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8일 저성장 극복과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을 두고 엇갈린 해법을 내놓았다. 이재명 후보는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통한 국가 주도의 경제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지만 김 후보는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판갈이’하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경제성장의 본질은 ‘생산성 향상’에 있다며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서울 상암동 SBS 공개홀에서 경제를 주제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 후보자 초청 1차 TV 토론회에서 “단기적으로는 지금 당장 서민 경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가계·기업·정부가 각자 역할이 있는데 이런 불경기에는 정부가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 곧바로 가능한 범위에서 추경을 해서 서민 경제와 내수 경기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 대책으로는) 성장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첨단기술 산업, 재생에너지 산업, 문화 산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고 공정한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반면 김 후보는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는 특별한 혜택을 많이 주겠다”고 운을 뗐다. 그는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 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마음 놓고 사업을 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연구개발(R&D) 부문을 대폭 지원해 미래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그 분야로 기업을 지원하도록 하겠다”면서 “정부 부처의 평가 지표도 일자리 중심으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소비 진작을 확실히 지원하고 소상공인 채무 조정 및 금융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준석 후보는 “지금처럼 고물가·고수요 상황에서는 무작정 돈을 풀면 자영업자의 재료비·임대비 부담만 늘어난다. 빚으로 쌓은 성장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며 “저는 지역 경제 현실에 맞게 최저임금을 자율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자영업자의 숨통을 틔우겠다. 포퓰리즘이 아닌 실력으로, 돈 풀기가 아닌 교육과 생산성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성장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이 나라에 부는 넘치도록 쌓였지만, 돈은 위로 쌓이고 고통은 아래로 간다. 성장에 가려진 불평등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해답은 부자 감세가 아닌 부자 증세다. 쌓인 부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하고 불평등을 갈아엎겠다”고 말했다. 주도권 토론에서는 민주당이 10대 공약에 포함시킨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두고 이재명 후보와 김 후보가 강하게 맞붙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용자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후보가 먼저 “그동안 정부는 노란봉투법에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노란봉투법을 또 밀어붙일 것이냐”고 묻자 이재명 후보는 “대법원 판례가 이미 (필요성을) 인정하는 법안이다. 국제노동기구도 다 인정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노란봉투법은 사실 헌법에도, 민법에도 안 맞다.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할 수가 없다. 쟁의 요구가 계속 벌어질 수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반드시 재고해야 하는 법안”이라고 반박했다. 김 후보는 또 ‘반도체특별법’을 두고도 “이재명 후보도 원래는 ‘왜 52시간 예외를 못 해주겠냐’ 하지 않았느냐. (52시간 예외 없는) 반도체 산업 지원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재명 후보는 “김 후보 본인이 노동부 장관으로서 직접 유연근로제 단위를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정부 입장이었다”고 응수했다. 또 김 후보가 “52시간 예외 보장도 안 해주면서 어떻게 기술 개발이 되겠느냐”고 되묻자, 이재명 후보는 “노동부 장관 출신 답지 않은 말씀”이라고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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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대선 후보 첫 토론회에서는 ‘압도적 1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의 집중 공세가 펼쳐졌다. 김 후보는 첫 질문으로 이재명 후보의 ‘커피 원가 120원’ 발언을 골랐다. “유세에서 커피 한잔의 원가가 120원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 커피 파는 사람들이 굉장히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돼서 분노하고 있다”는 김 후보의 지적에 이재명 후보는 “일부 발언을 떼내서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후보의 ‘대북 송금’ 재판도 언급했다. 김 후보는 “지금 재판을 받고 있고, 바로 밑에 있었던 이화영 부지사가 징역 7년 8개월을 받았다”며 “지사가 모르는 부지사의 징역형이 가능한가.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경제를 살릴 수 있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재명 후보는 “김 후보는 캠프에서 정치자금 수천만 원을 받았을 때 모른다고 해서 무혐의를 받았다. 