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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예술품은 벽화다. 선사인(先史人)의 동굴벽화나 고대인(古代人)의 고분벽화는 풍요에 대한 기원이자 영원성에 대한 기록이었다. 종교적 찬양, 사회저항과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며 벽화는 개인과 사회의 소통창구 역할을 해 왔다. 안산 경기도미술관(관장 김홍희) 로비에는 최근 현대적인 대형벽화가 설치됐다. 하얀 바탕을 검정 곡선과 직선ㆍ점이 가득 채운, 길이 46m 폭 5.5m의 대작 '풍경의 알고리듬'이다. 재미작가 이상남(57ㆍ사진)이 미술관의 의뢰로 1년 반 만에 완성한 새 소장품이다. 작품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 며칠째 미술관으로 출근하는 작가를 만났다. "미술관 건축도면을 받아 들고 상상을 시작했어요. 회화지만 건물을 압도하는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미지 과잉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눈을 쉬게 하고 머릿속을 정리하는 '현대적 풍경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는 실제로 해냈다. 그 동안 미술관 로비는 유리벽으로 노출된 파이프 때문에 '복잡하고 지저분하다'는 인상이 없지 않았는데, 작품이 들어서자 유려한 곡선들과 꼬인 파이프가 조화를 이룬 것. 밋밋하던 벽은 미술관의 새 볼거리가 됐다. 작품에는 수 많은 나누기 기호(÷)가 반복된다. 작가는 "동그란 점은 삶, 짤막한 직선은 죽음"이라며 긴 설명을 피하지만, 탁자에 마주앉아 대화하는 두 사람으로도 볼 수 있다. 기하학적 반복에 상상의 여지가 있어 "씹고 또 씹으며 음미하는 게 감상법"이란다. 작품의 힘은 '소통'이고 상상은 관람객의 몫이다. 옻칠로 매끈한 표면을 만들던 전작과 달리 벽화에는 철판 패널에 자동차 도료가 사용됐다. 덕분에 색감은 가벼우면서 쿨하다. 칠하고 갈아내기를 수십 번 반복해 구워낸 철판이 모두 66개. 이어 붙인 작품 전체는 2층 옥상에서 내려다봐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경기문화재단 외에 커피빈코리아 박상배 대표의 제작비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작가는 "예술에는 불가능한 장벽이란 게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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