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선언이 있은지 얼마 후 그녀는 엄청난 반발과 가혹한 비평에 시달려야 했다.
현재 논란의 최일선에 서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전한다.
By tom clynes
방송국 스태프들이 위치를 잡는 동안 34세의 여성 과학자는 자신의 뒤에 펼쳐진 회색빛 호수를 바라보며 옷깃을 여몄다. 큐 사인이 떨어지자 그녀는 이 호수가 가진 특유의 화학성분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주변의 공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설명이 절반 정도 끝나갈 무렵 갑자기 갈매기 떼가 날아 들었다. 갈매기들이 거친 울음소리를 내뱉으면서 그녀의 신중한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좌절한 음향 기술자가 헤드폰을 벗었고 감독은 촬영 중지를 지시했다. 펠리사 울프-사이먼 박사는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발이 점점 호수의 진흙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수의 물이 증발하면 남은 물의 광물질 농도는 자연히 높아진다. 이 호수의 경우 물의 염기 농도가 높아지게 되며 호수의 일부 만에서는 비소의 농도도 높아지게 된다.
그녀는 최근 가장 격렬하고 특이한 과학적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녀를 그 속에 빠트린 것은 다름 아닌 캘리포니아주 이스턴 시에라 산지의 한 언저리에 위치한, 바로 이 모노호수와 그 속에 살고 있는 특별한 미생물들이다.
지구에서 발견된 외계생명체
2010년 12월 2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기자회견장. NASA가 외계생명체 발견 소식을 전할 것으로 알려지며 온 세상의 이목이 집중됐던 이날 울프-사이먼 박사는 자신의 연구팀이 모노 호수에서 인(P) 대신 비소(As)를 사용해 생존하는 박테리아 ‘GFAJ-1’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기존의 인류 지식 하에서 인은 생명체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6대 필수 원소의 하나다. 그런데 이러한 인 대신 독극물인 비소를 생명활동에 활용하는 박테리아가 존재한다는 그녀의 발표는 외계생명체 발견에 버금가는 충격을 학계에 던졌다.
NASA가 대부분의 자금을 지원하고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의 인터넷 판에 게재된 울프-사이먼 박사의 연구대로라면 모노 호수에는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와도 닮지 않은 새로운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제껏 학계에서 만고불변의 진실로 믿어왔던 생명 법칙과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는 유기체들로 이뤄진 생물계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 다시 말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됐던 외계 행성에 인간과 전혀 다른 형태의 생명체가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이때는 화성이나 목성이 아닌 지구의 모노 호수가 인간이 외계생명체를 발견한 최초의 장소로 등극하게 된다.
그러나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연구자들이 울프-사이먼 박사의 연구방법과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정규 간행물에 절제된 언어로 의견을 게재하는 학계의 전통조차 무시하고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에 즉각적으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논쟁은 곧 주류 학계로 옮겨졌다. 중요한 과학적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와 검증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얼마간 이들 사이에는 감마프로테오박테리아(Gamma proteobacteria)의 대사 능력에 대한 격의 없고 유익한 대화가 오고가는 듯 했다. 이 박테리아는 지구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생물로 GFAJ-1 역시 감마프로테오박테리아 강 (綱)에 속한다.
하지만 논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독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전락했다. 어떤 연구자는 울프-사이먼 박사와 그녀의 연구팀을 ‘나쁜 과학자들’이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연구자는 그녀의 논문을 공상과학 소설로 매도하기도 했다. 한 블로그에는 ‘울프-사이먼은 외계인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포스팅되기도 했다.
DNA 속의 독극물
인(P)은 많은 생체 분자 구조를 구성하는 핵심 물질이다. DNA의 경우 인[노란색]이 각 분자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GFAJ-1은 비소가 매우 풍부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인만 가지고도 성장하는데 뉴클레오티드에서도 비소가 발견됐다. 울프-사이먼 박사는 논문에서 이것이 GFAJ-1이 인을 비소로 치환한 증거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주장은 확실성이 결여돼 있으며 그녀는 이러한 치환이 일어나는 기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이와 관련 울프-사이먼 박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괴생명체나 외계생명체 발견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오해라고 말한다.
✽뉴클레오티드: 염기, 당, 인산 등 세 요소로 구성된 화학적 단량체로 DNA 사슬의 기본 구성 단위다.