왜 그걸 몰랐나”라고 받아쳤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인공지능(AI) 산업 육성 공약 등을 겨냥해 “‘어떻게’는 빠져 있고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는 이야기만 한다”며 “챗GPT 같은 서비스를 전 국민에 보급하면 12조 원이 들고 자체 AI를 구축한다면 결국 대한민국 AI 산업이 갈라파고스화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후보는 “민간기업과 협력해 소버린(주권) AI를 개발, 국민들이 전자계산기를 쓰듯 무료로 쓰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진보 진영의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도 “경쟁적인 부자 감세가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이재명 후보와의 차별점을 명확히 했다. “세 후보 모두 무조건 성장을 외치고 있어 토론이 사실상 1대3 구도”라는 권 후보의 지적에 이재명 후보는 “성장해야 분배도 있고, 분배 없는 성장도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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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대선이 16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선 후보 배우자들의 선거 지원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 씨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씨는 전국 각지를 누비며 ‘내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명 모두 종교계와 소외 계층 등 남편이 잘 챙기지 못하는 곳을 중심으로 표심 잡기에 주력한다는 구상이다. 김 씨는 이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전국의 사찰과 교회를 비공개로 방문하며 ‘조용한 내조’를 이어가고 있다. 김 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서울·부산·강원 등의 종교 단체를 두루 찾았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후인 13일과 15일에는 각각 명동성당과 불국사를 방문했다. 김 씨는 민주당 텃밭인 호남 민심 다지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김 씨는 14일 광주 방문에 이어 이틀 만인 16일 다시 호남을 찾아 노인 요양시설에서 배식 자원봉사를 했다. ‘오월어머니집’에서는 5·18 유족들과 면담했다. 특히 이 후보의 동선과 겹치지 않도록 일정 조율도 하고 있다. 김 씨는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조용한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 씨 측 관계자는 “정치적 행보로 보이지 않는 일정을 중심으로 조용히 소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설 씨는 유튜브 출연 등 매체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설 씨는 최근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해 아내로서 지켜본 김 후보의 청렴성·진정성 등을 강조했다. 설 씨는 이 자리에서 “김 후보는 돈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가까이하지 않으려 한다”며 “늘 자기 자신을 청결하고 깨끗하게, 고고하게 다스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남편인 김 후보의 청렴성을 강조한 발언이다. 설 씨는 자신이 국민의힘 열세 지역인 호남 출신이라는 점을 활용해 험지 민심 공략을 위한 지원사격에도 나섰다. 전남 고흥 출신의 설 씨는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설 씨는 이달 14일 호남미래포럼 조찬 모임에 참석해 “호남분들이 원하는 부분을 가장 잘 전달할 역할, 제가 제일 잘하지 않겠냐”며 지지를 호소했다. 설 씨는 이날 ‘대한불교천태종 중앙신도회장 이·취임 법요식’과 광주양림교회를 잇따라 찾았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김 후보와 ‘정치적 동지’ 관계로 출발한 설 씨는 노동자, 소외 계층, 여성 등과 만나는 현장 일정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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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향한 공식 선거운동 첫 주는 ‘1강·1중·1약’ 구도로 출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세론을 굳히는 가운데, 낙마 위기 끝에 극적으로 생환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역전극을 노리고 있다. ‘범보수 빅텐트’의 열쇠를 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완주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여전히 단일화 가능성은 남아 있다. 세 후보 간 치열한 각축전 속에 여론의 시선은 어디로 향했을까. 서울경제신문이 SNS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를 통해 6·3 대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인 12일부터 16일까지 5일간 주요 대선 후보 3인의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이재명 후보가 22만9350건으로 김문수(15만3186건)·이준석(3만5785건) 후보를 크게 앞섰다. 보수진영 후보들을 향한 온라인상 관심도를 모두 합쳐도 이재명 후보에 미치지 못했다. 온라인 언급량도 ‘이재명 독주’…부정 여론도 압도 이 같은 여론의 주목도는 지지율과도 연동된 흐름으로 나타났다. 언급량 비중은 이재명 54.8%, 김문수 36.6%, 이준석 8.5%였으며, 비슷한 기간(13∼15일)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이재명 51%, 김문수 29%, 이준석 8%로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관심이 높은 후보일수록 관련 정보를 검색하거나 언급하는 ‘동조화 현상’이 작동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긍·부정 단어 언급 비율은 지지율과 차이를 보였다. 이재명 후보의 부정 단어 비율은 57%로 가장 높았고, 긍정 단어는 36%에 그쳤다. ‘사법 리스크’ 탓에 ‘범죄’, ‘혐의’, ‘위기’, ‘논란’ 등의 단어가 지속적으로 따라붙었다. 김문수와 이준석 후보 역시 긍정보다 부정 단어 비율이 높아(각각 50%, 52%) 대중적 비호감 해소가 주자들의 과제로 떠올랐다. 김문수 ‘극적 생환' 하루, 이재명 언급량 앞서 대선 국면에서 김문수 후보가 맞수인 이재명 후보를 언급량에서 앞선 유일한 날은 이달 11일이었다. 한덕수 무소속 후보와의 ‘강제 단일화’ 논란 끝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시점이었다. 당 지도부는 약 3주간 치른 대선 경선을 뒤집고 10일 새벽 3시 기습 후보 공고를 내 ‘김문수→한덕수’로의 일방적인 ‘선수 교체’를 시도하려 했으나, 김문수 후보는 당원 투표에서 과반 지지를 얻어 우여곡절 끝에 후보직을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비판’, ‘갈등’, ‘혼란’, ‘위기’ 등 부정적 키워드가 급증했다. ‘링 밖’ 윤석열 여전한 존재감…탈당 변수 될까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링 밖’의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선거운동 첫 주 윤 전 대통령의 언급량은 6만6200건으로 3등 주자인 이준석 후보보다 더 큰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만 부정 키워드 비중이 74%에 달해 국민의힘에는 큰 부담을 안겼다. 당내에서는 중도 확장을 위해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절연’ 요구가 확산됐고, 결국 그는 17일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며 탈당을 전격 선언했다. 