 걸린 걸 알면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인사말이 진심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필자는 아직 살아있다.


청소후 새 플러그로 교체

부품 세척기는 용제가 가득찬 금속통으로 작은 전기 펌프가 달려 있어 안에 든 부품들을 회전시킨 다음 S자 관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아무리 큰 엔진 부품이라도 담궈서 깔끔하게 닦을 수 있다.
엔진을 “청소해서 다시 원위치시키는” 게 주목적인 사람들에게 부품 세척기는 더할나위 없이 요긴한 도구이다. 해체된 911엔진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은 블록과 크랭크축에 낀 기름 얼룩들을 말끔히 닦아내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하려면 압축펌프와 카부레타세척용 스프레이 통 두어 개가 필요하다. 누출된 오일은 우측 크랭크 케이스를 타고 수직으로 흘러 내려오다 망치로 박아 고정한 금속 플러그에 의해 차단된다. 까다로운 작업이긴 하지만 이 플러그들을 제거한 다음 청소가 끝나면 새 플러그 들로 교체한다. 여섯 개의 피스톤 분사장치도 세척해야 한다. 각 크랭크 케이스의 실린더 꼭지 안쪽에 있는 이 작은 노즐들은 피스톤이 지날 때마다 그 밑으로 냉각유를 분사한다. 언뜻 보면 블록에서 돌출된 부분의 노즐에 스프레이를 분사해야 할 것 같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각 노즐 안에는 체크 밸브가 있어서 오일이 흘러나오기는 해도 유입되지는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프레이 통의 길다랗게 뻗은 공기 분사구를 노즐에 오일을 공급하는 통로에 가급적 깊숙이 넣으면 된다.

이런 윤활장치 세척은 기계적 고장을 일으킨 적이 있는 엔진을 새로 조립하는 경우나 크랭크축을 재 연마하는 경우 매우 중요하다. 엔진 고장이나 연마로 인한 찌꺼기가 장치 내의 어디엔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찌꺼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첫 시동을 건 후 몇 분 이내에 베어링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따스하고 화창한 4월 첫날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처음으로 숲속에 지저분한 눈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진 후 필자가 포르쉐를 차고에서 꺼내는데 아직 튜닝이 덜 끝난 카뷰레타 때문에 덜덜거렸다. 차의 후미는 구정물이 빨려 들어가는 작은 돌출부로 향하도록 되어 있었다. 포르쉐의 널찍한 뒷바퀴가 지면과 단차가 있는 차고를 벗어나 땅에 닿는 순간 필자는 새 브레이크들이 제대로 작동하기만을 바랬다. 제동장치가 잘 작동해 필자는 조심스럽게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2년간의 개조와 집중 관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달리도록 페달을 밟았다.

잠시동안만이라도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볼 필요가 있었다. 차량 번호판도 없고 보험도 안 든데다 차량 등록번호나 출고용 스티커도 없었다. 하지만 시골 생활의 장점은 차량 통행이 드문 길이 많다는 점과 지역 경찰관의 속도위반 단속에 걸릴만한 뒷길도 없다는 것이다.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손을 흔들며 뺑소니를 쳤을 것이다.1주일 후 불법으로 시골 도로들을 누비고 돌아다니는 데 재미가 나 있던 참에 하마터면 도로에서 지나치던 읍내 순찰차와 맞닥뜨릴 뻔 했는데, 아마 10년만에 처음으로 순찰차를 본 것 같았다. 다행히도 필자는 합법적인 차로 우체국에 가던 길이었다. 혹시 경찰에서 노란 포르쉐를 탄 사람이 한밤중에 남의 집 창문을 흔들어대며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것일까? 알 도리가 없어 필자는 차를 세우고 순찰 경관 캐프리스에게 한 번 물어볼까 하다가 긁어 부스럼 만들기 같아 그만두었다.

불어나는 복원비용 영수증들
처음 그 기름때 묻은 붉은색 SC를 살 때 퀸스시 한가운데에 있는 매매장의 딜러가 필자에게 자기를 통해서 차량 등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가 사람을 차량관리국에 보내 차량 번호판을 빼내 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필자는 대답했다. 1~2년간은 도로에 차를 끌고 나올 일이 없을 테니까 번호판도 필요 없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어쨌든 문제가 해결되어 기뻐했다. 필자는 이 차의 권리증을 금고에 보관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원 비용 영수증들 사이에 이 차량 구입 영수증을 끼워 두었지만 계속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차를 등록하려고 하면 뭔가 문제가 생기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2001년 5월 필자가 차량 번호판을 받으려고 뉴버그의 차량관리국을 찾아갔을 때 담당 여직원이 너무나 친절해 결국 온전치는 않지만 굴러다니기는 하는 소형 쿠페를 합법적으로 도로로 끌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담당자가 왜 차를 2년 동안이나 안 타고 다녔는지 물을까봐 준비해 간 복원 도중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자 그녀는 “이런 차가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필자가 제출한 서류를 차례로 검토해 나갔다. 마지막 페이지 뒷면 끝까지 거의 체크가 끝나갈 즈음 그녀가 말했다. “이런, 문제가 있네요. 차를 판 딜러가 이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요.”

