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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오일 붐

The Next Oil Boom

엑손 모빌 Exxon Mobile과 셰브런 Chevron 같은 에너지 대기업들이 새로운 유전 개발을 위해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 Kurdistan 지역으로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의 존재는 (쿠르디스탄과) 이라크 정부와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치명적인 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by Vivienne Walt
Photograph by IVDR PRICKETT

반(半)자치구역 쿠르디스탄을 가로지르는 북부 고속도로를 탄 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알 쿠쉬 Al-Kush라는 산악 마을로 이어진다. 3월의 어느 쌀쌀한 오후, 며칠 만에 연료를 공급받은 지역 주유소 밖으로 엄청난 교통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연료탱크를 채우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길어질수록 운전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때문에 경찰은 폭력사태를 대비해 검문소를 설치했다. 한 경찰관은 아랍어로 “어디로 가는가?”라고 날카롭게 물었다. 필자의 쿠르드족 통역사와 운전수는 아랍어를 몰랐다. 나는 “여기가 쿠르디스탄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고개를 틀어 자신 뒤 편의 이라크 국기를 가리키며 “아니다, 여기는 이라크다. 저기를 봐라”라고 말했다. 검정색, 흰색, 빨간색이 어우러진 이라크 국기는 거센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쿠르디스탄으로 향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오일 붐이 일고 있는 지역이다. 엑손 모빌의 탐사구역이 위치한 이 지역은 뜨거운 분쟁의 중심지다(유전뿐만 아니라 가스관도 잠재적 갈등 요소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역주: 2003년 이라크 공습에 나선 미국의 군사전략 명칭 작전으로 바그다드에 포탄이 투하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이 전복된 지 10년이 지났다. 길었던 이라크전쟁도 마침내 막을 내렸고, 미군도 모두 철수했다. 하지만 지상에서는 석유자원을 둘러싼 새로운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군사력이 아니라 기업의 힘을 활용하고 있다. 엑손(2위), 셰브런(3위) 같은 포춘 500대 기업은 ‘육상 전투병력’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전쟁과 마찬가지로, 오일을 둘러싼 전쟁도 이라크의 모습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8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불안한 균형의 추가 기운다면, 이라크가 분단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내전 발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3년 3월 이라크에 상륙한 미군이 본 이라크는 수십 년간의 무역제재 조치와 내전으로 황폐해진 국가였다. 균열이 생긴 석유 시설물에서는 하루에 100만 배럴(1980년대 후반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을 고려했을 때 아주 소량에 지나지 않는다)의 석유가 새어 나가고 있었다. 의사와 대학 교수들의 한 달 수입은 50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이라크 경제는 파탄 난 상태였다(이라크는 확인 매장량(proven oilreserve)이 1,431억 배럴에 달하는 세계 5위의 석유 보유국이며, 미개발 지하 매장량(recoverable reserve)도 1,970억 배럴로 추정된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킨 날 바그다드에 도착한 미군은 마치 과거로 회귀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휴대폰도 볼 수 없었다.

그 이후 10년이 지났고,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작년 이라크의 일일 석유 생산량은 300만 배럴을 기록했다. 이는 수십 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었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이 2035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가는 수준(일일 830만 배럴)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몇 년 안에 이라크는 세계 석유 공급량 증가에 가장 큰 기여를 할 것이기 때문에 글로벌 교역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라크의 석유자원에 대한 산정이 너무 보수적이었음이 드러날 수도 있다. 최근 3곳의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새로운 유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곳은 5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쿠르디스탄이라는 반자치구역이다. 이곳은 터키, 시리아, 이란 사이에 위치한 구릉이 많은 농경지역이다. 2006년부터 주요 석유회사들은 그곳에서 유전 발견 소식을 전해왔다. 이 유전들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쿠르디스탄의 담당 공무원들은 현재 이곳의 석유매장량을 약 450억 배럴, 천연가스 매장량을 약 10조 세제곱피트로 추산하고 있다. (매장량에 대한) 수치는 과장됐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유전이 쿠르디스탄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매우 드문 일이라 할 수 있다. 런던 HSBC의 석유전문 애널리스트 피터 히친스 Peter Hitchens는 “석유업계가 자원 기반을 대체하려 하는 시점에 이 기업들은 이곳에 들어와 대형 유전을 발견하려 애쓰고 있다. 쿠르디스탄은 거의 탐사되지 않은 보고(寶庫)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의 석유 매장 가능성은 헤스 Hess, 마라톤 Marathon, 로스 페로 주니어 Ross Perot Jr.의 HKN에너지, 가즈프롬 네프트, 토털, 그리고 기타 터키 석유회사까지 50개 이상의 기업들을 안달나게 했다. 결국 이 기업들은 쿠르디스탄 지역 정부(Krudistan Regional Government·이하 KRG)와 채굴계약을 체결했다. KRG는 바그다드 중앙정부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분배 조건을 제안했다. KRG는 쿠르드어를 사용하는 아르빌 Erbil이라는 수도에 자체 대통령, 총리, 의회를 갖고 있음에도 이라크에 소속되어 있다.