엄격함과 반복
모노 호수에서의 방송 촬영이 있기 며칠 전인 6월 초 필자는 한 카페에서 울프-사이먼 박사를 만났다. 150㎝가 간신히 넘는 키에 갈색 곱슬머리를 한 그녀는 과학자의 이미지와 달리 코에 작은 다이아몬드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가방에서 디지털 녹음기부터 꺼내며 물었다. “인터뷰 내용을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그녀는 지난 6개월간 가급적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그리고 자신과 연구팀을 비난하는 세력들에게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기술적 답변에 초점을 맞춰줄 것을 요구해 왔다. 자신이 행한 연구의 장점을 무시한 채 의혹만 품는 동료 과학자들과 기자들이 연구를 곡해하거나 잘못 인용해왔다는 생각에서다. 그녀가 녹음기를 들고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인터뷰 또한 수개월의 공을 들인 끝에 간신히 성사시켰다. 그동안 인터뷰 직전에 약속을 취소당한 적이 여러 번이었으며 심지어 항공기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던 중 취소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울프-사이먼 박사는 언론을 대할 때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점을 여실히 배웠다.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노출하면 오히려 위험해 질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오늘 다시 언론에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트럼펫 연주자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미국 오하이오주 소재 오벌린대학에서 두 개의 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하나는 오보에 연주학 학위였고 다른 하나는 생물학 학위였다. 부전공으로는 화학을 공부했다.
과학적 탐구 과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녀는 가장 먼저 엄격함에 대해 거론한다. 그녀에게 엄격함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이다. 그 다음은 끝없는 반복이다. 음악가들이 무대 위에 올라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은 연습실에서 보낸 엄청난 연습시간의 산물임을 믿기 때문이다.
“과학은 절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더 많이 알아가면서 오는 즐거움과 시너지 효과가 있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 그녀는 러트거스대학에서 해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조류와 식물성 플랑크톤을 연구, 유기생명체가 철이나 망간 등의 금속을 생물학적 기능을 위해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게 됐다.
또한 박사후 연구 과정에서 애리조나주립대와 하버드대학 사이를 오가며 지리생화학자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가는 동시에 연구영역을 우주생물학으로 넓혔다. 우주생물학은 우주 속 생명체의 기원과 진화, 전파와 미래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똑똑한 과학자들은 가장 훌륭한 질문, 그러니까 매우 단순하면서도 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저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질문은 ‘생명은 과연 어디까지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였죠.”
“그들은 보도자료에 의한 과학을 하고 있어요. 응답은 논문으로만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위선자에요.”
그림자 생물권
기존에 알려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화학적·생물학적 특성을 지닌다. 어떤 형태로든 에너지를 섭취하고 사용한 뒤 당초와는 다른 형태로 배출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모두 20가지의 동일한 아미노산을 이용해 단백질을 생성하며 DNA와 RNA 분자에 유전자 정보를 저장한다.
특히 우리가 아는 모든 지구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이라는 6대 원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중 단 하나만 없어도 생명유지가 불가능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피는 철 성분을 이용해 산소를 운반한다. 때문에 혈액의 색이 붉다. 하지만 갑각류의 피는 산소 운반에 철 대신 구리를 사용한다. 그래서 푸른색이다. 또 대다수 생물들은 당분의 연소에 산소를 쓰지만 일부는 질소나 황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을 포함한 6대 원소 없이 생존이 가능한 유기체는 논란 중인 GFAJ-1 외에는 발견된 바 없다. 인 이온은 생명체에 유전자적 명령을 수행하는 핵산(DNA, RNA) 사슬의 골격을 형성한다. 신체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대사를 수행하는 아데노신삼인산(ATP) 분자의 근간이 되며 지질(lipids)과 결합해 세포막을 만들기도 한다.
반면 주기율표에서 인 바로 아래에 있는 비소는 인과 매우 흡사한 탓에 세포들이 둘을 혼동하기도 하지만 세포가 인 대신 비소를 먹었다가는 치명적 결과가 초래된다. 2009 년 울프-사이먼 박사가 국제우주생물학저널에 공동저자로 게재한 논문에는 이런 가설이 적혀 있다.
“고생물의 생화학적 시스템은 비소의 한 형태인 비산염을 인과 동일한 생물학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특이한 생화학적 체계를 이용하는 유기체들은 지구 또는 다른 행성에 생명이 처음 나타나 진화를 시작했을 때 주류에서 밀려나 ‘그림자 생물권(shadow biosphere)’ 를 형성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유기체들은 아직 지구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의외의 장소에서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은 채 말이다.”
재 점화된 논란
울프-사이먼 박사가 NASA 우주생물학연구소의 지원으로 모노 호수를 처음 찾았던 2009년, 그녀의 머릿속에 처음 든 생각은 마치 별세계에 온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당시 동행한 연구자들 중에는 미국 지질조사소(USGS)의 선임과학자 로널드 오렘랜드 박사도 있었다. 그는 모노 호수의 생화학적 특성을 무려 30년이나 연구한 인물로서 2006년 어느 학회에서 우연히 울프-사이먼 박사를 만났다.
