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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세계사 흐름 가른 비밀 결혼





1469년 10월19일, 카스티야 중북부 바야돌리드. 이사벨 공주와 아라곤의 왕자 페르디난도의 결혼식이 열렸다. 이베리아 반도를 점유하던 그라나다(이슬람), 카스티야, 아라곤, 포르투갈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두 나라의 왕위 계승권자끼리 혼인이었지만 정작 결혼식은 하객도, 떠들썩한 잔치도 없이 썰렁했다. 비밀결혼이었기 때문이다.

왜 몰래 결혼했을까. 신랑보다 한 살 연상인 18세의 이사벨은 이복 오빠인 카스티야 국왕 엔리케 4세가 명령한 포르투갈의 40대 홀아비 국왕과의 혼인을 거절하고 궁전을 탈출한 상태. 아버지인 후안 2세를 세 살에 여윈 이사벨은 감시와 견제 속에서 살아왔다.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인 이사벨은 페르디난도에게 청혼편지를 보냈다. 페르디난도는 변장을 하고 카스티야로 잠입해 마침내 식을 올렸다. 비밀 결혼일 수 밖에 없었다.

죽을 고비를 넘겨 혼인할 만큼 둘은 사랑했을까. 유아기에 정혼해 3년 만에 파혼한 게 인연의 전부였던 두 사람은 사랑보다 계산이 앞섰다. 특히 이사벨은 성장을 위해 아라곤과의 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다. 페르디난도의 아라곤 왕국 역시 카스티아 국왕의 건강이 좋지 않은 마당에 왕위계승권 서열 1위인 이사벨을 놓칠 수 없었다. 비밀결혼 직후 이사벨은 왕위 계승권을 박탈 당했으나 이복 오빠가 사망한 1674년 왕위에 올랐다. 1679년에는 페르디난도 역시 왕위를 물려받아 두 사람은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의 공동군주에 올랐다. 시간이 흐르며 두 왕국의 실질적인 통합을 위한 상징으로 등장한 국명이 바로 ‘에스파냐’(스페인)다.



금슬이 나쁘지 않았는지 두 사람이 낳은 아이 일곱 명 중 성년까지 살아남은 다섯 명의 후손은 16ㆍ17세기 유럽 왕가의 3분의1을 차지했다. 영국왕 헨리 8세가 가톨릭과 단절하고 국교회를 세운 것도 둘의 막내딸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큰 영향은 세계적 제국의 출현. 호전적 내륙국이던 카스티야와 해양국가인 아라곤의 결합은 콜럼버스의 항해와 남미 정복으로 이어졌다.

유럽만의 독자적인 문화의 시발도 이사벨과 페르디난도의 결혼으로부터 싹텄다. 결혼 23년 뒤 두 사람의 공동국왕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레콘키스타’(재정복)로 불리는 이슬람세력의 축출 직후 3개월 만에 전격 단행된 ‘알함브라 칙령’으로 유대인들이 더 뿔뿔이 흩어져 유럽 각지에 공동체(게토)를 세워 연명한 끝에 종국에는 세계를 쥐고 흔드는 국제적 자본가로 성장한 것도 역사상 가장 특이했던 정략결혼의 연장선상에 있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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