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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의 중소기업이 너무 많은 반면 중견기업이 적어 '병목현상'이 심하므로 중견기업 지원을 강조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심각한 통계 왜곡을 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은 자영업 부문이 워낙 비대해 10인 미만 소상공인을 포함해 중소기업수를 계산하면 외국에 비해 중소기업 수가 훨씬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이 같은 특수한 상황을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 탓으로 둔갑시켰다는 것.
대한상의는 16일 '중소기업 성장 촉진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를 내고 한국이 경제규모에 비해 중소기업이 과도하게 많지만 중견기업은 몇 개 안되는 만큼 "중견기업에 대해 각종 조세, R&D 등 지원을 계속 해주고, 규제는 유예해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대한상의는 10인 미만 소상공인 비중이 92.1%로 일본의 79.3%, 미국의 61.6%보다 훨씬 높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대한상의는 이 같은 수치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GDP 1억 달러당 중소기업 수가 307개로 미국의 7배, 일본의 3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한상의는 이런 산업구조가 중소기업 성장 과정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 수가 적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에대해 중소업계에서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보다 두배나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의 경우 소기업수가 많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잘못 해석했다고 보고 있다. 자영업자 수가 많아 중소기업 수가 외국에 비해 과다하게 나오는 건 당연한데, 이를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해서'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근로자 수 1~9인 이하 소상공인에는 식당, 여관 등 자영업이 포함된다"며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8.8%로 미국 10%보다 2.8배나 높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지난해 통계청은 국내 자영업자 수가 2012년 상반기 동안 40만명이나 급증해 총 600만명이나 된다며 이 중 상당수가 50대로 이들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도소매업 및 숙박·음식업 등 생계형 자영업에 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중소업계는 공급 과잉인 자영업 부문을 포함한 중소기업수가 많다는 점만 들어 중견기업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건 논리의 비약이라고 있다. 92.1%인 10인 미만 소상공 기업이 중소기업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300인 이상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는 데 중견기업 지원을 강화해야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소상공 기업이 10인 이상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고, 나중에 300인 이상의 중견기업으로 커나가는 게 상식"이라며 "소상공인 기업 숫자가 많다고 중견기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건 어폐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대한상의의 입장에 대해 중소업계에서는 중견기업위원회를 만들어 중견기업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최근 분위기에 편승,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분별하게 지원만 늘린다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아닌데도 새정부 출범 시기에 맞춰 중견기업들이 밥그릇 챙기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최근 들어 중견기업 지원 강화 주장이 쏟아지는 데는 중견기업 유관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게 또다른 배경으로 풀이된다. 중견기업의 정의 조차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한상의 중견기업위원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특별위원회, 중견기업연합회, 글로벌 전문기업 포럼 등이 최근 3~4년 사이에 출범,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중소업계에서는 이들 중견기업 단체들이 지난 2011년 관계사 제도 도입 이후 1,500개 중견기업들이 기업쪼개기로 중소기업 혜택을 못받게 되자 중소기업 지원을 연장하기 위해 전면적인 로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작정 지원만 늘린다고 제대로 된 생태계가 구축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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