경험 많은 석유 전문가들에게 이곳은 100년 전 텍사스로 탐사를 떠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일일 생산량은 17만 배럴로 보통 수준이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생산량이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라 전망한다. 쿠르디스탄은 2016년까지 일일 생산량을 100만 배럴, 2020년까지 200만 배럴까지 증가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은퇴한 셰브런의 석유 엔지니어 데이비드 케네디 David Kennedy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과정이 더 간단한) 내륙 채굴이 막혀 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작년부터 런던에 본사를 둔 독립 석유회사 아프렌 Afren의 쿠르디스탄 현지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사무실 밖의 건설 크레인을 바라보며 “1년 전만 해도 직원 2명에 사무실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35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곳은 아마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내륙 석유탐사 지역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장밋빛 전망에도, 쿠르디스탄에 투자하는 서구기업들은 바그다드 정부와의 긴장 고조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KRG와의 계약은 이라크 중앙정부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중앙정부는 이런 계약들이 이라크 석유관리 당국을 무시한 채 체결됐기 때문에 이라크 헌법에 위배된다고 간주한다. 그 헌법이라는 것이 사실 모호하지만, 진짜 문제는 법이 아닌 정치다.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족이 새롭게 얻게 된 부에 대해 깊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쿠르드 자치정부가 이라크 중앙 정부와 독립된 통상관계(특히 북쪽의 경제강국 터키와)를 구축하며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행동을 개시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쿠르디스탄은 자국에서 생산된 원유를 터키에 운송하기 시작했다. 더욱 최근에는 비밀리에 터키와 독립 송유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도발은 중앙정부 관리들을 분노케 했다(주목할 만한 점은 잘랄 탈라바니 Jalal Talabani 이라크 대통령은 예외라는 것이다. 그는 쿠르드족 출신이며, 작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치료를 위해 독일에 머물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쿠르디스탄에서 채굴을 하는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쿠르디스탄 외의 지역에서 채굴을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KRG는 작년 12월 중앙정부 송유관을 통한 석유·가스 수출을 중단했다. 2013년 예산편성을 둘러싼 몇달간의 논쟁 끝에 바그다드 의회는 지난 3월 쿠르디스탄-세입의 상당 부분을 정부예산에 의지한다-에 6억4,400만 달러만을 책정하기로 의결했다. 그들이 요구했던 금액의 20%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필자가 예산안 투표 며칠 전 쿠르디스탄 외교부 장관 팔라 무스타파 바키르 Falah Mustafa Bakir를 만났을 때, 그는 15분 동안 신랄하게 이라크 정부를 비난했다. 그는 격양된 목소리로 “바그다드에서 우리 지역을 통제하던, 즉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던 시기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어떠한 압력에도 KRG가 석유 산업을 이라크 당국의 관리에 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맹세했다. 또 “석유기업들은 KRG가 그들에게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에게 왔다. 우리 또한 그들을 환영했다”고 덧붙였다.

