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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위험한 과학책

[BOOK REVIEW] 투수가 야구공을 광속으로 던진다면?

Q. 지난 4월 네팔을 강타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었다. 현재까지 공식 집계로만 8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고, 에베레스트산의 고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원흉인 2011년 동일본 지진의 경우 리히터 규모 9로 2만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또한 이 지진으로 지구 자전축이 10㎝가량 이동했다는 관측결과가 도출됐다. 그렇다면 리히터 규모 15, 혹은 20의 지진이 우리나라를 덮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Q. 박찬호 선수는 메이저리그 진출 초기 최고시속 161㎞의 빠른 공을 던졌다. 일본의 강속구 투수 오타니 쇼헤이는 현재 170㎞에 도전 중이다. 선수들의 신체조건이 우수한 메이저리그에서도 시속 100마일(161㎞)은 꿈의 구속으로 불린다. 빛처럼 빠른 공을 던진다고해서 이들을 흔히‘광속구 투수’라고 부른다. 그런데 투 수가 정말 '광속구'를 던진다면?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대답
상상하기도 힘든 이런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사람이 있다. 랜들 먼로가 그 주인공.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로봇공학자로 일했던 그는 현재 코믹 웹툰 ‘xkcd’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공학도에서 웹툰 작가로 변신했지만 과학이나 수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줄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신과 꼭 맞는 일을 찾는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이상하고, 때로는 우려스럽기까지 한 질문들에 답변을 해주는 게 그것이었다. ‘위험한 과학책’은 바로 그런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을 모은 책이다.

질문이 엉뚱하다고 답변도 대충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때로는 기상천외하고, 때로는 치기어리며, 때로는 황망하기까지 한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고, 기밀 해제된 군사 연구자료를 뒤지는 것은 기본이다. 사용후 핵연료가 저장된 수조에서 수영을 하면 어떻게 되든지 알고자 원자로 연구시설에서 근무하는 친구와 직접 통화하고,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요다의 파워를 계산하려고 영화 속 장면의 시간을 일일이 재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일반인들이 가장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을 제시한다.

실제로 질문의 난해함에 비해 그의 답은 허망할 정도로 간단할 때가 많다. 예컨대 리히터 규모 15 이상의 지진이 도시를 덮치면 ‘공중에 있는 티끌 하나가 테이블 위해 내려앉는다'고 한다. 모든 것이 파괴돼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또 투수가 야구공을 광속으로 던지면? 거대한 섬광이 번쩍이며 반경 수 ㎞ 내의모든 것이 초토화된다.

이처럼 최종 결론은 간단하지만 그 과정에 온갖 과학적 지식이 등장한다. 리히터 15의 지진이 방출하는 에너지량은 지구의 중력 결합 에너지와 맞먹고, 규모 20의 지진은 지구 크기의 수소폭탄이 폭발했을 때와 맘먹는 에너지가 방출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광 속구를 던졌을 경우 야구공이 투수의 손에서 홈플레이트에 도달하는 동안 발생하는 일들을 나노초(㎱) 단위로 설명한다.



과학자와 개그맨을 넘나드는 재미있는 과학
많은 일반인들은 과학적 지식을 따분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심도 깊은 과학지식을 알려주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이것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이며 재미와 흥미, 호기심에 기반한 창의적 과학을 지향하는 파퓰러사이언스의 모토와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일례로 광속구를 던졌을 때 발생할 온갖 끔찍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뒤“ 메이저리그 규칙에 따르면 이런 경우 타자의 몸에 맞는 공, 즉 사구(死球)로 봐야 하는 만큼 타자는 1루에 진루할 자격이 생긴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에서 수영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설명한 뒤에는 이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관련시설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죽을 거 같은데? 아마 물 에 닿기도 전에 죽을 거야. 총 맞아서...'”



때로는 과학자처럼 심각해졌다가 때로는개그맨처럼 웃기기를 반복하는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새 4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마지막장을 덮게 될 것이다.

사실 많은 질문들은 실제 일어났을 경우 재앙적 상황에 직면할만한 것들이다. 위험한 수준을 넘어 엽기적인 질문들도 다수다. 지구가 갑자기 자전을 멈춘다면? 주기율표의 원소로 정육면체의 벽돌을 제작, 주기율표의 위치대로 배치한다면? 누군가의 몸에서 DNA가 사라진다면?

그래서인지 저자는 이런 말로 책을 시작한다. “이 책에 나오는 어떤 내용도 절대로 집에서 시도하지 마세요. 저는 코믹 웹툰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의학 전문가나 안전 전문가가 아닙니다. 뭔가에 불이 붙거나 폭발하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의 안전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출판사와 저자는 이 책에 담긴 정보로 인한 어떤 직·간접적 부작용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빌 게이츠 “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과학적”
물론 모든 질문이 다 위험하거나 엽기적이지는 않다. 질문자의 창의성에 무릎을 칠 정도의 유쾌한 질문들도 적지 않다.‘레고 블록으로 런던에서 뉴욕까지 자동차 도로를 건설하려면 몇 개의 블록이 필요할까'와 같은 질문들이 그렇다.

저자는 마치‘이런 질문에 답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태도로 진지하게 임한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일단 만들 수는 있다. 두 도시의 연결에는 약 3억5,000만개의 블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먼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고, 북대서양의 폭풍우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계산, 추가 지식을 알려준다. 최종 결론은 가장 간단한 설계로 레고 다리를 만들더라도 5조 달러(5,598조5,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거라는 것이다. 이는 런던의 모든 부동산(2조1,000억 달러)을 구입해조각 낸 뒤 뉴욕까지 싣고 가는 비용보다 비싸다고 한다.

독서광으로 유명한 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 여름 휴가 때 읽을 만한 7권의 책'을 추천했다. 그 목록에 먼로의‘위험한 과학책'과‘xkcd’가 포함됐다. 빌 게이츠는 위험한 과학책에 대해“저자의 답변이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과학적 근거가 충실하고 정확하다"고 평했다.

과학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어려울 수 있다. 심지어 어떤 과학자는“과학을 쉽게 설명한다는 말 자체가 과학의 특성과 맞지 않는다”고 말 하기도 한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평가 처럼 '재미있으면서도 과학적 근거가 충실하고 정확한’책들에 심심치 않게 세상에 출간된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다. 과학을 쉽게 설명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과학은 쉽게 설명할 수 없다고 말 하는 사람들이 게으른 것이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랜들 먼로의 위험한 과학책이 유용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멍청한 질문은 (답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에요. 멍청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흥미로운 곳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 랜들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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