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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반세기 격차' 소니·월풀 넘다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03.10 17:32:59일본 소니를 꺾은 삼성전자(005930)의 TV와 미국 월풀을 따돌린 LG전자(066570)의 가전을 두고 세계 전자 업계는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에 비견하며 신화적으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공장조차 없던 한국은 TV와 가전이 내린 뿌리 위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 부품 사업도 거대한 결실을 맺어 고속 경제성장의 토대를 닦았다. 삼성과 LG가 전자 산업에 뛰어들던 1960년대 전후는 독일 지멘스(1847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1892년), 월풀(1911년) 등 기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이미 50~100년 이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한국의 인구와 내수 시장 규모도 전자 사업을 추진할 동력을 제한했다. 구인회 LG 창업회장이 1958년 라디오 개발을 마음먹자 보좌 임원조차 “기술 수준이 낮아 힘들다”고 만류할 정도였다. 그러나 삼성과 LG는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기술 개발을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며 빠르게 해외 경쟁사들을 따라잡았다. LG가 흑백 TV에서 앞서면 삼성이 컬러 TV로 대응하며 맞수 간 경쟁도 불꽃을 튀어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의 자양분이 됐다. 삼성은 2006년 세계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린 뒤 지난해까지 19년 연속 1위를 지켰다. LG전자는 2021년 가전 매출로 월풀을 뛰어넘어 세계 1위에 올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류가 살아가는 한 TV·가전 수요는 계속된다”며 “삼성과 LG의 발전이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51개국에 2460척…5대양 누비는 K조선
산업 산업일반 2025.03.03 19:01:06“건설로 시작한 현대가 조선소는 만들 수 있어도 배는 못 만든다.” 1970년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선대회장이 조선업 진출을 위해 차관을 제공받으려 세계 각국을 동분서주하던 당시 한 주한대사관에서 본국에 보낸 전문의 일부다. 조선소도 없는 나라에서 배를 만들 수 있겠느냐며 차관 제공에 반대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포기를 몰랐던 정 회장은 영국의 유명 선박 컨설팅 기업의 찰스 롱보텀 회장에게 당시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며 “한국은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다”며 설득했고 롱보텀 회장은 현대의 가능성을 확인한 후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의 차관을 받는 데 도움을 줬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이후 50여 년간 무섭게 성장했다. 울산의 황량한 백사장은 축구장 97개 크기, 단일 조선소 기준 세계 최대 규모(680만 ㎡)로 변모했다. 현대중공업은 1972년 출범 후 지금까지 51개국, 350여 개 선주사에 2460척의 선박을 인도했다. 전 세계 선박 건조량 1위다. 국내 최초 컨테이너선(1979년) 건조에 이어 한국 해군의 첫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을 인도했다. 조선 강국의 꿈은 진행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조선업 재건을 위해 SOS를 쳤는데 구세주는 단연 HD현대(267250)중공업이다. 정부와 재계는 HD현대중공업이 조선업 ‘퀀텀점프’와 함께 트럼프발(發) 무역 전쟁에 원군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경비정서 이지스함까지 선종 다변화…올해 특수선 2.2조 수주 목표
산업 기업 2025.03.03 17:44:02HD현대중공업(329180)이 독자 기술로 설계·건조한 최신예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DGG-II·8200톤급)’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해상 기반 한국형 3축 체계의 핵심 전력이다. 지난달 해군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을 앞두고 실시된 훈련에서 정조대왕함이 적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탐지해 요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전투력이 크게 향상된 정조대왕함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HD현대(267250)중공업은 동급의 이지스함을 2척 더 수주해 건조에 나섰다. 정조대왕함은 HD현대중공업이 50년 넘게 쌓아온 함정 기술력과 설비 역량의 집약체로 평가된다. 1975년 한국 최초 전투함 ‘울산함’부터 지금까지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수상함은 총 106척에 달해 국내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18척은 해외로 수출됐다. 1987년 뉴질랜드에 군수지원함을 인도하며 해외 수출길을 튼 HD현대중공업은 이후 경비정·호위함·초계함·상륙함 등으로 수출 선종을 다변화했다. 수출 지역 역시 동남아시아(방글라데시·필리핀)와 남미(베네수엘라·페루), 대양주(뉴질랜드) 등으로 확대했다. 국내에서는 세종대왕함·서애류성룡함·정조대왕함으로 이어지는 이지스구축함을 중심으로 90여 척을 인도하며 해군 전력 강화에 선봉장이 됐다는 평가다. 특수선(함정)은 과거 전체 매출 대비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면서 '알짜사업'으로 자리했다. HD현대중공업은 특수선 부문 매출이 지난해 처음 1조 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은 990억 원으로 3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특수선 수주 목표치로 15억 6700만 달러(약 2조 2600억 원)를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수주액과 비교하면 240% 급증한 것이다. 아울러 캐나다 등에서 예정된 대형 방산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경쟁 업체인 한화오션(042660)과 손을 잡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은 함선 경쟁력의 핵심 기반인 기술적 우위를 공고히 하려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2018년 조선사업본부에서 특수선 부문을 분리해 사업본부로 승격한 이후 함정 설계와 건조 등 전문 분야에 맞춰 경영 및 조직 체계를 개편한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이지스구축함 제작을 경험한 엔지니어만 250여 명인데다 다양한 선종별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특수선사업부 내 함정기술센터를 함정기술연구소로 확대 개편했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113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함정 수주 수요를 공략하겠다는 방침이다. -
엔진사업 착수 3년만에 자체 생산…36년째 글로벌 1위 고수
