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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제동걸린 미국 '그로스업' 관행

"고액연봉 CEO에 세금도 대납해주나" 주주들 비난 거세<br>호황기엔 "좋은실적 위해 최고대우 필요" 정설로 통했지만<br>경기침체 장기화따라 손실 커진 투자자들 철폐요구 잇달아<br>S&P500 기업중 43개사 폐지·축소등 동참 분위기 확산





세계 1위의 PC업체 휴렛패커드(HP)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허드. 마크 허드는 지난해 스톡옵션을 포함해 3,400만 달러의 보수를 챙겼고 미국 내 고액 연봉 상위 6위에 올랐다. 그와 그의 가족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여름 휴가 등 개인적인 일에 회사 전용기를 공짜로 이용하면서 4만8,612달러를 보상 받았다. 여기에는 여행 중 사용한 음식값 4,117달러 까지 포함돼 있다. 마크허드와 함께 HP의 고위직들도 이 같은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개인 용무로 회사 전용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없다. HP는 올해부터 회사 전용기를 '그로스업'(Gross-up) 규정에서 제외시켰다. HP가 그를 비롯한 고위 임원에 대한 혜택을 줄인 것은 향후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 경비를 줄일 필요가 있기도 했지만 고액 연봉에 대한 투자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작용했다. HP는 지난 1ㆍ4분기 경쟁사에 비해 선방하긴 했지만 순익이 18억5,000만 달러를 기록, 1년 전에 비해 13%나 줄었다. HP대변인은 "이 같은 조치는 관행적인 것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HP는 다만 파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 "우리는 매우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가 지급하는 보수에는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CEO들이 실제로 쥐는 돈은 그 만큼 줄어들게 된다. 줄어드는 부분 만큼을 회사가 각종 명목으로 보전해주는 것이 바로 그로스업 규정. 그로스업은 미국 기업의 오랜 관행이다. 일례로 아메리칸 일렉트릭 파워의 마이클 모리스 CEO는 생명보험료 등으로 지난해 10만4,362달러를 보상 받았고 홈데포는 CEO인 프랭크 블레이크에게 회사 전용기, 보험료 등 명목으로 7만1,200달러를 지불했다. 그로스업 규정에 대해 주주들은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것도 모자라 세금까지 회사가 대신 내준다"며 비판해왔다. 그렇지만 호황기에 이 같은 지적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서는 최고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 정설로 통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실적도 비교적 건실했다. 하지만 경기가 침체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적 부진에 따른 주가 급락과 배당금 축소로 큰 손실을 입게 된 주주들이 CEO의 고액 연봉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로스업 규정 철폐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월가 CEO의 보수를 50만 달러로 제한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힘을 얻고 있다. 월가 금융기관들이 천문학적인 세금을 받아간 것도 모자라 '보너스 잔치'까지 벌이자 폭발했던 분노가 이제 일반 기업의 고액연봉 관행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미국 기업의 CEO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고액 보수를 챙긴다. 5년 만에 줄어들긴 했지만 지난해 미국의 200대 주요 대기업 CEO의 평균 보수는 무려 1,080만 달러에 이른다. 일반 노동자들 보다 수백 배나 많다. 반면 주주들은 주가가 급락한 것도 모자라 주 수익원인 배당금이 급감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지난 1분기 770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더구나 제너럴일렉트릭(GE)이 올 하반기 배당금을 68% 삭감키로 하는 등 향후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전미 연방ㆍ주정부ㆍ자치단체 피고용자노동조합(AFSCME)는 최근 5개 회사에 대해 그로스업 규정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주가 하락과 배당금 삭감으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고위 임원에 대한 고통분담을 요구한 것이다. AFSCME의 리처드 퍼러토 이사는 "회사 실적과 경영진 보수간에는 연관 관계가 전혀 없다"면서 "모든 미국인은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회사 임원들은 (그로스업 규정을 통해) 이를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요구는 텍스트론과 노스롭그루먼이 그로스업 규정을 완전 철폐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노스롭그루먼의 로널드 슈거 CEO는 "이번 조치가 주주들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몇몇 회사의 임원들은 자발적으로 특혜를 반납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최고관리담당자(CA0)인 토머스 나이드는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통근하는 데 따른 회사의 보상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다. 그는 지난해 이 같은 명목으로 7만3,950달러를 챙겼다. 심지어 고액 연봉을 챙기는 CEO를 기피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주주행위 대리 전문 컨설팅업체들은 과도한 그로스업 규정을 이유로 들어 최근 몇몇 회사의 CEO의 재선을 반대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기업 임원들의 보수를 연구해 온 이퀄러(Equilar)가 최근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500 지수를 구성하는 회사들 중 43개사가 그로스업 규정을 철폐하거나 축소했다. 보석전문 업체인 티파니는 최근 경영진에 대한 세금관련 그로스업을 모두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의 CEO인 마이클 코월스키가 지난해 생명보험료 등의 명분으로 보상받은 돈은 13만6,560 달러. 티파니 대변인은 "그로스업으로 인해 회사의 부담이 큰 것은 물론 주주들에게도 평판이 좋지 않다"며 철폐 이유를 밝혔다. 이번 그로스업 규정 폐지는 퇴직 보너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했다. 이로 인해 티파니는 향후 발생할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티파니가 다른 회사에 인수돼 코월스키 CEO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경우 퇴직보수 2,080만 달러와 세금 보전명목으로 770만 달러를 줘야 한다. 저장장치 업체인 EMC는 역시 '황금 낙하산'(Golden parachute) 관련 보상을 없애기로 했다. 이로써 EMC가 올해 안에 다른 회사에 인수될 경우 임원에 대한 보상금을 10% 줄일 수 있게 된다. 내년에는 세금 그로스업을 모두 없앨 예정이다. EMC측은 "이 같은 조치가 회사와 경영진의 이익을 조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퇴직 보너스와 같은 '황금 낙하산' 규정은 회사의 인수ㆍ합병(M&A)를 막는 큰 걸림돌이었다. 임원 보수 컨설팅업체인 왓슨와트월드와이드의 이라 케이는 "황금낙하산은 주주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줬다고 지적했다. 리스크 메드릭스 사의 패트릭 맥건 상담역은 "많은 기업들의 이사회가 현재의 격동적 기업경영 상황이야 말로 오용되고 있는 이 같은 급여 관행을 없앨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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