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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김연희 대표] 27년간 '기업들의 의사'로…"우리가 짠 전략 성공하면 짜릿하죠"

■ 보스턴컨설팅그룹 아태 유통부문 대표

재벌지배구조 인위적 손질 반대

4차산업혁명,과거 상식 안통해

혁신 위한 M&A 반드시 필요

정부 대응 늦으면 '왕따' 될수도

기업데이터 계량·분석력 탁월

해외파들 즐비한 컨설팅회사서

한국 여성 최초로 파트너 올라

우리가 짠 사업전략·브랜드로

성공 거두는 기업들 보면 짜릿

경쟁력 잃지않게 지금도 노력중

15일 김연희 BCG 시니어파트너./이호재기자.




한국 컨설팅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 한 명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김연희(51) 아시아태평양 유통 부문 대표다. 우리나라에서 컨설턴트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했던 1991년 업계에 발을 디뎠고 2002년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컨설팅 회사(당시 베인앤컴퍼니)의 파트너 자리에 올랐다. 베인앤컴퍼니는 김 대표에 대해 “데이터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능력과 결과를 창의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은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어서 파트너 선임은 예상된 수순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최상위 직급인 시니어 파트너에 임명됐다. 역시 한국 여성으로서는 최초다.

김 대표는 “BCG는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전체 시니어 파트너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국적을 불문하고 10% 정도”라며 “여성에 일과 가정의 양립을 요구하는 문화가 여전한 가운데 20년 넘게 강도 높은 업무를 견뎌 관리자까지 오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는 해외 경영대학원(MBA) 출신이 주류인데 김 대표는 순수한 국내파라는 점에서 그의 성공은 컨설팅 업계에서 더 높게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승부욕은 좀 세거든요.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도 주어진 상황에 지는 것이 싫어서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성공 비결을 하나 꼽아달라는 말에 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컨설턴트는 ‘기업들의 의사’로 불린다. 작게는 마케팅이 잘 안 될 때나 사업부 조정이 필요할 때, 크게는 수익 구조가 악화되거나 기존 시장에서 벽에 부딪쳤을 때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최적의 해법을 제시해준다. 새로운 경영 방법과 기술이 도입됐을 때 종업원들을 교육하는 선생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부진에 빠졌던 기업을 회생시키는 ‘턴어라운드(Turn-around)’ 전략에 정통한 컨설턴트로 유명하다. 특히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의 기업 회생 전략 프로젝트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우리가 제시한 사업 전략이나 브랜드로 고객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면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 BCG가 최근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다. 자동화 프로그램,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기업에 도입해 전통적인 사업 구조와 업무 방식을 혁신시키는 것을 말한다. 김 대표는 “컨설팅 회사는 어떻게 보면 기업보다도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며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현실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점이 이 일의 도전 요소이자 즐거움”이라고 전했다.

그는 27년이나 기업들과 동고동락해온 베테랑답게 건설, 유통, 금융, 부동산, 정보통신(IT) 등 산업들을 두루 섭렵했다. 그는 “기밀 유지 의무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웬만한 국내 대기업 그룹 가운데 같이 일해보지 않은 그룹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그런 그에게 여러 산업을 관통하는 ‘생존 전략’이 있을지 물어봤다.

