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이만 홀로…" 어린이집 충격 실태
[이슈 인사이드] 혈세 4조 쏟아 붓고도 관리 허술해 부모·교사 맘고생 심각■ '0~2세 무상보육' 실시 6개월믿을만한 어린이집 태부족 교사 1인당 7명… 보육 질 저하각종 특별 활동비 요구에 한숨 엄마 입맛따라 원 옮김 경우도공공성 확충 정책 전환 시급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박윤선기자 sepys@sed.co.kr
'0~2세 무상보육'이 실시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보육현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0~2세 영아가 13만명 이상 늘었고, 올 1월부터 8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1,500여개의 가정어린이집이 생겨났다.
보육에 투입되는 국가 재정이 대폭 늘어났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매월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2세 영아에 지급되는 보육료만 따져봐도 대략 3,000억~4,000억원(5월 기준 약 3,780억원) 규모에 이른다.
0~2세의 보육료 지원에만 연간 4조원이 넘는 재정이 들어가는 셈이며 만 3~4세 소득 하위 70%에 지급되는 보육료까지 포함하면 총 지원 금액이 연간 5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중간 규모의 지방자치단체 1년 예산 규모와도 맞먹는 금액이 보육을 위해 쓰이는 셈이데, 막상 만족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부모들은 부모대로, 교사들은 교사대로 갖은 불만을 토해낸다. 여성의 취업률이 오르고 저출산이 해소됐냐고 하면 그것도 명확하지 않다. 이대로는 수 조원의 혈세를 낭비한 채 누구 하나 만족하지 못한 최악의 정책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엄마들 마음고생 더 심해져=0~2세 전 계층 무상보육이 실시되며 엄마들은 매달 최고 75만원(0세)에 이르는 보육비 부담을 덜게 됐다.
부모들은 과연 만족했을까.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아이를 믿고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은 아직 부족하기만 하고, 어린이집이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는 여전히 불안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전한다.
특히 무상보육 혜택의 가장 큰 수혜 대상이 돼야 했을 직장맘들은 오히려 맘고생은 심해졌다. 전업주부들도 시설 보육을 택하는 경우가 대폭 늘어나며 보육서비스 이용이 가장 절실했던 직장맘들이 되려 배제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한 모(32)씨는 "최근 복직을 위해 2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알아봤더니 자리가 하나 겨우 남긴 했는데 또래 아이들의 부모가 모두 전업주부라서 늦어도 4~5시면 다 데리고 간다고 하더라"며 "만약 아이를 보내면 내 아이만 3~4시간 동안 홀로 있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으시겠냐는 데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이 필요 경비, 특별활동비 등을 따로 받을 수 있도록 용인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교육이다 체육이다 명목으로 월 10~15만원씩 받아가는 어린이집이 많은 상황이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 쏠리며 질적인 부분이 저하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경기 화성의 한 법인어린이집에서 만 1세 반을 맡고 있는 이 모(42)선생님은 "원래 만 1세는 5명 당 교사 1명씩을 배치해야 하는데 우리 원의 경우 아이들을 받아달라는 부모들이 너무 많아 지침에서 허용하는 최대인원인 7명까지 꽉 채워 총 3반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런 식이라면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 애들에게 관심을 많이 줄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모ㆍ원장 무책임 부추겼다 비판도 나와="아무리 봐도 바쁜 일이 없는 것 같은 어머니가 느즈막히 일어나 11시쯤 아이를 보내며 점심밥 챙겨달라고 전화를 한다. 밥 먹이고 낮잠 2~3시간 재운 후 데려가시는데 어린이집이 밥 먹으러 오는 식당도 아닐뿐더러 이런 식으면 애들도 원에 적응을 잘 못해 반 운영이 힘들어진다"
경기 일산 한 민간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보육교사 서 모(30)씨는 "무상 보육이 실시된 후 부쩍 이런 분들이 많아졌다"며 "부모도 숨돌릴 틈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는 나 역시 공감하지만 '빈 자리 없냐'는 간절한 전화를 하루에도 2~3통씩 받다 보면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보육교사 역시"보육료를 엄마가 내는 게 아니다 보니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등록했다가 1~2주 만에 맘에 안든다고 다른 원으로 옮겨버리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시설장들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예전에는 어린이집을 질적으로 개선해 원아들을 끌어오려는 노력도 많이 했지만 무상보육으로 대기 아동들이 줄을 서자 더 이상 그런 노력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가정어린이집에 근무하는 김 모(29)선생님은 "20명 정원인 원에 0세 아동이 가장 많다"며 "최근에는 정원의 반이 넘었는데 무상보육 실시 후에는 아이들 그만 두면 무조건 0세부터 받고 있어 그런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0세 아동은 국가가 지원해 주는 보육료 수준이 높은데다 먹거리도 보통 부모님이 챙겨주는 경우가 많기에 보육 비용이 적게 든다. 운영에 가장 이득이 되다 보니 2~3세 아동을 딴 원으로 보내려고 유도하는 경우도 있더라"고 귀띔했다.