윤 전 대통령은 “길지 않은 정치 인생을 함께하고 저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국민의힘을 떠나는 것은 대선 승리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김문수 후보 지원 유세에 직접 나서기로 하는 등 당내에서는 ‘윤석열 탈당’을 계기로 대선판 반전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는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 16.4%, 휴대전화 가상번호 전화 인터뷰 방식으로 이뤄졌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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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16일 앞둔 18일 열린 첫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각 후보들은 경제 책임론을 두고 ‘서로 네 탓’ 공방을 이어갔지만 정작 경제 해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경제 침체의 원인이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라는 점을 부각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민주당의 빈번했던 탄핵을 문제 삼았다. 엇갈린 진단만큼 공약도 갈렸다. 이재명 후보는 추가경정예산안 등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반면 김 후보는 규제 해소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장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와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각각 최저임금 자율 조정과 불평등 타파를 내세웠다. 이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공개홀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후보자 TV 토론회는 ‘저성장 극복과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 ‘트럼프 시대의 통상 전략’ 및 ‘국가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주제로 공약 검증 토론을 이어갔다. 이날 토론은 후보 간 물고 물리는 공방이 이어졌다.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노란봉투법을 따져 물었고 이재명 후보는 “당연히 추진한다”고 맞받았다. 권 후보는 “고용노동부 장관을 어떻게 했느냐”며 김 후보를 정조준했다. 이준석 후보는 인공지능(AI) 공약 등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이재명 후보를 몰아세웠고 “극단적인 상황을 전제하지 말라”며 이재명 후보는 반격했다. 특히 경제 활성화 대책과 관련한 후보들의 발언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재명 후보는 “골목이 다 망하고 있고, 서민 주머니가 비어가는 중”이라며 “곧바로 가능한 범위에서 추경을 해 서민 경제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 대책으로 AI 등 첨단기술 산업, 재생에너지, 문화 산업 육성”을 말했다. 0%대 경제성장률에 대해선 이재명 후보가 김 후보를 향해 “현 정권 장관으로서 책임”을 묻자 김 후보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민주당의 ‘줄탄핵’ 탓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도록 규제 판갈이를 할 것”이라며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대해서는 특별한 혜택을 주고 정부의 연구개발(R&D) 부문도 대폭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준석 후보는 “성장의 본질은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이라고 했고 권 후보는 “돈은 위로 쌓이고 고통은 아래로 흐른다.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모두 구체적인 해법은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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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경제 분야를 주제로 한 첫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 나서 날카로운 존재감을 드러내며 3자 구도를 공고히 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8%까지 지지율이 오르며 자신감을 얻고 있는 이준석 후보는 대선 후보 토론회를 계기로 지지율 10% 벽을 돌파해 몸집을 더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이준석 후보는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공개홀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재명·김문수 후보를 동시에 몰아세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이준석 후보는 토론 첫 공통 질문부터 이재명 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며 시작했다. “저성장은 모두에게 고통”이라고 포문을 연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는 호텔 예약을 취소해도 돈만 풀면 살아난다며 ‘괴짜 경제학’을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호텔 경제학은 이재명 후보가 이달 16일 전북 군산 유세에서 경제 순환 모델을 설명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어진 시간 총량제 토론에서도 이재명 후보와의 난타전이 벌어졌다. 다시 ‘호텔 경제학’을 들고나온 이준석 후보에게 이재명 후보가 “케인스 이론의 승수 효과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 한 것”이라고 반박하자 이준석 후보는 “돈이 도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고 한계소비성향(추가 소득 중 저축되지 않고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이 1로 도는 무한 동력이냐”고 응수했다. 이준석 후보는 6분 30초의 제한 시간 내 이재명 후보의 복지 정책, 인공지능(AI), 경제 모델, 정년 연장 정책 등과 관련한 네 가지 질문을 연이어 쏟아내며 이재명 후보를 압박했다. 김 후보를 향해서는 기본소득과 관련한 깜짝 질문을 던지며 약점을 파고들었다. 기본소득 정책이 잘못됐다는 김 후보의 주장에 이준석 후보는 “국민의힘의 정강 정책을 살펴보면 기본소득을 실천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며 “이것에 동의하고 입당했냐”고 꼬집었다. 이에 김 후보는 “몰랐다”며 “검토해보겠지만 기본소득의 개념 자체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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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스토리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산골 출신 소년공으로 자라 정치권에서도 ‘변방 장수’로 이력을 채우다가 대권에 도전한 독특한 삶을 살아왔다.