산업 산업일반 2025.03.03 17:40:51HD현대중공업(329180)의 울산 조선소는 10개의 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가 현재 건조 중인 선박으로 꽉 들어차 있다. 17만 4000톤급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4척을 비롯해 컨테이선 7척,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1척, 초대형 에탄운반선(VLEC) 2척, 탱커(원유·화학제품 운송용) 2척 등 세계 각지에서 수주한 다양한 선종의 배 17척이 동시에 제작되고 있다. HD현대(267250)중공업 1만 4000여 명, 협력 업체 1만 9000여 명 등 3만 3000여 명의 직원이 어우러져 일을 한다. 일감은 이미 3년 6개월치가 쌓여 있다. 2020년 12조 7506억 원 수준이던 수주 잔액은 2022년 33조 1782억 원을 거쳐 지난해 3분기 43조 9575억 원까지 늘어났다. 허허벌판 모래 백사장이던 이곳이 반세기 만에 연간 40~50척의 선박을 만들어내는 한국 대표 조선 기지로 자리매김한 밑바탕에는 3대에 걸친 불굴의 기업가정신과 임직원들이 쏟은 땀과 눈물이 있다. ◇조선소 없이 수주계약 따낸 뚝심=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선대회장은 조선소 없이 선박 건조 계약부터 따낸 것으로 유명하다. 어렵게 차관을 얻어 조선소를 짓던 중 그는 조선소 부지로 예정된 울산의 백사장 사진 한 장과 울산 앞바다를 중심으로 한 5만 분의 1 지도 한 장, 26만 톤짜리 유조선 도면 한 장을 가지고 세계를 누볐다. 선대회장은 조선소가 지어지기 1년 전인 1971년 스위스에서 결국 수주를 따냈다. 그리스 해운 기업 리바노스는 국제 선가보다 16% 싼 척당 36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11억 6000만 원)에 배를 맡기며 2년 6개월 내 인도하지 않으면 원리금을 전액 변상하라는 불리한 조건을 달았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한 내 선박 인도를 성공적으로 마쳐 한국의 조선업에 대한 모든 의문을 잠재웠다. 회사 측은 이후 엔진 기술 강화에 나섰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선박의 심장인 엔진을 자체 제작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중공업은 1976년 엔진 사업에 착수, 1978년 당시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생산능력 90만 마력의 선박용 대형엔진 공장을 준공했다. 현대중공업은 대형엔진 세계 시장 점유율(2024년 기준) 30%로 1989년부터 36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 세계에서 발주되는 선박 10척 중 3척은 현대중공업이 만든 엔진을 쓰고 있는 것이다. 2023년에는 대형엔진 누적 생산량이 총 2억 마력을 돌파했다. 이는 현대 쏘나타급 중형차 125만 대가 내는 출력과 같다. 대형엔진뿐 아니라 선박용 중형엔진(4-Stroke) 분야에서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30%)를 기록 중이다. ◇위기를 기회로, 책임경영 비전=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현대중공업 사장이던 1985년 “10년간 이룩한 성장과 발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해운업이 일대 타격을 받고 조선업 또한 최악의 암흑기를 지날 때였다. 정 이사장은 생존을 위해 사업본부별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고 체질 개선에 나섰다. 핵심은 원가 절감과 기술 혁신. 그는 경비 감축에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지는 않았다. 현재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회사 수익에 효자 역할을 하는 LNG 운반선 기술이 이때 갖춰졌다. 현대중공업은 기술 도입 이래 13년 만인 1991년 국내 최초로 LNG 운반선을 수주했다.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해 HD한국조선해양(009540)이 인도한 LNG 운반선은 지금까지 177척에 이른다. 한 차례 존립 위기를 극복한 현대중공업은 사업 다변화에도 나섰다. 회사 매출의 50%를 훌쩍 넘는 조선 사업 비중을 줄이려 현대로보트산업(1988년), 현대철탑(1988년) 등을 독립시켜 중장비·로봇 산업을 육성했다. ◇신사업 발굴로 미래 에너지·기계도 선점=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2009년 입사 이후 그룹의 신사업 발굴 및 포트폴리오 재편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016년 선박 애프터마켓(유지·보수)에 대한 시장 수요가 크다는 점에 착안해 HD현대마린솔루션(443060)을 출범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친환경 선박개조 등을 바탕으로 지난해 매출 1조 7455억 원, 영업이익 2717억 원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올해 매출 2조 원 돌파를 예상하면서 조선업을 넘어 HD현대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확보된 것이다. 아울러 정 수석부회장은 2017년 현대중공업에서 현대건설기계·현대일렉트릭·현대로보틱스를 인적분할해 미래 에너지와 기계 사업의 틀을 구축했다. HD현대는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조선 부문, 현대건설기계와 현대인프라코어의 건설기계, 현대오일뱅크의 정유와 현대일렉트릭의 전력기기 부문으로 구성된다. 특히 조선과 전력기기 사업이 유례없는 호황을 기록하면서 HD현대의 상장사 시가총액 순위는 최근 재계 5위(2월 말 기준)로 뛰어올랐다. 정 수석부회장은 2022년 미국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에 투자하고 지난해에는 세계 최고 빅데이터 업체인 미국 팰런티어사와 무인수상정 개발 약정서를 체결하는 등 미래 에너지와 인공지능(AI)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AI와 로봇 등을 스마트 조선소 구축 등 그룹의 주력 사업과 융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를 이은 산유국의 꿈…대한민국 준산유국 대열 이끈 SK이노베이션
산업 기업 2025.02.24 06:00:00기름 한 방울 없던 대한민국이 석유제품 5억 배럴을 수출하는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원유를 수입하면서 원유 정제 시설은커녕 인력조차 없던 한국이 60여 년이 지난 현재 원유를 이용해 화학제품을 독자 개발하고 친환경 항공유를 해외로 수출하는 새 역사를 썼다. 지난해 우리나라 석유제품 수출량이 5억 배럴에 육박하며 에너지 강국으로 거듭난 중심에는 SK이노베이션(096770)의 기술 혁신이 있다. 1962년 국내 최초 정유사로 닻을 올린 SK(034730)이노베이션(대한석유공사)은 1964년 국내 최초 정유 공장인 상압증류탑을 세우고 생산에 돌입했다. 1972년 역시 국내 최초 석유화학 공장인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가동했다. 당시 NCC를 짓던 SK이노베이션 근로자들은 기온이 오르면 설비가 멈춘다는 기본 지식조차 없었지만 원서로 된 설명서를 일일이 찾아 공부하고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NCC 가동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혁신은 선경(SK 전신)이 유공을 인수하며 가속화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1983년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연구개발(R&D) 조직인 기술지원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다른 정유·석유화학 회사들은 원유를 정제해 기초 화학제품을 만드는 단순 사업구조에 익숙해 있었는데 SK이노베이션이 R&D로 고부가 정유·화학제품을 개발하고 나아가 이를 사업화하는 ‘R&DB(R&D Business)’ 개념을 정착시켰다. SK이노베이션의 혁신은 한국을 석유화학 기술 수출국으로 이끌었다. SK지오센트릭(SK종합화학)은 고성능 폴리에틸렌인 ‘넥슬렌’을 독자 개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화학기업인 사빅과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과 석유화학 사업을 협업하는 나라로 발돋움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어 연구소를 대전 연구개발특구로 옮겨 대폭 확장하고 공정·촉매 등 석유화학 기술 연구는 물론 고부가 윤활유와 아스팔트 등을 개발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지속가능항공유(SAF)를 올 1월 국내 정유사 중 처음 유럽에 수출, 시장을 선도했다. 무엇보다 SK는 1984년 광권을 내준 예멘 현지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마리브 광구에서 유전 개발에 성공, 1987년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쾌거를 이뤄 에너지 독립국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재생에너지 전문인 E&S와 합병을 마쳐 에너지 사업의 영역을 재차 넓혔다. 기존 석유 기반 에너지에서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 수소 등 신에너지 사업을 강화해 차세대 에너지 패러다임을 주도한다는 포석이다. 저장탱크만 즐비했던 SK이노 ‘울산CLX’…亞 최대 에너지기지로 탈바꿈 SK이노베이션의 생산 거점인 울산콤플렉스(CLX). 60년 전만 해도 이곳은 해외에서 수입한 정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보관하던 저장 탱크들만 즐비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250만 평 규모의 땅에 5개의 정유 공장과 에틸렌·폴리에틸렌 등 석유화학 콤플렉스가 들어서 있다. 단일 공장으로는 아시아 최대다. SK이노베이션이 아시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던 배경에는 에너지 주권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최종현 선대회장의 선견지명이 있다. SK의 에너지 사업 역사는 수차례 석유 파동이 전 세계를 덮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회장은 석유 파동 전부터 한국 경제가 발전하려면 안정적인 원유 공급망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1973년 일본 기업들과 국내에 정유 공장 설립을 추진하면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다졌다. 