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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1월 3일 기준으로 관객수 72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시대를 겪어내고 살아왔던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화제가 된 데는 이 영화의 해석 논란이 한몫 했습니다. 방송인 허지웅씨는 12월25일자 한겨레의 대담기사에서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 수준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 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라고 발언했습니다. 이후 여러 언론사를 통해 이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정말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가’에 대해 네티즌 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국제시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지만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모으는 역할은 톡톡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논란 하나만으로 관객 수 720만 명을 넘는, 그것도 매일 누적 관객 수를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는 이 영화의 흥행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국제시장의 스토리에는 일종의 보편성이 있습니다. 분명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혹한 전쟁과 한강의 기적을 몸소 경험해 온 윗세대가 존재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관에 어머니, 아버지 손을 잡고 온 관객이 유독 많은지 모릅니다. 일부 관객은 국제시장 관람 후 영화가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더 참혹하고 힘든 시절을 견뎌온, 그때 그 시절을 살아낸 분들을 진정 영웅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 그리고 소속감, 사회적 인정과 자아 실현이라는 영역으로 구분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현대사도 그 단계에 맞게 진화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 남아야 했고,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파독 광부로 살던 시절 만난 간호사 출신의 부인은 자신의 가족을 공동체 속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으로 키워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죠. 그렇지만 이들에게 사회적 인정과 자아실현에 대한 희망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살기 바쁜 시절에 ‘내 꿈’을 좇는 것은 ‘사치’인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써 본인의 인생을 희생해 온 덕수는 노인이 되어 자신의 꿈이 큰 배의 선장이었음을 술회하면서도 마땅히 가야만 했던 길을 잘 걸어왔다고 본인의 삶을 반추합니다. 흥남 철수 시절 잃어버린 여동생을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것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혈연에 대한 강한 의식 때문이었겠죠.
‘국제시장’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정치적 저변을 깔고 있다기보다는 이런 절절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느 예술영화나 감독의 연출 기법이 담긴 작품처럼 미학적 완성도가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국민이 살아왔던 70여년의 세월을 깊이 있게 담아낸 것만큼은 맞습니다. 덕수의 손녀가 가족들 앞에서 할아버지에게 배운 노래로 흥남 부두에서 철수하는 피란민들의 눈물 섞인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국제시장’이 단순히 정파적인 스토리가 아닌, 우리 국민들의 생득적인 감각에 숨어있는 역사이자 문화적인 콘텐츠임을 시사하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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