“그녀는 비소가 인을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계속 얘기했어요. 그 주장은 다음번 학회가 열리는 2년마다 더 정교해졌고 흥미로워졌죠. 결국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요. 난 당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지 않아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호수에 한번 가봅시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요.”
울프-사이먼 박사는 방송을 위해 작년 여름 이후 처음으로 모노 호수에 돌아왔다. 노바 TV라는 채널의 2부작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이곳에서 연구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화성의 생명체 거주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 화학적 흔적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의 이 다큐멘터리는 NASA의 화성 탐사로봇 ‘화성과학실험실(MSL)’ 발사에 맞춰 올 가을에 방영될 예정이다.
울프-사이먼 박사의 초청으로 필자도 촬영 현장에 동참 하게 됐다. 필자는 NASA가 언론과 TV 매체를 동시에 만나는 현장을 본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녀는 오전 시간 거의 대부분을 촬영 스케줄과 소품 배치 그리고 호수 속 어디까지 나아가야 할지를 놓고 스태프들과 토의하는 데 보냈다. 물속에서 검체용기를 회수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어색해 보였다. 카메라가 자신의 움직임을 쫓는 동안 그녀는 현미경에 표본을 올려 놓은 후 슬라이드 글라스를 덮었다. 그리고 촬영팀의 지시에 따라 렌즈를 들여다봤다.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자, 이제 손잡이를 약간 돌려 보세요.”, “고개를 들고 이쪽을 봐 주세요.” 그녀는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
며칠 전만 해도 그녀의 생활은 다소 안정돼 가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사이언스에 그녀의 논문이 다시 실렸다. 이번에는 과거 블로고스피어를 뒤흔들었던 8개의 기술적 의혹과 함께였다. 사이언스의 글은 그녀의 연구팀이 설명한 기술적 답변으로 끝을 맺었지만 다시금 새로운 비평이 쏟아졌고 각종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도 줄을 이었다.
논란의 점화
작년 12월 비소 생명체를 소개하는 NASA의 기자회견장에 대표 발표자로 참석한 4명의 과학자. 좌측으로부터 펠리사 울프-사이먼, 메리 보이텍, 스티븐 벤너, 파멜라 콘래드 박사다.
펠리사에게 일거리가 생겼다
울프-사이먼 박사는 모노호수에 처음 가본 직후 곧바로 오렘랜드 박사 연구팀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호수에서 표본을 채취해 시험관에 침전물을 담았다. 또한 모노 호수의 광물 조성을 재현하기 위해 살균수에 비타민, 당분, 염분을 첨가했다. 실험에서 대조군으로 쓰기 위함이다.
이후 표본 중 일부에는 비소를 첨가하고 인을 제거했다. 다른 표본에는 그와 반대로 인을 첨가하고 비소를 제거했다. 그리고 표본에서 생장의 징후가 나타나는지 관찰 했다.
인이 부족한 시험관에서는 아무 것도 자라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박테리아는 예외였다. ‘할로모나다 과 (Halomonadaceae)’에 속하는 이 박테리아는 인이 제공된 환경은 물론 비소가 풍부한 환경에서도 자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 박테리아를 분리한 울프-사이먼 박사와 동료들은 박 테리아에 이름을 붙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늦은 밤 장난으로 지은 이름이 ‘GFAJ-1’이었고 이것이 결국 공식명칭이 됐다. GFAJ는 ‘펠리사에게 일거리가 생겼다(Get Felisa a job)’는 영문의 약자다.
그녀는 GFAJ-1의 내성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 비소의 농도를 높여봤다. 농도 상승은 계속돼 급기야 미 환경보호청(EPA)이 정한 음료수 허용 기준치의 50만 배까지 높아졌다. 비소 농도가 너무 높아 장갑을 두 벌 덧씌워 착용해야 할 정도였다.
그녀는 매일 아침 연구실에 들어설 때마다 이 정도 비소 농도면 박테리아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GFAJ-1은 생장을 멈추지 않았다. 실험결과가 오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러 차례 실험을 반복했지만 6번의 실험 모두에서 GFAJ-1은 살아남았다.
이제 의문은 GFAJ-1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로 바뀌었다. GFAJ-1이 비소를 자신의 생화학 시스템 내에 흡수 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지를 알기 위해 그녀는 다른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 중에는 스탠포드 싱크로트론 방사광원연구소 (SSRL)의 새뮤얼 웹 박사도 있었다. 스탠포드대학 선형가속기센터(SLAC)에 위치한 싱크로트론 입자가속기는 표본의 분자구조를 알아내는 데 쓰이는 기기다. 진공 공간에서 전자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순환시켜 분자 구조 파악에 필요한 고광도 X선을 만들어낸다.
