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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494> 그란 콜롬비아


1821년 9월7일, 누에보 그라나다(뉴 그라나다)의 해안도시 쿠쿠타. 콜롬비아 의회가 만장일치로 공화국 성립을 선포하고 시몬 볼리바르(당시 38세)를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ㆍ에콰도르ㆍ파나마 등 4개국의 뿌리인 콜롬비아가 탄생한 순간이다. 대(大ㆍgreat) 콜롬비아를 뜻하는 그란 콜롬비아는 1863년부터 사용된 개념. 분열 끝에 작아진 콜롬비아와 달리 그란 콜롬비아는 멕시코를 제외한 중미 전지역을 망라했다. 베네수엘라 지역에서 태어나 키토(에콰도르)ㆍ누에보 그라나다(콜롬비아)를 해방한 볼리바르와 그 지지자들에 의해 1819년 12월 문서상으로 선언된 콜롬비아 공화국은 쿠쿠타회의에서 실질적인 거대국가로 태어났다. 대통령뿐 아니라 '해방자(Liberator)'로 지명돼 의회의 동의 없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권력을 얻게 된 그는 남미해방에 뜻을 두고 페루로 진군해나갔다. 페루에서 남미독립의 또 다른 영웅 산 마르틴과의 협력으로 페루까지 통합했다. 당시 그란 콜롬비아는 오늘날의 브라질 북부와 볼리비아ㆍ코스타리카ㆍ가이아나ㆍ온두라스ㆍ니카라과 일부까지 아울렀다. 그란 콜롬비아는 볼리바르의 실각(1829년)과 죽음(1830년) 직후 무너지기 시작해 결국은 강역이 오늘날의 콜롬비아로 쪼그라들었다. 이유는 세가지. 기득권 유지만이 관심사였던 토지 귀족들의 저항과 일반 대중의 무관심, 거대국가의 출현을 원하지 않았던 미국과 스페인의 교묘한 방해 탓이다. 남미통합의 꿈은 국명 '볼리비아'에 남아 있을 뿐일까. 장담할 수 없다. 중남미에서는 통합논의와 청사진을 '볼리바르 프로젝트'로 부른다. 중남미국가들의 지나간 부분집합인 그란 콜롬비아가 미래 공집합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숱한 견제를 받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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