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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누가 관료의 영혼을 빼앗나

"공무원들의 정치권 눈치보기가 훨씬 심해졌습니다. 물론 공무원들 책임이라기보다는 정치권 등 주위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소신 있는 관료를 키우고 또 그런 관료를 보호해주는 분위기가 아쉽습니다."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장관이 장관직을 마무리하면서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관료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이후 언론계ㆍ정치권 등을 거치고 다시 장관으로 돌아와 관료생활을 해본 느낌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익집단 경쟁에 눈칫밥만 늘어 지난 4ㆍ27 재보선에서의 여당 패배 이후 각계 각층의 '자기 몫 챙기기'가 가열되고 있다. 청와대의 구심력이 갈수록 약해지면서 여당을 비롯, 검찰과 각 이익집단 등은 '각자 살아남기 경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이 와중에 관료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최근 논란의 핵심인 반값 등록금 문제에 있어서도 여와 야, 그리고 학생들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만 정작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관료들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한 고위관료는 사석에서 등록금 문제를 둘러싼 여당의 주장과 관련해 "누가 여당이고 야당인지 모르겠다. 구분이 안 간다. 심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당에서 재정투입을 강요하겠지만 최대한 버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사적인 자리에서 그친다. 공개적인 자리에 들어서면 톤이 낮아진다. 관료들의 '소신 없음'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영혼 없는 관료'는 한때 시중의 유행어였다. 한 고위관료는 "그래도 사람은 바꿔놓고 전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라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자리도 사람도 그대로 놓고 전 정부 정책을 부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한참 전 일이지만 변양호 신드롬 역시 지금까지도 관료사회를 무겁게 억누르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하나금융의 인수 승인을 둘러싼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여론은 왜 금융당국이 결정을 미뤄 결과적으로 론스타의 배를 불려주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금융당국이 나중에 '론스타가 외환은행 대주주로서의 적격성이 없다'고 결론 내린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조치는 강제 주식매각 명령뿐이다. 결국 주식을 팔아 한국을 떠나려는 론스타에게 타격이 될만한 조치도 아닌데 왜 자꾸 당국이 결정을 미루느냐고 비판한다. 관료는 그런 결정을 내리라고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 것 아니냐고 타박한다.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결정을 내려야 하는 당국자 입장에서 보면 얘기는 다르다. 나중에 무슨 추궁을 받을지 모른다. 법원의 판단도 내려지기 전에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검찰에서 조사 받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상황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정책 결정자 입장도 고려해야 하지만 MB 정부 후반기, 남은 과제는 하나같이 만만찮다. 당장 6월 중 발표될 가계부채 대책만 해도 인기 없는 대책이 될 것이 확실하다. 비록 금융당국이 최대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시행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가계의 고통을 키우는 방향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물가대책만 해도 그렇다. 한편에서는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의 인상요인이 잔뜩 쌓여있다. 한쪽에서는 공공요금을 올리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물가를 잡아야 하는 서로 모순된 요청을 해결할 묘안이 있어야 한다. 하반기 경제의 최대 불안요인인 저축은행 구조조정만 해도 한편에서는 부실을 해소하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불안을 막으라는 모순된 요구에 직면해 있다. 한편에서는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당장 입에 달게 느껴지는 포퓰리즘적 요구'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관료들의 독립성과 전문성, 국가관에 기반한 정책결정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흔들리는 관료들을 욕하기에 앞서 이들을 흔드는 바람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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