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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벤처, 벤처캐피털 그리고 M&A


박근혜 정부가 창조 경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벤처업계가 들썩이고 있는 모양이다. 창조형 기업을 창출해 젊은이들의 창업 의지를 고취시킴으로써 국가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제2의 벤처 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이스라엘 벤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며 이름조차 생소한 요즈마 펀드, 후츠파 정신이라는 용어까지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 정부의 정책이 너무 벤처기업 한쪽 방향으로 쏠린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든다. 벤처산업은 모험(venture)을 하는 기업과 자본(capital)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털의 결합으로 탄생한 개념이다. 따라서 벤처기업은 벤처캐피털 없이 존재할 수도, 성장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보자. 약 4~5년 전 한 지인이 제2의 리니지를 만들겠다며 2억여원의 자본금으로 게임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수억원의 빚만 남긴 채 사업을 접었다. 창업 후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아무리 뛰어난 벤처라 해도 창업한 지 2~3년이 지나면 외부로부터의 자금 수혈이 불가피하다. 벤처캐피털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벤처캐피털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투자금을 수익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는 한 자금을 풀 리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이 창업부터 상장까지 대략 10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중소기업의 창업 후 10년 생존율은 대략 13%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공개(IPO)까지 갈 경우 벤처캐피털의 자금 회수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고 이것이 미국에서 인수합병(M&A)이 훨씬 활발한 이유다.

M&A는 또 창업-투자-매각-재창업이라는 선순환 메커니즘을 완성시키는 요인이다. 김윤종(미국명 스티브 윤 김) 전 자일랜 사장, 마이클 양 마이사이먼 창업주, 주기현 전 엑시오커뮤니케이션즈 등이 창업한 기업을 매각한 후 그 자금을 바탕으로 벤처캐피털리스트나 새로운 창업에 나선 게 대표적인 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9월까지 벤처캐피털들이 M&A를 통해 자금을 회수한 비율은 겨우 1.5%에 불과했다. 미국의 M&A를 통한 자금 회수율이 70~80%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반면 보유 지분의 단순 장외매각 또는 채권 회수(62.4%)나 IPO(14.6%)는 77%에 달했다. 창업과 IPO의 중간 단계에서 벤처캐피털이 자금을 회수하고 벤처기업의 보유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는 거의 없는 셈이다.



이는 벤처 생태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자금 순환 구조에 공백이 생기면서 2002년 벤처 붐 막판 1,570억원에 달했던 창업투자회사의 신규 투자 규모는 2011년 3분의1 수준인 493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투자 재원 역시 3조3,824억원에서 1조1,975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M&A의 부재가 벤처기업과 캐피털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보릿고개를 안겨준 것이다.

혹자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중소기업 전용 거래소가 활성화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 여력이 부족한 우리나라 벤처캐피털 중에 평균 상장 기간인 10년은 고사하고 5년도 기다려줄 곳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투자금 회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선뜻 받아줄 리도 만무하다. 결국 전용 거래소도 자금 조달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는 의미다.

벤처는 일반 기업과 다르다. 일반 기업은 수익 창출을 통해 생존 능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라면 벤처는 지속적으로 사회에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게 존재 이유다. 그래야 창업과 재창업, 투자와 재투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 기존 IPO 중심의 자금 순환 시스템을 M&A 중심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8~2002년 벤처 거품 붕괴의 악몽이 M&A의 부재와 성급한 IPO 위주의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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