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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LG회장 별세]참척의 아픔 겪고…아버지보다 먼저 떠난 구본무
산업 기업 2018.05.20 18:11:23고(故) 구본무(73) LG 회장은 묵묵히 성과를 내는 모범적인 경영자상을 한국 재계에 정립했지만 가족사는 불행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인 구자경(93) LG 명예회장 생존 시에 유명을 달리해 재계의 안타까움이 더하다. 구 회장도 1994년 외아들을 잃은 아픈 기억이 있어 더욱 기구하다. 구 회장은 1995년 구 명예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승계받아 50세에 3대 LG 회장에 취임했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70세가 되자 20세에 얻은 맏아들인 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결단을 한다. 아들의 경영에 부담을 주지 않고자 충남 천안의 농장으로 내려가 버렸다. 재계에서 ‘물러날 때’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지금도 ‘아름다운 사례’로 회자되는 일이다. 그러나 구 회장 집안일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특히 19세였던 외아들을 가슴에 묻으면서 구 회장 마음속에도 깊은 상처가 생겼다. 말할 수 없는 비통함에 한동안 일손을 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구 회장과 부인 김영식 여사는 아들의 위패를 안치한 서울 삼청동 칠보사를 자주 찾아 아픈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구 회장은 외아들을 잃었지만 LG 회장이자 장남으로서 승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1996년 51세에 막내 연수씨를 낳았는데 딸이었다. 결국 구 회장은 장자(長子) 승계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LG 구씨 가문의 전통에 따라 2004년 자신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본능(69)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40)씨를 양자로 들였다. 장조카를 법적인 장자로 삼아 회장직을 승계시키기 위해서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95년 구 회장에게 LG 회장을 맡기며 구본능 회장을 희성그룹으로 분가시켰는데 9년 뒤 분가한 집 아들이 LG 회장 승계자가 되는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구 회장의 건강이 일찍 악화한 것은 아픈 가족사의 클라이맥스다. 90대 노인이 적지 않은 이른바 100세 시대다. 이런 세상에서 구 회장이 수년 전부터 뇌수술 등으로 고통받다 70대 초반 너무 일찍 세상을 떠 유족의 슬픔이 더욱 크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 구광모, 내달 ㈜LG 등기임원→최대주주→경영승계 마침표
산업 기업 2018.05.20 18:09:4820일 LG그룹을 연 매출 160조원(2017년 기준)의 글로벌 초우량 기업으로 일궈낸 구본무 회장의 타계로 23년간의 ‘LG 3세 경영 시대’가 저물었다. 구 회장 뒤를 이어 LG 4세 시대를 열 후계자는 올해 40세의 젊은 피 구광모 LG전자 상무다. 구 상무는 창업주 때부터 이어져 온 LG의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목, 지난 2006년 LG전자로 입사해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구 상무는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2004년 아들이 없는 구본무 회장 양자로 입적했다. LG전자의 핵심 사업인 가전·TV 부서와 LG 계열사 간 사업 조율 업무를 하는 ㈜LG 시너지팀을 거쳤고 올해 초부터는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사업부를 이끌고 있다. ◇ 4代로 이어지는 ‘장자 승계’ 전통=LG는 고 구인회 창업주의 유지를 따라 장자 승계 전통을 이어왔다. ‘가업은 장남이 물려받고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 형제들은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전통이다. 구 창업주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총수직을 넘겨받고 그 바통을 이어 구 명예회장의 장남 구본무 회장이 총수에 오른 것도 이런 전통에서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구광모 상무가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구도가 구 회장 타계 직전 이미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 그룹 지주사인 ㈜LG는 지난 17일 구 상무를 신규 사내이사로 내정했다고 밝히며 후계 구도를 명확히 했다. 구 회장의 건강 상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승계에 필요한 수순을 서둘러 밟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 구 회장의 동생이자 구 상무의 작은 아버지인 구본준 LG 부회장이 한동안 그룹 경영을 함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런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구 상무가 오는 6월29일 정식 등기임원으로 선임되면 4세 후계자 중심의 새로운 경영체제가 꾸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구 상무, 지주사 지분 추가 확보 나설 듯=LG그룹은 ㈜LG가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지주사 체제다. 이 때문에 구 상무가 ㈜LG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게 4세 경영 승계의 마지막 단계다. 구 상무는 현재 ㈜LG 지분 6.24%를 보유해 구본무 회장(11.28%), 구본준 부회장(7.72%)에 이은 ㈜LG 3대 주주다. 