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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커피의 향기

하워드 슐츠 Howard Schultz는 스타벅스를 회생시켰다. 스타벅스는 올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금 슐츠는정치인들로부터 미국을 구출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가 자본주의와 정치, 사회운동을 어떻게 섞어 조합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국 대통령이 펌프킨 스파이스 라떼 Pumpkin Spice Latte 얘기를 하려고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9월 일자리 창출에 관한 의회 연설을 하기 이틀 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커피의 제왕 스타벅스 회장 겸 CEO 하워드 슐츠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이 그 시점에 슐츠를 떠올린 것은 이 비즈니스 우상이 갑자기 정치 운동가로 변신했기 때문이었다. 워싱턴 정치인들의 무능함에 혐오감을 느낀 슐츠는 정당을 막론하고 현 의원들에겐 정치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국민들의 복지보다 당파성과 이념적 순수성을 우선시하는” 시스템을 개탄한 슐츠는 동료 경영자들에게 자신의 정치 기부금 중단 캠페인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펩시, 디즈니, 인튜이트, 홀 푸즈, 제이 크루 J. Crew, AOL, 뉴욕 증권 거래소, 나스닥의 CEO들을 포함한 140명 이상의 경영자들이 곧바 로 동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분명 이 일에 주목했다. 오바마 대통 령은 진성 민주당원인 슐츠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다. 두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이 일리노이 주 초선 상원의원이던 시절 단 한 번 만 난 적이 있었다. “슐츠,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자네의 생각뿐 아니라, 정치 기부금 중단 캠페인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대해 얘기 를 나누고 싶네”라고 대통령은 말했다. 푸젯 사운드 Puget Sound*역주: 미 국 워싱턴 주 북서부에 있는 만가 내려다보이는 스타벅스 본사의 자기 책상에 앉아 있던 슐츠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조차 없었다. 백악관에서 2분 전에야 대통령이 통화하고 싶어한다고 알려왔기 때문이었다. “정직 하고 솔직하게 대화하세”라고 오바마 대통령은 말했다. 그렇게 30분 넘게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슐츠는 지금까지 공개 하지 않는 이 대화에서 대단히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고 말한다. 과 거에 그가 낸 거의 모든 기부금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돌아가긴 했지 만, 그의 정치 기부금 중단 결정이 대통령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슐츠는 주장했 다. 그는 “나는 민주당보다 미국을 훨씬 더 걱정한다”고 오바마 대 통령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대화의 속뜻을 들여다보면, 슐 츠의 정치 기부금 중단 결정이 그가 의도했던 충격가치 shock value를 전해준 것은 분명했다. 슐츠와 대통령은 슐츠의 ‘나라에 대한 근심 들’, 즉 42개 주가 직면하고 있는 예산적자 문제와 미국에 대한 심각 한 신뢰 위기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전화를 받는 CEO들은 많지 않다. 몇 주 후 파리의 대통령 궁에서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과 만나 유로존의 경제 문제를 논의하는 기회를 가진 CEO들도 많지 않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칼라 브루니 Carla Bruni는 스타벅스 단골 고객이다.) 그러나 58세의 슐츠에게 2011년은 카페인 가득한 회사 집무실뿐만 아니라 외부의 정치, 사회운동 영역에서도 대단한 한 해였다. 민간 분야와 공공분야를 역동적으로 연합시킨 슐츠는 미국의 상징적인 CEO가 되었다. 특히 정부의 효과적인 리더십 부재가 문제가 되는 시점이라 그가 더욱 부각되었다. 그것이 바로 슐츠가 2011년 포춘이 선정한 올해 의 기업인에 오른 이유다. 미국의 모든 주와 56개국에 1만7,0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그의 회사는 거대 글로벌 식품 기업들 중에서도 지배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누구나 아는 브랜드 스타벅스는 커피를 넘어 라 이프스타일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슐츠는 다시 귀환해 회사를 구하는 일이 스티브 잡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2주 전 월가에 기억에 남을 만한 2011년도 실적을 공식 발표하기 직전 슐츠는 내게 “올해는 대단한 한 해였다”고 말했다.