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배출한 전·현직 대통령들(김대중·노무현·문재인)과 비슷한 비주류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더 비주류였던 다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기초단체장·광역단체장·국회의원·당대표를 모두 경험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된다. 이 후보는 1964년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의 깊은 산골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1976년 삼계초등학교 졸업 후 온 가족이 아버지가 일을 하던 경기 성남으로 올라가 터를 잡았다. 그는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던 ‘동마고무’ 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시작했다. 나이가 어려 법적으로 취업이 불가능하자 취업이 가능한 동네 형님 이름을 빌려 위장 취업을 했다. 무려 6년 동안 ‘이름 없는’ 소년공으로 살았다. 그마저도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에 왼쪽 팔뚝을 찍혀 장애 등급 판정을 받고 군대는 면제됐다. 6년 동안 ‘이름없는’ 소년공의 삶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공장 생활을 하던 그의 꿈은 “남에게 쥐어 터지지 않는 것, 배불리 먹는 것,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었다. 공장에서 본인을 괴롭히던 고졸 출신 대리처럼 간부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버지는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다. 더구나 장애인이 된 본인 처지를 비관하며 열일곱 살 때 두 차례 자살까지 시도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1년여 만에 중고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본고사를 폐지하고 학력고사만으로 대입 제도를 바꾼 것이 이 후보에게는 기회가 됐다. 그는 1982년 전액 장학금과 매달 생활비 30만 원을 지급하는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 후보는 대학에서 접한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이 “삶을 통째로 바꾸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공장 생활 당시에는 ‘폭도·빨갱이’로 광주 시민을 불렀던 경험도 고백했다. 처지 비관 두 차례 자살까지 시도에도…사시 합격 이 후보는 성남에서 노동과 인권 사건 변호를 주로 맡았다. 소년공으로서 겪어야 했던 가혹한 노동 현장의 현실이 그가 노동 변호사와 시민운동가의 삶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동기가 됐다. 이 후보는 스스로 “법조계에 ‘파견된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밝힌 바 있다. 성남시민모임을 만들어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성남시장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자격 사칭 혐의로 구속됐다. 2004년 성남 구시가지 내 대형 병원들이 계속 문을 닫자 공공 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주민 발의 조례를 만들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성남시의회는 막강했다. 결국 시 의료원 설립안은 부결됐고, 이에 좌절한 그는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 공공의료원 설립 좌절에 정치 결심 이 후보는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성남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2007년 대선에서는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비서실 수석부실장을 맡는가 하면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성남 분당갑에 출마했지만 떨어졌다. 2009~2010년 정세균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취임 직후 ‘성남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긴축재정을 실행하면서도 취약계층 지원은 착실히 해나갔다. 청년·노인 일자리 확보, 청소용역 노동자·버스 기사 일자리 안정화, 시장실 개방 등을 통해 호평받은 그는 더 높은 지지를 받아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첫 시장 경험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재선 시장 시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정책들을 쏟아냈다. '청년 배당·무상산후조리지원·무상교복지원' 등 3대 무상복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또 생리용품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한 여고생의 사연이 전국에 알려졌던 2016년, 성남시가 전국 최초로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연 30만원의 생리용품 구입비를 지원한 것도 유명하다. 이 사업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지역화폐 사업과 연계돼 확장됐다. 또 국가 및 지자체 주도의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생리용품 지원 사업은 21대 국회에서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을 통해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정치권 등과 직접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리틀 노무현’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성남시장 재선 후인 2016년 10월 박근혜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민주당 정치인 중 ‘탄핵과 하야’를 초반부터 주장하며 당 지지층 사이에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2017년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며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지만 문재인, 안희정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득표율은 21.2%였지만 단숨에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첫번째 대선도전…문재인>안희정>이재명 3위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16년 간 보수 정당이 차지했던 지사직 탈환에 성공했다. 취임 직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소득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후보는 도지사로서 굵직한 족적들을 남겼다. 만 24세 경기도 청년들을 대상으로 분기별 25만원씩 연간 10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청년배당'을 실시했고 도지사 재임시절 경기도 용인시에 대규모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하는데 성공한 것 등이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이 후보는 적극 나섰다는 평가다. 