울프-사이먼 박사와 웹 박사는 주어진 72시간의 빔 주사 시간을 최대한 활용키 위해 실험계획을 철저히 세운 다음, 가느다란 X선 빔을 GFAJ-1의 세포에 조준했다. 웹 박사는 총 두 가지 실험을 실시했는데 X선 형광 이미징과 X선 흡수 광역 미세구조(EXAFS) 이미징 실험이었다. 두 실험의 목적은 GFAJ-1 세포 내의 비소 위치와 화학적 구조의 파악이다.
기사제목으로 본 GFAJ-1의 흥망
2010년 12월 초 비소 생명체는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됐다. ‘#arseniclife(비소 생명체)’라는 트위터 태그가 생길 정도였다.
기사의 대다수는 첫 발표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며 기사제목은 GFAJ- 1 관련 논란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기사는 정확했지만 어떤 기사는 과장돼 있었다.
잠잠해지던 논란은 사이언스가 울프-사이먼 박사의 논문을 8개의 기술적 의혹과 함께 다시 게재한 올 5월 재점화됐다
NASA의 중대 발표
웹 박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포 내에서 비소가 자유롭게 떠돌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죠. 하지만 데이터 상으로 비소는 세포 내에 화학적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고 비소가 세포 내에서 수행하는 역할도 인의 역할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그는 덧붙였다. “물론 이것이 비소가 DNA 속에 있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황금탄환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GFAJ-1 이 우리가 보아온 어떤 유기체보다도 아주 흥미로운 화학적 구조를 갖고 있음은 알 수 있죠. 분명 비소가 세포 안에서 인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울프-사이먼 박사는 GFAJ-1을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 애리조나주립대, 듀케인대학에도 가져갔다.
그녀와 논문의 공저자 11명은 비소가 단순히 세포 외벽에 오염물질처럼 들러붙어 있는 것이 아닌 세포 내부에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유도결합 플라즈마 질량분석법을 썼다. 또한 방사성 물질을 비소의 추적에 활용하는 방사성 라벨링 기법을 통해 비소가 세포의 단백질, 지질, 핵산, 대사물질 내에 존재하는지 확인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연구팀은 일체의 의심을 버렸고 동료들의 격려를 받은 울프-사이먼 박사는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작성,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기왕이면 두세 가지 정도 실험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GFAJ-1이 완전히 새로운 유기체임을 말해주는 증거를 논문에서 6줄이나 가지고 있었죠. 이만하면 모두가 납득할 것 같았고 학계의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졌어요.”
마침내 작년 11월 29일 NASA의 언론홍보팀은 수수께끼 같은 발표를 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
“NASA는 다음주 목요일 오후 2시에 기자회견을 할 예정입니다. 기자회견의 목적은 지구 밖 생명체의 증거를 찾는 연구에 큰 충격을 전해줄 우주생물학적 발견을 논의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두고 과학칼럼니스트 칼 짐머는 유명 웹진인 슬레이트(Slate)에 이런 글을 썼다.
“지난 며칠 동안 많은 사람들이 NASA가 외계인을 발견한 게 아닌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NASA는 우주생물학계에 매년 5,000만 달러의 연구지 원금을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뉴스에 소개될만한 성과들이 많이 도출되고는 있지만 1996년 이래 외계생명체에 대한 중대 발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과학 교과서를 새로 써라?!
1996년 NASA는 과학자들이 화성에서 날아온 운석 속에서 외계생명체의 흔적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며칠 후 수석 연구자인 데이비드 맥케이 박사가 발견내용을 공식 발표했을 때 언론들은 이미 이를 어떻게 보도할지 기본적인 방침을 정해놓고 있었다.
멕케이 박사는 운석에 살아있는 미생물이 있다고 확언하지 않았음에도 언론은 외계 생명체의 증거가 발견됐다는 식의 기사를 남발했다. 세상은 그의 연구 결과를 찬양했고 심지어 클린턴 전 대통령도 백악관 잔디밭에서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계는 맥케이 박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운석 표본의 오염 문제가 거론됐고 그가 공개한 미생물 화석만큼 작은 미생물은 예전에 발견된 적이 없음을 지적했다. 맥케이 박사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론은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진상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연구에 대한 선정적인 비평에만 초점을 맞췄죠. 덕분에 사람들은 연구결과가 틀렸다는 것이 입증된 줄로만 알아요. 실은 우리의 주장을 반증하려는 주장조차 반증됐는데 말이에요.”
어쨌든 이 사건 이후 NASA는 우주생물학 관련 발표를 할 때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적어도 울프-사이먼 박사의 논문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녀가 NASA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던 날, 과학 관련 웹사이트들에는 이미 난리통이 벌어져 있었다. 적지 않은 언론들도 그 난리통에 합세해 ‘외계 생명체 발견’이라는 표현을 기사제목에 넣어 내보내고 있었다.
