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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의 미래를 위한 고언


최근 롯데그룹의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벌어졌다. 올해 3월 장남 신동주 롯데홀딩스(일본) 부회장을 해임하고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한국) 회장에게 한국과 일본 롯데 모두를 경영하게 했던 롯데그룹의 창업자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난 7월 돌연 한국과 일본의 주요 이사진과 차남 신동빈 회장을 해임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내분이 시작됐다. 한 달 동안 국내를 뜨겁게 달궜던 롯데 사태는 지난 8월 17일 열린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이 주주들의 지지를 확인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롯데그룹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사태가 조기종결돼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이번 롯데가의 경영승계 다툼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그룹을 자신의 사유물처럼 취급하며 임원들을 언제든지 마음대로 해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는 마치 그룹 전체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다면 롯데의 실제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한국 롯데의 1차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는 비상장회사로서 거의 대부분의 지분을 대주주 가문과 일본 롯데 계열사들이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텔롯데의 경우는 대주주가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에 대해서 외부인들이 왈가왈부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롯데그룹 계열사 중 상장회사로서 호텔롯데의 지배를 받는 롯데쇼핑을 보자. 롯데쇼핑은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거래되는 회사로서, 신동빈 회장이 13.46%, 신동주 전 부회장이 13.45%, 신격호 총괄회장이 0.93%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 지분을 모두 합해도 전체 지분의 30%에 못 미친다. 그 외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이 약 35%의 지분을, 나머지 약 35%의 지분을 소액주주들이 가지고 있다. 다른 계열사가 가지고 있는 지분이 35%에 이르지만, 이들 계열사들의 지분은 서로 얽히고설켜 대주주 일가의 지분은 거의 모든 계열사에서 대부분 이 정도이거나 이보다도 작게 나타난다. 즉 거의 모든 계열사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집단은 대주주 일가가 아니라 소액주주들인 셈이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롯데쇼핑, 나아가 한국 롯데의 실제 주인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주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주주 일가가 국내에서 소유하고 있는 회사는 호텔롯데뿐이다. 그런데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양측은 분쟁이 벌어지는 동안 소액주주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실제 주인은 따로 있는데 주인이 아닌 사람들이 서로 주인이라고 다투는 형국이다. 주주들 외에도 20만 명이나 되는 임직원들과 협력업체들도 모두 이 사건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지만 이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불과 한 달 전 있었던 삼성의 사례를 되돌아볼 만하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시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재용 회장으로의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려 했다. 그렇지만 이재용 회장과 우호세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20%에 불과했다. 7%의 지분을 확보한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 반대를 선언하자 삼성은 전 계열사가 나서서 합병 성사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국내외의 많은 주주들이 삼성 편을 들었던 덕분에 2%라는 간발의 차이로 겨우 합병이 승인됐다. 주주들의 협력을 얻기 위해 삼성그룹은 주주중심의 경영을 하고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수행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했다. 이런 약속이 없었다면 소액주주들이 삼성 편을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회사가 아닌 상장된 주식회사에서 소액주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대주주라도 마음대로 경영을 할 수 없다. 이러니 큰 일이 발생하기 전 평상시에 소액주주들과 잘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삼성그룹에서도 이번 합병 건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롯데의 대주주 일가도 삼성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롯데는 어느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주, 직원, 협력업체,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것이다. 특히 롯데는 유통, 관광, 식품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종을 영위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계서열 5위에 오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미칠 영향은 모두 무시하고 아무리 대주주라고 해도 개인 마음대로 상장기업의 임직원을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이다. 누가 말을 잘듣느냐가 아니라 누가 회사를 가장 잘 경영해 발전시킬 것인지, 또 누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잘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서 경영진을 임명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의 실제 주인인 주주들과 임직원들을 설득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왜 그 사람이 회사를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고, 회사의 발전이 저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임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동빈 회장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지배구조 개편안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호텔롯데를 상장시키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중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세 번째 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조직과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조직을 신설해서 이들 조직을 통해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약속이 잘 지켜지기를 바란다. 삼성의 약속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롯데의 약속도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

롯데의 지배구조 중 특징 한 가지는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이 많다는 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롯데쇼핑의 지분 중 약 35%를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롯데쇼핑은 또 이들 계열사들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즉 계열사들이 서로 지분을 보유하고있는 셈이다. 이런 경우를 전문용어로 ‘지분의 순환출자’라고 부른다. 순환출자가 있으면 직접적인 보유 지분이 적더라도 계열사 보유 지분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즉 보유한 지분에 비해 훨씬 많은 회사들 또는 큰 규모의 회사들을 지배할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그룹들도 과거 순환출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순환출자의 빈도나 규모가 상당히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신동빈 회장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선안 세 가지 중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두 번째 안이 순환출자 문제의 해소와 연관되어 있다.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 순환출자를 거의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롯데그룹은 국내 계열사들만이라도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해 순환출자 문제를 조속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 이 일이 마음먹는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들여 자회사로 편입되는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규모를 본다면 최소 수조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안 중 호텔롯데의 상장을 추진한다는 첫 번째 사항은 사업상의 목적과 국민의 반일감정 해소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의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는 동안 ‘롯데가 돈을 벌어 다 일본으로 보낸다’라거나 ‘롯데는 일본 기업이므로 불매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일었다. 소문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소비재 사업을 영위하는 롯데의 입장에서는 이런 소문이 퍼지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에 투자해 설립한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 사업규모의 20배가 될 정도로 성장한 것을 보면, 한국에서 번 돈의 거의 대부분을 한국에 재투자한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듯하다. 이익 중 일부가 일본으로 배당된다고 하더라도, 국내 20만 명의 임직원이나 협력업체 등에게 돌아가는 몫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어쨌든 한국 롯데 지배구조의 최상위에 위치한 호텔롯데가 국내에 상장을 한다면 일본 회사라는 비난을 일부라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상장회사의 지분 과반수를 소액주주들이 소유하게 돼 이들 한국의 소액주주들에게 배당금의 대부분이 지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호텔롯데의 상장을 위해서는 일본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니 쉽게 상장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롯데 입장에서는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한 가지 명분을 가지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약속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해서도 상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롯데는 경영혁신을 하고 국민을 섬기며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등의 여러 약속을 했다. 이런 약속이 잘 지켜져서 롯데가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더욱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이번의 경험이 롯데에게 좋은 약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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