“2011년 뛰어난 실적을 거둔 슐츠는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회사를 구할 수 있는 인물이 스티브 잡스만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가총액 33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스타벅 스는 지금도 상승세에 놓여 있다. 역대 최고 의 실적, 역대 가장 많은 매장 수, 급속한 해 외 확장 등과 더불어 “큰big”과 “달콤한sweet”을 의미하는 신조어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 고 있다. 2000년 CEO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에 복귀한 슐츠가 지난 25년간 구축한 이 소비자 브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9월 30일 기준 지난 1년간의 매출은 거의 120억 달러, 이 익은 17억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의 3분의 1은 해외에서 올린 것이 다. 가장 최근 분기 매출 총액이 처음으로 30억 달러에 이르기도 했 다. 개장한 지 1년이 넘은 매장의 매출(이는 이 업계의 주요 척도다) 은 2010년 대비 미국에선 10%, 국제적으론 9% 상승했다. 특히 중요 한 점은 펌프킨 스파이스 라떼의 매출이 올가을 44%나 상승한 것이 다. 스타벅스 최고 재무 책임자(CFO) 트로이 알스테드 Troy Alstead는 힘든 경제 여건에서 올린 이 같은 실적은 “경이적인” 기록이라고 말 한다. 그리고 커피 가격이 역사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 다. 또한 스타벅스는 캘리포니아의 최고급 유기농 주스 생산업체 에볼루션 프레시 Evolution Fresh를 3,000만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 다. 스타벅스는 에볼루션을 통해 “건강 & 웰빙” 식품 분야에 진출 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에볼루션 바이 스타벅스 Evolution by Starbucks라 는 이름의 별도 매장에서, 그리고 일부 스타벅스 매장에서 주스와 식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우리는 건강 & 웰빙 시장에 큰 베팅을 할 생각”이라고 슐츠는 말했다. 지난 11월 초 스타벅스의 주가는 최근 10년간 최저치를 기록한 2008년보다 5배 이상 오르며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11월 초 현재 S&P 500은 올해 초 대비 0.4% 하락한 반면, 스타벅스 주가는 거의 37%나 상승했다. 1992년 스타벅스 기업공개 당시 공모가에 1,000 달러를 투자했다면, 현재 7만 달러 이상이 되었을 것이다. 2008년 스타벅스 주가가 8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을 때 7만5,000달러를 상속받은 한 장기근속 여직원은 슐츠가 회사의 회생을 주도하자 그 돈을 전부 스타벅스 주식에 투자해 그 가치를 약 45만 달러로 불릴 수 있었다. 슐츠 본인도 이 잘나가는 주식의 약 4%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 다. 그가 이사로 재직 중인 그루폰의 수천만 달러 상당의 주식과 그 가 공동 설립한 벤처투자회사 메버런 Maveron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소비자 기업들에 대한 투자금을 포함하면, 그의 순 자산 가치는 적 어도 2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브루클린 빈민가인 102번가 동쪽 1560번지 7층에서 성장한 그에겐 나쁘지 않은 성과인 셈이다. 슐츠 는 “오바마 대통령도 내 개인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슐츠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치 기부금 중단이 마비된 정부에 게 각성을 촉구하는 자신의 첫 번째 조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렸 다. 몇 주 전 대대적인 언론 발표, 뉴욕 타임스 전면 광고, 월드시리 즈 7차전에 30만 달러짜리 1분 광고를 내보내며, 미국 전역에 있는 소외된 시장의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 주는 풀뿌리 민간 기금인 ‘미 국 일자리 창출 Create Jobs for USA’ 설립을 발표하기도 했다. 10잔을 마 시면 벤티 사이즈의 아이스 캐러멜 마끼아또를 준다는 홍보 대신, 스타벅스는 회사 소유의 미국 내 6,700개 매장에서 5달러를 기부하 는 고객들에게 “불가분 INDIVISIBLE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특별한 빨 간-하얀-파란색의 팔찌를 제공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모든 기부금은 180개 지역사회 발전 금융기관들을 지원하는 비 영리 단체 ‘OFN(Opportunity Finance Network)’에 제공된다. 매 주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미국인 고객이 5,000만 명에 이르고 있어, 슐츠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통해 수천만 달러를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1월 1일 프로그램 출범 후 불과 며칠 만에 10만 개 이상의 팔찌가 기부자들에게 제공됐다. 스타벅스에 주로 기금을 대는 스타벅스 재단이 초기 자금으로 500만 달러를 기 부했다. 슐츠와 그의 아내 셰리 Sheri는 사비로 상당한 금액을 기부할 계획이다. 그는 월가 점령 시위가 사회불안의 조짐일까 우려된다며 “비즈니스 리더들이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이 것은 스타벅스와 다른 기업들이 힘을 모아 대규모로 미국을 위해 좋 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미국을 회사로 치면, 여러분은 지금 공매도에 나섰을 것이다.”