중동전쟁 여파로 정유 공장 설립이 무산됐지만 선대회장은 불포화 폴리에스테르수지 공장을 짓고 싶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요청에 흔쾌히 200만 달러를 건넸다. 당장 사업에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아랍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결단이었다. 투자는 1978년 2차 오일 쇼크 때 결실을 맺는다. 당시 국내에는 원유 재고가 10일 치만 남아 SK(선경)도 비상이 걸렸다. 이때 선대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사우디는 즉각 벨기에로 향할 예정이던 5만 배럴의 유조선을 한국으로 돌렸다. SK가 유공을 인수할 수 있던 배경에도 이처럼 안정적으로 원유를 확보할 수 네트워크가 작용했다. 섬유 회사인 SK가 수백 배나 큰 유공을 인수할 때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일찌감치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돈독히 쌓아온 관계가 빛을 발한 것이다. 에너지 기업 기틀 닦은 최종현…자원 개발 도전장 내밀며 미래 준비 유공 인수를 마친 최 선대회장은 또 한 번 미래를 준비한다. 1982년 임원 간담회에서 그는 "석유는 공해 문제가 있어 가능한 한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한다. 10년 후에는 정유 사업 비율이 낮아질 수 있도록 하자”고 주문했다. 이는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숙원이던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SK이노베이션은 1972년 국내 최초의 석유화학 공장인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가동했고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에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파라자일렌(PX) 등 9개 신규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선대회장은 유공 인수 직후인 1982년 자원기획실도 출범시켰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해외에서 직접 유전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전 개발은 수조 원의 비용이 들지만 성공 가능성이 5~10%에 불과해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임직원 역시 탐사에 성공해도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리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의구심을 가졌다. 실제 유공은 1983년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개발에 350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실패했다. 1984년에는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광구 개발에 나섰다 쓴맛을 봤다. 계속된 실패로 우려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최 선대회장은 “석유 개발 사업은 1~2년 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실패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며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SK는 결국 1984년 7월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16개월 만에 상업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1987년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이어 마리브 유전 개발을 성공하며 한국은 준산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베트남 15-1 탐사 광구와 페루 88광구 참여를 결정하며 투자 기조를 이어갔다. SK이노베이션은 전 세계적으로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이 불황을 겪는 가운데 해외 자원 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첨병은 SK어스온. SK어스온은 2021년 SK이노베이션 석유 개발 사업이 물적 분할해 설립된 자원 개발 전문 기업이다. SK어스온이 석유를 생산하는 광구의 자산 가치는 2021년 3151억 원에서 2023년 5149억 원으로 63% 늘었다. 개발 중인 광구의 가치 역시 같은 기간 327억 원에서 1205억 원으로 3.7배 증가했다. 최근 베트남에서 1억 7000만 배럴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규 광구 탐사에도 성공했다. 내년부터 말레이시아 두 개 광구에 대한 탐사 시추를 진행한 뒤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에서 액화천연가스(LNG)와 수소·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하는 SK E&S도 하반기부터 호주 칼디타·바로사 가스전 상업 생산에 돌입해 연 130만 톤의 LNG를 추가 공급한다. SK이노베이션은 자원 개발 사업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탐사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SK어스온은 산학 협력을 통해 AI 탄성파 탐사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암석 내부 빈 공간의 비율인 공극률 예측 정확도를 높였고 실제 탐사‧개발을 진행 중인 베트남 황금바다사자 광구에도 대입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SK어스온은 AI 솔루션 개발 업체인 에너자이와 협력해 석유 개발과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분야에서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
에너지 1위 초석된 경영나침반 ‘SKMS’
산업 기업 2025.02.23 18:44:33섬유에 뿌리를 둔 SK(034730)그룹이 에너지를 필두로 통신에 이어 반도체까지 각기 다른 사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에는 SK만의 경영 헌법인 ‘SKMS(SK Management System)’가 있다. 1979년 제정된 SKMS는 SK그룹 경영 활동과 기업 문화의 근간으로 46년간 14차례의 개정을 거치며 SK의 전기차 배터리 등 신에너지와 인공지능(AI) 사업 개척도 뒷받침하고 있다. SKMS는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을 만큼 학구적이던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최 선대회장은 당시 SK의 전신인 선경의 사업 영역이 넓어지고 임직원이 늘어나자 경영자의 개인적 자질만으로는 기업을 이끌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자신과 핵심 경영진이 체득한 기업 경영 노하우를 물려주려 SKMS를 정립했다. 선경 경영기획실은 최 선대회장의 지시로 경영의 기본 이념과 경영관리 등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관계사 모든 임원이 참석해 3박 4일 동안 난상 토론을 벌이며 경영관리 지침을 확정했다. SKMS의 핵심은 기업의 방향성을 규정하고 있는 점이다. 최 선대회장은 선경이 섬유 원료인 석유와 에너지로 사업을 확장한 것처럼 뚜렷한 방향과 시너지를 예상하며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83년 “어떤 방향으로 기업을 이끌지 정해 놓지도 않고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가 있다” 면서 “4년쯤 그렇게 운영하고 기업을 잘못 이끌었다고 후회하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했다. SKMS는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SK그룹이 인수 기업의 통합과 효과적 경영 체계를 빠르게 구축하는 데 촉매제가 됐다. SK는 1980년 유공(SK이노베이션(096770)), 1994년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017670)), 2012년 하이닉스(SK하이닉스(000660)) 등 대형 M&A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했는데 SKMS가 물리적 결합을 넘어 인적·문화적 화합을 돕고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된 것이다. SK그룹은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화를 위해 진행 중인 리밸런싱(사업 재편) 작업에서도 SKMS를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6월 열린 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도 계열사별로 SKMS 실천 활동을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리밸런싱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SK는 각 계열사의 SKMS 전담 조직을 통해 전 직원에게 기업 문화와 경영 이념을 전파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불가능하다던 정유·화학 등 수직계열화 구축…그룹 성공DNA 밑바탕”
