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床說話知何日 한 상에 마주앉아 이야기한지 얼마던가 苦海存亡一夢中 고해(괴로운 인간세상)에서 죽고 삶이 하룻밤 꿈이로다. 今日人間稱壽士 오늘은 사람들이 오래 산 선비라 부르지만 明朝天上做仙翁 내일 아침 하늘로 가면 신선노인 될 것이라 (하략) 경남지역에서 이름 날리던 유생인 해산 이은춘(1881~1966) 공이 세상을 뜨자 그의 문하생인 화산 임재식이 이 같은 만시(挽詩)를 적었다. 스승을 떠나보낸 슬픔이 글자마다 절절하다. 만시는 일종의 추모글로, 선비가 죽으면 지역 유림들이 밤새워 덕담을 나누며 고인의 인생행적을 다루거나 상주를 위로하는 시를 적었다. 6일장이 진행되는 동안 죽은 자를 위한 산 사람들의 백일장이 전개됐고 죽음은 축제로 승화하는 것이 우리네 전통이었다. 이 때 젊은 유생이 옆에서 글을 받아적어 '만장록(挽章錄)'을 만들고, 만장(挽章)의 글귀는 상여 뒤에 깃발로 따라붙는다. 해산 이은춘의 만장록이 공개됐다. 이은춘의 유고집 '해산우고'가 한글로 번역돼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면서 책 후반부에 만장록이 덧붙여졌다. 책에는 풍류ㆍ우정ㆍ세상살이ㆍ유교행사ㆍ잔치 등을 소재로 한 한시 103수와 상량문ㆍ행장문 등 산문 9편이 수록됐다. 초서체로 적힌 '해산우고'를 안동 양동마을의 한학자가 초벌 번역한 뒤 해산의 증손자 이봉수 씨가 5년의 정성을 쏟아 번역했다. 번역자 이씨는 "만장록은 고인의 인생행적에 대한 주변인의 평가글이자 한 사람의 생을 반추하면서 살아남은 자들을 성찰하게 한다"면서 "이는 우리의 선비정신이며 만장록을 읽어 본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집필의도를 밝혔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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