하워드가 할렘에 갔을 때 스타벅스는 시범 프로그램을 통해 두 개 매장의 이익을 해 지역사회와 공유할 예정이다.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는 “우린 단순히 돈을 기부하고 싶지는 않다. 우린 지역사회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지역사회의 기둥인 할렘의 아비시니아 침례교회 Abyssinian Baptist Church 목사인 캘빈 버츠 Calvin Butts 3세와 행보를 함께하고 있다. 지난 10월 초 슐츠는 스타벅스의 최신 사회운동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125번가와 레녹스 애버뉴 Lenox Avenue를 찾았다. 스타벅스는 LA의 할렘과 크렌쇼 Crenshaw 지역 매장의 이익을 지역사회와 공유할 것이다. 각 지역에 적어도 10만 달러를 약속했다. 이 프로그램은 할렘의 아비시니아 개발 주식회사와 크렌쇼의 인권단체 LA 도시연맹(Urban League)과의 파트너십으로 운영될 것이다. 스타벅스가 할렘에 들어온 지 여러 해가 지났다. 버츠 목사는 “슐츠가 자선이 줄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이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투자와 사회 환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슐츠는 그 칭찬에 화답하려는 듯, 예전 버츠 목사의 설교를 들었을 때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할지를 심각하게 고려했었다”고 군중들에게 말했다. 슐츠는 2년 전 LA 도시연맹 총재 블레어 테일러 Blair Taylor와 대화하던 도중 지역사회 재건 파트너십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테일러는 슐츠에게 비영리단체는 기부금 모금과 기업의 간헐적인 일회성 기부 외에 다른 수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슐츠는 크렌쇼를 방문해 다른 기업들에게 모범이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파트너십을 제안했다. 아비시아니 침례교회와 LA 도시연맹은 스타벅스 기금을 공교육, 서민 주택, 사회 복지를 활성화하는 데 지속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심을 담은 기부와 선심성 기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스타벅스의 할렘 행사는 지역 교회 합창단이 경쾌한 찬송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한 어린 소녀는 그녀의 학교에 대한 사랑스러운 연설을 하기도 했다. 아주 멋진 연출이었다. 하지만 슐츠가 매장에 들어설 때 그의 직원들이 보이는 반응을 지켜보면 (그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기는 힘들다. 그가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3명의 바리스타들이 그들의 CEO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단순히 직원이 아니라 그의 팬이었다. 회사는 그들을 아주 잘 대우해준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그들이 제공하는 커피 한 잔마다 이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게 되어, 그들이 바로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 Daniel Roberts

가수이자 인도주의자이며, 프렌치 로스트 French Roast를 좋아하 는 보노 Bono는 창의적인 자본주의의 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보노는 5년 전쯤 자신이 전개한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레드 Red 캠페인에 스타벅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슐츠에게 접근한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는 스타벅스를 커피회사가 아닌 미디어 기업으로 본 다”고 말했다. 그의 사회운동가 친구들 중 몇몇, 심지어 U2조차도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러나 보노는 “내게 주목 끌 만한 것이 필요한 순간 금전적 여력이 없을 때, 그리고 정치인들이 ‘야외 바비큐 파티 에서 당신의 주장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할 때 스타벅스 같은 회사 가 이에 도움을 준다”며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과 정치 기부금 중단 캠페인의 영향으로 슐츠가 앞으로 공직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회사의 CEO로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 문이었다. 큰 키에 단정한 머리, 그을린 피부의 슐츠는 관자놀이 주 변의 희끗희끗해진 머리와 하얀 치아를 지녔다. 환한 미소와 다정 다감한 목소리를 가진 그는 타고난 정치인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월드 시리즈 1차전이 끝난 후, 슐츠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후 은퇴한 친한 친구 토니 라루사 Tony La Russa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과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이 자리에는 나도 끼어 있었다. 과거 아버지와 함께 뉴욕 양키스 경 기를 보러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열성적인 야구팬인 슐츠는 라루사 가 그의 팀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지 듣고 싶어했다. 나는 이 모임이 사교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노트북을 치워두기로 했다. 라루사는 그 런 나의 행동을 내켜 하지 않았다. 그는 뭔가 기록으로 남겨지길 원 했다. 슐츠를 쳐다본 후 의도적으로 식탁 맞은편에 앉은 나를 바라 보며 그는 “슐츠, 넌 대통령에 출마해야 해”라고 말했다.

