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논란에도 MBC 월화 특별기획 ‘기황후’가 시청률 16%를 넘기며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기황후는 고려의 여인이 원나라의 공녀로 갔다가 원의 황후가 된다는 설정만이 역사 왜곡의 논란을 피할 정도로 드라마 내용의 70%는 허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황후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로는 우선 탄탄한 스토리, 주연 조연 배우들의 검증된 연기력, 적당히 애국심을 자극하는 대사 등이 있다.
기황후가 스토리로서 튼튼함을 보여주는 것은 원나라의 장남이지만 왕위를 동생에게 빼앗긴 타환(지창욱)이 고려로 유배를 오면서부터다. 그를 죽이려는 원의 세력과 그가 고려의 땅에서 죽게 되면 그것이 고려의 탓이라 하여 원이 더욱 고려를 옥죌 것이기에 고려의 왕이 될 왕유(주진모)는 이를 막으려 한다. 그 계획에 승냥이 투입되면서 셋의 삼각 관계가 시작됨은 물론 스릴러적 요소까지 보여지게 된다. 타환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승냥이 어떻게 타환을 구해낼지를 궁금하게 하는 것.
또 기황후는 연기력에는 이견이 없는 하지원 주진모 지창욱 정웅인 김정현 전국환 김영호 김서형 이문식 윤용현 이원종 이재용 등이 출연해 멀티 캐스팅을 방불케 한다. 물론 주연인 하지원 주진모 지창욱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조연 배우들의 비중도 적지 않다. 사건 하나하나에 조연들이 등장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12일 방송 분에서 타환의 측근 인 백안 역을 맡은 김영호는 왕답지 않게 유약하고 ‘상등신’처럼 행동하는 타환과 대화를 한 후 그의 방에서 나와서는“못 났다 못 났다 참 못났다”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전의 타환의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도 얼마나 타환이 못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안타까운지에 대한 느낌이 전달됐다. 또 원나라 최대의 권신 연철 역의 전국환은 타환을 압박하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그 모습에서는 권위가 느껴지는 지도록 연철을 캐릭터화했다. 타환을 왕으로 앉히고 싶지 않지만 그의 바보 같은 행동을 보고 속으로 “어쩌면 내가 찾던 왕이 바로 이렇게 옆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그를 ‘바지 왕’으로 앉힐 결심을 한다. 권력을 위한 치밀한 계산을 하는 눈빛과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들 뿐 아니라 이원종 이문식 정웅인 김정현 등의 호연도 눈길을 뗄 수 없다.
힘없는 나라 고려가 원에게 끌려 다니고 또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 원나라로 조공돼 조국을 떠나는 설정은 애국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공녀로 끌려가는 이들을 풀어주는 왕유(진모)에게서는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모습이 느껴진다. 또 타환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왕유에게 그 죄를 물으려는 원나라에 왕유는 “내가 혼자서 한 짓이니 고려는 건드리지 마라. 나만 죽여라”라고 말하는 데서도 역시 과하지 않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대사를 매우 비장하게 연출했더라면 낯 간지러울 수 있었지만 왕유의 말에 연철은 바로 “니 목숨을 니 맘대로 할 수 없다”라고 응수해 바로 분위기를 바꾼다. 또 왕유에게 충성하는 승냥을 보고 타환은 “왜 원에는 이런 신하가 없는가”라고 말하는 장면도 어느 정도의 애국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진제공=이김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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