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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독립 큐레이터는 '문화 독립군'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큐레이터 직군은 상류층의 호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 화려하게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또 '신정아 사건' 등으로 인해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의 상당 부분이 왜곡돼 있다. 하지만 큐레이터의 진짜 삶은 다르다. 박봉에 고용이 불안정하다. 생각보다 훨씬 고달프다.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독립 큐레이터 이원일 씨가 51세의 나이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이 13일 오전 한국큐레이터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일반적으로 큐레이터가 미술관이나 재단에 소속돼 일하는 것과 달리 이원일씨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였다. 군인으로 말하자면 게릴라요, 역할로 따지면 독립군 격이다. 고인은 한국미술을 국제무대에 알리는 것에 대한 강한 애착과 사명감을 가졌다. 토탈ㆍ성곡ㆍ서울시립미술관을 거친 그는 광주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의 전시감독을 역임했다. 지난 2004년 독립선언 후 세계를 누비며 상하이비엔날레, 독일ZKM 아시아현대미술전, 스페인 세비야비엔날레, 프라하비엔날레 등의 총감독ㆍ공동감독을 맡아 한국작가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북돋았다. 작가 섭외부터 지원금 확보까지 동분서주했지만 자신이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아니었고 국내에서는 그의 공을 알아주는 이도 적었다. 문화 선진국의 경우 국가가 앞장서서 주도하는 '자국미술의 세계 홍보'라는 과업을 그 혼자 짊어지고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생전에 만난 고인은 열흘 동안 서울ㆍ베이징ㆍ뉴욕ㆍ뭄바이ㆍ밀라노를 거쳐 돌아온 2007년의 출장일정표를 보여준 적 있다. 체력은 자신 있다던 그도 강행군을 못 견뎠던지 국제심포지엄 도중 고막에서 혈관이 터져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결국 일찍 세상을 뜬 원인이 됐다.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독립 큐레이터에게도 합당한 지원이 필요하다. 전시기획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도록 등 출판물 지원도 병행돼야 외국에서도 우리 미술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씨와 가까웠던 한 미술계 인사는 "생전에 그는 척박한 우리 미술계에서 국제적인 기획자로 살아가는 건 무척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었다"라며 긴 한숨으로 그를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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