산업 기업 2025.02.23 18:18:57“최종현 선대회장은 정유부터 석유화학, 섬유까지 아우르는 구상이 있었는데 직원들은 처음 가 보는 길이라 ‘설마 되겠냐’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이건 전 SK(034730)에너지 부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대회장의 통찰력을 회고하며 당시 사내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1968년 SK이노베이션(096770)의 전신인 유공에 입사한 그는 2003년까지 35년간 SK에너지 정유·석유화학 사업의 최전선을 지켰다. 그가 활약한 1970·1980년대는 정유·화학 공정에 정통한 사람이 전무하다시피 해 독자 기술로 정유와 석유화학 공장을 짓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전 부장은 “선대회장은 ‘일을 맡으면 끝까지 매달려 성공할 때까지 해 나가자’는 전통을 만들려 했다”며 “성공 DNA를 축적하려 애쓰셨다”고 전했다. 그는 “선대회장의 독려로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달라붙어 해결하자는 의지가 꽃피우기 시작했다”며 “직원들이 모든 작업을 기록하며 공유했고 조직 전체의 역량이 빠르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독립국의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전 직원이 항상 탐구하고 공부하는 습관이 있었다”며 “그 습관이 불가능해 보였던 원유 개발에서 정유·화학에 이르는 수직 계열화를 성공시켰고, SK 성장의 뼈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재계 2위 SK그룹의 기틀을 마련한 선대회장 이전에 최종건 초대회장 역시 임직원들에게 ‘하면 된다’는 정신을 독려했다. 1966년 SK의 모태인 수원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초대회장은 직원들을 총동원해 공장에서 2㎞나 떨어진 논에 물 대기 작업을 지시했다. 밤샘 작업 끝에 논바닥에 물이 꽐꽐 쏟아지자 직원들은 물론 농민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새벽까지 작업 현장을 지킨 초대회장은 “하면 안 되는 게 없다. 원사 공장도 이렇게 지어 나가자”고 직원들의 등을 두드렸다고 한다. 이 전 부장은 SK의 성공 DNA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강조했다. 정유·화학 사업의 성장 정체를 난도가 높은 신사업에 도전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선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는 친환경 에너지와 해외 자원 개발을 앞세워 석유 기반에서 미래 에너지로 방향키를 전환한 SK이노베이션의 기조와도 맞닿은 대목이다. 이 전 부장은 “정유·화학은 사이클 산업이라 어려운 시기가 올 수밖에 없지만 성공 경험을 토대로 기업과 구성원들이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대비하면 된다”며 “항상 새로운 산업과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탐구하는 분위기가 이어져야 SK가 에너지 기업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
저장탱크만 즐비했던 SK이노 ‘울산CLX’…亞 최대 에너지기지로 탈바꿈
산업 기업 2025.02.23 18:16:55SK이노베이션(096770)의 생산 거점인 울산콤플렉스(CLX). 60년 전만 해도 이곳은 해외에서 수입한 정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보관하던 저장 탱크들만 즐비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250만 평 규모의 땅에 5개의 정유 공장과 에틸렌·폴리에틸렌 등 석유화학 콤플렉스가 들어서 있다. 단일 공장으로는 아시아 최대다. SK(034730)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액화천연가스(LNG)와 수소,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하는 SK E&S를 흡수하며 자산 111조 원에 달하는 공룡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유공 인수 당시 빛난 최종현의 ‘석유 외교’=SK이노베이션이 아시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던 배경에는 에너지 주권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최종현 선대회장의 선견지명이 있다. SK의 에너지 사업 역사는 수차례 석유 파동이 전 세계를 덮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회장은 석유 파동 전부터 한국 경제가 발전하려면 안정적인 원유 공급망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1973년 일본 기업들과 국내에 정유 공장 설립을 추진하면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다졌다. 중동전쟁 여파로 정유 공장 설립이 무산됐지만 선대회장은 불포화 폴리에스테르수지 공장을 짓고 싶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요청에 흔쾌히 200만 달러를 건넸다. 당장 사업에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아랍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결단이었다. 투자는 1978년 2차 오일 쇼크 때 결실을 맺는다. 당시 국내에는 원유 재고가 10일 치만 남아 SK(선경)도 비상이 걸렸다. 이때 선대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사우디는 즉각 벨기에로 향할 예정이던 5만 배럴의 유조선을 한국으로 돌렸다. SK가 유공을 인수할 수 있던 배경에도 이처럼 안정적으로 원유를 확보할 수 네트워크가 작용했다. 섬유 회사인 SK가 수백 배나 큰 유공을 인수할 때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일찌감치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돈독히 쌓아온 관계가 빛을 발한 것이다. ◇IMF 때도 통 큰 투자…자원 개발 영토 확장=유공 인수를 마친 최 선대회장은 또 한 번 미래를 준비한다. 1982년 임원 간담회에서 그는 "석유는 공해 문제가 있어 가능한 한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한다. 10년 후에는 정유 사업 비율이 낮아질 수 있도록 하자”고 주문했다. 이는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숙원이던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SK이노베이션은 1972년 국내 최초의 석유화학 공장인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가동했고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에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파라자일렌(PX) 등 9개 신규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선대회장은 유공 인수 직후인 1982년 자원기획실도 출범시켰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해외에서 직접 유전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전 개발은 수조 원의 비용이 들지만 성공 가능성이 5~10%에 불과해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임직원 역시 탐사에 성공해도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리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의구심을 가졌다. 실제 유공은 1983년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개발에 350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실패했다. 1984년에는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광구 개발에 나섰다 쓴맛을 봤다. 