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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총수 최장수 93세·최단명 47세…평균 수명은 77세
경제 · 금융 경제동향 2018.05.20 14:21:19재벌 그룹 창업주와 직계 총수들의 평균 수명은 77살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일 재벌닷컴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자산 5조원 이상 60개 대기업 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52곳을 대상으로 총수를 지냈다가 별세한 창업주와 직계 총수 36명을 대상으로 작고한 나이를 조사한 결과 평균 수명은 77세로 나타났다. 이날 향년 73세로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평균보다 4년 정도 짧게 산 셈이다. 재벌총수들이 타계한 연령대는 70대가 13명으로 가장 많았다. 80대 10명, 60대와 90대 각각 5명 등으로 뒤를 이었다. 50대와 40대는 각각 2명, 1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가장 장수한 총수는 2002년 타계한 영풍그룹 창업주 장병희 전 회장과 지난해 별세한 구태회 LS전선 전 명예회장으로 각각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14년 별세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전 회장이 92세 별세하면서 그다음으로 장수했다. OCI(옛 동양제철화학) 창업주 이회림 전 회장과 이원만 코오롱그룹 전 회장도 모두 90세에 세상을 떠났다. 가장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재벌 총수는 SK그룹 모태인 선경화학섬유의 창업주 최종건 SK그룹 전 회장으로, 1973년 47세에 세상을 떴다. 태광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호진 회장의 큰 형인 이식진 태광그룹 전 부회장도 2004년 5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한화그룹 전신인 한국화약 설립자 김종희 전 회장은 81년 59세로 숨져 당시 29세이던 장남 김승연 회장이 총수 자리를 물려받았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전 명예회장은 1987년 노환과 폐암 합병증으로 유명을 달리하며 재벌총수 평균 수명만큼 살았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전 회장과 장경호 동국제강 전 회장, 이장균 삼천리 전 회장도 모두 평균 수준인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밖에 허준구 LG건설 전 명예회장, 이재준 대림산업 전 회장, 최기호 영풍그룹 전 회장, 박성용 금호그룹 전 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전 회장, 이임룡 태광그룹 전 회장, 장상태 동국제강 전 회장은 70대에 운명했다. /김경훈기자 styxx@@sedaily.com -
'이웃집 아저씨' 구본무 회장, 소탈·겸손하게 눈 감다
산업 기업 2018.05.20 14:11:35고(故) 구본무 LG(003550)그룹 회장의 장례식은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조용하고 간소한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20일 LG그룹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자 가족과 회사 임원들에게 수차례 ‘조용한 장례식’을 주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LG그룹은 이날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한평생 허례허식을 피하고 소탈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죽음 이후에도 이어가길 원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이날 고인이 마지막 입원 치료를 받았던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졌지만 가족·친지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조문을 받지 않았다. 조화도 정중히 사절하고 있다. 이는 고인이 “내 삶의 궤적대로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달라”, “나 때문에 번거로운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취지의 당부를 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회장 재임 때도 행사나 출장을 다닐 때 비서 1명 정도만 수행하도록 했다. 특히 주말에 개인적인 일에는 혼자 다닐 정도로 소탈한 생활을 했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고인은 평소에 그룹 경영진에게도 자녀 등의 결혼식을 할 때 가능하면 검소하게 치르도록 조언했다고 한다. 지난해 창립 70주년을 맞았을 때도 그룹 내 일각에서는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구 회장은 별도의 행사 없이 시무식을 겸해 간소하게 치르며 의미를 되새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오너가 장자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았지만 젊었을 때부터 현장에서 혹독한 경영훈련 과정을 거치는 LG의 원칙과 전통이 몸에 밴 것이 일상생활에도 이어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부장 시절 해외출장을 함께 간 한 기업 인사가 나중에 귀국해서야 동행한 사람이 그룹 회장의 맏아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랐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직원들과 소탈하게 어울리는 회장으로 재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장 취임 초 그룹 임직원들을 시상하는 행사에 직원들과 똑같이 행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해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LG그룹은 사주 일가의 갑질 행태 등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거의 없기로 유명하다”면서 “이는 구 회장의 소탈하고 겸손했던 면모가 반영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LG 트윈스, 구본무 회장 애도 위해 한화전 응원 취소