“월드 시리즈 1차전 경기가 끝난 후 세인트루이스에서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토니 라루사 카디널스 감독은 자신의 친구 슐츠에게 ‘자넨 대통령에 출마해야 해’라고 말했다”

워드 슐츠는 대규모 미국식 커피숍을 창조했 다. 호감 가는 외모에 영리한 머리까지 갖춘 그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뛰어난 세일즈맨이었다. 미시 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후, 맨 해튼에서 제록스의 최신 제품 ‘워드 프로세서’를 방문 판매하는 일 을 시작했다. 그리고 스웨덴의 부엌용품 제조업체 해마플라스트 Hammarplast 미국 지사로 이직했다. 슐츠는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 스 마켓 Pike Place Market에 있는 평범한 소매점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에 많은 커피 장비가 팔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1971년 문을 연 스타벅스는 당시 4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었다. 순수한 커피 애호 가들은 작은 봉지에 담긴 신선한 아라비카 커피를 좋아했다. 슐츠 는 호기심이 생겼고, 직접 이 가게를 방문하기 위해 서부로 갔다. 문 앞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모차르트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1982 년 수개월 동안 스타벅스 설립자들을 설득한 끝에 29세의 슐츠는 마케팅 담당으로 스타벅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 슐츠는 기업가적인 “통찰”을 얻게 된다. 그 이듬해 이탈리 아에서 열린 한 박람회에서 그는 밀라노와 베로나 지역에 작은 에스 프레소 바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화려한 바리스타들이 콩을 갈고, 에스프레소 샷을 뽑고, 우유 거품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단한 볼거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미국인들이 알지 못하는 유럽 대륙의 하위문화, 즉 직장과 집 사이의 “제 3의 장소”가 거기에 있었 다. 슐츠는 계산을 해봤다. 인구가 미국의 5분의 1인 이탈리아에 이 런 카페가 20만 개나 있다. 그는 올해 초 나온 회고록에 “나는 단순 히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이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지역사회를 만들 어낼 수 있는 그 힘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썼다. 던킨 도너츠의 오랜 마스코트 던키에선 대화의 힘을 느낄 수 없었다. 스타벅스 설립자 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슐츠가 막 추출한 카푸치 노를 컵에 담아 팔도록 해줬다. 그러나 슐츠는 스타벅스를 그만두 고 자기 소유의 에스프레소 매장 3곳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987년 설립자들이 스타벅스를 팔기로 하자, 슐츠는 투자자들로부터 380 만 달러를 모아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1992년 기업공개 당시 스타벅스의 매장은 165개였다. 월가의 일 각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그들은 ‘아무도 커피를 마시지 않 거나, 50센트만 내면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미국 인들이 발음할 수도 없는 이탈리아 이름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종이 컵에 담아 1달러에 판다는 것이냐? 농담이지?’라고 말했다”고 슐츠 는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이 회사는 1990년대 놀라 운 속도로 성장했다. 그곳은 밀라노가 아니었다. 그러나 “제 3의 장 소”가 미국에 등장했다. 동네 스타벅스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게 미국에서 아주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정장을 입은 바쁜 은행가들,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 노트북을 들고 온 학생들, 소설을 쓰는 사람 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스타벅스의 고객 이었다. 슐츠는 “우리는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경험을 판다”고 주 장했다. 하루에 프렌치 프레스로 뽑은 4~5잔의 에이지드 수마트라 커피 Aged Sumatra를 우유와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는 그는 어떤 이유 에서인지 잠을 많이 자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항에는 스타벅스 카운터, 식품매장에는 스타벅스 아이스크 림과 스타벅스 커피 제품과 스타벅스 CD, 스타벅스 식품도 있다. 