재계에서는 구 상무가 구 회장 보유 지분 상당수를 상속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30억원 이상에 대한 상속 최고 세율 50%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한 할증까지 붙으면 최고 65%의 상속 세율이 적용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럴 경우 구 상무가 내야 할 세금은 최대 1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각종 공제 혜택을 받으면 실제 내야 할 상속세는 이보다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구 상무가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3.45%), 구본식 희성 부회장(4.48%) 등으로부터 일부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구 상무가 그룹 후계자로서 ㈜LG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하지만 40대 초반으로 젊은 나이에 국내 재계 서열 4위 대기업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부분은 부담 요소로 꼽힌다.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 모두 20여년의 경영 수업 기간을 거쳐 각각 45세와 50세에 부친으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넘겨받았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국내1호' 휩쓸던 락희화학·금성사...160조 글로벌 LG로
산업 기업 2018.05.20 18:06:39지난 1995년 2월22일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 고 구본무 회장은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게서 떨리는 손으로 LG그룹기를 넘겨받았다. 당시 50세의 구본무 회장은 이렇게 취임 일성을 뗐다. “세계 초우량을 진정으로 갈구하고 오직 초우량을 목표로 삼은 강한 LG로 만듭시다. 공정·정직·성실을 바탕으로 ‘정도경영’을 펼칩시다.” 구본무 회장의 할아버지이자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은 공동창업주 고 허만정 회장에게 얻은 자금을 기반으로 1947년 부산 연지동에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세웠다. 락희화학은 국산 1호 화장품이자 LG의 첫 제품인 럭키크림을 생산했다. 이렇게 LG그룹이 탄생한 1947년 창업 첫해 매출은 3억원이었다. 1951년 구인회 회장은 전 재산 3억원을 탈탈 털어 플라스틱 사업에 투자했다. 1958년에는 금성사(현 LG전자)를 세워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첫 뿌리를 내렸다. 1960년대 국내 1호 합성세제·라디오·전화기·룸에어컨·선풍기·냉장고·흑백TV는 모조리 락희화학과 금성사가 휩쓸었다. 2대 구자경 명예회장을 맞은 LG는 글로벌 기업으로 커 나갔다. 구 명예회장은 교사로 일하다 아버지 부름을 받고 LG에 들어와 공장 문 여닫는 잡일부터 시작해 1970년 회장에 올랐다. 1980년대 반도체·정밀화학·정보통신 사업으로 확장해나갔다. LG가 글로벌 기업 대열에 합류한 것은 구자경 명예회장 때부터지만 지금 LG의 사업 줄기가 형성된 건 구본무 회장 때다. 지금의 LG 사명이 탄생한 것도 구 회장 때다. 구 회장은 1995년 회장 취임 함께 럭키금성을 LG로 바꿨다. 사명 변경은 LG의 글로벌 톱브랜드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했다. 2003년 이뤄진 국내 최초 지주사 전환과 LS(2003년), GS(2005년) 계열분리는 LG가 복잡한 출자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각 계열사가 책임 경영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구 회장의 결단은 지금 LG가 전자·화학·정보통신 3대 축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배구조 재편 이후에는 전기차 배터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장 사업 진출 등 사업 고도화에 나섰다. 그 결과 구 회장 취임 당시 5조원대에 불과했던 LG전자 매출은 현재 61조원(2017년 기준)까지 불어났다. LG화학은 국내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로 성장하며 미래차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구 회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당시 정부 주도로 추진됐던 ‘반도체 빅딜’이 대표적이다. LG는 이때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에 내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LG는 2007년 발간한 창립 60주년 사사(社史)에서 당시의 아쉬움과 분노를 이렇게 적었다. “인위적 반도체 빅딜의 강제는 (중략) 한계사업 정리, 핵심역량 집중이라는 당초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구 회장은 물론 LG 역사에서 반도체 빅딜을 막지 못한 것은 회한으로 남아 있다. LG반도체가 현대에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가 됐던 글로벌 컨설팅회사 ADL의 보고서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선정했다는 점 때문에 구 회장이 한동안 전경련 출입을 끊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금융업 철수도 구 회장 때 이뤄졌다. 2003년 ‘카드 사태’가 터졌다. 업계 1위 LG카드(현 신한카드)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졌고 구 회장은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주식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했다. 이는 사실상 LG가 금융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선언이었다. LG투자증권은 당시 금융계열사였던 LG카드·LG투신·LG선물·부민상호저축은행을 지배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이후 LG카드는 신한금융그룹으로 팔려나가 신한카드에 흡수되면 금융업 진출 30여년 만에 완전 손을 뗐다./한재영·이종혁·김보리기자 jyhan@@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유머 많고 쾌활해 대인관계 좋아… 勞經상생 보여준 경영인의 표상
