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깨알 지시가 경제대책이나 대북 문제 등 굵직한 이슈부터 민원카드 작성과 같은 작업 업무까지 이어지면서 박 대통령의 발언이 한 회의에서만 1만자(字)가 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지난달 14일 국무회의에서는 총 8,000자 분량의 발언을, 같은 달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1만2,000자에 달하는 지시사항을 쏟아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일일이 문제점을 적시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적 리스크를 높일 뿐 아니라 총리나 장관ㆍ여당의 입지를 크게 좁힐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책임총리ㆍ장관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요 회의에서 받아쓰기에 바빠 정수리만 보이는 국무위원들은 박근혜 정부의 불통의 한 단면으로 국민에게 비쳐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책임장관은 장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이 약속한 것들을 책임지고 실행하라는 뜻"이라며 책임장관제에 대한 의미를 축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여당조차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 "총리나 장관들의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나"라며 "'만기친람(萬機親覽ㆍ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살핌)'식 국정 운영이 계속되면 결국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 대통령은 정치적 스킨십을 더욱 넓혀나가야 한다"며 "'나 홀로'라는 지적은 결국 '불통'이라는 비판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고위관료를 지낸 여권의 한 의원은 "취임 초 박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을 충분히 전파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국정의 큰 방향과 주요 이슈를 관리하면서 세부 사안은 내각이 챙길 수 있게 여백을 남겨놓는 것이 원활한 국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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