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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병원에 주인의식 심었다" 설명간호사·국제진료소·U-헬스케어 등 의료 서비스 선도

[INTERVIEW] 정남식 세브란스병원장

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 설립된 뒤 128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 최고를 지향하는 세브란스병원의 서비스 전략과 의료 서비스 현안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정남식 세브란스병원장을 만났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우리가 정말 잘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정남식 세브란스 병원장은 세브란스병원이 2007년에 국내 최초로 JCI인증을 신청해 받은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JCI라는 국제적인 의료 서비스 인증을 통해 환자들의 안전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고 싶었던 것이다.

“관행적으로 해 오던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됐어요. 예를 들어 과거엔 환자가 요청하면 간호사가 수면제를 투여했지만 지금은 담당주치의 처방 아래 의료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관행적인 의료행위부터 보완하고 수정했습니다. 지금은 한 달 주기로 36개 팀이 의료 서비스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세브란스병원은 2007년 이후로 지금까지 JCI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정 원장은 JCI인증을 통해 얻은 뜻 밖의 수확을 자랑했다. “JCI 인증을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객 만족도 역시 높아졌습니다. NCSI(국가고객 만족도)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하위권이었는데 말이죠.” 한국생산성본부 발표에 따르면 세브란스병원은 삼성병원과, 아산병원을 제치고 2년째 NCSI 1위를 달리고 있다.

정 원장은 이어 “다음으로는 우리 병원을 찾는 외국 환자들을 위한 고민이었죠. 국제적인 인증을 통한 표준 의료 서비스 제공을 통해 신뢰를 쌓아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외국 환자 치료를 위한 국제 진료소가 마련돼 있다. 1961년 개설한 외국인 환자 클리닉이 국제 진료소의 시초이다. 병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진료소를 다녀간 외국인 환자는 4만 4,000명이었고 올해는 5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가 15만 5,672명(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발표)인 점을 감안하면 3분의 1정도가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셈이다. 정 원장은 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외국인 전용 프로그램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고 내국인 환자와 동일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입니다. 그것이 우리 세브란스를 계속 찾게 만드는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본관에 들어서면 빨간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설명 간호사와 안내 서비스 인력들이다. ‘설명 잘하는 병원’이라는 세브란스병원의 캠페인에 따른 것이다. 여느 병원에서는 찾아 보기 어려운 서비스이다.

정 원장은 “환자들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죠.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궁금한 점이 참 많습니다. 의사들이 상세한 설명을 한다고 하지만 시간적으로 제약이 많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전문 지식을 갖춘 설명 간호사를 배치했습니다. 복잡한 병원에 들어서서 진료받고 병원을 나설 때까지 빨간 재킷을 입은 설명 간호사와 안내 요원, 자원봉사자 분들만 찾으면 되도록 했습니다. 2007년부터 시행했는데 계속 인력과 서비스를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환자 혼자서 병원을 방문하더라도 빨간 재킷을 찾으면 진료받고 돌아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함으로써 환자들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서비스 산업 육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비스 산업은 고용효과가 크고 IT 등 다른 산업과 융합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 창조경제의 좋은 방안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IT기술과 의료 기술을 융합한 U-헬스케어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미 U-헬스케어 프로그램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0년 미국에 원격진료 시스템을 시범 운영한 사례가 있다. 정 원장은 “최근 WHO의 펀딩을 받아 몽골과 러시아에서 원격 화상 진료시스템을 시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강남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U-헬스케어 프로그램을 통한 해외환자 진료 상담 500회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시범 사업의 일환이다.

