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과 구글, 알리바바와 텐센트, 그리고 카카오. 이들은 저마다 가진 콘텐츠의 강점을 기반으로 성장한 대표적 IT 기업들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검색포털, 모바일 콘텐츠와 이를 기반으로 한 하드웨어 제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중 최근 주요 IT기업들이 앞다퉈 눈독 들이는 시장이 있다. 바로 금융시장이다. IT기업의 금융권 진출은 SNS와 모바일의 활성화가 이끈 새로운 퍼포먼스다. IT기업의 금융시장 진출에 기존 금융권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IT기업의 금융권 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IT업계의 금융업 진출 움직임은 글로벌시장에서 먼저 포착된다. 거대자본과 수십억의 사용자를 보유한 글로벌 IT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기존 금융권의 영역이었던 온·오프라인 결제 서비스와 카드 발급, 대출 서비스에 진출하고 있다. 가장 먼저 금융업계 진출을 선언한 글로벌 IT기업은 중국에 기반을 둔 e커머스 전문업체 ‘알리바바’다.
알리바바는 지난 2003년 온라인 결제 시스템 ‘즈푸바오’를 선보였다. 즈푸바오는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와 ‘톈마오’ 등의 온라인 결제시스템이다. 현재 일부 도시에서 신용카드, 전기, 가스, 수도 요금의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즈푸바오가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히 전자결제 시스템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즈푸바오는 ‘알리바바’라는 e커머스 업체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즈푸바오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이베이 eBay의 전자결제시스템 ‘페이팔 Paypal’을 벤치마킹한 서비스다. 이베이는 1998년 선보인 페이팔 서비스를 통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한 바 있다.
이베이를 모티브로 탄생한 알리바바는 당시만 해도 ‘이베이의 아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즈푸바오 출시 이후, 알리바바는 불과 4년여 만에 가입자 1억 명을 추가 확보하며 전자상거래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바로 알리바바의 기업가치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 상장을 준비 중인 알리바바의 현재 기업 가치는 무려 1,680 달러(한화 약 172조 4,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도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은 즈푸바오 출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 후 즈푸바오의 파급력을 확인한 글로벌 IT기업들이 저마다 금융업 진출을 시도해왔다. 모바일과 SNS서비스가 보편화된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업체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검색 포털을 기반으로 한 구글은 지난 2011년 스마트폰과 근거리 무선통신(NFC)을 활용하는 전자지갑 서비스 ‘구글월렛(Google Wallet)’을 앞세워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는 구글월렛에 e메일 주소만으로 모바일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를 추가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금융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송금 및 펀드 투자 분야에 대한 서비스 확장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미 영국에서 전자화폐(e-머니) 발행 권한을 받는 등 준비에 한창이다.
12억 명의 글로벌 가입자를 보유한 SNS 플랫폼 페이스북도 최근 금융업 진출을 선언하고 물밑작업에 나서고 있다. 사실 페이스북은 오래전부터 전자 결제 시장 공략을 시도해 왔다. 앱 안의 결제를 위한 가상 화폐 프로그램 ‘페이스북 크레딧 Facebook Credits’, 사용자 간 선물 서비스 ‘페이스북 기프트 Facebook Gifts’를 선보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 시도는 과거와는 다른 모양새다. 단순 페이스북 내 결제서비스를 넘어 공식 전자화폐를 활용한 전방위적인 금융 서비스 진출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페이스북은 아일랜드 중앙은행에 모바일 결제 및 금융업 승인을 요청했다. 승인 결정이 난다면 페이스북은 유럽연합(EU)에 가입된 대부분 국가에25서 예금 유치와 지급, 송금은 물론 전자화폐까지 발행할 수 있다. 주요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이 은행은 조만간 페이스북의 요청을 승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페이스북은 영국 런던 소재 국제 송금 서비스 ‘아지모’, ‘트랜스퍼와이즈’ 등과 금융 서비스 관련 파트너십 체결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조던 매키 양키그룹 애널리스트는 “페이스북이 전자화폐에 관심을 갖는 건 구글과 아마존이 결제 시장에 나선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전통적인 금융 서비스들은 앞으로도 외부 기업의 도전에 꾸준히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네이버도 금융서비스 도전
