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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

"문화계에서 가장 신망받는 기업 출연 재단 이뤄낼 것"

국내 유일의 문학 재단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대산문화재단이 지난 11월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교보생명과 재단의 창립자이자 선친인 고(故) 신용호 회장의 뜻에 따라 재단을 이끌고 있는 신창재 이사장(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재단 운영의 어제와 오늘, 미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성민 기자 sungh@hmgp.co.kr

말이 문화재단이지 사실상 ‘문학’ 재단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창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11월 27일 열린 창립 20주년 기념 기자간 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재단의 주력사업으로 문학을 택한 건 전적으 로 선친.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뜻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내년도 대산문화재단의 총예산 28억 원 가운데 4분의 3 정도가 문학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편성되어 있다. 지난 20년간 집 행된 예산으로 따져 봐도, 순수문학 및 관련 문화사업에 쓰인 금액 만 300억 원이 넘는다. 대산이 국내 문학 관련 지원과 관련한 재단 가운데 가히 독보적 존재인 이유다.
창립 초기인 1993년부터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는 신창재 교보생 명 회장(59)이 포춘코리아에 자신만의 특별한 재단 운영 철학과 노 하우를 들려주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을 맞은 감회를 얘기해 달라.
교보생명의 출연으로 지난 1992년 창립된 대산문화재단이 벌써 20 주년을 맞았다. 설레는 스무 살 청년의 꿈과 열정으로, 새롭게 주어 질 과제 앞에서 다시금 처음 시작할 때의 자세로 돌아가 마음을 다 잡고 있다. 그동안 아낌없이 재단을 지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 께 감사하며, 앞으로도 모든 말씀에 겸손하게 귀 기울여 나갈 생각 이다.

“제 1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참여문학의 거목인 고은, 백낙청 선생을 선정한 것은 당시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보험회사가 문학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한 건 세계적으 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창립 때부터 ‘문학’ 분야만을 집중 지원 해 온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교보생명과 대산문화재단 창립자인 선친(대산 신용호 선생)의 문 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가장 큰 배경이다. 선친은 평소에 “사람 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다양 한 분야에 관한 독서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고 꿈을 키워나 가셨으니 문학에 대한 애정이 생긴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러 한 마음이 문학인과 예술가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아 줄 수 있는 방 법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재단의 창립으로까지 이어 졌다고 본다. 선친의 ‘좁고 깊게’라는 경영철학 또한 한몫을 했다.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기보단 한 분야를 골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전문성을 신장하는 ‘선택과 집중’이 재단 운영에도 실천적으로 적용됐다.

재단 창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의 문학 사랑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렇다. 선친은 민족의 정신이 담겨 있는 문학의 발전이 곧 한국인 의 정신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열쇠라고 생각하셨다. 아마 우리말과 글을 빼앗겼던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셨기에 우리 문학에 대한 중요 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물론 당신 스스로 대단한 문학 애호가이기도 하셨다. 건강이 좋 지 않아 정상적인 배움의 기회를 포기했던 유소년기에, 천일독서 (千日讀書) 계획을 세워 위인전에서부터 톨스토이, 발자크, 괴테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문학작품을 독파해 인문학적 교양을 쌓은 것이 그분의 지적인 바탕이 되었다. 생전에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나 ‘들 국화’를 애송하며 경영지표로까지 강조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문 학에 대한 선친의 각별한 애정이 대산문화재단 창립에 주춧돌이 되 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난 20년간 재단 사업의 대표적인 성과를 든다면.
재단은 지금까지 대산문학상 수여 등을 통한 ‘창작문화 창달 사업’ 과 한국문학 번역지원 등을 통한 ‘한국문학 세계화 사업’에 중점을 두고 많은 성과를 이뤄왔다. 앞으로는 이와 더불어 대산청소년문학 상, 대학생동북아대장정 지원 등을 통해 청소년에게 문학에 대한 꿈과 비전, 리더십을 심어주기 위한 ‘장학 및 청소년 육성 사업’에도 많은 힘을 쏟을 예정이다. 장기적으론 이 세 가지 축을 균형 있게 발 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년간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 펼쳐 온 다양한 활동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개인적으론 처음 재단 이사장에 취임했을 무렵 겪었던 어려움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선정을 둘러싸 고 어려움이 많았다. 시와 평론 부문 수상자인 고은, 백낙청 선생은 일관되게 참여문학 진영을 이끌어 온 문단의 거목이었지만, 당시는 권위주의적 잔재가 남은 정부의 감독 아래 있었을 때라 주변의 우려 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도 기업 재단이 첫 수상자를 이렇 게 파격적으로 정하는 건 곤란하다는 이야기까지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결과적으론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과정에서 수상작의 선정은 전적으로 사람이 아닌 작품의 문학성을 위주로, 그리고 심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통이 수립 되었고, 대산문학상은 상금 규모뿐 아니라 권위와 공정성이라는 측 면에서도 두루 인정받게 되었다. 개별 사업으론 지난해 3회째 개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르 클레지오, 오르한 파묵, 모옌 등이 우리 포럼을 다녀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서울포럼에 다녀 가면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소문을 낳기도 했다. 서울국제문학포럼 은 2000년, 2005년, 2011년 3회 대회를 거치며 규모 면에서, 그리 고 다뤄진 주제의 폭과 깊이 면에서 단일 행사로는 국내 최대 규모 와 위상을 가진 국제문학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대등하게 교류하고 큰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었 으며, 세계적인 작가들이 한국 작가들과 만나고 한국 문화를 체험 함으로써 한국문학과 문화를 깊게 이해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고 자부한다.