김 대표는 “그런 것이 있으면 참 좋겠다”면서도 “끊임없이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위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에는 변화와 혁신이 더 절실하다”며 “베이비부머 세대가 만든 경영 상식과 문법이 하나도 맞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규모의 경제. 대량 생산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키우면 성공한다는 과거의 경영 공식이 요즘 시대에는 잘 듣지 않는다. 인더스트리 4.0(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작은 규모로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 훨씬 각광 받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실제 전세계적으로 빅브랜드들이 쇠퇴하는 현상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4차산업 혁명 시대의 주역인 ‘밀레니얼스(1980년대 초~2000년대 후반 출생)’의 성향이 베이비부머 세대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점도 중요하다. 기성세대는 브랜드를 가격 중심으로 수직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김 대표는 “패션을 예로 내가 잘살면 샤넬백을 사야 하고 여력이 조금 안 되면 에르메스, 그 밑에는 코치 이런 식”이라며 “하지만 밀레니얼스는 취향 중심에, 수평적으로 브랜드를 본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정체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기성세대에서 구축된 브랜드 서열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경향은 소량 생산 트렌드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김 대표는 “냉정하게 말하면 기성세대가 대부분인 조직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조직원들부터 기존 상식과 문법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인수합병(M&A)의 적극적인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단순히 부족한 사업 부분을 채우는 차원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혁신 차원에서 M&A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애플·구글과 같은 세계 1위 기업이 끊임없이 M&A를 시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 분야 컨설팅이 많은 김 대표에게 한국 금융 산업의 현주소를 물었다. 그는 거침없이 “한국 금융 회사들은 혁신에 관한 한 거의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의 골드만삭스나 캐피털원, 네덜란드의 아이앤지 등 세계 일류 회사들조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혁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금융사들은 수익 창출 구조는 물론 일하는 방식까지 10년 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요.” 일례로 골드만삭스는 최근 기업공개(IPO) 업무의 절반을 컴퓨터로 자동화해 세계 금융 업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김 대표는 정부 규제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그는 “우리 금융 산업은 해외의 금융 산업은 물론 국내 다른 산업과 비교해도 규제 강도가 특히 세다”며 “이렇다 보니 금융 회사들이 고객을 안 보고 규제 당국을 먼저 본다”고 지적했다.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막는 ‘은산분리’, 은행·증권사·보험사 등이 고유 업무만 하도록 한 ‘전업주의’ 등이 대표적인 규제다. 금융 회사 인사를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관치 금융’ 관행도 뿌리가 깊다. 김 대표는 “금융사들은 정부 규제에 불편해하면서도 규제 울타리 안에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변화와 혁신을 안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직된 노동 시장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는 “새로운 산업과 기술의 바람이 불면 트렌드를 잘 아는 사람들을 대폭 수혈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라며 “우리나라는 금융 시장뿐 아니라 전체 노동 시장에서 유연화에 대한 반감이 심해 혁신을 위한 인력 수급이 막혀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재벌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문재인 정부는 오너 일가의 독점 구조가 심한 재벌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오너 중심 체제나 미국의 주식회사 구조나 각각 장단점이 있어 어느 하나가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주주의 주식 보유 기간이 20년 전만 해도 평균 5년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약 11개월로 짧아졌다는 분석을 소개하며 “주식회사 체제는 이런 추세에서 경영을 단기 투자 위주로 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고 짚었다. 반면 오너십 구조에서는 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정부가 의도적으로 재벌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김 대표의 의견이다. 다만 그는 재벌 2·3세 오너의 검증 부족 등에 따른 리스크를 보완하기 위해 좀 더 전문적인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좋은 경영인을 키우기 위한 투자가 너무 적다”며 “미국의 프로 최고경영자(CEO)는 연봉이 200억~400억원 수준인데 한국 대기업 CEO는 2억~4억원 정도에 불과하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좋은 CEO를 많이 양성해야 개별 기업의 체질 개선은 물론 산업 경쟁력 강화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4차 산업 혁명이 발전하려면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모든 기업이 기술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상용화돼야 합니다. 이를 민간에서 알아서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독일·중국 등 선진국은 정부 차원에서 정책·예산을 총동원해 투자하고 있어요. 우리 정부는 이들 국가에 비해 투자가 현저히 부족해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왕따’가 될지도 모릅니다.”

늘 산업의 혁신 방향에 대해 고민해온 김 대표에게 컨설팅 업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 우리도 뒤처지지 않게 치열하게 변화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단순히 머리 좋은 사람을 많이 뽑았는데 지금은 전문성을 많이 강조합니다. 금융·유통 등 산업별로는 물론 상품·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 등 기능별로도 특화된 전문가를 길러내지 않으면 컨설팅 회사도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고 말했다. /이현호·서민준기자 hhleel@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She is…

△1966년 경북 예천 △서울대 경영학과, 경영학 석사 △2002년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2009년 베인앤컴퍼니 글로벌 디렉터 △2010년 보스턴컨설팅그룹 시니어파트너 △세계경제포럼(WEF) 차세대 세계 지도자 200인 선정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기획재정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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