당시 종교단체 신천지를 대상으로 방역 목적의 강제 조사를 실시하는 강수를 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성남시절, 경기도지사 시절 시민들과 SNS를 통해 소통한 것도 유명하다. 민주당 내 한 관계자는 "시정, 도정에 필요한 부분을 시민들로부터 SNS로 직접 전달받고 단체장이 이를 또 직접 SNS로 확인해주면서 이 후보에 대한 호응도 커진 게 사실"이라며 "이 후보가 강조하는 '국민들이 정치 효능감을 느껴야 한다'는 말도 그와 같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된 후 당시 ‘대세론’을 이뤘던 당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빠르게 추격해갔다. 2021년 7월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뒤 8월 처음으로 지지율(한국갤럽 기준) 1위에 올라섰다. 이후 줄곧 민주당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며 2021년 민주당의 20대 대통령 후보가 됐다. 하지만 2022년 3월9일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0.73%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윤석열에 0.73%p석패…야당 지휘봉 잡아 이 후보는 대선 패배 뒤 정치적 공백을 택하지 않고 곧바로 중앙정치에 복귀했다. 2022년 6·1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같은 해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 77.77%를 득표해 승리했다. 국회에 입성한 뒤에도 이 후보의 정치 역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쌍방울 관련 수사 등 사법 리스크가 끊이지 않았다. 친문(문재인)계와의 갈등도 지속된 끝에 결국 2023년 가을에는 자신을 향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는 정치적 위기를 마주했다. 이 후보는 24일간 단식으로 저항했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지난해 1월 2일에는 부산 북항 방문 중 흉기에 목을 찔리는 정치 테러를 당했다. 응급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이 후보는 "살인테러 미수 사건 이후 남은 생은 하늘이 준 덤으로 여기고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또 다른 칼날이 저를 향한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같은 해 4월 치른 22대 총선에서는 174석을 확보하며 전화위복이 됐다.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임기 종료인 3년 뒤를 준비하던 이 후보의 대선 시계는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의결했고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자 이 후보의 대권 가도가 활짝 열렸다. 3월 선거법 2심에서 무죄까지 받아내 승승장구하며 지난달 27일 득표율 89.77%, 압도적인 1위로 경선을 통과했다. 물론 5월1일 대법원이 2심 판결을 유죄취재로 파기환송하면서 재판을 계속 받아야할 처지가 됐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오는 15일에서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했다. 이 후보는 이를 두고 “법원이 헌법 정신에 따라 당연히 해야 할 합당한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 후보는 ‘대장동 특혜 의혹’ 등에 발목을 잡혔지만 국정감사에 직접 출석해 소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혹 해소에 나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념보다 실용 강조…89.77%득표율 다시 대선후보 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이념보다는 실용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어떤 사상과 이념도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며 “어떤 사상과 이념도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 앞에서는 무의미하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이 후보는 “23년 전 오늘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날”이라며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자 했던 노무현 후보는 불신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개혁의 시대, 통합의 시대로 가자고 당당하게 선언했다”고 말했다. 이어 “2002년 4월 27일이 그랬듯, 2025년 4월 27일도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결이 아니라 미래와 과거의 대결, 도약과 퇴행의 대결, 통합과 분열의 대결”이라며 “이념과 사상·진영에 얽매여 분열과 갈등을 반복할 시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연표 1964. 경북 안동 1976. 안동 삼계초 졸업 1978. 고입 검정고시 합격 1980. 대입 검정고시 합격 1976. 성남공단 노동자 1986. 병역면제(산재 지체장애 6급) 1986. 중앙대 법대 졸업 28회 사법시험 합격 1989. 민변 국제연대위원 1990. 이천노동상담소 소장 1994. 성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2006. 성남시장 낙선(열린우리당) 2008. 18대 총선 낙선(성남 분당·통합민주당) 2010. 민선 5기 성남시장(민주당) 2012. 민주통합당 기초자치단체장협의회 회장 2014. 민선 6기 성남시장(새정치민주연합) 2017. 더불어민주당 19대 대통령 후보 경선 후보 2018. 민선 7기 경기도지사(더불어민주당) 2021.7 20대 대선 출마 선언 2021.10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2022.3 20대 대통령 낙선 2022.6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천 계양을 보궐) 2022.8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당선 2024.4 22대 총선 압승 (인천 계양을 재선) 2024.8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연임 2025.4 21대 대선 후보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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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스토리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대통령 자리를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이달 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다. 최근 그는 ‘꼿꼿문수'로 불린다. 윤석열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국회에 출석해 12.3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 요구에도 머리를 숙이지 않아 생긴 별명이다. 