경제 · 금융 정책 2018.05.20 17:59:40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에 대해 “사람 중심의 경영, ‘노경(勞經) 관계’의 발전을 잘 보여준 훌륭한 경영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구 회장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20일 진 전 부총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건전한 상식을 가진 경영자의 표상을 잃었다”며 크게 안타까워했다. 진 전 부총리와 구 회장의 인연은 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정책 분야와 산업 분야에서 굵직한 획을 그으며 때로는 좋은 인연으로, 때로는 아쉬운 인연으로 만나고 헤어졌다. 진 전 부총리는 공직을 떠난 뒤 2004년부터 3년간 LG전자 사외이사를 맡아 구 회장과 일하기도 했다. 진 전 부총리가 노동부 장관을 지내던 1995년, 대립적 노사관계는 재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는 “당시 노사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데 LG그룹을 보니 이미 ‘노경 관계’라는 고유개념을 가지고 상생문화를 세우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진 전 부총리는 “노사문제에 대한 구 회장의 노력은 ‘인화경영’이라는 LG그룹 목표와도 정확히 일치했다”고 말했다. 재벌상속 문제에 대해서도 구 회장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게 진 전 부총리의 설명. 그는 “국내 대기업의 자녀상속을 보면 LG그룹이야말로 가장 무리 없이 원만한 처리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물론 정부와 LG그룹 간 사이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IMF)로 촉발된 대기업 간의 빅딜은 구 회장에게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겼다. 구 회장은 1999년 LG반도체(현 하이닉스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넘겼다. 진 전 부총리는 대기업 빅딜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구 회장의 아쉬움을 잘 알고 있었다. 진 전 부총리는 “김우중 전경련 회장과 정부가 각을 세우던 시절이었다”며 “빅딜의 결론에 대해 구 회장이 매우 언짢고 서운해했다”고 떠올렸다. 진 전 부총리는 “구 회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추억했다. 그는 “항상 유머가 많고 쾌활해 대인관계가 좋았다”며 “또 재벌 2, 3세라는 것을 전혀 티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 "1등 LG" 승부욕으로 글로벌기업 다져
산업 기업 2018.05.20 17:54:49고(故) 구본무 LG(003550)그룹 회장은 지난 1995년 회장 취임 이후 줄곧 ‘1등 LG’를 강조했다. ‘LG는 2등’이라는 평가를 구 회장은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취임 당시 구 회장은 “LG를 반드시 ‘초우량 LG’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라고 밝혔다. 이후 구 회장은 GS그룹 분리 등을 겪으면서도 1994년 30조원대에 불과했던 LG그룹 매출을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끌어올렸다. 강한 승부욕을 바탕으로 목표를 반드시 이루는 구 회장의 뚝심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구 회장은 ‘인재가 LG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그가 인재를 얼마나 애틋하게 챙겼는지 알 수 있는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구 회장은 취임 후 매년 빠짐없이 ‘LG글로벌챌린저’ ‘LG 테크노 콘퍼런스’ 등 인재 발굴 행사에 참석했다. 대학원생들을 직접 경기 광주 곤지암 화담숲으로 초대하는 등 스킨십을 아끼지 않았던 구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의 특권으로 기존의 틀을 넘어 세상을 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고 항상 강조했다. 휴식 중에는 ‘야구광’ ‘당구광’ ‘골프광’으로 변신했다. 구 회장은 부회장 시절이었던 1990년 LG 트윈스 창단 당시 초대 구단주를 맡았고 선수단 전체를 모아놓고 그해의 선전을 기원하는 독특한 전통을 만들기도 했다. 2000년 전지훈련지인 오키나와를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경우 백지수표를 써주겠다고 약속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필(feel)’이 꽂히면 마니아 수준이 될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는 성격으로 당구 점수는 무려 700점에 이르고 골프 실력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 새와 숲을 사랑한 具회장...사람 중심 '人和의 LG' 만들다
산업 기업 2018.05.20 17:50:48지난해 봄 고(故) 구본무 LG(003550)그룹 회장은 손자와 함께 경기 광주시에 위치한 곤지암 화담숲을 찾았다. 4월께 뇌수술을 받은 터라 완전치 않은 몸이었지만 구 회장은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한발 한발 내딛던 구 회장은 멈춰 서서 숲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를 목격했던 이는 “많은 것을 내려놓은 듯 매우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20년 넘게 LG그룹을 이끌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떨리는 결단을 내렸을 그의 마지막은 조용하고 소탈했다. 재계 4위의 그룹 총수였던 구 회장을 기억하는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마지막까지 오점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여러 기업과 총수들이 각종 물의를 일으켰을 때도 구 회장 본인과 LG그룹만큼은 예외였다. ‘LG 반도체’를 잃었을 때도, GS그룹과 분리할 때도 뒤처리가 깔끔했다.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 시대의 LG는 인화(人和) 그 자체였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공사를 막론하고 ‘흐르는 물’ 같은 삶을 산 구 회장의 일대기는 ‘인화’로 요약된다. 지난 1945년 2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75년 LG화학(051910) 입사 이후 무려 20년간 경영 수업을 받으며 사람 간의 화합을 강조하는 ‘인화의 정신’을 철저히 되새겼다. 단순히 사업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분쟁 없이 사람 중심 경영을 해야 한다는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조화 경영’은 구 회장이 경영에서 인화를 구현한 사례 중 하나다. 