당시 회견에는 4명의 과학자가 참여했는데 NASA의 우주생물학 프로그램 책임자 메리 보이텍 박사는 “GFAJ-1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던 유형의 생명체는 아니다”고 강조하며 이제 과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때가 왔다고까지 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NASA의 에드워드 웨일러 과학탐사국장은 “이로써 생명체의 정의는 확장됐다”고 못 박았다. 이렇게 울프-사이먼 박사의 성과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극적인 업적으로 부상했다.
사실 4명의 과학자 중 한명이었던 미 응용분자진화재단 (FAME) 스티븐 벤너 이사장은 NASA가 울프-사이먼 박사의 발견에 대해 회의적 입장에서 반론해달라고 초청한 인사였다. 벤너 박사는 기자회견장에서 “나는 여기 젖은 담요를 가져와 열정의 불을 꺼뜨리라는 명을 받고 불려온 심술궂은 화학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청난 흥분에 휩싸인 대중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실 이날 울프-사이먼 박사는 다소 잘난 체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고 과도하게 극적인 인상을 풍겼다. 자신의 논문에 적은 연구결과를 분명히 설명하기보다는 연구결과 자체를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기 위해 더 신경을 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구 외의 다른 곳에 생명이 있을 가능성을 확실히 알게 됐어요. 이제 또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요?”
그 때문인지 회견장에 참석하지 않았던 오렘랜드 박사는 다소 불편한 심기를 표명했다.
“그런 기자회견을 또 다시 보고 싶지 않네요. 발표자들은 거만해보였고 열망에 불타서는 업적을 부풀리려 하는 것 같았어요. 전하려는 메시지도 헛갈렸죠. 새로운 미생물의 발견이요? 아닙니다. 그럼 비소로 생장하는 생명체일까요? 역시 아니에요. 다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일 뿐, 새로운 유형의 생명체라는 증거를 우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NASA 직원도, 그들의 생각을 실행하는 도구도 아닙니다. NASA는 그들 나름의 정책이 있죠. 전 기껏해야 그들의 졸개일 뿐이에요.”
터무니없는 속임수
그의 지적처럼 울프-사이먼 박사의 논문에 나타난 표현은 너무 간략했고 재론의 여지가 컸다. 그러나 NASA는 기자 회견을 지나치게 서둘러 개최했고 그런 태도는 언론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지구에서 외계 생명체가 발견됐다는 논지가 보도의 핵심 주제가 된 것이다.
이후 울프-사이먼 박사의 이름은 과학자보다는 유명인사의 개념으로 더 자주 거론됐다. 타임지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명단에 그녀의 이름을 올렸고 미국 전역에 배포되는 여성전문지 글래머도 ‘5분 멘토’라는 코너에서 그녀를 인터뷰 하며 ‘떠오르는 스타가 전하는 4가지 규칙’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울프-사이먼 박사에게는 매 시간 수백통의 이메일이 쏟아졌다.
그런 와중에 당초 울프-사이먼 박사의 논문이 가져다준 놀라움은 신속히 회의적으로 변해갔다. 결론에 대한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과학계의 비판에 직면하면서부터다.
벤너 박사를 포함한 일부 과학자들은 그녀의 연구팀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근본규칙에서 벗어난 생명체를 찾았다는 주장 자체를 믿지 않았다. 벤너 박사는 사이언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논평을 쓰기도 했다.
“만약 울프-사이먼 박사팀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100년 가까이 축적해온 비산염 및 인 분자에 대한 화학적 데이터들은 무효가 된다.”
벤너 박사를 포함한 여러 화학자들은 GFAJ-1의 DNA를 붙잡고 있다고 알려진 비소 연결고리가 물속에서는 신속히 분해될 거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비평가들은 세포질 속의 비소는 인을 대신할 수 없는 아비산염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박테리아 배양액 속에 넣은 무기염들이 GFAJ-1에게 필요한 충분한 양의 인을 공급해 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물론 울프-사이먼 박사는 대조군 실험에서 증명됐듯 극소량의 인으로는 미생물의 성장은커녕 생명 유지도 불가하다고 반박했지만 말이다.
비난계의 거두
울프-사이먼 박사의 연구결과를 가장 맹렬히 비판하는 레드필드 교수는 GFAJ-1을 가지고 실험을 재연하고 있다.
특히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미생물학자인 로지 레드필드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인 ‘RR 리서치’를 통해 비판론자들을 주도하고 있다. 그녀는 울프-사이먼 박사의 연구를 ‘극소수의 믿음직한 정보와 무수한 허튼소리로 이뤄진 터무니 없는 속임수’라고 폄하한다.
