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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품은 침묵의 증인: 미라는 알고 있다!

SILENT WITNESS OF THE PAST

흔히 미라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시무시한 공포영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학자들에게 미라는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자 타임머신과도 같은 귀중한 존재다. 시신이 부패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에서 유물이나 유골과는 전혀 다른 독특하고 다양한 정보들을 캐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비밀을 품고 있는 침묵의 증인 미라. 우리는 이 미라를 통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미라는 간단히 말해 부패되지 않고 신체와 내장기관이 보존된 시신을 말한다. 그 어원은 석탄의 부산물인 역청(瀝靑, 콜타르)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뭄’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는데 미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집트 미라의 표면이 역청과 유사한 검은색을 띠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중세 라틴어로 전파돼 무미아(mumia)로 바뀌고, 영어에서 머미(mummy)가 된 것이다. 우리말 ‘미라(mirra)’는 포르투갈어식 표현이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라는 원래 인공적으로 만든 것에 한정해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적으로 탄생한 것도 미라로 부른다. 그렇다.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미라 중에는 의도치 않게 생긴 천연 미라도 있다.

물론 처음부터 작정하고 만든 미라, 특히 육신이 죽었어도 영혼은 불멸한다고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지배자인 파라오가 사망했을 때 내부 장기를 제거하고 방부처리를 해서 만든 것이 가장 유명하다. 이집트에서는 아예 전문 방부처리사가 활동하며 파라오 외에도 농민이나 동물까지 미라로 만들어냈다. 지금껏 발견된 동물 미라만 100만구에 달할 정도다.

반면 천연 미라는 무의적인 화학물질과의 접촉, 습기 및 공기와의 접촉 차단, 극한의 온도 또는 건조한 기후 등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성된다. 이들은 이집트 미라와 달리 내장기관을 모두 보유하고 있고 방부 처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사람의 생전 모습이나 생활상, 식습관 등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학문적 가치가 훨씬 높은 것이다.

일례로 지난 1991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인 알프스 지역에서 발견된 5,300년 전의 미라 ‘외치(otzi)’는 만년설에 묻혀 냉동되면서 미라가 된 경우다. 또 우리나라 조선시대 미라들도 관 전체를 회반죽으로 둘러싼 이른바 ‘회곽묘’ 매장문화로 인해 시신이 자연 밀폐된 결과물이다. 이외에도 중국 타림 분지나 페루에서는 사막과 같은 건조한 기후 속에 수분이 빠져나간 미라들이 발견되고 있다.

현존하는 인공 미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칠레의 카마로네스 계곡에서 발견된 친초로(Chinchorro) 미라로서 사망시기가 기원전 505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936년 남미 잉카 쿠에바 4호 유적지에서 찾은 6,000년 묵은 사람 머리가 최고(最古)의 천연 미라다.

과거로 떠나는 타임머신

이 같은 미라의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현대 과학기술을 동원하면 성별이나 나이, 키는 물론 사망원인, 식습관, 질병 유무, 직업(생활패턴) 등 많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만일 미라가 입고 있는 의복, 보관돼 있던 관, 기타 부장품들까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다면 당대의 생활상 전반에 대해 엄청난 인문학적 진전을 꾀할 수도 있다. 미라를 과거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국내외에서 미라가 발견될 때마다 학계의 큰 관심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미라 연구에 처음부터 최신 과학기술이 동원되지는 않았다. 19~20세기 초반까지도 미라, 그중에서도 이집트 미라 연구는 돈 많은 사람들의 유희 또는 쇼에 더 가까웠다. 때문에 연구래 봤자 관찰과 분석보다는 해부에 가까운 방식을 취했고, 그런 탓에 연구가 끝난 뒤에는 그냥 내다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사실 무근이기는 하지만 미라를 증기기관차의 연료로 사용했다는 말도 있었으니 당시의 사람들이 미라의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요즘의 미라는 그야말로 특급대우다. 발견되는 순간부터 발굴, 이송, 연구, 보관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진귀한 연구 표본 대접을 받는다. 연구 역시 미라를 가급적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비파괴 검사 중심으로 진행된다.

기본적으로 미라 연구는 발견 장소에서의 사진 촬영으로 시작된다. 우연히 발굴된 미라일수록 더욱 철저한 사진 촬영을 해서 외부 상태를 기록하며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미라의 상태에 더해 부식을 비롯한 다른 변화가 진행됐는지를 파악한다.

최대한 원 상태대로 발굴, 실험실로 옮긴 뒤에는 비파괴 검사가 이뤄진다. 기본적인 것이 X레이 촬영. 붕대에 칭칭 감겨 있거나 의복을 입고 있는 미라를 전혀 손대지 않고 검사는 데 유용한 기술이다. 이 과정에서 미라의 골격, 골절 등 뼈의 손상 유무, 관절염에 의한 뼈의 퇴행, 부장품 존재 유무, 여성이라면 임신 유무 등이 가려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기생충 질환과 모래 진폐증에 시달렸으며 암, 심장병 같은 현대 질환은 매우 드물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이런 해부학적 접근에 기반한다.