구 회장은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CEO)들과 업무 분담을 확실히 하며 자율과 책임을 부여했다. 구 회장이 그룹 포트폴리오 조정과 인사를 맡고 구 부회장은 사업 전반을 세밀하게 챙기면서 의사결정 속도와 사업 효율성을 높였다. 아울러 구 회장은 그룹 전략회의·임원세미나 등을 진행하며 계열사 CEO와 활발한 의견 교환을 했다. 각 계열사 CEO들이 자신감 넘치게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가 하면 날카로운 질문과 세세한 지시로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 더욱 주목받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역시 일찌감치 구 회장이 강조한 인화와 맞닿아 있다. 구 회장은 1997년 국내 최초의 환경전문 공익재단인 ‘LG상록재단’을 설립했고 2010년에는 아호(雅號) 화담(和談·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을 따 5만평 규모의 곤지암 화담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수목의 체계적인 보전과 연구뿐 아니라 생태체험을 통한 교육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에는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하자”고 강조하며 ‘LG 의인상’을 만들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룰 때만 참 생명이 살아갈 수 있다’는 구 회장의 소신은 유별나게 새와 숲을 좋아한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 회장은 집무실 창가에 대형 망원경을 설치해놓고 한강 위를 나는 새를 관찰하는가 하면 2000년에는 ‘한국의 새’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날아가는 모습만 보고 이름을 맞출 수 있는 새가 150마리가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휴일에는 화담숲을 거닐며 생각을 정리하고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다. 유유자적하는 모습과 달리 경영에서는 냉철한 승부사로 불렸다.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 CEO였다. 격의 없이 소통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굵직한 사안을 과감한 결단으로 맞섰다.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고 LS와 GS그룹 분가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는 ‘LG 웨이(WAY)’를 선포하며 그룹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 그룹계열사 CEO들을 관리하는 것도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LG 관계자는 “덕담을 나누다가도 반드시 정곡을 꿰뚫는 질문 한두 개를 던졌다”면서 “CEO들을 부리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LG 관계자는 “구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그의 말은 항상 묵직한 울림을 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LG가 사업에서든 사회공헌에서든 존경받는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데 구 회장의 역할이 상당했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앞서 가려면 더 바르게 가야", "협력회사와 갑을관계는 없다"
산업 기업 2018.05.20 17:31:34“정도경영으로 고객을 만족시키고 사원·주주·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참다운 세계 기업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1995년 2월 22일 취임사에서) 고(故) 구본무 회장의 23년 전 취임 일성은 ‘정도경영’이었다. 정도경영이 LG(003550)를 100년 이상 가는 기업으로 만드는 길이며 일등 기업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임원 세미나에서 “앞서 가려면 더욱 바르게 가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인재의 중요성은 구 회장이 23년 동안 그룹을 이끌면서 남긴 말의 시작과 끝이었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11년 9월 인재개발대회에서 “좋은 인재를 뽑으려면 유비가 삼고초려 하는 것과 같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찾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으며 “미래의 기회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수익보다 중요한 것이 인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연구개발(R&D)의 중요성도 구 회장이 늘 강조했던 말이었다. 구 회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만의 차별화된 역량을 키워갈 수 있는 연구개발 투자는 줄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2009년 3월 임원세미나)”거나 “지금까지의 R&D가 새로운 기술, 그 자체를 중요시했다면 이제는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더 나은 방식을 찾는 R&D로 생각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2007년 3월 연구개발성과보고회)”며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새로운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뒤지지 않았다.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와의 제휴를 “단순한 외자 유치를 넘어 글로벌 파트너링의 계기로 삼아 앞으로 성장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생소했던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개념을 그룹 연구전문위원들에 소개하기도 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뚝심·소탈…100년 기업 기틀 짠 '이웃집 아저씨'
산업 기업 2018.05.20 17:26:47 -
4세 구광모 상속세 1조라는데…LG그룹株 주가 향방은?
