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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2월 18일] 김 추기경과 최종현 회장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고 최종현 SK회장. 성직자와 대기업 총수로 추구하는 가치관과 삶의 궤적이 다른 분들이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 세상과 이별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고 그래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울림은 더 크고 넓게 퍼지고 있다. 김 추기경 선종 1주기 전후의 추모열기와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 일어난 변화, 그리고 10여년 전 최 회장의 화장유언이 촉발한 장묘문화 변화 및 지난달 세종시에 건립된 SK장례문화센터가 그 증거다. 세상을 바꿔놓은 아름다운 죽음 김 추기경은 죽음을 맞아 각막 기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줬다. 그가 평생을 관통해온 사랑ㆍ겸손ㆍ감사ㆍ나눔ㆍ베품의 정신을 마지막까지 실천한 것이다. 그의 선종의 메아리는 컸다. 다툼ㆍ미움ㆍ네탓ㆍ물질만능ㆍ욕심ㆍ갈등ㆍ대립에 찌든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그의 정신을 기리자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대표적인 것이 장기 기증이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장기기증신청자는 18만5,046명에 달했다. 전년보다 2.4배나 많은 것이며 장기기증운동 시작 이래 최대 규모다.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경우 지난 20년간의 신청자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신청서가 접수됐다. 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가장 깊고 높으며 큰 사랑행위다. 김 추기경은 그런 고귀한 사랑의 불씨를 심어줌으로써 우리 의식을 변화시킨 것이다. 지난달 12일 세종시에서 한 시설물 준공행사가 열렸다. 최 회장 유지에 따라 SK가 500억원을 들여 건립, 기증한 장례문화센터다. 하루 전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터라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으나 이 센터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지난 1998년 타계한 최 회장은 자신을 화장하고 수준 높은 화장시설을 지어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가뜩이나 좁은 국토를 묘지투성이로 만들고 환경을 파괴해 막대한 경제ㆍ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는 매장장례의 문제점, 그리고 화장시설 부족으로 화장하고 싶어도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는 앞서 떠난 부인의 장례도 화장으로 치렀다. '재벌가 분묘' 하면 으레 호화 분묘를 떠올리던 당시에 그의 화장 유언은 신선한 화제를 뿌렸고 장묘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한달여 뒤 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가 결성돼 화장유언 남기기 운동이 전개됐고 고건 당시 서울시장, 구본무 LG회장 등 지도층 인사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다. 20%대였던 화장률은 이듬해 30%로 늘었고 이후 지속적 증가세를 그리며 2008년에는 58.9%까지 늘어났다. SK장례문화센터 개장으로 화장장례 확산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쾌적하고 아늑한 외관에 무연무취의 첨단설비와 빈소ㆍ수목장지 등을 갖춰 원스톱 장례식이 가능한 시설이 생김에 따라 그 동안 화장장 부족으로 애로를 겪던 주민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장례편의가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남겨놓은 향기로운 빛 영원할것 장기기증 활성화와 장례문화 선진화를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바꿨고 시민단체의 캠페인도 수없이 전개됐다. 그러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김 추기경과 최 회장은 정부와 시민단체가 20~30년간 애써도 이루지 못한 일을 단번에 해낸 것이다.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새삼 보여준다. 나라가 어수선해서인지 그들이 남긴 유산의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들의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고 어둠이 아니라 빛이었다. 그 빛은 향기를 내뿜으며 우리 마음과 사회를 밝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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