“과학이 이렇게도 심각하게 타락할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어요. 만일 제가 가르치는 박사 과정 학생들이 이런 논문을 제출했다면 당장 연구실로 돌려보내 더욱 철저히 실험을 다시 하도록 시켰을 거예요.”
레드필드 교수는 이후 ‘펠리사 울프-사이먼은 외계인인가?’라는 제목의 글까지 올렸다. 무명의 학부생이 집필한 에세이 형식을 띠고 있는 이 글은 외계인인 울프-사이먼 박사가 외계인의 존재를 밝히려는 다른 진지한 연구를 방해하고자 일부러 심각한 결함을 지닌 논문을 발표했다는 풍자적 내용을 담고 있다.
레드필드 교수는 기술적 비평도 빼놓지 않았다. 배양액 안에 있던 극소량의 인이 GFAJ-1의 성장을 도왔다는 것, 그리고 울프-사이먼 박사의 DNA 정제가 부적절하게 이뤄졌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평은 이내 울프-사이먼 박사와 그녀의 연구팀, NASA와 사이언스의 의도에 대한 의심으로 변질됐다. 레드필드는 이렇게 적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이 정말로 악의를 품었는지, 아니면 ‘우주 속에는 반드시 생명이 있다’고 맹목적으로 외치는 부도덕한 NASA의 후원을 받은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테스트베드
울프-사이먼 박사가 2009년 모노 호수에서 침전물 표본을 채집하고 있다.
명성 뒤의 가혹한 비난
또 한번 언론의 집중 포화에 시달린 울프-사이먼 박사는 급기야 잠적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와 오렘랜드 박사, 논문 공저자들은 NASA의 대변인 드웨인 브라운을 통해 개인적 비평에 응답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NASA도 언론이나 블로그 등을 통한 과학적 논쟁은 적합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관련된 모든 논의는 과학 관련 간행물을 통해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렘랜드 박사는 말했다.
“저는 숨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던지는 의자를 맞아야 하는 제리 스프링거쇼의 주인공은 되지 않겠습니다. 블로그는 수백 개나 됩니다. 블로거들 중에는 말이 통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 모두 즉각적인 응답을 원한다는 겁니다. 과학적 논평을 즉각적으로 해줘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의 미생물학자 조나단 아이젠 교수는 응답하지 않는 논문 저자들의 행동은 매우 우스꽝스럽다며 웹진 슬레이트의 칼 짐머에게 이렇게 전했다.
“그들은 보도자료와 기자회견으로만 과학을 하고 있어요. 응답은 논문으로만 해야한다고 말하는 그들은 위선자들이에요.”
울프-사이먼 박사는 작년 12월 말 사이언스에 실린 짧은 글에서 시간을 두고 인내심을 가져줄 것을 주문하며 “이번 사건으로 생긴 과학계의 담론이 학계의 기록으로 남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녀의 타임 및 글래머 출현은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기만 한 것 같았다. 과학 평론가 에드 영 역시 과학잡지 디스커버의 웹사이트에 글래머 기사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글을 포스팅했다.
“울프-사이먼 박사는 비소 생명체 발견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단지 글래머에 나오게 돼 기쁜 듯이 보였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글래머의 뜻은 다음과 같다. ‘글래머는 원래 오컬트 마법의 주문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매우 화려하거나 우아한 외관이 주는 매혹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흐음.”
지난 3월 울프-사이먼 박사는 선구적 사상가들의 ‘글래머러스’한 모임인 TED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내용의 혁신적 잠재성을 선전했지만 자신에 대한 비판 내용은 무시했다. 이는 일부 학자들이 매우 불편하게 여길만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6월 사이언스에 격식을 갖춘 비평과 기술적 답변이 실리면서 논쟁은 블로그에서 다시 과학 논문으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겼다. 거기 실린 8가지 의혹은 표본의 오염 가능성에 가장 크게 무게를 두고 있었으며 비산염 화합물이 세포 내에서 분해되지 않을 만큼 안정성이 있는지의 의문도 제기됐다. 레드필드 교수는 배양액의 무기염 속에 GFAJ-1의 성장을 도울 만큼의 인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는 계산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울프-사이먼 박사와 논문 공저자들의 답은 인의 자연수준(background level), 즉 자연상태의 인 함량은 모든 필수 생체 분자들의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안정성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거론했다. 비소를 함유한 DNA가 원래의 인 기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논문들이었다.
논쟁의 주인공
울프-사이먼 박사는 순식간에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비난의 표적으로 전락했다.
끝나지 않은 논쟁
울프-사이먼 박사는 자신의 연구결과 검증을 위해 미생물 질량 분석, 핵자기공명분광, 게놈서열 측정 등을 행하는 연구자들과 협력했다. 그녀는 또 별도의 독립적 연구도 지원했는데 이와 관련해 오렘랜드 박사는 40여건 이상의 GFAJ-1 표본 제공 요청 중 10여건에 대응해줬다.