1970년대부터는 CT 스캔도 실시되고 있다. X레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CT 스캔은 미라의 피부와 근육, 뼈, 장기 등을 단층 촬영함으로써 해부하는 것 이상의 세밀한 분석이 가능하다. 참고로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의 경우 체내 수분에 자기장을 걸어두는 방식이어서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미라에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여기까지 완료되면 이제는 직접적인 검사에 들어간다. 미라를 감싸고 있는 붕대나 의복에 대한 검사다. 보통은 직물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며 작게 절단해 현미경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취한다.

그 다음은 가장 중요한 미라의 신체다. 신체검사의 첫 대상은 치아며 치아의 마모도, 부패, 탈락 여부를 점검하고 구강과 턱에 부상 흔적이 있는지도 살핀다. 이 결과에 따라 살아생전에 채식을 주로 했는지, 아니면 육식을 했는지 같은 식습관과 그에 따른 건강상태를 추정할 수 있다. 종종 사인과 연관된 중요한 단서가 잡히기도 한다. 다만 구강검사는 미라의 입이 열려있어야 가능한데 이집트 파라오 미라들은 종교적 이유로 입이 모두 열려 있어 검사가 수월한 편이다.

훼손 최소화가 관건



인체 조직을 떼어내 정밀 분석하는 조직검사는 무엇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반면 일정부분 미라의 훼손이 불가피한 만큼 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피부, 근육, 내장 등에서 샘플을 추출해 현미경으로 검사하게 되며 사망 당시 앓고 있었던 질병의 정체, 세균 감염이나 기생충의 유무, 마약 및 독극물 섭취 여부 등이 이 단계에서 드러난다.

샘플 채취 시 훼손을 최대화하는 것이 관건으로 피부 샘플은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떼어내는 것이 상례며 반드시 절개를 해야만 내장 조직을 얻을 수 있을 때는 내장 조직검사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운이 좋다면 내시경을 이용한 검사도 가능하다. 미라의 입이나 항문을 통해 내시경을 투입하기 때문에 훼손 위험이 거의 없다.

때로는 흉곽 절개를 무릅쓰고 샘플을 확보키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이는 과학적, 인류학적 대의를 위해 내장 조직검사가 꼭 필요하고,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 한한다.

이와 관련 미라 연구의 주 무기로 활용되는 장비가 있다. 바로 질량분석기다. 질량분석기는 가속된 이온이 전기장이나 자기장을 지날 때 휘는 성질을 이용, 화합물의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해 그 성분을 알아내는 기기로 미라의 머리카락이나 조직 표본을 질량 분석하면 기존 방식으로는 찾아낼 수 없었던 비밀들을 추가적으로 파헤칠 수 있다.

우선 미라의 제작연도 파악이 가능하다. 생명체가 죽으면 호흡을 하지 않기에 체내에는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는 반감기가 5,730년이나 돼 질량분석기를 통해 미라 체내의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의 잔류량을 알아내면 미라의 나이가 드러난다.

또한 질량분석기는 아편, 대마, 카페인, 식물성 스테로이드, 플라보노이드, 비소, 납, 헬륨, 네온 등 다양한 물질을 식별한다. 따라서 미라가 생전에 어떤 약물에 중독된 상태였는지, 혹은 독살을 당했는지의 여부 등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DNA 분석도 질량분석기와 함께 현재 미라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존재다. 미라의 DNA를 분석, 과거에 성행(?)했던 근친혼의 실재 여부와 유전질환 등 폭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새로 발견된 미라와 기존의 미라 DNA를 비교분석해 혈연관계나 가계도를 밝힐 수도 있다. 이 점에서 DNA 검사는 가족일 개연성이 높은 이집트 파라오 미라의 연구에 제격이다.

사실 미라 연구는 단순히 우리가 궁금해 하는 과거의 모습을 전해주는 것을 넘어 오늘날 현대인들의 생활에서 직접적 이득을 주기도 한다. 인플루엔자 연구도 그중 하나다.

실제로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최대 5,000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인류 역사상 최악의 감기였다. 현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인체감염경로를 규명하는 등 치명적 질병의 창궐을 막을 비책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도대체 100년 전 유행한 뒤 사라진 바이러스를 어떻게 구한 걸까. 맞다. 미라에서였다. CDC는 알래스카 영구동토층에서 발견된 한 여성 미라의 폐 조직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를 추출, 소생시킨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위한 과거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미라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과거를 살던 사람들이 죽어서 남긴 미라는 괴기스럽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결국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그들이나 우리나 분명 인간이니 말이다.

▩ 이건 몰랐지?
미라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들

○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제작하며 뇌는 제거한 반면 심장은 정성스레 보존했다. 심장은 영혼의 집이라 생각했지만 사고를 담당하는 두뇌는 현명해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여긴 탓이다.

○ 유럽인들은 무려 500년 동안이나 미라를 먹으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믿었다. 심지어 1972년에도 그런 속설을 사실인 듯 주장하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 이집트의 도굴꾼들은 미라를 찾으면 부숴버린 다음 걸치고 있던 금은보화를 팔아 치웠다. 이런 행태는 수천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 고대 이집트의 미라 제작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세습할 수도 있는 소위 잘나가는 전문직 종사자였다. 이들의 기술은 기원 후 5세기까지 전승됐지만 기독교가 융성하며 사라졌다.

○ 이집트의 미라 제작자들은 이집트인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사망한 그리스인과 로마인들도 미라로 만들어줬다.

○ 미라에 대한 최초의 X레이 촬영은 1896년 영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플린더스 페트리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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