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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시곗바늘… 함께 할 수 없는 시간의 애틋함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플라시보)'. 은박지에 싸인 레몬색 사탕 500kg으로 이뤄진 설치작품으로 관객이 사탕을 집어먹더라도 미술관에서 다시 채워둔다. /사진제공=삼성미술관 플라토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완벽한 연인들)' /사진제공=삼성미술관 플라토

나란히 걸린, 똑같이 생긴 두 시계는 동시에 전지를 넣어 초침까지 같은 시간을 가리키도록 설정됐다. 시간이 일치하는 관계.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처럼 완벽한 연인이 어딨을까? 하지만 영원히 함께할 듯하던 이 시계들은 기계의 아날로그적 차이로 자연스럽게 어긋나기 시작하고, 죽음이 같은 시간에 오지 않듯 결국 한 시계가 먼저 멈추게 된다. ‘무제’인 이 작품은 쿠바태생 미국 작가인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1957~1996)의 대표작이며‘완벽한 연인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쿠바 난민으로 스페인의 고아원과 푸에르토리코의 친척집을 전전하다 22살에 뉴욕으로 옮겨간 작가는 보수파가 집권하던 1980~90년대에 유색인종,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로서 변방의 소수자로 자신의 정체성 그 자체였던 인물이다. 영리하게도 작가는 비주류성을 내세우지 않고 주류 미술계 시스템을 활용해 자신의 예술성을 확보했다.

1988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채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38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오히려 사후에 더 빛났다.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망자(亡者)임에도 미국관 대표로 선정됐고, 지난해 이스탄불 비엔날레는 그의 작품을 주제로 열렸다. ‘현대미술의 신화’인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21일 개막됐다.

앞서 본 시계는 작가가 에이즈 투병 중 먼저 세상을 뜬 일생의 연인 로스 레이콕과 함께한 시간의 애틋함을 반영하고 있다. 전시제목인 ‘더블(Double)’은 외로운 타자였던 작가가 추구하던 짝과 쌍이며 한편으로는 같은 것들의 사랑, 즉 동성애적 욕망을 은밀하게 시사한다. 이번 전시는 총 44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관객은 미술관 밖에서 그의 작품을 먼저 만나게 된다. 옥외 광고판(빌보드)으로 걸린 빈 침대 사진. 새하얀 시트와 움푹 패인 베개는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함께 누워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작가는 연인이 사망하던 1991년에 이 대형 사진 설치작품을 제작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침대가 연상시키는 자신만의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시적인 은유와 정치적 발언을 동일 선상에서 동전의 양면으로 돌리듯 ‘갖고 놀았다’. 이 작품은 태평로 삼성생명빌딩, 명동 신세계백화점 맞은편, 6호선 한강진역 등 6곳에 설치됐다.



플라토 전시장 안쪽에 설치된 ‘무제(플라시보)’는 500kg의 사탕을 반듯한 사각형으로 배치한 작품. 작가 생존 당시의 주류미술이던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닮아 군더더기 없는 기하학적 완성미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관객이 조금씩 사탕을 집어먹으면서 형태는 일그러진다. 점잖은 미술관에서 사탕을 빨아먹는 행위는 불경스러우나 달콤한 에로티시즘을, 줄어들다가도 곧 다시 채워지는 사탕은 소멸과 부활과 재생에 대한 작가의 열망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은 50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는데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보증서 그리고 재료와 함께 제공되는 설치안내서로 이뤄진 그의 작품은 소장가나 큐레이터가 임의로 개입해 변형시킬 수 있으며 누구든 흉내낼 수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열광한다. 이 점 또한 작가의 신화적 역량이다. 전시는 9월28일까지.1577-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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