◇공공 보육 향한 첫 단추 잘못 꿰="철학과 목표가 부재한 채 재정만을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국가가 아이들을 책임지는 보편적 보육을 달성할 수 없다. 국가가 부모의 보육 비용을 대신 내주는 것이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한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어린이집에 국가가 보육료를 100% 지원하는 식의 현행 무상보육 방식은 그 동안 민간주도형 보육구조 하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들을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보육료를 지원하면서도 관리는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게다가 정부는 무상보육 실시로 어린이집 부족현상이 심화되자 교사 대 아동비율 완화, 초과보육 규정 완화,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 경로 확대 등을 실시해 현재 있던 규제마저 느슨하게 풀었다. 질적 기준이 뒤로 후퇴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공공성을 확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육정책이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공립어린이집의 확충을 통한 시장 구조의 재편 ▦보육의 질을 좌우하는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 ▦일시보육서비스 등 다양한 보육시설 확충 등을 제시한다.
민주통합당 남윤인순 의원은 "전체 보육시설의 5%에 불과한 국공립어린이집 비율로는 민간 위주로 돌아가는 보육 시장 구조를 바꿀 수가 없다"며 "최소 30%는 확보해야 국공립어린이집이 민간과의 경쟁 관계를 유도해 민간어린이집의 문제점들을 바꿀 수 있는 선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 시설보육 외면 늘수도● 양육수당 전면 지원무상보육 실시 후 부모와의 정서적 교감이 필요한 0~2세 영유아마저 시설보육에 보내지는 현상이 나타나자 정부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양육수당이다. 시설보육 미이용 아동에게 양육수당을 지원해서 부모가 가정 양육과 시설보육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서울신학대 백선희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소득층일수록 현금 복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데, 만약 양육수당과 시설 보육 사이에서 양자 택일을 하게 된다면 파트타임에 일하거나 급여 수준이 낮은 엄마들부터 시설보육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현금이 필요한 저소득층은 시설보육 대신 양육수당을 선택하게 되는데, 시설에서 나온 아이들은 결국 방치된다는 것이다.
이라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아동분과장 역시 "다문화 가정이나 저소득층 아동들의 경우 어린이집이라는 제도권 안에서야 오히려 최소한의 발달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어린이집 쏠림 현상은 부모의 책임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우선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고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무상보육은 가족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대신 국가의 역할만을 강조했다.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는 한 어린이집 운영자 등 공급자의 책임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을 요구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이런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말이다.
백 교수는 "질 좋은 보편적 보육 제도를 확립한 것으로 평가 받는 외국을 봐도 우리나라처럼 12시간 보육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례는 없다"며 "미국만 해도 종일보육 서비스는 취업ㆍ학업 중인 어머니에게만 제공하고 스웨덴 역시 연령, 상황에 따라 1일 3시간의 무상보육을 실시한 후 그 이상은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의 차등 보육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 때문에 보육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일은 피하면서 불필요한 서비스 이용은 막는 것이다.
전업주부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보육시설의 확충도 시급한 문제다.
전업 주부들 가운데 하루 3~4시간 등의 일시 보육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서울ㆍ경기권에서 운영하는 몇몇 시설을 제외하고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지 않다.
실제 올해 육아종합지원센터 설치 등을 위한 보육인프라구축 예산은 153억원으로 전년(162억원)보다도 오히려 줄었다. 부모의 보육료 지원에만 치중한 지금의 정책 방향이 비판을 받는 이유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