증권 종목·투자전략 2018.05.20 17:26:37구본무 LG(003550)그룹 회장이 별세와 LG그룹의 4세 경영 진입이란 변화에도 LG그룹주에 변동성을 확대시키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 회장의 건강 악화설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주가가 잠잠한데다가 4세 경영에 대한 예고도 시장이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구광모 상무가 1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어떤 방식으로 풀지에 따라 계열사들의 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나온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일 지주사 ㈜LG는 전일보다 1.27% 오른 7만9,800원을 에 거래를 끝냈다. 6거래일 만에 반등이었다. 계열사인 LG유플러스(032640)는 1.6%(200원) 오른 1만2,700원에 장을 마감했다. LG이노텍(011070)(1.18%), LG상사(001120)(1.05%) 등도 상승 마감했다. LG전자(066570) 주가는 전일과 동일한 9만8,000원에 마감했다. 반면 LG화학(051910)은 -0.43% 하락한 채 장을 마쳤다. LG디스플레이(034220)(-0.87%), LG생활건강(051900)(-0.08%), LG하우시스(108670)(-0.65%)등도 모두 소폭 하락 마감했다. 17일 LG그룹이 공시적으로 구 회장의 와병을 인정하고 같은 날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정보디스플레이(ID)사업부 상무를 ㈜LG 등기임원으로 선임했지만 주가는 큰 변동이 없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부터 경영 일선에 구본준 LG부회장이 사실상 총수 역할을 대신하면서 준비를 해왔고 어느 그룹보다 먼저 지주회사체제를 안정시킨 상황에서 주가에 영향을 미칠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4세 승계가 큰 어려움 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 등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구 상무는 현재 3대 주주로 구 회장의 지분율을 물려받는다면 총 17.52%의 지분을 보유하게 돼 실질적인 그룹 경영권을 가질 수 있다. 증권사들은 올해 LG그룹 전체 계열사들의 실적이 60% 가량 증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으며 우려되는 신성장사업도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돌파구를 찾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구 상무가 지분인수에 따른 1조원에 달하는 상속세가 부담스럽다고 지적한다. 할증률과 상속규에에 따른 과세율을 적용하면 상속세는 9,000억원이 훌쩍 넘어간다. 계열사 판토스 등을 상장하는 방안도 거론되나, 일감몰아주기 규제로 쉽지 않은 상태다. 또한 검찰이 100억원대 양도세 탈루 의혹 등으로 LG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했다는 것도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LG는 신사업에서 M&A 가능성을 열어둔 데다 계열사 실적도 호조를 보이는 만큼 구 회장 별세가 주가가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아 보인다”며 “현재 주가는 M&A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 데다 자회사 관리 등에 보수적 경영기조를 이어온 탓에 저평가돼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
"내 삶 궤적대로…" 구본무 회장 '가족장' 당부한 이유
산업 기업 2018.05.20 17:16:47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달라는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가족 이외의 조문과 조화는 받지 않기로 했다. 생전에 “나 때문에 번거로운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느냐”며 소탈하고 검소한 면모를 보여왔던 고인은 가족들에게 “내 삶의 궤적대로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소탈하고 겸손하게 살아왔다. 행사나 출장 때도 비서 한 명 정도만 수행하도록 하고 주말에 개인적인 일에는 홀로 다닐 정도였다. 젊었을 때부터 현장에서 혹독한 경영훈련 과정을 거치는 LG의 원칙과 전통이 몸에 밴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이 발견돼 수차례 뇌수술을 받았고 통원치료를 받아왔다. 최근 병세가 급격하게 나빠져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1년간 투병생활을 하면서 구 회장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지도층인 대기업 오너 회장이 연명의료를 거부함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매달리지 않고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연명의료 중단 시범사업 기간부터 이달 11일까지 6,400여명이 연명의료를 중단(유보 포함)했다. 이 중 38%는 본인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환자 가족 전원의 동의를 받아 연명의료 중단이 결정됐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 "교육·문화·예술 지원 헌신한 기업인들의 모범" 경제계 애도물결