계속된 실패로 우려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최 선대회장은 “석유 개발 사업은 1~2년 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실패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며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SK는 결국 1984년 7월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16개월 만에 상업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1987년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이어 마리브 유전 개발을 성공하며 한국은 준산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베트남 15-1 탐사 광구와 페루 88광구 참여를 결정하며 투자 기조를 이어갔다. ◇최태원이 실현한 ‘무자원 산유국’의 꿈…AI로 도약=SK이노베이션은 전 세계적으로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이 불황을 겪는 가운데 해외 자원 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첨병은 SK어스온. SK어스온은 2021년 SK이노베이션 석유 개발 사업이 물적 분할해 설립된 자원 개발 전문 기업이다. SK어스온이 석유를 생산하는 광구의 자산 가치는 2021년 3151억 원에서 2023년 5149억 원으로 63% 늘었다. 개발 중인 광구의 가치 역시 같은 기간 327억 원에서 1205억 원으로 3.7배 증가했다. 최근 베트남에서 1억 7000만 배럴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규 광구 탐사에도 성공했다. 내년부터 말레이시아 두 개 광구에 대한 탐사 시추를 진행한 뒤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에서 액화천연가스(LNG)와 수소·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하는 SK E&S도 하반기부터 호주 칼디타·바로사 가스전 상업 생산에 돌입해 연 130만 톤의 LNG를 추가 공급한다. SK이노베이션은 자원 개발 사업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탐사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SK어스온은 산학 협력을 통해 AI 탄성파 탐사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암석 내부 빈 공간의 비율인 공극률 예측 정확도를 높였고 실제 탐사‧개발을 진행 중인 베트남 황금바다사자 광구에도 대입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SK어스온은 AI 솔루션 개발 업체인 에너자이와 협력해 석유 개발과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분야에서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
대를 이은 산유국의 꿈…60년만에 5억배럴 수출로
산업 기업 2025.02.23 17:39:01기름 한 방울 없던 대한민국이 석유제품 5억 배럴을 수출하는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원유를 수입하면서 원유 정제 시설은커녕 인력조차 없던 한국이 60여 년이 지난 현재 원유를 이용해 화학제품을 독자 개발하고 친환경 항공유를 해외로 수출하는 새 역사를 썼다. ★관련 시리즈 4면 지난해 우리나라 석유제품 수출량이 5억 배럴에 육박하며 에너지 강국으로 거듭난 중심에는 SK이노베이션(096770)의 기술 혁신이 있다. 1962년 국내 최초 정유사로 닻을 올린 SK(034730)이노베이션(대한석유공사)은 1964년 국내 최초 정유 공장인 상압증류탑을 세우고 생산에 돌입했다. 1972년 역시 국내 최초 석유화학 공장인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가동했다. 당시 NCC를 짓던 SK이노베이션 근로자들은 기온이 오르면 설비가 멈춘다는 기본 지식조차 없었지만 원서로 된 설명서를 일일이 찾아 공부하고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NCC 가동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혁신은 선경(SK 전신)이 유공을 인수하며 가속화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1983년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연구개발(R&D) 조직인 기술지원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다른 정유·석유화학 회사들은 원유를 정제해 기초 화학제품을 만드는 단순 사업구조에 익숙해 있었는데 SK이노베이션이 R&D로 고부가 정유·화학제품을 개발하고 나아가 이를 사업화하는 ‘R&DB(R&D Business)’ 개념을 정착시켰다. SK이노베이션의 혁신은 한국을 석유화학 기술 수출국으로 이끌었다. SK지오센트릭(SK종합화학)은 고성능 폴리에틸렌인 ‘넥슬렌’을 독자 개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화학기업인 사빅과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과 석유화학 사업을 협업하는 나라로 발돋움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어 연구소를 대전 연구개발특구로 옮겨 대폭 확장하고 공정·촉매 등 석유화학 기술 연구는 물론 고부가 윤활유와 아스팔트 등을 개발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지속가능항공유(SAF)를 올 1월 국내 정유사 중 처음 유럽에 수출, 시장을 선도했다. 무엇보다 SK는 1984년 광권을 내준 예멘 현지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마리브 광구에서 유전 개발에 성공, 1987년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쾌거를 이뤄 에너지 독립국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재생에너지 전문인 E&S와 합병을 마쳐 에너지 사업의 영역을 재차 넓혔다. 기존 석유 기반 에너지에서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 수소 등 신에너지 사업을 강화해 차세대 에너지 패러다임을 주도한다는 포석이다. -
"화재 위험없는 배터리 만들자"…안전 분리막으로 EV시대 개척
산업 기업 2025.02.16 17:42:36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전기차 배터리 업황 둔화에도 과천 R&D 캠퍼스를 증축하고 배터리 소재까지 연구개발을 확대하는 것은 위기에 투자를 확대하며 연구실 불을 끄지 않았던 30년 기술 뚝심의 전통에 기반한다. 2차전지 개발의 선구자였던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에 이어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현재가 아닌 미래에 주목하며 과감한 투자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LG는 전기차 수요 정체와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배터리 업체의 경쟁력 강화에도 담대하게 기술력을 쌓아 올려 다가올 ‘슈퍼 사이클(초호황)’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로 군림한다는 포부를 불태우고 있다. ◇세계 최초 안전강화분리막으로 선두로 ‘우뚝’=전기차 배터리 등 2차전지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세계적 강자로 올라선 배경에는 30년 넘는 기술 뚝심이 자리한다. LG그룹의 2차전지 사업 역사는 1992년 구 선대회장의 영국 출장길로부터 시작된다. 한 번 쓴 후 버리지 않고 다시 충전해 사용하는 2차전지를 처음 접한 구 선대회장은 한국에 돌아와 럭키금속에 연구개발을 주문했다. 1995년 LG화학이 2차전지 사업을 넘겨받았지만 일본 업체에 비해 10년 이상 뒤처진 기술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수천억 원대 적자로 경영진들은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구 선대회장은 “길게 보고 연구개발에 집중하라”며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다.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 착수 약 10년 만에 개발에 성공한 ‘안전성강화분리막(SRS)’의 개발은 2차전지 사업에 회의적인 분위기를 뒤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분리막은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소재로 안전성 측면에서 핵심으로 꼽힌다.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면 화재로 이어지는 배터리의 최대 약점을 보완할 수 있어서다. 당시 노트북과 휴대폰 등에 탑재한 리튬이온 배터리에는 얇은 비닐 형태의 폴리올레핀 분리막이 채택됐는데 열에 매우 취약했다. 배터리 온도가 130도를 넘으면 분리막이 녹으며 폭발해 버린 것이다. LG화학이 2004년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SRS는 이런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세라믹으로 분리막 표면을 코팅해 고온을 견뎌내며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 기술은 미래 영역으로 여겨지던 전기차 시대를 바짝 앞당겼다. LG화학은 2000년부터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낮은 수율로 애를 먹었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의 SRS 적용으로 한 자릿수 수율을 96%까지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용 배터리 생산을 전담하는 쾌거를 이룬다. 