대산문학상은 올해 수상자인 백무산 시인의 노동문학을 비롯해 다양 한 스펙트럼의 문인에게 시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해 문학상 운영, 나아가 재단 운영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기업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백무산 시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올해 이미 두 개의 문학상을 거머쥔 소 설가 정영문의 작품 역시 심사 단계에서 제외시켰을 수도 있다. 하 지만 대산문학상은 ‘가장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을 선정하 고 시상하는 작품상’이라는 명확한 심사 기준을 가지고 있다. 명확 하고 공정한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대산문학상과 재 단을 운영하는 나의 원칙이다. 이 원칙 앞에선 어떠한 배경도 누구 의 간섭도 작용할 수 없다. 20년간 이런 원칙을 지켰더니 다양한 스 펙트럼의 문인들이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문단 내외의 많은 분들이 재단의 사업에 호응을 해주고 있다.

특별한 문화관이나 문학관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이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거창한 문화관이나 문학관을 말하기 는 어렵다. 다만 문화와 문학을 창작하고 또 감상하는 활동들은 결 국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사람들은 기술력을 앞세우는 제품보다는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생명보험업 역시 마찬가지다. 고객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실제로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굳이 산업에 빗대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이 인간을 잘 이해하고 서로를 보듬어줄 때 세상 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 믿는다. 여기에 문학과 문화가 큰 역할 을 하는 것은 자명하다.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문학인들이 있나.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이나 독 서는 어떻게 하며, 그것이 재단 운영과 어떻게 연관되나.
아쉽게도 경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개인적 으로 교류하는 문인들을 꼽기는 어렵다. 다만 재단의 일로 만나 뵙 게 될 때 최대한 많이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재단의 자문위원, 심사 위원, 기획위원 분들과 대산문학상 수상자분들과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뵙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제가 문학에 상당한 식견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 데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 애호가 수준이다. 재단 이사장을 맡다 보 니 아무래도 대산문학상 수상작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올해는 정영문 작가의 ‘어떤 작위의 세계’가 대산문학상을 포 함해 문학상 3관왕을 달성했기 때문에 기회가 되는 대로 말씀도 나 누고 작품도 읽어 볼 계획이다. 대산문화재단 운영에 있어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 투명성과 공 정성이어서 내 문학적 취향이나 기호가 재단 운영에 반영되지는 않 는다. 재단의 경영책임자로서 대산문화재단의 공익성을 확립해 재 단 사업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법한 절차와 검증된 장치를 마련하고 준수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단의 활동을 보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의식하게 된다. 노벨상에 대 한 생각과 우리 문학의 수상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노벨문학상이 한국문학의 목표가 되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다 만 한국이 세계적인 문화 강국, 지식 강국이 되기 위해, 그리고 우리 문학계의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 상징적으로라도 노벨문학상 수 상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재단 역시 노벨문학상이 목표 가 아니라 목표를 향한 하나의 과정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문학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은 섣불리 언급하기에 적당 치 않은 주제인 같다. 다만 우리 문학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고, 한국문학의 저변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일원에서 놀랍게 확 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재단을 포함한 번역지원 기관 의 문학작품 해외 소개와 국제 문학교류 활동 등이 꾸준히 진행된다 면 노벨문학상 수상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산부인과 교수로 재직중 1,000여명의 아기를 받아내며 느낀 생명탄생의 감동이 교보생명과 대산문화재단을 이끌어가는 철학의 기저를 이루었다.”