새로운 스타벅스는 기존 스타벅스의 화장실에 오픈한다”고 더 어니 언 The Onion 지는 익살스럽게 보도하기도 했다. 1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스타벅스를 경영해 온 슐츠는 2000 년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6세였 다. 8년 동안 연평균 49%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회사를 운영해왔지 만, 그는 조금 따분함을 느꼈다. 그는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프로 농구팀 오너로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완전한 재앙이었다. 그는 결국 오클라호마로 연고지를 옮긴 시애틀 슈퍼소 닉스를 매각했다.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그는 마치 결석을 배출하는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그가 없는 스타벅스도 처음에는 잘나갔다. 일부 도시의 몇몇 거 리에선 스타벅스와 신호등의 비율이 2대 1이 될 정도로 매장이 많 았다. 에베레스트에 스타벅스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의 사진도 등장 했다. 2007년에는 브라질, 바레인, 바하마를 포함해 매장 수가 1만 5,000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급속한 대중시장 확장의 위험이 곧 나 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고객의 발길이 줄었다. 소비자들은 스타벅 스 커피에 중독되었지만, 말도 안 되는 높은 가격 때문에 스타벅스 와 애증 관계로 발전해갔다. 블로거와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스 타벅스 비판자들이 그런 불만을 표출할 플랫폼을 갖게 되었다. 자 체 에스프레소 음료를 출시한 맥도날드도 이런 비판에 가세했다. 스타벅스 본사 꼭대기 녹색-하얀색 사이렌 요정이 보이는 곳에 ‘커 피 값으로 4달러를 지불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광고게시판을 설치하기도 했다. 2007년 발렌타인 데이에 슐츠는 그의 후계자에 게 “우리 브랜드의 범용화”와 “스타벅스 경험의 희석”에 대해 개탄 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스타벅스 가십 사이트에 유출된 이 이메일 은 그의 진심 어린 호소가 되었다. 2008년 초, 슐츠는 CEO로 복귀했다. 그는 곧바로 실적이 좋지 않은 800여 개의 미국 매장을 폐쇄하고, 4,000명을 해고했다. 직원 들을 재교육하고, 현대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운영방식을 개선했 다. 하루 중 절반은 미국 내 모든 매장의 문을 닫고 바리스타들이 더 좋은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법을 배우도록 했다. 스타벅스는 1만 명 의 매장 매니저들과 함께 1주일간 뉴올리언스에서 단합대회를 가졌

“민간분야와 공공분야를 역동적으로 결합시킨 슐츠는 미국의 상징적인 CEO가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건 것도 그래서였다”

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총 5만 시간 자원봉사 에 3,000만 달러를 쓰기도 했다. 기업 리더들의 복귀가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다. 스티브 잡스가 있다면, 제리 양 Jerry Yang*역주: 야후 공동설립자도 있는 법이다. 스타벅스 에서 슐츠는 직원들을 독려하고 혁신을 촉진했다. “회사를 차릴 때 단 하나 집중해야 할 것이 있다. 순풍을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잃을 게 훨씬 적어진다. 미식축구로 말하면, 우리는 득점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방어를 하려고만 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덜 충동적이고, 더 많이 느긋한 사람이 되어 회사에 복귀했 다. “선밸리 Sun Valley*역주: 세계정상급 기업인들의 모임 장소와 다보스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CEO들이 모이는 그런 화려한 정상급 회의에 초대받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의미 있 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실제 초대를 받았고, 몇몇 회의에 참 석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참석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외부 세계의 인정이나 칭찬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주가가 최저 수 준이었고, 모두가 나와 회사에 대해 너무 안 좋고 비판적인 말만 했 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비난의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을 정 도였다.