표본을 받은 사람 중에는 레드필드 교수도 있었다. 그는 실험 과정을 블로그에 정기적으로 올렸다.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8월 2일 포스팅된 ‘울프-사이먼과 그 친구들의 실험결과를 반박할 최초의 증거’라는 글이었다.
레드필드 교수는 울프-사이먼 박사의 비소 표본 속에서 GFAJ-1이 접했을 정도의 미량의 인이 들어 있는 배양액을 사용, 실험을 실시했다. 단, 울프-사이먼 박사와 달리 비소는 공급하지 않았다.
“표본은 정상적으로 자랐습니다. 예전에도 울프-사이먼 박사의 실험결과가 두 번 다시 재현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결과에 놀라지 않았어요.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했고 그것은 다른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레드필드 교수의 실험결과는 예비 결과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학회지에 제출된 것도, 철저한 전문가 검증을 거치지도 않은 내용이라는 얘기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실수를 했는지의 여부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실수를 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어떻게 처리하는지예요.”
NASA의 졸개
그러나 NASA의 대변인 드웨인 브라운은 NASA가 매우 편안한 자세로 이 일을 처리했으며 ‘외계 생명체’라는 용어의 사용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한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에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다 지난 일에 훈수를 두기는 쉽죠. 어쨌든 저희 발표는 정확했어요. 진짜 이슈는 학계가 인터넷, 블로그, 소셜 미디어 등에 의해 변했다는 점입니다. ET와 같은 선정적 용어를 쓴 탓에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쏟아내게 된 거예요. NASA는 아무것도 과장광고를 하지 않았어요. 다른 누군가가 그랬죠.”
하지만 브라운의 말과 달리 NASA의 언론홍보팀도 비소 생명체 발견의 진상 과장에 한 몫을 했다. 보도자료의 표현 방법과 배포시기 통해, 기자회견에서의 어조를 통해, 그리고 기자회견 후 트위터에 “이 발견이 외계생명체 탐사 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글을 올림으로써 말이다.
게다가 브라운이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일축해버린 사람들 중에는 뛰어난 연구자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듣고자 그에게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다.
울프-사이먼 박사도 처음에는 연구비를 대주고 있는 NASA의 비판을 망설였으나 지난 7월 이후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저는 NASA의 직원도, 그들의 생각을 실행하는 도구도 아닙니다. NASA는 그들 나름의 정책이 있죠. 전 기껏해야 그들의 졸개일 뿐이에요.”
이처럼 NASA가 비난을 받는 동안 과학자들은 사이언스에도 거센 공격을 가했다. 당초 사이언스의 브루스 앨버츠 편집장은 오프라인 판에 “이 논문에 이렇게나 많은 피드백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과학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글을 남겼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이 이 일을 여느 때와는 다르게 처리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인정했다.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런 논문, 그러니까 여러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여러 가지 특화된 기술이 적용된 논문을 받는 경우 전문평가자들이 논문 내용을 가능한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 피드백을 주도록 하는 과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클 아이젠 교수도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이처럼 명백한 문제를 인지했어야 할 전문가들은 대체 어디에 있었나?”라며 사이언스를 비난했다.
물론 논문 평가자들이 의무를 게을리 했다는 증거는 없다. 여느 때처럼 평가자들은 울프-사이먼 박사에게 추가적인 검증을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여 연구팀은 DNA에 비소가 들어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고해상도 이온 질량 분광분석을 다시 한번 수행했다.
논문 평가 과정이 어떻게 개정돼야 할지와는 상관없이 비소 생명체 사건은 과학 논문들이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한 현실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학회지들은 오랫동안 과학자 개개인의 발상과 의견을 심판하고 조율하는 장의 역할을 해왔다. 이는 과학을 세련되고 합리적 방향으로 다듬어 온 반면 그 발전 속도를 늦추고 비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측면도 있다. 이 시스템 하에서는 답변 하나를 받는 데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TED 컨퍼런스
지난 7월 영국 에든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적 석학들의 강연장 ‘TED 2011’ 컨퍼런스에서 비소 박테리아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울프-사이먼 박사.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
이제 과학자들은 블로그라는 도구로 평가과정 조정권을 스스로 가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매우 유연하고 즉각적이며 무한한 수정이 가능한 공동 평결을 내릴 수 있다. 이 점에서 블로그 동료평가는 최소한 이론적 관점으로는 과학의 발전 속도를 높이고 인간적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한층 공개적인 의사소통 통로를 열어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신뢰성 있는 과학적 기록을 제공하는 시스템, 정중하고 전문적 논의가 진행되는 공정한 토론장의 존립을 위협할 개연성도 상존한다.
