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에는 휴대폰 부문이 2분기 연속 적자를 낸 적도 있다. 그룹 차원에서 비밀리에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가 경영전략에 반영되기도 전에 기초체력을 잃고 말았다.
LG전자가 1조 원 가까운 유상증자를 결정하며 회생 의지를 보이고 있다. LG그룹도 차세대 신사업 연구개발(r&D)을 확대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쳤다. 추락하고 있는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은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 포춘코리아가 LG전자의 생존 조건을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한정연 기자 jayhan@hmgp.co.kr 이권진 기자 goenergy@hk.co.kr
LG전자가 주황색 신호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바짝 따라붙었다고 생각했던 경쟁사는 뒤늦게나마 가속페달을 밟아 간신히 사거리를 통과했다.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왜 LG전자는 경쟁자들이 사방으로 쌩쌩 달리는 사거리에서 멈춰 서야 했을까? 과거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LG전자의 현 상황을 분석했다.
휴대폰이 문제였다.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브랜드 이미지도 희미해졌다. 총체적인 문제로 번졌다. 휴대폰발 실적 악화는 그룹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2011년 얘기가 아니다. 6년 전인 2005년 LG전자의 상황이다.
LG전자가 휴대폰 부문을 매각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도 이 때였다. LG전자 MC사업부의 한 직원은 "매각 협상이 진행되면서 2005년에 모토로라 고위층이 평택 공장에 실사를 나왔다"고 말했다. 연구 파트에서도 유사한 이야기가 돌았다. 일부 연구 부문을 매각한다는 얘기였다. LG전자의 한 연구원은 "200여 명이 속해 있던 북미 담당 개발실만 따로 떼서 모토로라에 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은 다 알 것"이라고 말했다. 모토로라는 당시 레이저폰을 전 세계에 7,000만 대 팔며 재기에 성공했던 상황이었다. LG그룹 수뇌부의 수심은 깊어만 갔다.
LG는 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조사를 비밀리에 실시했다. 프라다폰도 초콜릿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미국계 리서치 회사가 2주간에 걸쳐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LG의 브랜드 이미지와 인지도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 관여한 한 컨설턴트는 "소비자를 4개 그룹으로 나눠서 이미지 조사를 했는데 LG 브랜드에 대해서 '저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당시 김쌍수 CEO가 주창하던 '기술 1등 LG'라는 말이 이 회사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다는 조사 결과는 충격을 던져줬다. 대신 "사랑해요 LG"라는 감성적인 접근에는 공감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조사결과는 당시 구본무회장에게까지 전달됐다.
2005년 LG는 휴대폰 부문이 적자를 이어가자 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 조사를 비밀리에 진행하기도 했다
LG전자의 6년 주기설
당시 모바일커뮤니케이션사업본부장(현 MC사업부)을 맡고 있던 박문화 연암공업대학 총장은 모토로라의 평택공장 실사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에 비서실을 통해 "LG전자를 그만둔 지 오래됐고 감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답변하기 곤란하다"는 말을 전해왔다. 경북에 있는 연암공업대학은 LG가 만들고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홍보실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LG전자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게 매각설인데, 과거에 한 번이라도 (휴대폰 부문) 매각을 고려했었던 게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해석했다. 취재과정 중에 만난 사람들 가운데 매각과 관련해 이야기를 꺼내는 쪽은 오히려 LG전자 직원들이었다. 2005년 매각 관련 얘기를 들었다고 밝힌 한 LG전자 직원은 "지금 상황에서 (LG전자 휴대폰 부문을) 살 수 있는 곳은 HTC 정도인데, 그렇게 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IT업계 한 관계자는 "휴대폰을 떼고 LG전자를 생각할 수 없다"며 "주력인 휴대폰이 살아야LG전자도 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2005년 LG전자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LG전자는 2004년 원화 강세로 경영환경이 악화됐음에도 휴대폰 매출 증가에 힘입어 실적 상승세를 이어갔다. 2004년 11월 한 달동안 정보통신사업부 매출액이 사상 처음 1조 원을 돌파했다. 11월 LG전자의 매출은 2조 3,060억 원으로 10월보다 1.9% 감소했지만, 전년 동기보다는 무려 23.5% 증가했다.
