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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10>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진짜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땅을 샀다’는 그 사실보다 스스로의 상황과 비교하게 되면서 초라해진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 오늘따라 묘한 기분이 든다. 딱히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찜찜하다고 할까. 무슨 일이 있었지? 곰곰이 하루를 되짚어 본다. 평소처럼 출근길에 커피를 사는데, 아 맞다. 그때 모바일 메신저 친구목록을 훑어보다가 상태 메시지와 프로필 사진을 바꾼 친구가 하나 있었지. 남자친구랑 유럽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승진기념 선물 고마워’라고 쓰여있었던 것 같다. 정말 별일 없었는데 묘한 기분 탓인지 남자친구에게 괜히 짜증이 났다. 오늘 참 이상한 날이다.

일반적으로 본인의 상황을 돌아볼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아니,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는 흔치 않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자기객관화는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어려운 행동 중 하나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쁘기 때문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1990년에 제작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영화제목이 마치 고유명사처럼 ‘스스로를 돌아보며 여유 있는 삶을 살자’는 뜻으로 쓰일 정도로,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쁜 일상은 현대인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쁜 일상’은 자기객관화를 피하기 위한 표면적 이유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둘러대는 일종의 핑계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자기객관화가 왜 달갑지 않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객관화란 표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객관화란 자기에게 직접 관련되는 사항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거나 생각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즉 스스로를 남들에게 적용하는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에 능합니다. ‘연기가 부자연스럽다’, ‘표정이 다양하지 않다’ 등 우리는 브라운관에 비친 연예인을 보고 나름대로 심사평을 씁니다. 비교적 정확하고 냉철한 잣대를 들어서 말이죠. 이런 이유로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을 교정할 때 타인이 본인의 행동이나 습관을 따라 하게 하고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곤 합니다. 일종의 거울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본 사람들은 ‘내가 이런 행동을 해왔다고?’라고 되물으며 그제야 문제상황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고, ‘남들에게 이렇게 보여왔단 말인가’라며 심각성을 깨달아 고치려는 마음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이 하는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지조차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면 타인의 행동은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제3자를 바라보듯 냉철하게 평가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돌아보기 전까지는 처한 현실이 그 정도로 초라한지 미처 느끼며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주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깨달을 때 짜증이 나게 되는 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죠.

이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자기객관화가 비교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비교 대상이 내가 실제로 아는 사람이거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걔 아는데, 사실 별 거 아니야’ ‘너무 과대평가됐어’라며 평가절하하는 것도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친구가 승진을 하고 남자친구와 유럽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은 그 사실 자체보다 스스로 그 친구와 비교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짜증과 분노로 변질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내가 더 공부도 잘하고 더 멋진 이성 친구도 많이 만났던 거 같은데’라며 어느새 역전 당한 것 같은 기분에 씁쓸한 패배감에 젖게 되는 것이죠.

‘질투는 나의 힘’ 이라는 기형도의 시 전문을 싣습니다. 객관화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좌표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그 누구보다 스스로 가장 잘 아는 사실입니다.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지금 선 곳이 어디인지 알아야만 꿈에 그리던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더라도, 동기가 잘 나가서 얄밉더라도 그러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날’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1960∼1989)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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