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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1월4일] <1233> 테헤란 인질사건


1979년 11월4일 아침6시30분. 대학생 300여명이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의 담을 넘어 들어와 외교관과 가족 53명을 인질로 잡고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팔레비를 송환하라!’ 미국은 지병인 췌장암 치료차 온 팔레비 전 국왕의 송환을 거부하고 해군 함정을 페르시아 해역에 보냈다. 이란은 끄떡하지 않았다. 팔레비 왕정을 붕괴시키고 회교혁명을 이룬 이란의 회교 지도자 호메이니옹은 협상파인 바자르간 총리를 해임하고 미국과 관계를 끊었다. 인질이 석방된 것은 1981년 1월 말.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 직전에야 풀려났다. 인질이 억류된 444일 동안 미국은 뭘 했을까.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1980년 4월에는 ‘독수리 발톱 작전’으로 명명된 인질 구출작전에 특공대를 투입했으나 헬리콥터와 수송기가 고장 나는 통에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인질사태 장기화는 세계경제에 충격을 안겼다. 먼저 금(金) 가격과 금리가 요동쳤다. 사태 직후 미국이 뉴욕연준 지하창고에 예탁된 이란의 금 비축액을 동결하자 품귀현상이 일었다. 마침 미국 경기가 바닥을 기던 시절, 금은 안전자산으로 선호되며 온스당 가격이 430달러에서 단숨에 850달러로 치솟았다. 가장 큰 변화는 카터 대통령의 재선 실패. 대신 ‘강력한 미국’을 주창한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가 40대 미 대통령에 올랐다. 카터의 퇴진과 함께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경제를 지배하던 케인스 경제학 시대도 막을 내리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이란 인질사태로부터 30년째를 맞은 오늘날 경제침체로 세계는 케인스 경제학으로 돌아가고 있으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당시에 단절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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