정보통신사업의 매출은 1조855억 원을 기록해 전월 대비 8.9%,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4.3%가 상승했다. LG전자 휴대폰은 11월 한 달 동안 554만4,000대가 팔렸다. 2003년 같은 때보다 무려 71.5%가 증가한 판매량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2005년의 적자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LG전자는 2005년 1분기 휴대폰 부문에서만 309억 원 적자를 냈다. 2분기에도 3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 첨예하게 대립됐던 문제는 고가 정책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신흥 시장을 겨냥한 저가 제품 위주로 라인업을 꾸릴 것인지였다. 노키아는 후자를 택했고, 삼성과 LG는 고가 전략을유지했다. 권영수 당시 CFO는 2005년 7월 간담회에서 적자 이유를 묻는 질문에 "1분기에 채용한 R&D 인력의 성과가 2분기에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신제품 출시가 3개월가량 지연돼 유럽의 GSM 단말기 시장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논리였다. MC사업부 한 직원도 LG전자에는 "즉시 수익을 내야하는 문화가 있었다"며 "지금 위기도 (경영진에게) 선행투자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LG전자 동남아 지역 해외법인의 한 주재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LG전자에는 원래 6년 주기설이 있다"며 "4개 사업부가 돌아가면서 6년에 한 번씩 실적이 악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사 대비 선행 투자가 적기 때문이고, 투자를 하면 즉시 실적이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고 덧붙였다.
LG전자의 캐시카우 '초콜릿폰'
2006년 이후 분위기는 다시 반전됐다. LG전자가 2005년 내놓은 초콜릿폰, 샤인폰, 시크릿폰과 같은 피처폰이 맹활약을 했다. 매출과 흑자 폭이 늘어났다. 정점은 2007년 5월 출시된 프라다폰이었다. 이를 계기로 LG전자의 휴대폰은 최고가 명품 반열에 올랐다. 일본과 유럽의 이동통신사들이 제품을 공급해달라고 줄을 섰다. LG전자의 디자인 경영이 화제가 됐고, 터치폰 시대를 처음으로 연 이 회사의 기술력도 각광을 받았다. 초콜릿폰은 버전을 여러 가지로 내면서 몇 년간 LG전자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이런 분위기는 3년을 더 갔다. 2009년에는 아이폰 열기와는 무관하게 각종 피처폰으로만 한 해 1억 대를 팔아 세계 시장 점유율이 10.4%까지 치솟았다. 영업이익은 3조 원에 달했다. 그러나 크게 보면 득보다 실이 많았다. 2005년 그룹 수뇌부가 고심 끝에 실행하려던 개혁안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IT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C씨는 2009년 열린 오픈 모바일 서밋 Open Mobile Summit에서 LG전자의 최고위급 임원을 만난 일화를 전해줬다. C씨가 "스마트폰이 한국에서도 곧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을 건네자 이 임원은 시큰둥하게 "우리도 파일럿 프로그램을 돌려보고 있는데 그걸 누가 쓸까 싶다"고 말했다는 것. C씨는 "당시에 LG전자 피처폰이 잘나갔다고는 하지만, 스마트폰 파일럿 팀이 피처폰을 개발하면서 남은 시간에 스마트폰 개발에 참여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LG전자 MC사업부의 한 직원도 "2009년 무렵 안드로이드 OS에 관여하던 연구원은 무척 적었다"며 "안드로이드에만 매달리던 연구원이 열댓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로 MS의 윈도 모바일을 점찍었다.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삼성전자가 바다, 윈도 모바일, 안드로이드 등 다양한 OS를 장착한 제품으로시장 분위기를 살펴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LG전자는 2010년에야 안드로이드를 장착한 옵티머스Q를 내놨다. 준비가 늦었던 만큼 HTC나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비해 OS 버전은 낮았고 버그는 많았다.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패닉상태에 빠진 스마트폰
MC사업부 소속의 한 직원은 "몇 달 전 사업부 내에 옵티머스를 대체할 새로운 이름을 공모했다"고 말했다. '몇 달 전'에서야 네이밍을 시작했다는 얘기였고, '몇 달 동안'이나 결정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부적으로 LG전자가 이미 패닉상태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였다. 가속페달을 더 밟아야 할지 아니면 진로를 틀어야 할지에 대한 조직원 간 합의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한 벤처캐피털 회사 대표는 "LG전자의 대안을 왜 내부가 아닌 외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LG전자는 HTC에도 크게 뒤처져 있다. 올 2분기 세계에서 팔린 휴대폰 3대 중 1대가 스마트폰이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76%나 늘어난 1억1,000만대가 팔렸다. 하지만 LG전자는 올 7월 매월 발표하던 휴대전화 판매 실적 발표를 중단했다. 시장에서는 LG전자가 팬택 계열과 비슷한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LG전자 회생의 실마리는 무엇일까? 특허를 많이 가지고 있는 LTE에서 회생 실마리를 찾는다지만 적자폭이 워낙 커서 한 가지 모델만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세계 시장에서 갤럭시S를 2분기에만 1,920만 대 팔았다. 