의료법상 의사와 환자는 대면 진료만 가능하고 의사와 의사 간의 원격 진료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원격진료 허용을 위한 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자 대한의사협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원격진료 시 발생할 수 있는 오진에 대한 책임 및 원격진료 장비에 대한 기준 마련이 요원하고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으로 동네병원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원장은 인터뷰 내내 대형병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보다는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를 우선으로 두고 판단하길 바랐다.“언제든 시행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나 거부감 때문이라면 지방병원이나 개인병원 또는 의료 사각지대에서 우선 시행하는 게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우수한 IT기술력과 환자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은 JCI인증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를 국제적 수준으로 한층 끌어 올렸을 뿐 아니라 로봇 수술 1만 회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의료기관이다. 작년엔 미 의료관광협회로부터 세계최고의 국제병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위상을 가진 세브란스병원을 이끄는 병원장은 최근 의료 서비스 산업 육성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정남식 병원장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먼저 최근 병원협회장이 정부에 건의한 ‘지역 의료서비스 중심 거점 병원 육성’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경쟁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잘할 수 없으니 특화된 지역 거점 병원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선 인력뿐 아니라 계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의료 서비스는 가격이 아닌 시설, 서비스 품질을 놓고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실력 있는 의료진의 지방 근무 기피에 대한 우려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지방 근무 환경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의 진료종목을 특화한다면 지역 의료서비스 발전과 함께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과거부터 계속 지적되는 문제다. 지방병원, 개인병원이 어려움을 겪는 원인을 대형병원 때문이라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 대형병원에서 시행 중인 선택진료제가 대표적이다. 환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대형병원의 수익 창구역할을 한다는 비판론과 오히려 환자 쏠림을 방지하고 있다는 옹호론이 맞서며 선택진료제 폐지를 놓고 요즘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정남식 원장은 “선택진료제가 병원의 수익을 어느 정도 보전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이것을 병원의 수익성에 국한해서 말할 사안은 아닌 것 같아요. 우선 누가 치료하든 가격이 동일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의료계 현안인 만큼 정 원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의사의 경륜은 곧 서비스 품질입니다. 선택진료제를 통해 의사 개인이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누리는 것입니다. 20년 차 전문의와 레지던트의 진료를 같은 가격으로 책정하는 것이 옳은지 따져봐야 합니다.” 정 원장은 선택진료제 폐지 논의가 대형병원의 수익성 보전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또 “의료진 선택은 환자의 권리입니다. 환자에 대한 서비스의 측면에서 따져봐야죠. 병원의 영리 차원에서 보는 것은 곤란합니다. 선택진료제는 서비스 경쟁력을 위한 것입니다. 경쟁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의 의료산업은 뒤떨어져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 원장의 말을 정리해 보면 선택진료제는 의사의 경력과 함께 의료 서비스 품질을 환자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의료 서비스 경쟁력을 위한 하나의 방안이므로 병원의 수익 사업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정 원장이 말한 서비스 경쟁력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과 맞닿아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을 위해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만 병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반인이나 영리법인의 병원 설립과 투자가 가능토록 하는 것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의 취지다. 국민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폐지 논의와 ‘의료 민영화’의 핵심 사안으로 의료 서비스 산업 육성방안 중 최대 현안이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국민들의 동의가 우선이겠죠. 의료보험 제도가 망가질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사회가 다양해지는 만큼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줄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국내외 환자들의 요구에 따라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위해선 획기적인 의료기술과 장비를 도입해야 합니다. 재원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지금 실정에서는 불가능해요. 외국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실력 있는 국제병원 건립도 필요합니다. 다양화, 차별화 측면에서도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세계 의료관광산업은 1,000억 달러에 육박하지만 그중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은 1%에 못 미친다. 외국인 환자가 국내를 찾는 비중이 그만큼 낮은 것이다. 높은 의료 수준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치다. 하지만 긍정적인 수치도 있다. 2011년부터 적은 금액이지만 우리나라 의료 관광이 흑자로 돌아섰다. 나가는 환자보다 들어오는 환자가 많으니 이는 의료 수준을 인정 받았다고 분석할 수 있다. “한국의 질 좋은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찾고 있습니다.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라고 정 원장은 말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환자들을 위한 인프라 확충이 필요한 이유이고 그 대안 중 하나가 투자 개방형 의료법인이나 국제병원 신설이라는 주장이다.

송도 국제도시에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국제병원을 건립해 외국인 환자 유치 등 의료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던 인천시는 최근 비영리 국제병원 건립 추진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2010년 이미 인천시와 비영리 국제병원 협약식을 맺고 부지까지 마련해 놨지만 여러 현안에 막혀 고심하던 세브란스병원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정 원장은 말한다. “우리나라 의료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서도요. 우리나라보다 의료수준이 낮은 태국은 160만 명, 인도는 70만 명 이상의 외국 환자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투자 개방형 의료법인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죠.”

마지막으로 정부의 간호인력 개편안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현재는 간호대를 졸업해 국가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간호사는 의료 인력이지만 사설 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자격시험을 치른 간호조무사는 의료 인력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정부는 ‘실무 간호인력’인 간호조무사가 경력이나 국가 시험을 통해 간호사가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며 간호사를 경력과 실력에 따라 3등급제로 편성해 2018년부터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 원장은 “간호 업무는 굉장히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간호조무사와 간호사의 업무 영역은 다릅니다. 간호조무사가 경력을 가졌다고 해서 간호사의 업무를 대체하는 것은 무리입니다”라고 말하며 대신 간호 인력 수급의 대체 방안을 제시했다. “간호사 면허를 가지고 있는 유휴인력이 20만 명 정도입니다. 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죠. 이들이 왜 그만두는지 헤아리고 교육과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다면 간호 인력 수급은 문제 없을 거라 판단합니다.”

현안마다 정 원장은 안경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신중하게 대답했다. 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신촌 세브란스 새 병원 개원을 시작으로 내년 5월 암병원 준공을 통해 신촌에서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용인동백 지구에 추진 중인 세브란스병원과 송도 세브란스 국제병원 추진 등 대형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128년 동안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한 요인을 묻는 질문에 정남식 병원장은 이렇게 요약했다. “세계에서 주인 없이 이토록 성장한 병원은 없습니다. 주인이 없는 대신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정남식 병원장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인터뷰 당일은 정남식 세브란스병원장의 취임 1주년이었다.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ㆍ미국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는 세계보건기구 WHO가 환자의 안전을 위해 협약을 맺은 미국의 비영리 의료기관 평가기구이다. 인증을 위해선 1,200개가 넘는 평가 항목에서 평균 90점 이상을 받아야 하며 평가주기는 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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