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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산책] 스펙파괴가 드리운 또다른 그늘

학점·스펙 준비에 청춘 바쳤는데 스펙 안 보겠다니 구직자 '혼란'

"창의성 중시? 그 역시 스펙일 뿐"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상임고문

필자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니 그 이후로도 비교적 최근까지 학벌, 학력 같은 객관적인 지표는 사람의 됨됨이를 식별하는데 매우 중요한 잣대였다.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 할때도 혼인상대를 고를 때도 우선 보는 것이 학벌, 학력이었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사회에서 크게 성공해 부(富)를 쌓고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되는 사례들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성공이 능력이나 노력, 도덕적 자질과 지식 등 우리가 학교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했던 여러 가지 자질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상황은 크게 반전돼 정부와 일부 기업에서는 학벌, 학력, 각종 자격증과 어학점수 등 소위 스펙·학력을 초월해 능력 있고 창의적인 인재를 발굴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심지어 일부 기업에서는 취업 원서에 스펙·학력을 적는 난을 없애버렸다며 홍보한다. 그러면 이러한 스펙파괴를 통한 능력 있는 인재 발굴이라는 움직임에 당사자인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대부분 사뭇 부정적이다.

필자가 만나본 취업준비생들이나 여러번 고배를 마신 취업재수생들은 한결같이 스펙은 기본으로 쌓아야 하는 것이고 능력이라는 잣대도 또 하나의 스펙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대학생들이 졸업을 늦추면서까지 재수강, 삼수강까지 하면서 학점을 높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고 반문까지 한다. 취업 준비생들의 과도한 스펙 쌓기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은 딴판 이라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공들인 부분이 아이로니컬하게도 취업을 위해 더 좋은 학점과 더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돈과 시간을 허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가 목표로 했던 기업이나 기관이 수년을 준비해온 성과와 자료를 결정적 순간에 용도폐기한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황당함과 좌절감을 그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이렇듯 스펙과 학력을 보지 않고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도 대답이 명쾌하지 않다. 기업은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전문적인 일면 일면이 모여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지 창의적인 인재가 많다고 해서 유능한 조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창의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나 애니메이션 같은 사업은 창의적인 사람들로만 채워지더라도 그 일면을 훌륭히 해낼 수 있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에 인내와 팀워크가 필요한 영업, 정해진 방식이나 룰을 철저히 따르는 생산직이나 재무직은 오히려 단순한 일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성향이 강한 창의적 인재의 능력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학교에서 받은 교육, 그 교육을 통한 삶의 자세나 습성은 학교에서 사람을 기르고 지도자를 가려내는 민주주의나 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력서에 학력, 학점을 빼고 원하는 인재를 가려내겠다는 발상은 기존의 학력 좋은 사람들이 도덕적 권위를 내세우는데 실패하고 학교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스펙·학력을 초월하는 채용 대신 자기소개 오디션, 블라인드면접을 강화한다고 한다. 이력서에 정보가 빠져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외모사진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자 면접에 좀 더 잘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고 있단다. 이번에는 젊은이들이 외모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는 세태를 걱정하고 학벌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결국은 명문대를 외치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젊은 구직자들의 혼란만 부추기고 이들을 상대로 수수께끼 놀음이나 하자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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