윤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그 길로 김 후보는 보수 진영에서 차기 대권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오랜 기간 침묵을 깨고 지난달 8일 국무회의를 마지막으로 장관직에서 사퇴한 그는 다음날인 9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김 후보는 스스로를 좌·우 이념을 아우르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살아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동시에 중도 확장성이 약하다는 평가 속에 순탄치 않은 경선 과정을 통과했다. 부동의 1위를 이어오던 지지율의 부침도 겪었다. 아직 숙제는 남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단일화를 둘러싼 긴 싸움을 벌인 후 한 차례 국민의힘 후보 지명 취소까지 당하며 기사회생으로 대선 후보에 오른 김 후보다. 그는 꾸준히 반(反) 이재명 빅텐트와 후보 단일화를 외쳐온 만큼 다시 한 번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게 됐다. 다만 이준석 후보가 대선 완주를 선언한 만큼 단일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봤다. 전태일 열사 분신…김문수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김 후보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튿날인 지난달 10일, 첫 행선지인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사의 분신을 두고 그가 한 말이다. 1970년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김 후보는 대학시절 학업을 뒤로 하고 공장 노동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공장 생활을 7년 이상 했다는 그는 수 차례의 해고로 공장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김 후보는 “재단 기술을 배워 공장에 들어갔더니 한 달 하고 해고를 당해 다른 곳에 갔더니 일주일도 되지 않아 또 잘렸다"며 “일을 하지 않아 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많았던 공장에서 성인인 내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만연했던 미성년자 노동 착취와 근로기준법 미준수 현장을 꼬집은 것이다. 공장 생활을 하며 당시 우리 노동 현장의 현실을 직시한 김 후보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교육하는 한편 노조 활동을 이어갔다. 생전 전태일 열사와의 친분은 없던 그였지만 1984년 설립한 전태일기념사업회 초대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김 후보는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을 설립하고 이듬해 5.3 인천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2년 6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보수 정당으로…김문수, 36년 정치 인생 시작 운동권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던 김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보수 정치인으로 깜짝 변신했다. 입당 4년 전인 1990년 이재오 전 의원 등과 민중당을 창당하며 정치권에 이미 발을 들인 그이지만 보수 정치인으로의 탈바꿈은 세간의 경악을 자아냈다. 노동운동에 투신하던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지만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붕괴를 목격하면서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 전향에 대한 김 후보의 설명이다. 이후 1996년 김 후보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연이어 같은 지역구인 부천 소사에서 3선에 성공한 그는 2006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됐으며 2010년 재선에 성공하며 행정가로써 시민들에게 다가섰다. ‘119 상황실'에 장난전화?…'김문순대' 오명 얻은 金 “여보세요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 남양주소방서 맞아요? 이름이 누구요?" 김 후보를 대중에게 각인한 또 하나의 사건이다. 지난 2011년 경기도지사 시절 김 후보가 119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소방관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관등성명을 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으로 김 후보는 ‘갑질’ 이미지와 함께 ’김문순대'라는 오명을 얻었다. 김 후보는 이 사건으로 타격을 입으며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김 후보는 이달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와 “제복공무원이 지켜야 할 것은 계급과 이름을 먼저 말하는 것”이라며 “도지사가 전화한 적이 없으니 분명 장난전화라고 생각하고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상당히 고지식한 사람인데 융통성이 좀 부족했다”며 “소방관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尹 부름 받다…논란 끝 고용노동부 장관 임명 두 번째 경기도지사직을 마무리하고 물러난 김 후보는 총선(대구 수성구)과 지선(서울시장)에 도전했지만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이후 김 후보는 자유통일당을 창당하며 대표를 맡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런 그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9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했다. 과거 격렬한 노동운동의 거두로 불린 김 후보였지만 이후 행적은 노동계의 궤적과 사뭇 달랐던 탓에 경사노위 위원장 임명이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후 2024년 윤석열 정부 두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되며 윤 정부와의 밀착 행보를 가속화한다.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대정부질문에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참석한 김 후보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무위원 전원 사죄 요구에도 요지부동한 장면이 보도되면서 ‘꼿꼿문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계엄 선포 자체에는 반대하면서도 대통령 탄핵은 격하게 반대했던 그는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흡수하며 국민의힘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결국 ‘반탄파’ 주자로 당심을 얻으며 제21대 대선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됐다.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된 이후에도 12.3 비상계엄과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 요구가 빗발쳤다. 