업계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선보여야만 LG전자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LG전자 내부에는 '스마트폰도 가전처럼 결국 기술 격차가 줄어들 것이고, 그때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은 결국 디자인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LG전자가 내년 초 프라다폰의스마트폰 버전을 내는 이유다. 하지만 외부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것만으론 곤란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UI(User Interfacemiddot;사용자 환경) 전문가인 한 대기업 임원은 "디자인으로 간다는 얘기에는 일면 동의하지만 결국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따라가야 한다"며 "이는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튜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초콜릿폰이나프라다폰은 감성적인 이미지와 관련이 깊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종합적인 완성도를 높이려면 기업문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 이는 2005년 LG그룹이 비밀리에 시행했던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조사 결과와도 유사한 지적이다. 6년 전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 대기업 계열사 CEO는 "LG전자가 유명 디자이너를 데려와 3년 정도는 자기 색깔을 내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회성 이벤트 같은 제품으로는 승부가 안날 것이란 얘기다. 그는 "프라다폰이나 초콜릿폰 같은 이벤트 상품이 성공했다고 (LG전자가) 좋아했을 때부터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임정욱 라이코스 사장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 사장은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제품을 내놓는 것보다 하나라도 눈길을 끄는 제품을 내는 것이 중요한데, 최근 몇 년간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미국의 주요 매체에서 LG제품의 리뷰를 특별히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이나 HTC가 새 제품을 내놓으면 화제가 되는 상황과 대조적이라는것. 그는 "LG도 이렇게 관심을 모을 수 있는 프리미엄 제품을 낼 수 있어야 승산이 있다"고 덧붙였다.
"LG, 이제 배수진을 칠 때다"
LG전자와 4년째 협업 중인 SW업체 대표 인터뷰
해외 SW 개발업체 A사는 2007년 말 아이폰이 국내에서 판매된 직후부터 삼성전자 및 LG전자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 B대표에게 LG전자와 함께 해온 지난 4년이 어땠는지 물었다. 그는 "직원들 충성도가 떨어지고 리더십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B대표는 LG전자와의 관계 때문에 익명을 요구했다.)
LG전자 스마트폰이 위기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옵티머스는 어떤 존재인가?
주력 모델 없이 브랜드 포지셔닝을 하려고 하니, 결국 소비자들이 기억을 못한다. 고급 모델부터 초저가까지 다양한 셀렉션은 좋아 보이지만, 결국 회사 브랜드 자체 이미지를 깎아내린것 같다.
4년 전에는 어땠나?
그때만 해도 미국의 경우 LG 휴대폰이 삼성보다 입지가 더 좋았다. 우선 초콜릿폰의 브랜드 파워가 좋았다. 마케팅 전략도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오랜 노력으로 만든 브랜드 이미지를잘 들어보지도 못하고 싸구려라는 이미지를 가진 옵티머스 브랜드로 바꿔 공략해서 결국 삼성이나 아이폰에 비해 뒤떨어지게 됐다.
LG전자와 협업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LG전자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현저히 떨어진다. 당연히 매니지먼트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강력한 리더십도 없다. 제품에 대한 철학이 결여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왜 그런 느낌을 받게 됐나?
LG 직원들과 대화해보면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로 유관 부서를 책망하거나 대표나 임원을 탓하기도 했다. 이렇게 부정적인 에너지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 누군가 정말 스토리 있는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과거 피처폰의 영광을 빨리 잊고 과감한 혁신을 꾀해야 한다. 그리고 소수의 주력 모델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HTC가 빠른 성장을 이룬 이유는 벤처기업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빠른 의사결정과 행동력이 따라줬기 때문이다. 매니지먼트도 상당히 객관화되어 있다고 들었다. 인지상정이 아닌 실력 위주로 빠르게 성장한 셈이다. LG전자도 이젠 결과에 초점을 맞춰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곤란하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3D 카메라나 3D 화면 같은 불필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광범위한 소비자층을 포용할 수 있는 기능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화면 화소 수나 카메라 방식, 배터리 사이즈처럼 누구나 관심을 갖는 영역이 그런 부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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