“맙소사. 전 그 차를 2년 전에 샀거든요. 그가 130마일 왕복 여행을 한다면야 간단한 문제지만 최악의 경우 그가 은퇴했거나 사업을 그만뒀을 수도 있잖아요. 이거 7만 달러나 든 프로젝트인데. 만약 그 사람을 찾아서 여기 서명을 못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유리창 칸막이 뒤에서 편안한 주 5일 근무에 익숙해진 그녀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우세요.”그녀 말이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그녀 말이 진짜 일까봐 두렵다. 하지만 비밀 무기가 하나 있다.30년 전 필자는 아주 희귀한 듀카티 350 데스모 경주용 오토바이를 몬트리올의 한 딜러로부터 구입했다. 당시 필자는 지프 데이비스 출판사의 실질적인 “회사 비행기 조종사”였기 때문에 회사 소유의 쌍발 항공기 에어로 커맨더의 열쇠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 비행기를 몰고 뉴욕에서 캐나다까지 날아가 오토바이를 사서 억만장자 빌 지프가 늘 탑승하는 가죽제 선실에 넣어두었다. 이 일은 조종사들이 옛 시절을 회상하며 떠올리게 되는 종류의 사건이다.
“그러고도 어떻게 무사했을까?” 필자가 캐나다로 가기 전 대부분의 좌석들을 비행기에서 빼내자 큼지막하고 텅빈 직사각현 선실에 오토바이를 넣기에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다. 필자는 동료 조종사였던 친구 러셀 먼슨과 함께 여러 개의 밧줄들로 뭔가 고정이 될 만한 곳에 오토바이를 단단히 묶었다. 버팔로 바로 남단에서 우리 둘은 엄청난 뇌우들을 만났다. 밤 10시였는데 번개가 휘황찬란했다. 다행히도 급히 좌회전을 해 폭풍우 속으로 비행하는 일은 모면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엄청난 요동에 오토바이가 느슨하게 풀어져 비행기 안을 미끄러져 다니다 선실 바닥 오토바이 뒤에서 듬직하게 소설책을 보고 있던 또 다른 친구를 치여 죽였을 지도 모른다.


연료 재 급유차 착륙했다

필자는 계속 동쪽으로 비행해 뉴욕과 멀리 떨어진 보스톤에 다다라서야 뇌우가 아직 몰려오지 않은 공항을 발견하고는 연료 재급유차 착륙했다. 재이륙하려고 로간 국제 공항까지 갔을 즈음 관제탑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행히도 서쪽으로부터 대형 뇌우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현재 활주로에서 잠시 대기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었다.“안됩니다. 남쪽 방향의 적당한 활주로를 열어 주십시오. 뇌우가 닥치기 전에 출발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이미 오전 2시였고 지쳐서 판단력이 흐린 상태였다. 일반인들은 관제탑에서 지시를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에서는 조언만 해줄 뿐이어서 위법만 아니면 조종사가 제안을 관철시킬 수 있다. 다행히 접근해오던 폭풍우의 타격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후 20분 동안 비행기를 이륙로로 향하게 한 채 엔진의 시동을 걸어놓고 불어닥치는 비바람에 비행기가 뒤쪽으로 밀리지 않도록 했다.

결국 녹초가 되다시피 한 필자와 두 친구는 복잡한 서류 작업 없이 오토바이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공항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프랑스어로 휘갈겨 쓴 영수증 한 장만 달랑 받고는 등록도 안된 불법 오토바이를 소유하게 되었다. 자동차에 푹 빠지기 전 짧지만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던 시절에 필자는 1930년대에 고비 사막에서 연구를 하던 탐험가들이 “몽고식 현혹 장치”라는 것을 종종 고안해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인과 상형문자, 봉인용 왁스, 고무 도장과 리본을 달아 만든 가짜 서류로 국경 수비대와 세관원들에게 제풀해야 할 서류 대용으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필자도 듀카키용으로 위조 서류를 만들었다. 온갖 글귀들로 가득한 그럴듯한 채권 증서에 판매 내역을 타이핑해 넣었다. 그런 다음 프랑스 세관원도 속을 만큼 고무도장을 잔뜩 찍었다. 맨해튼 뉴욕 차량관리국의 깐깐한 직원도 이 문서에 완전히 속아서는 오토바이 소유증을 금방 발급해 주었다. 그래서 뉴버그 차량관리국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다음 월요일에 뉴버그 차량관리국에 다시 찾아가 “서명된” 양식을 창구 아래로 밀어 넣었다. 딜러 서명이 필요하다고? 그럼 이건 어때? 그거 마음에 드시나? 그 딜러가 어떻게 점선을 피해서 서명을 했는지 흥미롭지 않수? 필자가 한때 했듯이 약간만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가 있다.뉴버그 차량관리국 여직원은 자세히 들여다 보지도 않고 서류를 가져갔다. 하지만 아직도 궁금하다. 정말 그녀는 필자가 바보같이 퀸스까지 내려가 딜러를 찾으리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가짜로 대강 휘갈겨 쓴 내용만으로도 차량관리국 업무 처리에 큰 문제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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