서울의대 출신으로 진료 이외의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모임인 ‘경인 지회’의 멤버로 활동해 왔다. 산부인과 의사 경험이 교보생명 경영이나 문화재단 운영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나.
산부인과 의사의 삶과 경영인으로서의 삶은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 인다. 하지만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경영인의 삶을 한꺼풀 벗겨내 보면 둘 간에 근본적으로 상통하는 철학이 있다. 내가 17년간 산부 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받아낸 아기는 1,000여 명 정도가 된다. 같 은 일을 1,000번 하면 그것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감은 사라지기 마 련인데 생명 탄생의 순간만은 달랐다. 1,000명의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는 순간들은 매번 새로운 감동을 전해줬다. 그리고 이러한 감동의 경험이 제 철학의 기저를 이루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교보 생명과 대산문화재단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익 창출에만 매달리 기보단 인문학적 보편성과 사유를 바탕으로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 또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교보생명과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보생명 CEO로서 파격적인 경영 행보가 주목 받고 있다. 얼마 전 교 보생명 우수고객 대상 공연에서 정명훈 지휘자와 협연을 하고, 매년 우 수 재무설계사를 시상하는 자리에서 감동 이벤트를 펼치는 등 ‘소통 CEO‘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나의 목적은 ‘사람’이다. 교보생명을 보험을 많이 파는 회사가 아니 라 고객 보장을 가장 잘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 회사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아무리 많은 회의를 해도 이런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 중 요한 건 고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고, 고객들 또한 저와 교보생명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러기 위해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공연을 하고 이 벤트를 펼치는 걸 남들은 파격적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그것들이 고객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어떻 게 해야 고객들의 마음을 열고 진실한 내 생각을 전해줄까 하는 고 민 끝에 나온 행동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진정한 소통이 이뤄졌을 때, 교보생명은 고객들을 더욱 잘 보장할 수 있고, 고객들도 우리를 믿고 삶을 설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 못지않게 앞으로의 20년 또한 중요하다. 향후 재단 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대산문화재단의 새로운 비전은 ‘우리 문화계에서 가장 신망 받는 기 업 출연 재단’이다. 이를 위해 재단은 ‘소통’과 ‘미래’를 화두로 삼아 디지털과 청년 및 청소년을 키워드로 새로운 20년을 준비하고 있 다. 우선 문학 및 인문학 콘텐츠를 폭넓게 확보하고 이를 디지털화 해 보급할 예정이다. 아울러 창작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의 주역이 될 청년과 청소 년들이 창의성과 통찰력을 가진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육성해 나갈 것이다. 20년 전 재단이 첫발을 내디뎠을 때와 지금은 모든 상황이 크게 달라져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반복적으로 사 업을 진행하다 보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새로 운 비전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나갈 것이다.



대산문화재단이 걸어온 길

1992년
12월 - 교보생명의 출연(26억3천만원)에 의해 재단법인 대산재단 출범, 초대 이사장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취임

1993년
1월 - 대산문학상, 대산창작기금, 한국문학 번역지원, 대산청소년문학상 등 6개부문 사업 확정 및 시행
11월 - 2대 이사장 신창재 박사 취임

1997년
1월 - 재단법인 대산문화재단으로 명칭 변경

1998년
2월 - 전국 청소년 연극제 창설 공로로 제34회 동아연극상 특별상 수상

1999년
12월 - 문학교양지 〈대산문화〉 창간

2000년
9월 - 2000 제1회 서울국제문학포럼 개최

2001년
11월 - 대산문화재단의 문학지원 사업 등으로 ‘제2회 메세나대상’ 대통령상 수상(교보생명)

2005년
3월 - 교보생명 출연 기본재산 154억6천만 원 도달

2006년
8월 - 대학생동북아대장정 개최

2008년
10월 - 제1회 동아시아문학포럼 한국 개최

2010년
5월 - 신창재 이사장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

2012년
11월 - 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 겸 제20회 대산문학상 시상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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