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회사를 변화시켜야 했다.” 그는 가 족, 친구들과 더 자주 사이클을 탔고, 다시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다시 스타벅스에 번영의 시기가 찾아왔다. 내년에는 지역 분위 기를 더 잘 표현해내기 위해, 짙은 갈색 톤의 목재 카운터, 긴 탁자, 손 글씨로 장식한 메뉴판, 더 나은 시야 확보 등으로 1,700여 매장 을 리모델링하고, 미국 내 200개 매장을 새로 낼 계획이다. 비바노 스무디 Vivanno smoothies, 햄&체다 아티즌 브렉퍼스트 프리타타 Ham & Cheddar Artisan Breakfast Frittata, 점심용 비스트로 박스 Bistro Boxes 등 제품 도 더욱 좋아졌다. 스타벅스는 2009년 비아 Via를 통해 인스턴트커 피 시장에 진출했고, 몇 주 전에는 캡슐 커피 케이 컵 K-Cup도 출시 했다. 내년 1월에는 스타벅스 최초의 마일드 로스트, 블론드 Blonde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600여 개 매장을 연다. 그중 4 분의 1은 중국에 낼 예정이다. 2015년이면 중국 내 스타벅스 매장이 총 1,50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도 때를 기다리고 있 다. 베트남에는 2013년 첫 매장을 열 계획이다. 총 1만7,000개의 매 장을 둔 스타벅스는 맥도날드와 서브웨이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 장 많은 매장을 거느린 식품 체인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에서의 일자리 창출은? 스타벅스는 올해 3,700명을 신규 채용했고, 2012년에는 수천 명을 추가로 뽑을 계획이다.

터 필 Dr. Phil*역주: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이자 카운셀러로 닥터 필 쇼의 진행자 같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슐츠의 비즈니스 선행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쉽 게 알 수 있다. 슐츠는 지금 아주 잘 살고있 다. 밤비 Bhambi 맞춤형 양복을 입고, 콜로라 도로 스키 여행을 기도 한다. 뉴욕 햄튼에는 보노와 마돈나가 방문 했던 별장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서 브루클린의 기억은 결 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스타벅스의 기본 원칙은 그가 브루클린 의 카나지 Canarsie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1950~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도 프라푸치노를 마실 수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시간당 10달러를 받는 쾌활한 바리스타를 채용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가난한 동네다. 2차 대전 참전용사였던 슐츠의 아버지 는 교육을 받지 못해 공장 노동자, 택시 운전사, 천 기저귀를 배달하 는 트럭 운전사 등 블루칼라 일자리를 전전했다. 연간 2만 달러 이 상을 벌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3형제 중 장남이었던 슐츠는 아버지가 겪는 직장생활의 끝없는 ‘슬픔’을 절실히 느끼며 자랐다. 7 살이던 슐츠가 어느 날 집에 들어서자 하반신에 깁스를 한 아버지가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동생 프레드 슐츠 Fred Schultz는 일하다 빙 판길에 넘어져 엉덩이와 발목이 부려졌다. 의료보험도 없었던 그는 산재 보상도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런 이미지는 하워드 슐츠에게 악몽처럼 계속 따라다녔고, 때론 그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미국 고용주들 중 슐츠의 스타벅스가 10만7,000명의 ‘파트너들 (스타벅스는 직원들을 이렇게 부른다)’에게 오랫동안 제공해온 복 지혜택을 제공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모든 정식직원과 일주일에 적어도 20시간 이상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들(결국 거의 모든 직원

“사업과 사회적 책임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이 결국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다”