비상계엄과 관련해서는 명백한 반대 의사를 표한 김 후보지만 윤 전 대통령의 파면에 대해서는 여전히 선을 긋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달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그는 “자기가 뽑은 대통령이 잘못하면 정당이 책임 져야지 그 사람을 잘라내는 것은 잘못됐다”며 “무조건 내쫓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면책이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파면된 윤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반박하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진실로 사과해야 한다면, 탄핵에 대해 우리 당이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 정중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표 1951. 경북 영천 출생 1969. 3선 개헌 반대 시위 주도로 제적 후 복적 1970.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입학 1971. 위수령 관련 학생운동으로 제적 1974. 복학 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 1978.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1985.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1986. 인천시 5·3직선제 개헌투쟁 주도 혐의로 구속 1990. 민중당 창당·14대 총선 낙선(서울 구로갑) 1994. 민주자유당 입당 1996. 15대 총선 당선(신한국당·경기 부천 소사구) 2000. 16대 총선 당선(한나라당·경기 부천 소사구) 2004. 17대 총선 당선(한나라당·경기 부천 소사구) 2006. 민선 4기 경기도지사(한나라당) 2010. 민선 5기 경기도지사(한나라당) 2012. 한나라당 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후보 2016. 20대 총선 낙선(새누리당·대구 수성갑) 2018. 서울시장 낙선(자유한국당) 2020. 자유통일당 창당 2022. 윤석열 정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2024. 윤석열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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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스토리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국내 정치사에 다양한 ‘최초’ 기록을 세운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역대 최연소 제1야당 대표, 헌정사 최초 30대 당 대표 등 화려한 수식어가 그를 따라 다닌다. 언뜻 보면 만 39세의 이른 나이에 국회의원 뱃지를 단 성공한 정치인이다. 하지만 14년 남짓한 이 후보의 정치 인생을 돌아보면 순탄했던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 거듭된 낙선은 물론이고 국민의힘에서 당 대표 축출이라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좀처럼 겪기 힘든 사건도 견뎌내야 했다. 그가 “최대한 어려운 길로 가는 게 스스로의 도전이고 나와의 경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정치적 역경을 딛고 일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민의힘에서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 이 후보에겐 예상치 못한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던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하며 ‘동탄의 기적’을 만들었고, 개혁신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모두 배출한 원내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국회의원이 되기까진 13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로부터 대통령 후보가 되는 데까진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자 이 후보는 유력 대선 주자 중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했다. ‘세대교체의 기적’을 꿈꾸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돌면서 선거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 후보가 6·3 대선에서 당선되면 헌정사 최연소 대통령이자, 3석의 군소정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는 초유의 기록을 쓰게 된다. 과학고 출신 수재, 교육으로 나눔 실천 1985년생인 이 후보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아버지와 고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뛰어난 학습 능력으로 서울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학생회장을 지내며 리더십을 키웠다. 서울과학고 조기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했지만 곧 미국 하버드대학교로 넘어가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귀국해 대체복무를 마친 이 후보가 선택한 길은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원 봉사단체였다. 이 후보는 기초생활 수급자 등 소외계층 학생들을 가르치는 비영리 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설립해 대표 교사로 활동했다.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 한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은 나를 엘리트라고 보지만 인생의 절반을 상계동에서 보낸 만큼 스스로 중산층으로 칭하는 것이 부담이 없다”며 “엘리트라고 해서 사람들의 삶에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5년 동안 교육 봉사를 한 경험은 당에 들어와 법안을 논의할 때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쓴소리 마다하지 않는 ‘박근혜 키즈’ 2011년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던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만 26세의 젊은 나이였다. 하버드대 출신의 인재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영입된 동갑내기 손수조 전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키즈’로 이름을 알렸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통령 선거 승리에 일조하면서 이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인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추진을 강력히 주장했다. ‘박근혜 키즈’라는 태생에도 불구하고 당을 향해 거침없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젊은 개혁 보수 이미지를 구축했다. 2017년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 후보는 유승민 전 의원과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후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 등을 거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으로 돌아왔다. 