문화 · 스포츠 스포츠 2018.05.20 13:50:23프로야구 LG트윈스가 20일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애도하기 위해 이날 열리는 한화 이글스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LG의 한 관계자는 “한화 구단도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협조했다”며 “LG 선수단은 유니폼에 근조(謹弔) 리본을 달고 뛸 예정”이라고 말했다. 별도의 애도 행사는 열리지 않는다. 조용하고 간소한 장례를 치루기로 하고 조문과 조화조차 사양한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른 결정이다. 20일 오전 73세를 일기로 별세한 구 회장은 생전 야구에 큰 애정을 보였다. 1995년 그룹 회장에 오르기에 앞서 1990년 창단한 LG 트윈스의 초대 구단주로 연을 맺고, 2007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LG 선수단과 기쁨을 함께 했던 구 회장은 트윈스가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해마다 경남 진주 단목리에 있는 외가로 LG 선수단을 초청하는 ‘단목 행사’를 개최하며 선수단의 화합에 앞장서기도 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구본무 회장의 남다른 문예사랑
문화 · 스포츠 문화 2018.05.20 13:31:47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문화예술 분야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LG아트센터는 구본무 회장의 문예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LG 공익재단 중 하나인 연암문화재단이 2000년 3월 개관한 LG아트센터는 민간 출자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명실상부 국내 최정상급 공연기관으로 발돋움했다. 총 공사비 620여억원을 들여 건립한 1,103석 규모의 최첨단 공연장으로 음악·뮤지컬·무용 등 장르를 넘나드는 세계적 수준의 공연예술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공연 산업의 저변을 확대하고 수준을 높였다. 외환위기 사태 이후 불황의 터널 끝에 있던 개관 당시는 문화에 대한 소비와 관심이 위축된 시기였다. 대다수 기업들이 문화 지원 예산부터 삭감하던 때였다. 그러나 건립 당시 구 회장은 “흥행에 연연하지 말고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 공연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수행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피나 바우쉬, 피터 브룩, 로베르 르빠주, 이보 반 호프, 매튜 본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예술가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곳도 LG아트센터다. 탄츠테아터의 창시자 고 피나 바우쉬가 LG아트센터와 합작으로 작품을 제작한 배경에도 구 회장이 있다. 구 회장은 LG브랜드 출범 10주년, LG아트센터 개관 5주년을 기념해 2005년 피나 바우쉬 무용단에 10억원의 제작비용을 지원하며 한국을 주제로 한 무용극 ‘러프 컷’ 제작을 요청했다. 구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LG아트센터는 개관 10여년만에 유럽과 영미권의 주요 극장들이 연간 프로그램을 짤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할 극장으로 발돋움했다. LG아트센터는 공연 외에도 한국 메세나 협회와 함께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인 ‘꿈꾸는 프로듀서’, ‘나는 배우다’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2021년 마곡으로 이전하는 LG아트센터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새롭게 태어난다. 구 회장이 세계적 건축가를 물색한 끝에 그를 낙점했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구 회장은 스포츠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1990년 프로야구단 MBC 청룡을 인수해 LG 트윈스를 창단했다. 당시 초대 구단주를 맡았는데 프런트 직원을 직접 뽑을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모친 생가가 있는 경남 진주 단목리에서 선수단 모임을 매년 주재하는가 하면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캠프를 방문하기도 했다. 구 회장의 야구사랑은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에게까지 이어졌다. 구본능 회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지냈으며 구본준 부회장은 LG트윈스 구단주를 이어받았다. 구본무 회장은 1996년 LG 치타스(현 FC서울)의 마스코트 제작을 일일이 검토하는 등 축구단 창단 때도 열정적으로 앞장섰다. 핸디캡 9의 골프 애호가였던 그는 동반 라운드로 사람을 뽑았다는 일화도 남겼다. 그룹 계열의 곤지암 골프장에서 CEO가 될만한 임원을 비즈니스 라운드에 슬쩍 끼워 넣어 본인도 모르게 ‘면접’을 실시했다. 골프 실력보다는 매너, 잘 될 때와 위기 상황에서의 태도 등을 꼼꼼히 살폈다고 한다. /서은영·양준호기자 supia927@@sedaily.com -
[영상] LG '정도경영' 이끈 '구느님' 구본무 회장의 어록
산업 기업 2018.05.20 12:43:02“의미있는 실패는 더욱 격려할 것입니다”, “최고의 성과는 최고의 대우에서 나옵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9시 5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LG 측은 “구 회장은 1년간 투병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며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95년 럭키금성그룹 회장에 취임해 40년 넘게 이어져왔던 그룹 이름을 현대식 이름인 ‘LG’로 바꾸고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길을 닦아왔다. 2003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가 출범하면서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왔다. 