들)이 회사 주식 매입권뿐만 아니라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CEO 로 복귀한 슐츠는 의료보험 혜택을 줄이라는 기관 투자자들의 요구 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렇게 했다면 회사의 “정신”에 치명적인 요 소로 작용했을 테고, 결국 직원들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자기 파괴 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슐츠는 말한다. 그것은 아주 좋은 홍보 효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그 효과는 더욱 컸다. 의료보험료로 연간 2억5,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긴 하지만, 슐츠는 순수한 마음에서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이 익을 추구하는 회사의 기본 목적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르완다 커피재배 농가에 젖소를 제공한 일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가져왔다. 2009년 르완다의 소규모 재배업자들을 방문한 슐츠는 무캄비자 이매켤러트 Mukamwiza Immaculate라는 여성을 만났을 때 그녀 가 가장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도 중 그녀는 슐츠에게 프리지아 종 젖소라고 말했다. 그녀는 통역사 를 통해 “젖소 한 마리만 있으면, 내 아이들에게 매일 신선한 우유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슐츠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스타벅스 재단과 직원 기부금으로 55개 농가에 55마리의 젖소를 제공했다. 최근 나스닥 오찬 모임에서 슐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그의 견해에 반발하는 의견을 들었다. 기업은 단지 주주들의 이익 을 극대화해야 하고, 주주들이 원할 경우 그 이익을 직접 세계를 위 해 좋은 일을 하는 데 쓰도록 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 아닌가? 기업 이 직접 선행을 하는 것은 거만한 짓이 아닌가? 슐츠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CEO의 조심스러운 태도보단 설교자의 확신으로 그 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들은 이익에 대해 단 하나만의 견해를 가져 서는 안 된다. 사업과 사회적 책임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결국 더 많은 돈을 버는 기업이 될 것 이다.” 2003년부터 스타벅스 이사를 역임해온 전 미 상원의원이자 농 구 스타 빌 브래들리는 스타벅스의 명성이 이 회사 성공의 핵심이 라고 말한다. 일종의 후광효과라는 것이다. “단지 커피를 팔아서 사 회적 네트워크를 지원할 수백만 달러를 벌 수는 없다. 사람들은 스 타벅스를 존경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스타벅스를 존경 한다. 그리고 휘핑크림을 넣지 않은 타조 그린 티 크림 프라푸치노 Tazo Green Tea Cream Frappuccinos를 좋아한다. 어렸을 땐 슐츠가 브래들리 의 열성 팬이었다. 1970년대 초 고등학교 3학년이던 슐츠는 뉴욕 닉 스 Knicks에서 뛰는 브래들리 경기 표를 구하기 위해 메디슨 스퀘어 가든 티켓 창구에서 밤을 새웠다. 슐츠는 4장을 사서 3장을 암표로 팔아 자신의 표 값을 마련했다. 슐츠는 선행이 훌륭한 비즈니스라고 믿는다. 전면 의료보험 혜 택을 제공하면 모든 직원들이 회사에 헌신한다. 르완다 커피 재배 농가에 젖소를 제공하면 농부들의 충성도와 생산성이 증가한다. “자비로운 기업이 되기 위해선 많은 이익을 내야 한다”는 점을 그도 인정한다. “그러나 회사의 유일한 목표가 이익의 극대화라면 시간 이 지날수록 파열음을 내게 된다. 우리의 헌신이 쌓여 우리의 브랜 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의도 했든 아니든, 스타벅스 직원들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르완다 커 피 재배업자들은 신선한 우유를 마실 수 있다. 올해 슐츠가 펼친 정치 기부금 중단 캠페인과 일자리 창출을 위 한 팔찌 판매 프로그램이라는 두 가지 정치 운동은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다. 스타벅스는 또한 도심 빈민가의 2개 매장에서 나온 이익 의 절반을 지역사회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거리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느낄 수 있다.”고 그는 말한 다. 그가 이 두 가지 캠페인을 제안한 것은 아마도 여름 회기 동안 국가 부채 상한선을 두고 싸움을 벌인 정치인들의 모습에 질렸기 때 문일 것이다. 공공분야가 지금 당장 일자리 창출을 위한 소액 대출 을 해줄 여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두 가지 노력을 통해 스타벅스 브랜드의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정치인들은 어느 정도 압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 기 위해 그 기금을 활용할 것이다. 그래도 정치적인 행동에는 위험 이 따르기 마련이다. 많은 기업인들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다. 이 나라의 절반이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 다. 계산상으로 보면 장단점이 있다.