산업 기업 2018.05.20 17:14:43한국 경제계의 큰 별인 구본무 LG(003550)그룹 회장이 20일 타계하면서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이 부회장을 지냈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대한민국 경제의 큰 별인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데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고인은 대혁신을 통해 화학·전자·통신 등의 산업을 세계 일류의 반열에 올려놓은 선도적인 기업가였으며 정도경영으로 항상 정직하고 공정한 길을 걸어 늘 기업인들의 모범이 됐다”고 추모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평소 소탈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많은 기업인들에게 귀감이 돼온 고인을 떠올리면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구 회장의 경영철학은 비단 LG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도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경총은 “구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히며 “고인은 LG그룹 회장 취임 이후 ‘노사(勞使)’를 넘어선 ‘노경(勞經)’이라는 신(新) 노사문화 형성을 바탕으로 ‘정도경영’을 추구했으며 노경화합은 혁신활동의 기반이 돼 LG그룹이 험난한 구조조정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고 고인의 업적을 평가다. 또 무협은 “무역 업계는 한국 경제계의 큰 별인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은 LG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확고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우리나라가 무역 1조달러, 무역 9강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고인과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끌며 함께 성장해온 주요 기업들도 일제히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현대차그룹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뜻을 기리며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한국 경제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주역 중 한 명이며 앞으로도 한국 경제 부흥을 위해 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전했다. 아울러 구 회장이 창단을 주도하고 초대 구단주를 맡는 등 애정을 보였던 프로야구단 LG트윈스는 이날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한화 이글스와의 잠실 홈경기에서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으며 LG 선수단은 유니폼에 근조 리본을 달고 뛸 예정이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
[구본무 LG회장 별세] 트렌디한 4세 경영인 '관록의 6인'과 미래 먹거리 찾는다
산업 기업 2018.05.20 17:13:41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 1995년 3대 회장으로 취임해 그룹의 사업 물줄기를 크게 전자·화학·정보통신 등 세 가지로 바꿔놓았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당시 정부 주도 ‘반도체 빅딜’로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넘겨주고 ‘카드 사태’가 터지면서 증권·카드 등 금융 사업에서 철수한 아픔도 있지만 혁신 정보기술(IT) 업체로 LG가 세계인들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은 구 회장 시절 때다. 4차 산업혁명 초입의 산업 속에서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는 구광모 상무의 어깨는 그 어떤 후계자보다 무겁다. 전자 등 아버지 때 확고히 자리 잡은 사업은 과거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TV·스마트폰 등 모두 성장 정체기에 진입했다. 구 상무 시대의 LG는 젊고 역동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한편 전장부품을 중심으로 한 기업 간 거래(B2B) 사업 영역 확대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젊은 LG’…역동적 LG 거듭날 것=구 상무는 2007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따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경영인에게 학위보다는 밑바닥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학교를 그만뒀다. 그 대신 실리콘밸리에 있는 IT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두 곳에서 1년여간 IT 스타트업 생태계를 경험한 구 상무는 최신 산업 트렌드에 관심이 큰, 젊고 소탈한 후계자라는 전언이다. 재계에서는 경영 전면에 나선 구 상무가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할 것으로 본다. 특히 4차 산업시대에 LG가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먹거리 발굴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보다 LG가 일찌감치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해 키워온 자동차부품 사업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 것으로 전망된다. LG는 LG전자뿐 아니라 LG화학·LG디스플레이·LG이노텍 등이 모두 자동차부품 관련 경쟁력 높이기에 몰두했을 정도로 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적극적인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합병(M&A)도 젊은 구 상무 체제에서 기대되는 부분이다. 재계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보여온 LG이지만 급변하는 산업 기술 발전과 경영환경 변화에 외부 기술과 인력 수혈은 필수적인 경영 요소가 됐다. ◇‘6인 부회장’ 적극 보필…계열사 책임경영 유지=LG는 그 어떤 대기업보다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체제가 잘 갖춰진 기업으로 통한다. LG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6명의 부회장급 전문경영인을 두고 있는데 이들이 구 상무의 총수 안착을 적극 도울 것으로 예상된다. LG도 “구 상무를 중심으로 6명의 부회장 전문경영인 체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6명의 LG 부회장급 전문경영인은 조성진(LG전자), 하현회(㈜LG), 한상범(LG디스플레이), 박진수(LG화학), 차석용(LG생활건강), 권영수(LG유플러스) 부회장이다. 