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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값 등록금 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신촌 번화가에서 피케팅을 하는 아줌마들이 눈길을 끌었다. '비싼 등록금, 엄마는 할 말이 없어'라는 팻말을 든 아주머니들은 시민단체나 진보단체 회원이 아닌 마포 지역 주민센터의 30~40대 수영동호회원이었다.
#2. 지난해 12월 성북구의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 사무실 앞. 평범해보이는 아주머니ㆍ아저씨들이 모여 '한미 FTA 반대' 팻말과 촛불을 켜놓고 모여 앉았다. 하지만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조용히 앉아 삼겹살을 굽고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지역구 의원인 정 의원이 한미 FTA 비준 동의의 여야 합의 처리를 촉구하며 국회에서 단식을 했던 것을 비꼬며 시작한 '과식(過食) 농성'은 동네집회의 상징이 됐다.
2040세대의 달라진 정치적 인식을 보수진영에서는 '배반' '반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2040세대들은 '선택'이라고 표현한다. 양극화의 끝으로 밀려난 세대들과 기득권 세력들과의 극명한 시각차를 보여준다.
2012년 정치적 변화의 물결은 2040세대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 나꼼수' '청춘콘서트'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나타나는 그들의 정치인식은 과거와 현격히 다르다.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40세대의 정치인식 변화를 여과없이 보여줬다. 20대의 69.3%, 30대의 75.8%, 40대의 66.8%가 박원순 후보로 상징된 새로운 세력에 표를 던졌으며 기존의 정치구조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2040세대의 정치의식이 이렇게 빠르게 변한 이유는 뭘까. 그들이 말하는 일자리는 과거에도 쉽지 않았다. 외환위기(IMF) 이후 대졸 취업은 이미 바늘구멍이었는데 왜 지금 그들은 보수세력이나 기성 정치권을 외면할까.
◇중산층의 몰락과 푸어세대의 절망=2040세대의 공통점은 푸어(Poor)세대라는 점이다. 20~30대는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워킹푸어, 40대는 직장을 가지고 안정적이라 해도 아파트대출에 힘겨운 하우스푸어다. 이래저래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20대의 고민은 사상 최고 수준의 대학등록금과 청년실업률 속에 "나도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30대는 '삼초땡(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을 생각해야 한다)'이라는 경쟁과 대출금·집값·전세금 문제 등으로 불안하다. 40대 역시 과거에는 '중견'이라는 말을 듣던 안정된 세대였지만 지금은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과 자녀교육ㆍ노후에 대한 불안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결국 불안한 미래의 문제에서 이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산층이라고 자부했던 세대들도 이제는 불어나는 자녀교육비와 생활비에 중산층임을 포기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던 40대 중산층은 신분상승이라는 희망을 포기한 지 오래다. 빈부격차가 고착화되고 중산층이 점점 얇아지는 상황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공짜 점심은 바라지 않는다=2040세대의 정치적 변화는 스스로 변화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로 표출된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시위는 물론 광우병 파동으로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촛불집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그들이 하나둘씩 사회를 바꾸기 위해 현실에 뛰어들고 있다.
2040세대의 정치인식 변화는 경쟁에 지치며 함께 사는 사회를 고민하게 한다. 특히 이들은 "내 아들딸들에게 이러한 똑같은 상황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냐"라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개입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자 고민하던 문제들을 블로그ㆍSNS 등 열린 공간에서 같이 고민하면서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지게 된 시기가 2011년이라면 이제 그 깨달음을 현실에 어떻게 쏟아내는지를 보여주는 시기가 2012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변화에 더 이상 무임승차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동네집회ㆍ피케팅 등 생활정치나 SNS로 표출되고 있다.
◇2040세대는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고 있다=경제적 양극화를 몸으로 직접 느끼며 변화를 바라는 2040세대는 기성 정치세력에 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다.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2007년 대선에서 대중이 외친 것은 성장이지만 실제로 요구했던 것은 성장을 통해 내가(서민이) 잘살게 되는 사회였다"고 말한다. 결국 2040세대는 분배를 위한 성장을 바란 것이지 부자들만을 위한 성장을 바라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이들의 정치참여 이유도 자신의 삶과 현실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지 사회변화ㆍ변혁 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 두 번의 선거에서 2040세대는 지지할 정당이 없다.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당 역시 근본적으로 기성 정치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역 정당이다.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는 2040세대의 표를 받아줄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안철수라는 3의 인물을 찾아내기도 했다.
남은 것은 2040세대의 정치적 변화를 받아줄 정치세력의 등장이다. 쇄신을 외치며 내부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한나라당이 어떻게 변할지, 민주통합당이 어떤 인물로 승부할지, 아니면 또 다른 제3의 정당이 등장할지 2040세대의 요구에 정치가 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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