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A사장은 이건희 회장과의 지난해 초 면담 당시 상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보직을 새롭게 받은 그는 이 회장의 호출로 승지원을 찾았다. 이 회장은 A사장을 응시하면서 해당 사업부의 역대 최고경영자(CEO)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더니 "이제 글로벌 1등을 할 때가 됐다"며 "당신이 해줘야지"라고 언급했다. A사장은 "자신도 기억하기 힘든 역대 사업부장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며 "1등 해야지"라는 말에 식은땀이 흘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을 여러 차례 면담했던 B사장은 "회장에게 과장된 보고는 죽음과 같다"고 말했다. 일부 CEO들이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과장된 경영수치 등을 이야기하면 이 회장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지키시지요"라고 말한다. 만약 이 CEO가 보고한 수치를 지키지 못하면 그는 사장 자리를 내놔야 한다. 그렇다 보니 그는 후배 CEO들에게 "(회장 보고 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절대로 숨기거나 과장하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독특한 화법 역시 면담한 CEO나 임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C사장은 "(이 회장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치 큰 그림을 그리듯 이야기하고 세부 그림은 CEO들이 잘 그리라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D사장은 "회장님의 말 한 마디를 곱씹어 보면 큰 그림을 꿰차고 있다는 느낌이 듣다"며 "워낙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분이다 보니 회장님의 의중을 잘못 해석해 어려움에 처한 CEO도 있다"고 강조했다.
CEO 등 보고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뒤 본인의 의사를 '짧게,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 회장의 평소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이 회장도 보고를 받은 뒤 불같이 화를 낸 적도 적지 않다.
E사장은 "최근 현안에 대해 이 회장께 보고하는 자리였다. 사정이 이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담당 사업부장이 이야기했다"며 " 그러자 (이 회장이) 크게 화를 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회장을 면담한 CEO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는 '사람을 볼 줄 알고, 통솔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요약된다. 그렇다 보니 이 회장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벌거숭이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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