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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로봇

부드러움 없이는 인간과 로봇의 공존도 없다

오늘날의 산업용 로봇들은 초인적 힘과 속도, 정밀성을 겸비한 채 용접, 도장, 거대한 물체의 수송 업무를 수행한다. 사람과 달리 지치는 법도 없다. 하지만 이 로봇들은 각각의 임무에 맞춰 사전 프로그래밍돼야 한다. 또한 로봇 근처에 있다가 얼굴을 맞기라도 하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

로봇들이 공장이나 창고에서 엄청난 생산성 향상 효과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일반 가정이나 일상생활 속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과 로봇이 더 가까운 공간에서 지내려면 기존의 강함을 줄이고, 부드러움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현재 이 목적의 달성을 위해 딱딱한 부품 대신 부드럽고 변형이 가능한 부품을 채용한 로봇 개발에 돌입했다.

이들 소프트 로봇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사람처럼 연약한 물체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 또한 탁월한 유연성에 힘입어 천문학적 비용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도 신용카드, 개 사료, 머그컵 등 다양한 물체의 취급이 가능해진다.

작년 11월 창간된 이 분야 최초의 전문학회지 '소프트 로보틱스'의 편집장인 미국 터프츠대학 배리 트림머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공장에선 정확성이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덜 정확한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유연한 소재의 로봇은 정확성은 떨어져도 우리 주변의 많은 물건을 다룰 수 있으니까요."

소프트 로봇은 물체의 모양에 맞춰 접촉부위의 모양을 바꿀 수 있으며, 넓은 표면적에 압력을 분산시켜 특정부위에 압력이 집중돼 물건이 부서지는 사태를 쉽게 막을 수 있다.

로봇청소기 룸바로 유명한 아이로봇은 이미 몇몇 종류의 소프트 로봇을 개발해냈다. 일례로 약칭 '에어암(AIRarm)'이라 불리는 '첨단 팽창형 로봇 팔'의 경우 로봇이 만질 수 없었던 물건들을 다루기 위해 설계됐다.

섬유 소재의 튜브 두 개가 손가락의 역할을 하는데 손가락 내부의 케이블이 팽창식 에어백 6개의 위치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부드러운 물건을 움켜잡을 수 있게 한다. 케이블이 힘줄, 에어백이 뼈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발광(發光) 지렁이
하버드대학 연구팀의 사족보행형 실리콘 로봇. 공기를 주입해 벌레처럼 기어서 이동이 가능하며 염료를 주입하여 외피의 색을 바꾸거나 빛을 발하게 할 수도 있다.

아이로봇은 시연을 위해 에어암을 군용 폭탄제거 로봇인 '팩봇(PackBot)'에 설치해 놓은 상태다. 1.35㎏의 물체를 집어들 수 있는데 서류가방과 병을 옮기는 임무에 성공했다.

현재 아이로봇은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자금을 지원받아 임무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팔을 운용할 수 있도록 에어암의 모듈화에 돌입했으며, 고강도 케블라 섬유로 외피를 제작해 내구성을 극대화할 예정이다.



팩봇이라는 딱딱한 플랫폼에 장착하는 에어암과 달리 아예 모든 부분이 소프트한 로봇의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하버드대학 화학자인 조지 M. 화이트사이드 박사팀이 연구 중인 실리콘 로봇이 그 실례다. 여러 버전이 개발돼 있는데 불가사리를 닮은 로봇은 계란과 살아있는 쥐를 잡는 데 성공했고, 촉수형 로봇은 꽃을 쥐었다. 또한 4족 보행형 로봇은 장애물 밑으로 기어갈 수 있으며, 본체 내부로 염료를 주입하면 색을 바꾸기도 한다.

화이트사이드 박사는 소프트 로봇이 처음 적용될 분야로 보조의학 및 재활의학계를 꼽는다.

"로봇이 인간과 부드럽게 접촉해야하는 곳에서 소프트 로봇의 진가가 발휘될 겁니다. 소프트 로봇이라면 외과 수술실에서 장기를 집어 들어 의사에게 건네주는 것도 가능하죠."

이외에도 소프트 로봇은 복잡하고 예측이 어려운 지형에서 수색·구조 임무에 투입할 수 있다.

"로봇이 유기체에 가까워질수록 일상생활에서 로봇의 쓰임새가 많아집니다."

하버드대학 연구팀의 불가사리 실리콘 로봇은 살아있는 쥐를 잡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다이캐스팅(die casting) 정밀한 금형에 금속 용융물을 주입한 뒤 압력을 가해서 물건을 주조하는 기법.







[VISUAL DATA] 달의 중력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이 공개한 달의 중력지도. 달의 중력은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NASA의 쌍둥이 달 탐사위성 '그레일(GRAIL)'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이러한 중력 차이는 지각의 두께 및 밀도 차이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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