전 세계 모든 전기차가 현재 SRS 기술을 적용한 배터리로 움직이고 있을 만큼 LG엔솔의 기술력은 독보적이다. ◇위기 속 투자…차세대 배터리 소재 연구 거점 구축=LG엔솔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전 세계 배터리 업체들이 고전하는 와중에도 리딩기업 답게 지난해 1조 원 넘는 R&D 투자를 단행하면서 기술력의 심장인 과천 R&D캠퍼스 증축에 나서고 있다. 회사 측은 2단계 공사를 통해 축구장(국제규격 기준 7140㎡) 3개 크기의 연구 시설(연면적 약 2만 2425㎡)을 과천 캠퍼스에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2015년 지어진 과천 R&D캠퍼스는 리튬황배터리·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뿐 아니라 배터리 성능과 수명을 관리하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개발하는 LG엔솔의 연구 거점이다. 증축을 마치면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필요한 소재를 분석 및 실험하는 시설까지 갖추게 돼 기술 담금질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땅파기를 끝내고 이르면 1분기 착공해 완공 시점은 2029년 이후로 잡고 있다. 연구개발 인력도 늘린다. 과천 R&D캠퍼스에는 현재 약 800명의 인력이 상주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향후 새 시설들이 들어서면 배터리 소재 관련 연구 인력을 충원해 전체 연구원이 1000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천 R&D캠퍼스와 도보로 10분 거리인 LG전자 서초 R&D캠퍼스의 6개 층에도 LG엔솔 개발 인력들이 R&D에 힘쓰며 기술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LG엔솔은 과천 R&D캠퍼스뿐 아니라 마곡 R&D캠퍼스, 대전 기술연구원 등 전용 연구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LG엔솔이 배터리 소재 분야의 기술력 향상에 집중하는 것은 향후 제품 경쟁력을 판가름할 핵심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소재에 따라 배터리 성능과 안전성, 수명, 충전 속도 등은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2030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인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하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바꿔 에너지밀도는 높이고 화재와 폭발 위험은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LG엔솔은 최근 전고체 배터리에 얇은 실리콘층을 입혀 충전 속도를 10배 향상시키는 기술을 셜리 멍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함께 개발했다. 저렴하면서도 최대 효율을 발휘할 소재를 개발한다면 배터리 가격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친환경 규제에 따라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재사용이 강조되고 있다”면서 “LG엔솔이 자원 선순환 체계 구축을 겨냥해 재활용 가능성을 극대화한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적극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동명 LG엔솔 사장은 최근 임직원에게 캐즘의 늪에 빠진 시장 상황을 놓고 “지금을 ‘강자의 시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면서 “위기일 때 진정한 실력이 드러난다. 미래 슈퍼 사이클이 도래하면 결국 실력을 갖춘 기업이 이를 지배할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
적자에도 30년간 R&D…세계 첫 '전기차용 리튬전지' 개발
산업 기업 2025.02.16 17:39:222020년 말 LG화학에서 분할된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출범 후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달려왔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배터리 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세계 전기차 시장의 태동을 만들며 핵심 부품인 배터리 기술력을 선도할 기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1995년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든 LG화학 전지사업본부는 얼마 안 돼 연간 2000억 원의 적자를 내며 ‘돈 먹는 하마’라는 오명에 휩싸였다. 일본에 한참 뒤진 기술에 “그만 사업을 접자”는 임원들이 많았지만 일찌감치 2차전지를 미래 먹거리로 눈여겨본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 회장은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퍼스트 무버’가 되겠다는 야심을 꺾지 않았다. 선대 회장이 “결코 포기는 없다. 길게 보고 끈질기게 연구하면 반드시 성과가 날 것”이라고 독려하자 연구진도 밤낮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해 2004년 배터리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을 독자 개발했고, 2009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배터리를 제너럴모터스(GM)에 독점 공급하는 쾌거를 이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후 세계 10대 완성차 업체 중 9곳을 고객사로 확보하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SRS 개발의 주역 중 한 명인 이상영 연세대 화공생명학과 교수는 “K배터리가 글로벌 강자로 자리 잡은 것은 미래를 내다본 리더의 비전과 확고한 의지, 수많은 실패에도 도전한 연구진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덮친 LG에너지솔루션은 30년 전의 초심을 잊지 않으며 새해 기술 심장부인 경기도 과천 R&D캠퍼스의 대규모 증축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서울경제신문이 직접 찾은 과천 R&D캠퍼스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차세대 배터리와 배터리관리시스템(BMS) 개발에 이어 배터리 소재로 연구개발(R&D)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을 처음 목격할 수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R&D 투자가 2023년 첫 1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캐즘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에도 R&D 투자를 1조 1000억 원으로 늘린 것이 배터리 소재 기술력을 확대하는 발판이 됐다고 한 연구원이 귀띔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경험을 축적했고,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라며 3년 후 매출을 66조 원으로 늘리며 다시 ‘퀀텀점프’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
BMS 특허 8000개 '세계 1위'…전기차 1대당 300弗 추가 수익
산업 기업 2025.02.16 15:22:05LG에너지솔루션(373220) 과천 R&D캠퍼스의 한 연구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로 손바닥 크기만한 녹색 인쇄회로기판(PCB)이 놓여 있었다. 각진 기판 위로는 수많은 칩과 얇은 금속 배선들이 이어져 있어 마치 정교한 지도를 연상하게 했다. PCB는 배터리의 두뇌로 불리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핵심 부품으로 개별 배터리셀에서 수집한 전압과 전류, 온도, 충전 상태(SOC), 수명 상태(SOH) 등 데이터를 분석해 배터리 성능과 안전성을 최적화하는 역할을 한다. BMS 개발 실무를 총괄하는 이상훈 LG에너지솔루션 BMS BDI 담당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배터리팩에 BMS를 부착해 패키지로 공급하면 전기차 한 대당 200~300달러의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면서 “BMS는 배터리 열 폭주와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감지·예방하는 것을 넘어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 배터리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연장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 시절인 2005년부터 BMS 연구개발에 집중해왔고 지난해 말까지 8000건 넘는 관련 기술 특허를 확보했다. 특허 보유 건수는 전 세계에서 단연 1위다.