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최근 벤처캐피털(이하 VC)로부터 수백억원대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중견벤처 A사. 이 회사의 지분구조에서 벤처캐피탈이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30%(우선주, 보통주). 하지만 계약상 A사가 올해 VC에서 요구한 매출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경우 VC는 추가로 받은 신주인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 경우 VC의 지분은 40%대까지 높아져, 최대주주 자리를 넘보게 된다. #사례2. 초기 벤처기업 B사가 최근 VC와 맺은 투자유치 계약에는 5년 내에 기업공개(IPO)를 하지 못하면 B사 대표가 지분을 모두 되사야 한다는 '풋옵션' 조항이 포함됐다. VC쪽에서는 '실제 풋옵션을 행사한 경우는 없다'고 했지만 B사 입장에서는 자금회수(Exit)가 어려울 경우VC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안전장치라는 생각에 입맛이 썼다. 올 상반기 벤처캐피탈(VC)들의 신규 투자금액은 6,89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6.2%나 늘었다. 하지만 이처럼 풍부한 재원에도 불구하고 정작 벤처기업들이 느끼는 투자 분위기는 그리 녹록지 않다. VC가 내거는 과도한 조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계약서에 사인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10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VC가 벤처기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업계 통념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30~40%대의 지분이나 풋옵션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일반주에 비해 부담이 큰 BW(신주인수권부채권)와 CB(전환사채)발행을 원하는 사례도 최근들어 많아졌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요즘 만나는 VC들은 모두 CB를 달라고 한다"며 "우선주나 보통주에 비해 이자비용이 추가로 생겨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의 이유로는 우선 벤처투자 계약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 꼽힌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벤처투자는) 철저한 민사상의 계약이라 법 테두리 안에서만 진행하면 (조건에 대해) 특별히 간섭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투자를 매개로 무리한 담보 등을 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발견시 해당 VC의 운용보수를 삭감하는 등의 제재를 하고는 있지만 그 기준이 애매한데다 실질적으로 모든 계약을 점검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VC들도 할 말은 있다. 과도한 요건을 걸지 않고서는 자금 회수가 불가능할 만큼 투자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에 투자한 후 투자금과 이익을 회수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해당 기업의 IPO와 인수합병(M&A)이다. 금융정보회사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이뤄졌던 자금회수 방법 가운데 IPO는 91.3%, M&A는 불과 8.7%에 그쳤다. 같은 기간 90.2%가 M&A였던 미국과는 정반대다. 문제는 IPO를 통한 자금회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기청에 따르면 벤처기업들이 IPO에 나서는 것은 평균 업력 12년째인데 반해 벤처투자를 위한 VC들의 펀드 운용기간은 5~7년에 그친다. 나도진 벤처기업연구원은 "국내에서 창업 후 10년 이상 존속하는 회사는 연간 12% 수준인데다 1년에 상장하는 기업은 50~70개 뿐"이라며 "그러다보니 국내 VC가 상장직전 회사만 찾아다니거나 대기업에서 분사한 '무늬만 벤처'인 곳에 투자하는 등 단기적인 자금 회수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가 대안으로 보고 있는 M&A도 국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고종현 중기청 벤처투자과 사무관은 "국내 기업은 대부분 오너 경영으로 대표의 소유의식이 강한데다 권한 또한 막강해서 M&A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자금회수 방법으로 M&A를 염두에 두고 창업하거나, 이사회의 힘이 세서 M&A 결정이 용이한 미국과는 인식부터가 다른 셈이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M&A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당국의 노력을 주문한다. 나 위원은 "한계기업의 경우 M&A를 통해 회생하고 VC는 빠른 자금회수가 가능하도록 하는 M&A 조정 위원회를 당국에서 만드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