엑손 모빌의 등장은 팽팽하던 긴장을 전쟁 직전까지 고조시켰다. 2011년 10월 엑손은 KRG와 은밀히 6개의 유전탐사 계약을 체결했다. 그중 2개의 탐사지역은 KRG와 이라크 정부 사이에서 수십 년간 소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곳이었다. 엑손과의 계약은 이라크 정부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이라크 정부는 엑손에 2012년 말까지 계약을 포기하거나, 이라크 남부의 초대형 유전 웨스트 쿠르나 1(West Qurna 1)의 지분을 매각하라고 요구했다(엑손은 웨스트 쿠르나 1에서 매일 49만 5,000 배럴의 석유를 생산한다). 계약을 쉽사리 포기하기에는 쿠르디스탄의 전망이 너무 밝았다. 또 이라크 정부가 관계를 끊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하에 엑손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 국토안보 자문가 제임스 존스 James Jones 장군은 “엑손은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랜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존스는 현재 쿠르디스탄을 미국기업에 홍보하는 미국-쿠르디스탄 비즈니스 자문단 UK-Kurdistan Business Council을 이끌고 있다. 존스는 엑손 모빌의 CEO 렉스 틸러슨 Rex Tillerson과 ‘수차례’ 쿠르디스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엑손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라크 정부가 엑손과 쿠르디스탄의 계약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쿠르드 정부의 신생 석유산업을 승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대통령의 아들이자 쿠르디스탄 총리의 최측근 쿠바드 탈라바니 Qubad Talabani는 “엑손이 남부 유전을 포기할 위험을 감수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천 명의 변호사를 둔 엑손은 법에 위배되는 일을 결코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후 토털과 가즈프롬 네프트도 KRG와 계약을 했다. 반면 셰브런은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스 Reliance Industries로부터 두 개의 기존 채굴권을 획득했다(엑손은 토털, 셰브런과 마찬가지로 필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고,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엑손은 아르빌에 위치한 화려한 디반 호텔 Divan Hotel 두 층을 직원들의 임시거처로 삼았다. 동시에 더욱 영구적인 유전을 찾아 도시를 탐색하며 갈등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작년 11월 이라크와 쿠르디스탄과의 갈등이 폭발한 사건이 없었더라면, 엑손의 계산대로 일이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11월 키르쿠크 Kirkuk에서 이라크 경찰과 KRG 군대와의 마찰이 있었다. 페시메르가 peshmerga라고 불리는 이 충돌 사태로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풍부한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키르쿠크는 이라크에서 가장 분쟁 강도가 높은 지역으로, 카라 한지르 Qara Hanjeer 내 엑손의 새로운 채굴 지역에서 불과 몇 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사건이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이라크 정부는 카라 한지르 내 분쟁지역에서 채굴 작업을 할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라크 국회의원 사미 알 아스카리 Sami al-Askari는 당시 “엑손이 이 지역에 손을 댄다면, 이라크 군대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석유자원과 이라크의 주권을 위해서는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측 모두 이 지역에 수천 명의 군대를 배치했다.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해 엑손의 CEO 틸러슨은 1월 바그다드로 날아가 이라크 총리 누리 알 말리키 Nouri al-Maliki를 만났다. 그리고 다음날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Davos World Economic Forum)에서 쿠르디스탄 대통령 마수드 바르자니 Massoud Barzani와 회담을 가졌다.

필자는 몇 주 후 키르쿠크로 향했다. 그 지역은 여전히 긴장감이 맴돌았다. 도시에 가까워질 때 한 쿠르드인 일행은 이라크가 쿠르디스탄의 채굴을 저지한다면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호상 이쉬마일 Hoshang Ishmail로, 아랍에미리트 석유회사 크레센트 페트롤리엄 Crescent Petroleum의 커뮤니티 개발 담당자(community development manager)다. 이쉬마일은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지금의 교착 상태가 아니면 우리는 이라크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담 정권 시절 아르빌에서 자랐다.

