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고등어 즐겨 먹던 사람들 '날벼락'
제주 갈치가 뿔났다서울시, 대형마트 판매 제한에 "50%나 납품하는데 판로 막혀"제주어업인 탄원서 들고 상경
정영현기자 yhchung@sed.co.kr
"제주산 갈치의 50%가 대형마트에 납품됩니다. 가뜩이나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과 수온상승 등 환경변화로 갈치 어획량이 줄고 있는데 판로까지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울시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추진 중인 대형마트 특정품목 판매규제에 바다 건너 제주 수산업계 종사자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서울시가 8일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판매를 제한하는 품목 51개를 타진하는 과정에서 제주도 대표 특산물인 갈치와 고등어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아직 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는 만큼 당장 갈치와 고등어가 대형마트 진열대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 수산업계 관계자들은 행여라도 이 같은 규제가 현실화할 것을 우려해 결국 탄원서를 들고 27일 서울시를 직접 방문했다.
최정호 서귀포수협 조합장은 박원순 서울시장 앞으로 보내는 탄원서에서 "서울시의 정책결정은 어업인 같은 1차 산업 생산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대형마트 의무휴업 및 수입산 갈치 판매증가로 주문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마트가 밀집한 서울시의 판로까지 막히면 어업인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고 호소했다.
수산업계 종사자들이 시의 대형마트 판매제한 품목 리스트에 함께 오른 농산물ㆍ기호식품 생산ㆍ납품업자들에 비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수산물 생산ㆍ유통의 특수성 때문이다. 농축산물과 달리 수산물의 경우 대부분 품목별 주산지가 정해져 있고 유통ㆍ물류비용 때문에 현지 수협 등을 통해 대량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서귀포 수협의 경우 2012년 기준으로 갈치가 위판 수산물의 86%를 차지했으며 위판 갈치의 절반이 대형마트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됐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948억원어치의 전체 위판 수산물 중 815억원어치 정도가 갈치였고 이 중 407억원어치가 대형마트에 납품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귀포수협이 최대 판로인 대형마트와 거래할 수 없게 되면 일일이 소규모 슈퍼마켓이나 전통시장과 직거래를 해야 하는데 규모가 작은 수협 입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수산물의 경우 냉장유통 등 물류비가 만만치 않아 골목상권 등에 직접 유통한다 하더라도 가격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서귀포수협 측의 설명이다. 서귀포수협 관계자는 "그렇잖아도 매년 갈치 어획량이 줄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장바구니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어 억울하다"며 "판로까지 막혀 또다시 가격상승 요인이 발생하면 소비만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갈치뿐 아니라 다른 수산물의 유통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 대형마트 판매제한 품목 리스트 발표 이후 시 홈페이지에는 북어ㆍ쥐치포ㆍ조개류 등을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업체 관계자들의 판매제한 계획 철회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패류 유통업체 직원이라고 밝힌 김모씨는 "우리 회사는 대형마트 납품비중이 90%"라며 "서울시가 먼저 (판매제한을) 시행하면 다른 지자체도 같이 시행할 텐데 회사 직원 대부분이 그만둬야 하는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김미자 서귀포수협 유통 상무는 "대형마트 판매가 제한되면 유통과정은 늘어나고 신선도는 떨어져 오히려 어가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소비량은 줄어들 것"이라며 "어업인ㆍ납품업체ㆍ대형마트 등 수산물과 관련된 모든 국민이 경제적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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