방송 녹화가 끝난 아침. 모노 호수가 굽어보이는 작은 마을 리 바이닝의 한 커피숍에서 울프-사이먼 박사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아직도 과학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과학 인생은 이대로 끝장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6월 사이언스는 울프-사이먼 박사가 보다 나은 분자 및 유전자 연구시설을 찾아 오렘랜드 박사팀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솔직히 떠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오렘랜드 박사가 저를 팀에서 퇴출시키려 했거든요. 전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정치적 결정이었죠. 저는 쫓겨날 때까지 굳이 기다리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녀는 2010년부터 NASA의 특별 연구비를 받고 있으며 2013년까지 지급이 예정돼 있지만 아직 연구를 재개할 새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몇 주 만에 그녀는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가 다시 한 순간에 비난의 표적으로 전락해 맹공격을 당했다.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과학자로서 그녀의 경력은 아직 일천하고 학계는 그녀보다 훨씬 나이를 먹은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 엄청난 비판을 끌어낸 원인은 분명 그녀의 논문이었지만 적어도 필자의 판단으로는 발표되지 말아야 할 만큼 결함이 심한 논문은 아니었다. 사이언스에 실린 다른 논문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논문도 설득력 있는 주장, 신중한 결론, 철저한 데이터를 갖추고 있었고 동료평가(peer review) 과정도 거쳤다.
이 때문인지 그녀를 공격했던 전문가 중 일부는 마음을 바꿨다. 콜로라도대학에서 환경 연구 프로그램을 지휘하고 있는 앨런 타운센드 교수도 그중 한 사람. 그는 성급한 판단을 내린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다. 또 자신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나 동료들과의 토론에서 밝힌 의견들이 학계의 비전문적이고, 때로는 극히 창피스러운 반응에 기여했다고 여긴다.
“어떤 큰 도덕적 과실을 범하지 않은 다음에야 기술적인 잘못 한 두 가지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이상과 열정이 넘치는 젊은 과학자를 매장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설사 논문에 오류가 있더라도 버려야 할 것은 논문이지 과학자는 아니니까요.”
“기술적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열정적인 젊은 과학자를 매장시켜서는 안돼요. 오류가 있더라도 버려야 할 것은 논문이지 과학자는 아니니까요.”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심지어 레드필드 교수조차 최근에는 공격의 강도를 한결 낮췄다. 초반의 강경했던 태도와 달리 울프-사이먼 박사에게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실수를 했는지의 여부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실수를 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어떻게 처리하는 지예요. 저는 당신이 현 상황을 잘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GFAJ-1을 둘러싼 의문에 대해 보다 나은 해답을 얻으려면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다. GFAJ-1이 정말로 비소로 인을 대체한다면 ‘경악 그 이상의 경악’을 느낄 것이라는 벤너 박사 역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더욱 큰 의문을 품게 했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가설이 의미 있다고 말한다. 물론 GFAJ-1을 둘러싼 의문에 지금보다 나은 해답을 얻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리 바이닝의 커피숍에서 울프-사이먼 박사는 또 녹음기를 꺼냈다. “모든 게 너무나 낯설어졌어요. 지난 6개월간 제가 당한 일을 묘사하기 위해 단순히 ‘힘들다’라는 표현은 부족해요.”
굳이 긍정적 면을 찾자면 논문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협력자들을 알게 된 것이라고 그녀는 밝혔다. 그들 중 몇몇은 그녀의 논문 발표 이전에 GFAJ-1을 연구하고 있던 학자들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명성은 생각지도 않은 방향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그녀의 남편인 공학자 조나단 사이먼 박사는 동료로부터 아내가 정말 울프-사이먼 박사가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조나단이 그렇다고 답하자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7살 난 딸아이가 학교 ‘과학의 날’에 울프-사이먼 박사와 똑같은 복장을 입고 등교했다네.”
그 아이는 차양이 큰 모자와 걷어 올린 바지, 고무 샌들을 신었는데 이는 그녀가 박테리아를 찾아 모노 호수 속으로 들어갈 때 입었던 것이다.
“지난 몇 달간의 일은 저를 개인적으로 너무도 힘들게 했지만 제 연구가 그 아이에게 꿈을 심어줬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창밖에 펼쳐진 잔잔한 회색 호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제 연구와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게 되고, 제 연구가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요. 어쩌면 아이는 자라서 평범한 직장인이 돼 버릴지도 모르겠네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필자는 그녀에게 아이가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은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아껴온 조카가 있다고 답했다.
“언젠가 조카는 제게 두 가지 질문을 할 거예요. ‘생명이 있는 별은 지구뿐이야?’, ‘생명은 어떻게 지구에 생겨나서 발전해 왔어?’라고 말이죠.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를 궁금해 했어요.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는 그 답을 알지 못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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