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체의 면역체계 손상은 새로운 질병의 감염을 가져올 수도 있다.자연 살해 세포(NK세포)를 이용한 암 치료는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신개념의 암 치료법이다. 암세포만을 골라서 살해하는 NK세포는 암 치료율을 60~70%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료제공: 한국 생명공학 연구원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연구 소재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가장 많은 종(種)의 생물체는 곤충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무려 102만종에 달한다. 식물 32만종, 어류 1만9,000종, 포유류 4,000종과 비교하면 지구에 얼마나 많은 곤충들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최근 바이오 연구가 붐을 이루면서 이 같은 곤충을 유전학 및 분자생물학 분야의 연구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의 다양성은 유전자의 다양성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곤충의 풍부한 생물종이 연구에 더없이 중요한 소재가 되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게놈 프로젝트가 본격 수행된 이후 곤충의 유전자가 사람의 그것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연구의 가치는 한층 높아진 상태다.
곤충 연구의 대표 주자는 초파리와 누에. 몸의 각 기관을 형성하거나 개체 간을 움직이는 유전자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발생, 분화, 환경 적응 및 저항, 뇌 및 신경과학, 노화 관련 연구 등에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이중 사람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특정 유전자를 도입해 만들어진 질환 모델(disease model)은 곤충 연구가 이미 우리 삶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최근 일본에서는 누에의 발생 과정에서 암수의 성 분화에 관여하는 ‘double sex gene’, ‘intersex gene’, ‘fruitless gene’ 등의 유전자가 발현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암컷이나 수컷의 성(性)을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유용 물질의 생산 및 질병 치료제 개발
곤충 세포의 배양을 통해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곤충 병원성 곰팡이와 세균, 원생동물, 리케차, 바이러스 등 곤충의 병원성 미생물을 활용한 살충제 개발이 그 중 하나다.
이 미생물들은 숙주 곤충 이외에는 사람이나 가축, 식물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특정 해충만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미생물 살충제로 개발할 수 있는 것. 특히 배큘로바이러스(baculovirus)의 경우 숙주의 특이성, 강한 병원력 등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어 많은 연구자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막대 모양의 바이러스를 싸고 있는 다각체 단백질(polyhedrin) 또한 주목받고 있는 연구 소재다. 이 단백질은 숙주 곤충의 몸속에서 바이러스 입자가 방출될 때까지 외부 환경으로부터 바이러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같은 다각체 단백질의 유전자를 이용하면 곤충 세포에서 백신, 인터페론 및 각종 펩타이드 등 유용 단백질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
이는 대장균을 이용하는 기존 방법보다 생산 효율이 높고 활성도가 높은 물질을 얻을 수 있으며, 살아있는 누에나 배추벌레의 몸에서 외부 유전자를 발현시키는 방식으로 곤충을 유용 물질의 생산 공장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파리, 모기 등 각종 질병 바이러스를 전달하는 매개 곤충들은 인간의 질병 연구에도 활용된다. 실제 일본뇌염, 뎅기열, 말라리아, 수면병, 샤가병 등은 매년 전 세계에서 수 백 만 명이 피해를 입고 있지만 정작 이들 바이러스를 전이시키는 매개 곤충은 어떤 피해도 입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이 강력한 바이러스로부터 곤충들이 건재할 수 있는 이유를 밝혀냄으로서 인간에게도 작동하는 효과 높은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곤충을 모방한 신소재
곤충은 인간이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개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최적의 기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무구한 세월 동안 다양한 자연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진화·발전시켜 온 탓이다. 바로 이 기능들을 재현할 수만 있다면 인간에게 유용한 생물학적 소재를 확보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일례로 미국의 한 연구팀은 무당거미로부터 거미섬유(spider silk)를 생산하는 유전자를 찾아낸 뒤 이를 대량 발현시켜 가벼우면서도 신축성과 강도가 탁월한 새로운 섬유소재를 개발한 바 있다. 이 섬유는 현재 천연섬유를 비롯해 인공피부, 신소재 의복, 인공 막, 특수 로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물속에 서식하는 수생 곤충의 생체 접착 물질을 이용하면 물속에서 붙는 특수 접착제나 외과 수술 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바이오 접착제를 만들 수 있다. 누에 똥(蠶砂)에 고농도로 함유돼 있는 클로로포피린의 경우 암 환자의 몸속에 주입, 특정 파장의 방사선을 쪼이면 암세포만을 선별적으로 공격하는 훌륭한 항암 치료제로 변신한다.
특히 다른 동물에 비해 페로몬 감지능력이 탁월한 모기와 나방 더듬이의 민감한 감각 수용체를 활용, 마약·폭탄·핵물질 등을 정확히 탐지하는 바이오센서 개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외에도 반딧불의 발광 유전자를 다른 생물에 적용하면 유전자의 발현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센서 역할을 하며, 선인장 기생 곤충인 깍지벌레에서 추출한 붉은 색 천연염료는 립스틱 등 화장품 원료로 쓰인다.
혹한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곤충의 몸에는 작물용 냉해 방지제, 동상방지약, 얼지 않는 식품 첨가제 등의 소재가 되는 항동결단백질(AFP)이 들어있다. 또한 일부 남미 국가에서는 화려한 나비의 날개 표면 성분에서 나오는 광물성 천연염료를 지폐 제조시 위폐방지용 물질로 사용하고 있다.
신체 방어 메커니즘 모델
일반적으로 곤충의 애벌레는 더러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살아간다. 신체의 방어 메커니즘, 즉 면역체계가 잘 발달돼 있다는 얘기다. 이 메커니즘은 곤충들에게는 물론 인간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곤충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피부에 상처가 나면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 멜라닌을 생성한다. 이 과정을 조절하면 피부 상처 치료제의 개발이 가능하다. 또한 이와 정반대의 방법으로 멜라닌 형성을 억제시키는 효능을 부여, 여성용 미백 화장품을 만들 수도 있다.
프랑스, 스웨덴, 일본, 미국 등의 국가들은 지난 1980년대부터 다양한 곤충들의 생체 방어 물질을 차세대 항생제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와 함께 나방류 애벌레를 대상으로 곤충 면역에 관여하는 생체 방어 물질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부산대학교 연구진은 딱정벌레 애벌레에서 세균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고 진단 시약을 상품화한 바 있다.
생명공학연구원과 바이오 벤처기업인 인섹트바이오텍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당거미(Nephila clavata)로부터 고효율 단백질 분해 효소를 개발해 상용화 했다. 이는 거미가 먹이를 먹는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누구나 알듯이 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먹이에 신경마비 독액과 함께 침샘에서 분비되는 강력한 소화액을 주입한 뒤 먹이의 몸이 액체 상태로 녹은 후 이를 빨아먹는다. 연구팀은 거미의 소화기관에 있는 여러 미생물로부터 이 강력한 소화액의 원천인 아라니콜라 프로테오리쿠스라는 미생물을 찾아냈으며, 이 미생물이 생산하는 강력한 단백질 분해 효소를 ‘아라자임(Arazyme)’이라고 명명했다.
아라자임을 동물 사료 첨가제로 사용하면 성장 촉진, 사료 효율 증대 등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질병예방 효과도 뛰어나다.
현재 아라자임은 기존 항생제를 대체, 천연 사료 첨가제로 상품화된 상태다.
이에 더해 아라자임은 탁월한 각질 분해 효능을 인정받아 얼굴과 몸의 각질을 제거하는 바이오 화장품에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모 가죽가공 공장에서는 막대한 폐수를 발생시키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도 아라자임으로 단백질을 분해, 양질의 가죽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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