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 등 15곳 이상의 완성차 제조사에 BMS를 탑재한 배터리팩을 공급하며 단순 배터리 제조·판매를 넘어 배터리 안전·성능을 관리하는 서비스 사업으로 수익 구조를 다변화했다. 전기차 100만 대분 배터리를 공급한다고 가정할 때 BMS로 최대 3억 달러(약 4367억 원)의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BMS 개발 초기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시장 주도권은 일본 업체들이 쥐고 있었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의 BMS 개발 인력은 15명 남짓으로 세 자릿수 규모의 일본 업체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다. 이 담당은 신입사원 시절이던 2004년을 떠올리며 “도요타는 이미 하이브리드차용 BMS를 개발했고 소니와 혼다도 발 빠르게 기술을 개발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며 “그때는 일본 업체에서 근무한 전문가를 고문으로 영입해 선진 기술을 전수받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2010년대 들어 LG에너지솔루션은 ‘기술 차별화’를 앞세워 일본 업체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기존 BMS가 전기차 배터리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이상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수준이라면 LG에너지솔루션은 방대한 데이터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해 배터리 수명을 예측하고 성능 저하를 최소화하는 최적의 충전·방전 전략까지 제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현재 축적해놓은 배터리 데이터는 45테라바이트(TB) 규모로 500쪽짜리 책 4500만 권 분량에 해당한다. BMS 개발 인력도 현재 450명으로 20년 전보다 30배 가까이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목표는 배터리 탑재부터 충전·탈거·재활용 등에 이르는 전체 생애 주기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차 리스 사업자를 상대로 배터리 잔존 가치를 평가해주고 향후 최상의 상태로 처분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 등이다. 사업자는 이를 통해 중고 전기차의 가치를 좌우하는 배터리 성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처분에 따른 손실을 줄여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이 담당은 “전기차 리스 및 렌털 사업자, 중고차 딜러, 최종 소비자에게 배터리 가치를 평가·인증하고 배터리 퇴화를 늦추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며 “순환경제의 흐름에서 재제조 또는 재활용이 가능한 폐배터리를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분류하는 분야에서도 사업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자율주행차·소프트웨어중심차(SDV)·도심항공교통(UAM) 등 배터리로 구동하는 미래 교통수단에서도 BMS 활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BMS 시장 규모는 올해 68억 달러(약 9조 277억 원)에서 2035년 220억 달러(약 30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안 가본 길 가야 혁신…中 맞설 신무기 절실"
산업 기업 2025.02.16 14:10:04“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야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상영 연세대 화공생명학과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배터리 업체들이 쓰던 분리막을 따라 쓰는 데 급급했다면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물론 지금의 K배터리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7년 LG화학(051910)에 입사해 2008년까지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안전성강화분리막(SRS)’ 개발을 주도했다. 전 세계 최초로 분리막에 세라믹을 입히는 신기술로 리튬이온배터리의 고질적 문제인 화재·폭발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다. 연세대 이차전지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 교수는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와 적극적인 산학 협력으로 한국 2차전지 산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교수는 SRS 개발 과정을 떠올리며 “100번 시도하면 99번의 실패를 반복하면서 좌절과 함께 ‘진짜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많았다”면서 “수많은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엔지니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SRS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글로벌 기술 경쟁이 치열한 2차전지 산업에서 ‘K배터리’의 과거 위상을 회복할 ‘신무기’가 절실하다고 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대규모 내수 시장 및 인력을 등에 업은 현지 배터리 업체에 대항하려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도로 차별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똑같이 만들어도 한국 배터리가 품질에서 중국에 앞섰지만 지금은 비슷한 수준으로 (중국이) 따라왔다”며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을 고려할 때 기존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차별화된 기술을 적용한 ‘돌연변이’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주력 제품인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서 철의 일부를 망간으로 대체해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방안 등을 그 예로 제시했다. 차세대 배터리로 가는 데 다리 역할을 할 제품 개발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 공백기를 채울 수 있는 기술 확보를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단기적으로 기존에 확보한 기술을 응용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후 장기적으로 차세대 배터리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며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장 요구에 맞는 제품을 적기에 내놓을 수 있어야 ‘슈퍼 사이클’이 돌아왔을 때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총수가 엔지니어에 '개발 전권'…256M D램부터 30년간 초격차
산업 산업일반 2025.02.09 17:48:141994년 8월 29일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005930) 기흥캠퍼스의 한 팹(반도체 생산 공장)에 수십 명의 엔지니어들이 아침 일찍 모였다. 3년여간 개발해온 256메가(M) D램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성공하면 일본을 따돌리고 256M D램 최초 개발이라는 신기원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7시간이 지나도록 100% 작동하는 반도체 웨이퍼가 나오지 않았다. 연구원들도 하나둘 실망스러운 표정이 감돌았다. 실패의 분위기가 짙어지던 순간 마지막 2개의 웨이퍼에서 2억 7000만 개 셀이 정확하게 작동하는 제품이 나왔다. 한국 반도체가 반도체 왕국 일본에 일격을 날린 이날은 경술국치 84년이기도 했다. 김광호 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적어도 D램 기술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평등했던 구한말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을 선언할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D램을 포함한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그야말로 일본 기업 천하였다. 1991년에는 NEC·도시바·히타치가 글로벌 1·2·3위를 나란히 휩쓸었다. 64M D램에서도 삼성전자의 개발 시계는 일본보다 빨랐지만 256M D램부터는 양과 질 모두에서 일본을 확실히 앞섰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삼성전자가 도쿄선언으로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한 지 약 11년 만에 거둔 쾌거였다.