박진수(66) LG화학 부회장이 가장 연장자이고 차석용(65), 한상범(63), 하현회·조성진(62), 권영수(61) 부회장 순서다. 무엇보다 하현회 ㈜LG 부회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LG 대표이사를 맡고 있어 구 상무가 공식적인 그룹 총수로 등극하기 전까지 한동안 대외적인 그룹 대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구 상무가 ㈜LG 시너지팀 부장 시절 하 부회장이 팀장(부사장)이기도 해 후계 구도 안착과도 연결돼 있다. 그룹의 양대 축인 LG전자와 LG화학의 조성진 부회장과 박진수 부회장의 어깨도 무겁다. 조 부회장과 박 부회장 모두 LG의 미래를 책임질 전장 사업 분야 핵심 계열사라는 점에서 ‘LG 구광모’ 시대의 성패를 좌우할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이 애착을 보였던 전기차 배터리 등 2차전지 사업을 구 상무 시대에 꽃피워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시장 형성 초기에 있는 TV용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사업에 승부수를 걸고 있다. OLED 사업 성패에 구 회장이 출범시킨 LG디스플레이의 운명이 걸려 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차 부회장은 LG의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M&A 귀재’로 불릴 정도로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LG 역대 최대인 1조 4,000억원을 들여 오스트리아 전장 업체 ZKW를 인수하는 등 M&A를 통한 LG의 미래 사업 경쟁력 강화에 차 부회장의 M&A 일가견이 역할을 할 수 있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5세대(5G) 서비스 발굴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한재영·신희철 기자 jyhan@@sedaily.com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故 구본무 회장 빈소 조문
산업 기업 2018.05.20 16:39:45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일 별세한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이날 오후 4시께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 부회장은 상주인 구광모 LG전자 상무와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수행원 없이 혼자 장례식장을 찾았다. 구 회장의 장례식이 가족장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삼촌이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원 LIG그룹 회장 등 가족들이 잇따라 방문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도 구 회장 빈소에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낸 데 이어 장하성 정책실장을 보내 조문하게 한 것으로 알려진다./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큰별 잃은 것은 아픔이자 손실" 경제계 구본무 회장 별세 애도
산업 기업 2018.05.20 16:39:27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별세하자 경제계는 한목소리로 “대한민국 경제의 ‘큰 별’을 잃었다”며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대한민국 경제의 ‘큰 별’인 구 회장이 별세한 데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고인은 대혁신을 통해 화학·전자·통신 등 산업을 세계 일류의 반열에 올려놓은 선도적인 기업가였고, 항상 정직하고 공정한 길을 걸어 늘 우리 기업인들의 모범이 됐다”고 추모했다. 전경련은 “이제금 다시 우리 경제가 재도약해야 할 중대한 시기에 구 회장과 같은 훌륭한 기업인을 잃은 것은 나라의 큰 아픔과 손실이 아닐 수 없다”며 “경제계는 고인의 뜻을 기리고 평소 가르침을 이어받아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 한 단계 더 도약하는 한국경제를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경련은 “구 회장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지역의 농촌자립을 돕고 인재를 양성하는 한편 의료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의인상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 만들기에 힘썼다”면서 “젊은이들의 앞날을 위해 교육·문화·예술 지원에 헌신한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다”고 애도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이날 논평에서 “구 회장은 미래를 위한 도전정신으로 전자·화학·통신 산업을 육성했고, 정도경영을 통해 고객에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경제계는 구 회장의 타계를 가슴 깊이 애도하며 한국경제의 번영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기렸다. 이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그룹 임직원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논평을 통해 “구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에 그 슬픔을 이루 표현할 수 없다”고 추모했다. 