이 후보는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자신을 영입 해준) 박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지만 탄핵은 정당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0선 중진’서 제1야당 대표로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바른정당 청년 최고위원,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등 굵직한 당직을 맡아왔다. 하지만 유독 원내와 인연이 없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재보궐선거, 2020년 21대 총선에 연이어 뛰어들었지만 모두 패배했다. 이 후보는 의정활동 대신 각종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하며 대중 인지도를 쌓았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2030 세대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캠프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아 2030세대를 유세차량에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내 큰 성공을 거뒀다. 여세를 몰아 국민의힘 당 대표에 출마한 이 후보는 당시 5선이었던 주호영·조경태 의원, 4선의 홍문표·나경원 의원을 꺾고 헌정 사상 최초 30대 교섭단체 정당 대표로 선출됐다. 임명직, 선출직을 통틀어 공직을 맡은 경력이 없는 최초의 당 대표였다. 임기 시작부터 당 대표 전용차가 아닌 따릉이를 타고 출퇴근 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큰 선거를 치르며 쌓은 대중적 인지도와 노하우를 활용해 2022년 20대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어냈다. 같은 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두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험지’에서 쓴 반전 드라마 국민의힘에서 두 차례 선거 완승을 이끌었지만 당 대표로서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 운영을 두고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갈등을 빚다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사태까지 겪고 결국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 후보는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뜻이 맞는 개혁 보수 성향 인사들과 함께 개혁신당을 창당해 초대 당 대표에 올랐다. 비례대표라는 다소 쉬운 방식으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지만 지역구에 출마하겠다는 기존의 발언을 고수하면서 더불어민주당 강세 지역인 경기 화성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잘 나오던 대구·경북(TK)이 아닌 수도권을 택한 것도 예상 밖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신생 정당에서 치르는 선거인 만큼 정치적 기반이 부족했던 이 후보는 직접 몸으로 뛰는 전략을 구사했다.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에 속한 동탄 100개 아파트 단지를 직접 탐방하며 포부와 공약을 소개했고 유세차 대신 자전거로 지역을 돌며 유권자들을 만났다. 선거 당일 이틀 전부터 48시간 무박 유세를 펼치며 막판까지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민주당 후보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반전 드라마는 현실이 됐다. 이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20% 포인트 이상 차이 나던 민주당 후보를 꺾고 본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며 원내에 입성했다. 이 후보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4낙선을 경험하시면서 험지 도전을 잃지 않으셨다. 그런 부분에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고 밝혔다. 본인의 당선 뿐 아니라 비례대표 2석을 더 확보하는 데도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압도적 새로움으로 ‘동탄 어게인’ 이 후보의 과감한 도전은 현재 진행중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나기 전이던 지난 2월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달 윤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직후 유력 대선 주자 중 가장 먼저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기도 했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이 후보는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기존 정치의 낡은 틀을 깨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인공지능(AI)을 필두로 과학기술 패권 경쟁을 주도할 적임자라는 점을 연일 부각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 ‘수학교육 국가책임제’, ‘국과과학영웅 우대 제도’, ‘규제 기준 국가제’ 등 파격적인 공약을 연이어 제시하는 것도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이 후보의 선거 슬로건은 ‘압도적 새로움’이다. 그는 “존 F. 케네디는 43세에 미국의 지도자가 되어 사람을 달에 보냈다. 46세의 버락 오바마는 흑인 최초로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며 “대한민국도 과감하게 세대 전환과 구도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연공서열 문화 혁파 △네거티브 규제 △교육 투자 등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제3지대에서 치르는 쉽지 않은 선거이지만 이 후보는 “선거는 이겨 본 사람만이 이길 수 있다”며 ‘완주’가 아닌 ‘당선’이 이번 대선에 임하는 목표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연표 1985년 서울 출생 2003년 서울 과학고 졸업 2007년 하버드대 졸업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2014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2018년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2020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2024년 개혁신당 당대표 경기 화성을 국회의원 2025년 제21대 대선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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