론 마케팅 재능도 도움이 된다. 빨강-하양-파 랑의 팔찌를 스타벅스 카운터에 놓고 고객들 이 그것을 차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사람이 슐츠였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에 폭스 방송사와 메이저리그 사무국(MLB)을 설득해 7차전 경기에 “미국 일자리 창출” 캠페인 광고 시간을 마련 하도록 한 것도 슐츠였다. 그리고 카디널스의 감독 라루사에게 7차 전 경기 내내 그 팔찌를 차고 있도록 한 것도 분명 슐츠였다. 냉소주의자는 이것이 실제로 최고 수준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팔찌 판매는 어쨌든 연말연시에 페퍼민트 화 이트 초콜릿 모카를 사는 고객들을 더 많이 끌어 모을 것이다. 하지만 슐츠가 교활한 마케팅 전략가라기보다는 훌륭한 인물이 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맨해튼에서 인수합병 전 문 투자 금융사를 운영하는 55세의 빌리 엣킨 Billy Etkin이 들려준 얘 기다. 1995년 엣킨의 첫 번째 아내 수전은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 았다. 당시 엣킨과 슐츠는 서로를 몰랐다. 그러나 이 둘을 잘 아는 햄튼의 한 친구가 수전이 1997년 초 골수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시애틀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는 슐츠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엣킨 가족이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슐츠 부부가 자신들을 위해 가구가 잘 비치된 아파트를 준비해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슐츠 부부는 엣킨의 어린 자 녀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머무르도록 배려해주었다. 슐츠는 며칠 간격으로 엣킨과 연락했다. 홍보용 카메라 촬영 같 은 건 아예 없었다. 슐츠의 그런 친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예전 이나 지금이나 거의 없다. 이식수술을 하고 한 달 후 수전은 시애틀 에서 사망했다. 엣킨과 슐츠는 그 얘기를 할 때면 지금도 눈가가 촉 촉해진다. “그것은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선행이었다”고 엣킨은 말한다. 어려운 시기였다. 도움을 준 슐츠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나는 뉴욕 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도 돌아가 자신의 회사를 운영해야 했다. 그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 후 두 사람과 그들의 가족들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츠가 야심, 카리스마,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그리고 드라마 등장인물 같은 워싱턴 의원들 을 낮잡아 본다면, 그는 왜 정치계에 진출하 지 않는 걸까? 토리 라루사는 계속해서 그의 정계 진출을 종용한다. 라루사는 또한 자신 의 친구에 관한 일화를 얘기하길 좋아한다. 몇 년 전 플로리다의 봄 훈련 중 슐츠와 라루사는 함께 덕 아웃 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카디널스의 한 선수가 1루에 진출해 있었다. 2루 도루를 염두에 둔 라루사는 슐츠에게 “대주자를 내보 는 게 좋을까?”라고 물었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떻게 하고 싶 어, 슐츠? 네가 결정해. 지금 당장 결정해!”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열광적인 야구팬이고, 사무실에 이치로가 사인한 글러브가 있으며, 집에는 1998년 홈런 대기록 세운 마크 맥과이어 Mark McGwire의 방망 이(44~47번)를 가지고 있기도 한 그는 야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 만 즉답을 하지 못했다. 야구에선 신속한 결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는 몇 분이 지나서야 “토니, 스퀴즈 플레이를 해봐”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슐츠, 3루에 아무도 없잖아”라고 라루사는 대답했다. 라루사는 웃느라 얘기를 계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슐츠도 웃 음을 터뜨렸다. 그 주자는 결국 3루까지 갔다. 그러자 슐츠는 다시 스퀴즈 플레 이를 하라고 했다. 라루사는 “슐츠, 벌써 투아웃이야”라고 말했다. 라루사는 즉석 야구감독이었던 슐츠의 오판을 두고 “그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 같았다. 한 분야의 리더라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리 더 역할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스포츠 맨 빌 브래들리도 이에 동의한다. “슐츠가 공직 에 출마하는 것보다 내가 하늘을 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그는 자 신이 하고 있는 일을 매우 좋아한다”고 그는 말했다. 하워드 슐츠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보다 스타벅 스에서 좋은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2011년처럼만 한다면, 그의 말 은 분명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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