경총은 “구 회장은 1995년 LG그룹 회장 취임 이후 ‘노사(勞使)’를 넘어선 ‘노경(勞經)’이라는 신(新) 노사문화 형성을 바탕으로, ‘정도(正道) 경영’을 추구했다”며 “당면 현안을 노경이 함께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가치창조의 노사관계를 구현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추모했다. 이어 “구 회장의 정도 경영에 따른 노경화합은 혁신 활동의 기반이 돼 LG그룹이 험난한 구조조정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경총은 “경제계는 앞으로도 고인의 뜻을 이어나가 하루빨리 우리 산업 현장에 선진 노사관계가 정착되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국가 경제 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무역업계는 한국 경제계의 큰 별인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무역협회는 “구본무 회장은 LG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확고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우리나라가 무역 1조 달러, 무역 9강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우리 무역업계는 고인의 업적과 정신을 기려 무역이 한국경제를 견인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추모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포스트 구본무' 이끌 구광모 상무, 내부 평가 들어보니
산업 기업 2018.05.20 15:16:22구본무(73)LG그룹 회장이 20일 별세하면서 LG그룹 4세 경영체제를 이끌 구광모 LG전자 B2B사업본부 사업부장(상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G가(家)는 구 회장의 외아들인 구 상무에게 경영권을 넘기면서 ‘장자 상속’ 원칙을 지켰다. 구 상무는 우선 6월 29일 LG그룹 지주회사인 ㈜LG의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 상무는 본래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구본무 회장이 2004년 양자로 들이며 LG가의 후계자 자리에 올랐다. 구 상무는 서울 경복초교, 영동고교를 거쳐 미국 로체스터 공대를 졸업했다. 입양 2년 뒤인 2006년 LG전자 재경 부문에 대리로 입사하며 경영 수업에 입문했다. 2007년 미국 스탠퍼드대 MBA(경영학석사) 과정에 입학했다가 중도에 자신의 전공 분야인 정보기술(IT) 실무를 익히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으로 옮겨 1년간 근무했다. 이후 미국 뉴저지법인, TV·오디오를 담당하는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선행상품기획팀,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홈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 창원사업장 등을 거쳤다. 제조와 판매 현장, 해외와 지방 등을 두루 경험하며 경영 수업을 착실히 쌓은 셈이다. 2014년 지주사인 ㈜LG 경영전략팀 상무로 승진한 이후로는 그룹의 주력사업·미래사업을 챙겼다. 올해부터는 LG전자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B2B사업본부의 정보디스플레이(ID)사업부장을 맡았다. 2월에는 ID사업부를 이끌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상업용 디스플레이 국제전시회 ‘ISE 2018’에 참가해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LG 관계자는 “구 상무는 오너가이지만, 충분한 경영 훈련 과정을 거치는 인사 원칙과 전통에 따라 지금까지 전략부문에서, 또 사업책임자로서 역할을 직접 수행하며 경영 역량을 쌓아 왔다”고 말했다. LG그룹 내부에서는 구 상무에 대해 구본무 회장처럼 “겸손하고 소탈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동료들과 야구장을 찾는 등 격의 없이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 스타일은 철저한 실행을 중시한다는 평가다. LG 관계자는 “고객과 시장 등 사업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선제적으로 시장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데 힘을 쏟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가시적인 경영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40세에 불과하고 그동안 경영 수업 차원에서 낮은 직급의 자리를 맡아왔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경영 성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라는 반론도 있다. 구 상무는 앞으로 LG 전문 경영인들의 보좌를 받으며 그룹 경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현회 ㈜LG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등이 계열사별 경영을 책임지되, 구 상무는 큰 틀의 경영 방향이나 미래 먹거리 발굴 등에 주력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특히 LG전자가 최근 인수한 오스트리아 자동차 헤드램프 업체 ZKW나, LG전자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 중인 자동차 전장(전자장비)사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직전까지 구 상무가 맡았던 정보디스플레이 사업 중 사이니지로 불리는 상업용 광고판 사업도 앞으로 키워나갈 아이템이다. 또 최근 급속히 시장이 커지고 있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분야도 미래 사업 후보군으로 꼽힌다. 구 상무는 미국 유학 중 만난 아내 정효정씨와 2009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정씨는 식품원료기업 보락 정기련 대표의 장녀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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