이런 전쟁에 대한 전망이 쿠르디스탄의 밝은 가능성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르빌에서는 전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긴 활주로를 자랑하는 아르빌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이라크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터미널 내부는 모던한 느낌을 흠씬 풍기는 유리와 메탈 소재로 디자인됐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던 2006년 당시 아르빌 공항은 1970년 대부터 공군 기지로 사용되던 구역을 개조한 초라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신공항은 2010년 문을 열었다. 5억 5,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건설됐고, 두바이의 드나타 그룹 Dnata Corp과 한국 인천 공항 *역주: 원문에는 싱가포르의 인천 공항(Singapore’s Incheon Airport)이라고 되어 있지만, 잘못 되었기에 바로 잡는다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쿠르디스탄은 방문객들에게 ‘여기는 바그다드가 아니다’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최근 미연방 항공청은 16년 만에 미 항공기의 이라크 취항 금지조치를 해제했다. 이라크 내에서는 쿠르디스탄에만 이 조치가 적용된다). 한 출입국 관리관은 내 미국 여권을 보고는 그냥 지나가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비자가 필요하고, 비자 발급에도 몇 주가 걸리는 바그다드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쿠르디스탄이 아닌 이라크 지역은 차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바그다드에서 수속 시간을 재봤던 이들에게는 이 대조적인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파티 주최자는 파티에 가는 길에 택시 기사가 길을 잃었다면, 한밤중이라도 차에서 내려 걸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3월 한 달 동안에만 폭탄 공격으로 271명이 사망한 이라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큰 키의 숀 이맘조메 Shawn Emamjomeh는 이란 출신의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 주민이다. 그는 맨해튼에 본사를 둔 부동산 개발업체 클레어몬트 그룹 Claremont Group의 쿠르디스탄 매니저로 2011년 처음 이곳에 왔다.

그는 “미국에서 이곳으로 곧장 왔기 때문에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뉴저지의 일부 지역보다 오히려 여기가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안전함은 바로 KRG가 가장 강조하는 셀링 포인트 selling point다. KRG는 ‘또 다른 이라크’라는 슬로건 아래 아르빌은 위험하고 정전이 빈번한 바그다드를 대신하는 새로운 이라크 사업기지라고 홍보하고 있다. 2003년 미국이 전력발전소를 폭파시킨 이후 바그다드 주민들은 간신히 하루 6시간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 반면, 여기서는 하루 18시간 동안 전기가 흐르고 가용시간도 점점 더 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증가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분주하다.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KRG의 GDP 성장 목표는 연 8%다. 2004년 세워진 연립주택 단지 잉글리시 빌리지 English Village는 베이커 휴즈 Baker Huges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PricewaterhouseCoopers 같은 해외 기업들에게 빠르게 판매됐다. 이 기업들은 당시 한 채당 12만 5,000달러에 매입해 현재 75만 달러에 되팔고 있다. 6배의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부동산은 5성급 호텔 로타나스 Rotana다. 하룻밤 400달러에 달하는 비싼 숙박료에도 안정적인 예약률을 자랑한다. 입지도 쿠르디스탄 석유산업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밤이 되면 로타나스의 소파와 커피 테이블은 휴스턴이나 아랍에미리트 혹은 다른 국가에서 온 석유 전문가와 투자자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진과 토닉을 음미하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근처에 메리어트 호텔이 신축될 예정이고, 클레몬트는 내년 개장을 목표로 힐튼 더블트리를 건설 중이다. 클레몬트는 또한 640채의 연립주택 중 500채와 아르빌 교외에 건설 중인 10채의 아파트 타워를 판매했다. 이곳은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헬스클럽과 쇼핑몰, 두 개의 학교를 갖추고 있다. 대형 광고판에 쓰인 ‘현대식 아르빌을 위한 미국식 오아시스(AN AMERICAN OASIS FOR A MODERN ERBIL)’라는 문구가 이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서구에 우호적인 아르빌의 분위기 때문에 이곳에선 여전히 위험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쿠르디스탄 밖의 이라크에서 만연한) ‘부정부패’, ‘정실주의’, ‘억압’과 같은 점들을 지적한다. 이런 단점들이 유전개발로 생긴 새로운 부와 만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2월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는 2012년 쿠르디스탄 치안부대가 최소 50명에 달하는 기자와 사회운동가를 체포한 경위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일부 공직자들의 공공자금 횡령에 대한 조사결과도 포함됐다. 이 단체는 작년 11월 조사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아르빌에서 KRG 대표단을 만났다. 당시 고위 공무원 한 명은 “어떠한 부정부패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 내용에 당황한 KRG 측은 ‘적절히 처리하지 못한 개별 상황들이 있었다. 아직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잘못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험부족만이 문제는 아니다. KRG 지도층은 극도로 배타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쿠르디스탄은 거의 바르자니 Barzani와 탈라바니 Talabani 두 일가의 지배를 받았다. 각 일가는 자체적으로 정당과 군대를 보유하고 있고, 1990년대 유혈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잘랄 탈라바니는 이라크의 대통령이다. 반면 쿠르디스탄 총리네차르반 바르자니 Nechirvan Barzani(독립투사 영웅 무스타파 바르자니 Mustafa Barzani의 아들이다)는 쿠르디스탄 대통령 마수드 바르자니의 조카이다. 아르빌에 거주하는 한 서구인은 익명을 요구하며 “쿠르디스탄은 여전히 6명이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수의 지역 주민들이 오일 붐의 혜택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로크만 알리 Loqman Ali는 쳄체말 Chemchemal- 엑손의 카라 한지르 채굴 현장에서 멀지 않다-의 전기공급소 밖에 서서 “외국 석유 기업들의 유입이 가난한 이들에게 혜택이 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부유층의 배만 부르게 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쿠르디스탄에서의 마지막 날, 필자는 오랜 친구 타히르 에지르 오마르 Tahir Ezeer Omar를 만나기 위해 3시간 동안 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그는 터키 국경과 가까이 있는 타우케 Tawke라는 작은 산악 마을의 지도자다. 2006년 그의 거실에 앉아 광활하게 펼쳐진 터키의 눈 덮인 산맥을 바라 보고 있을 당시, 노르웨이 석유 기업 DNO가 오마르의 지역에서 시추를 개시했다. DNO의 대규모 조사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이 지역의 석유 매장량이 7억 7,100만 배럴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사 결과는 서구 석유기업들의 쿠르디스탄 진출 바람에 불을 지폈다. 그 결과 타우케의 30가구는 수도 서비스, 학교 아이들은 책상, (오마르의 아들을 포함한) 일부 주민들은 고수익 일자리를 얻게 됐다. 오마르는 책상다리를 하고 양탄자에 앉아 신선한 양치즈와 납작한 빵으로 아침을 즐기며 “우리는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점을 항상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매장량이 많은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포함한 많은 쿠르드인들은 오일붐으로 인해 발생할 격변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우리의 삶을 향상 시켜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소와 양, 밀과 아몬드가 있다.”