지난 2월,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4)에 참석한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는 기조연설 중 카카오의 새로운 먹거리로 ‘금융’을 내세웠다. 이 대표는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주고받는 콘텐츠의 다양화로 이어졌다”며 “국내 은행권 및 금융결제원과 협력해 모바일 이-머니 e-money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밝힌 카카오의 금융서비스는 이후 곧 실체를 드러냈다. 바로 ‘뱅크월렛 카카오’다. 뱅크월렛 카카오는 카카오톡 계정에 선불충전 방식인 뱅크월렛을 결합한 형태의 금융서비스다. 월 한도 50만 원까지 충전이 가능하고 하루 최대 10만 원까지 송금할 수 있다. 이미 신한, 우리, 국민 등 국내 주요 은행 15곳이 뱅크월렛 카카오와의 제휴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톡과 금융의 만남은 상상 이상의 파급력을 발휘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방대한 가입자 풀이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은 국내 3,5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한 1등 모바일 메신저다.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카카오 선물하기’ 등의 모바일 커머스 콘텐츠에 자체 결제 서비스가 더해질 경우, 확실한 먹거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모바일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활용도 역시 높을 것으로 보인다. 소액 금융 업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결제가 가능해 질 경우, 매출 확대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거대 인터넷 포털기업 네이버는 이미 자사 포털과 모바일 콘텐츠를 기반으로 금융업 도전을 진행 중이다. 네이버는 지난 2009년 기존 검색 광고 비즈니스에 온라인 쇼핑을 결합한 ‘네이버 체크아웃’을 선보이며 결제 시장에 진출했다. 소비자들은 네이버 체크아웃 서비스를 통해 네이버 가맹 쇼핑몰에서 네이버 계정으로 편리하게 구매 및 결제를 할 수 있다.
네이버 체크아웃은 지난해 8월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IT업체의 금융권 진출에서 가장 큰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지난해 9월에는 간편결제 서비스도 선보이며 국내 온라인 결제시장 선점에 나선 상태다.
IT업계 금융권 진출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이처럼 IT 기업의 금융시장 도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IT업계의 금융권 진출을 바라보는 시선은 국내와 해외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해외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IT기업의 금융권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일찌감치 자금시장 활성화와 금융 선진화를 위해 금융업 진출 문턱을 낮췄다. 일본의 경우 금융업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다. 법률상 우리나라보다 금융업 진출이 수월할 수밖에 없다. 유럽은 EU 가입국 중 한 곳에서만 금융업 승인이 떨어지면 EU 가입국 전체에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아일랜드 중앙은행에 금융업 승인을 신청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반면 국내시장의 상황은 다르다. 국내의 경우, 글로벌 시장과 달리 제약이 많다. 현재 정부에서 규정하는 금융서비스는 크게 ‘금융업’과 ‘결제업’으로 나뉜다. 현재 국내 IT업체들이 운영하고 있는 금융서비스는 엄밀히 말해 ‘결제업’이다. 서비스 내 콘텐츠를 사고팔 수 있는 것에 국한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들의 금융서비스는 ‘금융업’에 속한다. 알리바바와 페이스북, 구글의 경우 직접 자금을 유통하고 공급하고 있다.
특히 기존 금융사가 아닌 일반 IT업체가 금융업을 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내 법규상, 은행과 카드사를 통해서만 금융업을 할 수 있다. 기존의 금융업체가 아닌 일반 IT업체가 금융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규모와 자금이 요구되는 등 규제또한 만만치 않다.
사실 IT와 금융의 만남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이 같은 협업은 대부분 금융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금융사들은 사내 IT인프라를 전담하는 자회사나 부서를 통해 IT금융 사업을 진행했다. 대부분 금융서비스의 고도화와 보안 문제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전개했다.
기존 금융권의 반발은 생각보다 거세다. 반발의 이유는 명료하다. 모바일뱅킹 시장이 IT업계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사실 모바일뱅킹 사업은 금융권에겐 ‘계륵’과 같은 존재다. 모바일뱅킹은 스마트폰 시대 진입과 함께 은행권에서 반드시 운영해야 하는 사업군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국내 모바일뱅킹 등록 고객 수는 5,000만 명에 육박한다. 이는 전년 대비 35% 증가한 수치로 매년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투자 대비 수익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비용절감 효과와 편리성으로 은행의 수익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로는 기대 이하라는 것이다.
IT 기업의 금융권 진출은 가뜩이나 수익성이 낮은 모바일뱅킹 사업에 직격탄이다. 예를 들어 뱅크월렛 카카오를 통해 소액 송금을 할 경우, 기존 은행권은 결제 및 송금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일부를 카카오에 지급하게 된다. 금융 업계 관계자는 “뱅크월렛 카카오는 단순히 친구 간 송금시스템이기 때문에 은행권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선을 그었지만, 대다수 금융권에서는 향후 뱅크월렛 카카오의 사업 방향을 예의주시하며 앞으로 닥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