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반도체 산업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삼성전자가 업계 선두로 올라선 배경에는 과감한 결단들이 있다. 반도체는 여느 산업보다 축적된 노하우가 중요해 후발주자가 선도 기업을 따라잡기 어려운 분야다. 정기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고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로 제품을 설계하는 기술은 하루이틀에 성숙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술력은 제품을 실제 생산하면서 경험적으로 쌓이는 측면도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 초기부터 물량 공세를 펼쳤지만 후발 업체의 한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1983년 단 6개월 만에 첫 제품 64K D램을 개발했지만 손해만 쌓였다. 어렵게 제품을 개발했지만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 원가보다 낮은 가격을 받고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특단의 승부수를 던진 것은 이 같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선대회장은 투자와 개발 시간표를 과감히 미래로 돌려 차세대 제품에서 승부를 보기로 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투자를 단행했다. 한치 앞이 불투명한 경쟁 상황에서 수년 뒤 양산될 16M·64M·256M D램 개발에 최고 엔지니어들을 투입해 아낌없이 지원사격을 했다. 이들 제품은 이후 차례로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선봉장이 됐다. 현장 엔지니어의 목소리를 최우선에 둔 것도 결실을 앞당기는 데 디딤돌이 됐다.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모든 것을 베팅하는 절박한 시기에도 기술 분야만큼은 전적으로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신뢰했다. 연구개발(R&D) 프로젝트의 가능성이나 목표 설정, 속도 조절 등은 현장의 뜻을 존중해 결정했다. 256M D램 개발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황창규 당시 256M D램개발팀장은 전권을 갖고 프로젝트를 이끌었는데 선대회장이 관여한 것은 투자 규모나 시기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자 연구원들도 밤낮없이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진출 초기 생산 현장에서 매일 이뤄졌던 ‘일레븐 미팅’이 대표적이다. 매일 오후 11시에 이뤄졌던 이 미팅은 현장 개발·생산 인력들이 하루 성과와 진척도를 당일 저녁 점검하고 종합 토론을 통해 이튿날 일정을 결정하는 식이었다. 수백 개 공정을 하나하나 검토해 해결책을 도출해내다 보니 시간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고단한 작업이었지만 현장 인력들은 매일 오후 11시 이를 반복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황 전 사장은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회의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다 보니 목소리가 잠겨 있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인재 최우선 정책도 삼성 반도체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다. 최고를 고집했던 선대회장의 신념은 반도체 업계 선두 탈환 이후 30년간 1등을 유지하는 비결이 됐다. 인재 유치를 위해 ‘헤드헌터’를 자청하기도 한 선대회장은 “전자 산업에서 일본을 이기려면 반도체가 필수”라며 해외 인재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반도체는 인류에 공헌하는 사업”이라며 사업 보국도 강조했다.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들인 황창규·진대제·권오현 박사가 해외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귀국을 결심한 것도 선대회장의 끈질긴 설득 때문이었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는 “요즘 삼성이 톱다운식 의사 결정, 재무팀 주도 경영 판단이 보편화한 것과 달리 1990년대는 기술자들이 발언권을 갖고 토론하며 중요 결정에도 참여했다”며 “지속적 기술 향상이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은 총수의 결단과 지원으로 과감한 투자로 기술을 선점하고 1위에 오른 뒤에도 초격차를 유지하려 근성을 발휘해 수십 년간 왕좌를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개발자 한명 한명이 1인 기업…영광 잠시 접고 절실함 무장을"
산업 산업일반 2025.02.09 17:47:29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임형규 전 삼성전자(005930) 사장은 삼성이 초격차를 다시 회복하려면 엔지니어 개인이 1인 기업 수준으로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과 그에 걸맞은 보상 시스템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삼성이 영광의 시간을 접고 절실함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엔지니어로 회사에 입사한 임 전 사장은 메모리 개발 총괄 임원으로 삼성의 D램 사업이 1위로 도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바 있다. 2000년 사장으로 승진한 후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등 신사업 개척을 이끌기도 했다. 임 전 사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사업을 ‘500마리 말들이 이끄는 레이스’에 비유했다. 그는 “반도체 기술력의 요체는 결국 사람”이라면서 “D램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하위 500가지의 세부 기술마다 10명가량의 고급 인력이 요구돼 총 5000명의 기술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00마리 말 중 몇 마리만 뒤처져도 결승선에 빨리 도착할 수 없는 것처럼 500개 각 분야마다 최고 실력이 갖춰져야 1등을 할 수 있는 것이 반도체 사업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500마리의 말’ 레이스에서 1위를 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 개개인을 사내 벤처 기업으로 간주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와 그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설명했다. 임 전 사장은 “적어도 500개 기술 분야를 이끄는 인재들만큼은 일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해서 벤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죽으라고 일을 하지 않나. 사내에 벤처가 1000개 이상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이들이 벤처 기업 수준으로 보상받고 일하도록 업무 환경을 고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반도체 업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이슈가 된 반도체 연구 인력의 ‘주 52시간 근로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 신설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임 전 사장은 “집중적인 연구개발 과정이 불가피한 반도체 산업 특성에서 주 52시간 근무 제한은 한가하고 태평한 얘기”라며 “과거를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겠지만 삼성이 한창 1위로 치고 나갈 때는 ‘월화수목금금금’이 보통이었고 이는 확실한 보상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장기간 이어온 초격차에 따른 안정감이 조직 문화를 느슨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임 전 사장은 “약 30년간 세계 1위를 했다. 넉넉하게 잡아도 1992년부터 1등을 했으니 32년이 흘렀으니 오만해진 부분도 분명히 있다”며 “삼성을 초격차로 이끌던 당시 분위기와 마음을 모르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삼성에서) 대부분인데 과거의 영광은 잠시 접고 다시 한번 삼성의 도전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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