특히 고인은 성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아도 목표로 삼은 것을 포기 않는 ‘뚝심’으로 유명했다. 1991년 야심차게 시작한 배터리 사업에서 저조한 성적으로 적자가 이어지자 회사 내부에서 여러 차례 사업을 접자는 의견이 나왔었다. 하지만 고인은 “포기하지 말고 다시 시작합시다. 여기에 우리 회사의 미래가 있습니다”라며 끝까지 밀어붙여 현재는 배터리 부문 국내 1위, 세계 3위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늘 사람을 최우선으로 두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인재 경영’과 “앞서가더라도 바르게 가야 한다”는 ‘정도 경영’ 원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인은 “우리가 갑(甲)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며 “투자자와 사회의 믿음에 부응하고 배려가 필요한 곳에는 먼저 다가서야 한다”고 늘 강조해 왔다. 재벌그룹 최초의 지주사 전환, 국내 최초 환경공익재단 설립, 5만평 숲 조성, 독립유공자 후원, ‘의인상’ 제정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온 구본무 회장이 남긴 어록들을 영상으로 정리했다. /강신우·정혜진 기자 seen@@sedaily.com -
'끈기·결단'의 리더십으로 LG그룹 이룬 故 구본무 회장
산업 기업 2018.05.20 11:39:57고(故) 구본무 LG(003550)그룹 회장을 수식하는 말은 ‘끈기와 결단, 그리고 온화의 리더십’이다. 구 회장은 연세대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해 애쉬랜드대학과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각각 경영학을 전공한 뒤 귀국, 1975년 ㈜럭키에 입사했다. 이후 럭키와 금성사의 기획조정실 등 주요 실무경험을 쌓은 뒤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그룹 총수로서의 준비를 했다. 1995년 럭키에 입사한 지 20년 만에 회장으로 승진했다. 온화한 이미지로 알려진 구 회장은 공격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면서 LG를 전기·전자와 화학사업은 물론 통신,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집중하면서 그룹을 키워나갔다. 1997년 자산 30조원, 재계 3위였던 LG그룹이 GS, LS,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사세가 줄지 않고 지난해 자산 120조원대로 여전히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오롯이 구 회장의 공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구 회장의 결단력은 1995년 럭키금성이라는 사명을 LG로 바꾼 일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럭키금성이 갖고 있던 대중성 때문에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에서도 쓸 수 있는 CI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끝까지 밀어부쳤다. 그런 후 나온 기업 캠페인 ‘사랑해요 LG’는 이전의 럭키금성보다 더 많은 대중성을 확보했다. 아울러 그의 결단력은 LG디스플레이의 대형 올레드(OLED), LG화학(051910)의 2차전지 사업 등은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만들어놨다. 아울러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것 역시 구 회장의 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면에서는 결단력이 있는 오너였으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 줄지를 아는 경영자였다”며 “자신의 뜻을 무리하게 관철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부하 직원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
구본무 LG 회장 별세
산업 기업 2018.05.20 11:02:42구본무 회장이 20일 오전 9시 5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구 회장은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을 발견해 수술과 치료에 전념해왔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돼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LG 측은 “구 회장은 1년간 투병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며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45년 LG그룹 구자경 회장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다. 국내에서 연세대학교를, 미국 유학에서 애슐랜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그룹에 첫발을 들였다. 1981년 LG전자 이사로 승진했고 1984년 LG전자 일본 도쿄 주재 상무를 거쳐 1986년엔 회장실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989년 LG그룹 부회장에 오른 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1995년 LG그룹 회장에 취임해 2003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가 출범하면서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왔다. 구 회장의 경영권은 LG가문의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40)가 물려받게 된다. (주)LG는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구 상무를 사내이사로 선임키로 하고, 다음달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해 이를 확정할 예정이다. 딸만 둘을 뒀던 구 회장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자였던 구광모 LG전자 상무를 2004년 입적했다. 향후 승계 구도를 미리 준비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후 구 상무는 (주)LG의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그룹 내에서 경험을 쌓으며 후계자로서의 역량을 다지는데 집중해왔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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