석유가 크루드의 역사를 완전히 다시 쓰게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이 지역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라크 정부가 KRG를 통제하면 할수록, 쿠르디스탄은 오랜 앙숙이었던 터키-7,300만 명의 국민은 더욱 많은 석유와 가스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와의 관계를 더욱 단단히 다져가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정부와 마찬가지로) 쿠르디스탄이 이라크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고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지난 몇 달간 더욱 돈독해진 둘의 관계를 가로막으려고 노력해왔다.

타우케로 향하는 길에서 미국의 그런 노력은 아무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긴 파이프가 수많은 시추 현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근로자들이 이 네트워크를 설치해 쿠르디스탄의 석유와 가스를 바그다드 정부의 인가 없이 수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KRG와 이라크 정부가 서로 통치권을 주장하는 지역에서는 통치권이 KRG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알 쿠쉬의 예수교 수녀들은 최근 아무런 설명 없이 전기요금 청구인이 이라크 정부에서 KRG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 수녀는 “지금 여기는 쿠르디스탄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4월 ‘이라크 오일 리포트 Iraq Oil Report’라는 소식지는 터키가 석유 지불 에스크로 계정을 이라크와 쿠르디스탄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석유를 관리하는 연방정부’를 원하는 미국의 정책과는 완전히 상치된다. 하지만 최근 미국은 이라크에서 원하는 바를 얻기가 점점 더 힘들어 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석유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쿠르디스탄은 마침내 독립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해줄 수단을 얻게 됐다. 문제는 피를 흘리지 않고도 석유를 흐를 수 있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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