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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4/동베를린 전관공장(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입력1996-12-26 00:00:00
수정
1996.12.26 00:00:00
박은주 기자
◎끈끈한 노사바탕 고품질승부 4년/독에 “코리아 브라운관” 철옹성/고객요구 즉각반영 「거리좁히기」성공 2년째 흑자로/“멀티시대 대비동구공략 가속”… 고부가품 개발 도전89년 통일의 격정에 휩쓸렸던 베를린은 지금 신도시건설 공사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2000년까지의 수도 이전 계획에 따라 외교 행정등 관청가는 물론 세계적인 다국적기업, 문화공간까지 베를린에 주소를 갖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도처에 기중기와 포크레인, 산처럼 쌓인 자재들은 통일 독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처럼 보인다. 삼성전관 베를린 공장이 위치한 곳은 구동독 지역의 쾨페니크구. 베를린 도심서는 15㎞가 떨어져 건설현장의 어수선함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의 산업화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 그래서 한때는 7만명의 노동자들로 만원을 이루었던 곳이 바로 쾨페니크 지역이다. 하지만 통일후 생산성이 낮은 국영기업들을 대량 정리하는 바람에 이 지역의 영화도 이제는 옛 추억이 돼버렸다. 자본주의 경쟁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 기업이 늘어났고, 주민들의 살림살이도 예전만 못해졌다.
베를린이 분단의 상징이 아닌 통일의 새도시로 거듭나려 하듯, 이곳 쾨페니크 지역도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 작업의 최선두에 선 기업이 바로 삼성전관 베를린 현지공장. 과거 구동독기업을 인수한 AEG의 변압기 공장이 금년말 철수를 예정하고 있고, 케이블 공장을 인수했던 영국의 BICC공장이 경영난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을 고려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삼성이 쾨페니크 공단의 부흥을 책임지고 있다는 말은 겉치레가 아니다.
삼성전관이 말레이시아에 현지공장을 세운뒤 유럽지역의 거점으로 추진한 곳은 당초 영국이었다. 때마침 구동독 기업을 불하중이던 독일 신탁청으로부터 전관공장을 인수해달라는 제의가 있었고 「조건」도 좋은 편이라 전관으로서는 한번 덤벼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설비와 기반시설을 싼값에 받는 대신 삼성이 해야 할 일은 공장을 「가동」시키고, 실업자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당시로서는 최소한 공장을 돌아가게 하는 조건으로도 인수자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는 얘기』라는 게 김인 법인장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1901년 독일 AEG의 자동차 회사로 설립된 이후 1950년 흑백 브라운관 생산, 84년 칼라 브라운관 생산등 브라운관에 관한 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업 인수는 어쨌든 남는 장사였다.
게다가 총자산 1억9천9백만 마르크를 헐값인 5백90만 마르크에 인수하고, 앞으로의 투자에 대해서는 독일 정부로 부터 지원금까지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최소한 3억달러(2백40억원정도)는 들었어야 할 각종 시설과 설비를 거의 무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삼성은 막상 진출하고 보니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삼성은 특유의 기동력과 효율성을 발휘했다.
우선 공장의 공간부터 효율적으로 재배치했다. 사무실과 창고를 재배치하고 제품 한개를 생산하는 데 거쳐야 할 총 라인 길이를 12㎞에서 3㎞로 단축시켰다.
그간 1억달러의 자금을 투자해 자동화 설비를 갖추었고, 내년엔 추가로 1천만 달러를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의 67% 정도인 생산성을 내년 한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이다. 물론 시간당 27달러로 말레이시아에 비해서는 9배, 한국에 비해서도 2배가 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유럽 수출 기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다져 놓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게 이곳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브라운관 1대를 생산하는 데 드는 총비용을 비교하면 한국의 경우 1백12마르크, 독일에서는 1백18마르크로 독일이 비용부문에서 약간 불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지 진출을 결정하는 데는 비용 문제만 생각할 수 없다. 이제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인건비같은 코스트 절감보다는 향후 세계화 공략의 전진 기지의 물색에 있다』는 게 김법인장의 생각이다.
특히 삼성전관이 높은 인건비와 열악한 사업 여건에도 불구, 굳이 동베를린 지역에 기반을 내리는데 애를 쓰고 있는 것은 동독의 삼성코닝 공장과 2시간 거리, 포르투갈의 삼성전기 D.Y 편향코일 공장과도 가까워 앞으로 서유럽 시장은 물론 동구권 시장까지 엿볼 수 있다는 이점이 여전한 매력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럽 내에 생산 기반은 고객과의 「거리 좁히기」 정책의 일환이다. 유럽내 고객들의 다양한 욕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현지 공장이 필수적이다.
93년 1월 공식 인수 후 3년6개월 남짓. 지난 95년의 브라운관 생산량은 2백40만개·2억6천7백만 마르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인수 2년만에 처음으로 1백20만마르크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2백70만개를 생산해 3억5천만 마르크의 매출을 기록, 여전히 흑자기조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20, 21인치 브라운관 생산에 주력해왔으나 연말부터 25인치 브라운관 생산에 돌입하고 대형브라운관 시장에 대비, 28인치 와이드 브라운관 생산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이렇듯 독일서의 「안착」에는 드세기로 소문난 노조와의 화합도 큰 몫을 했다.
『완숙단계의 노조는 비합리적인 요구는 하지 않는다』는 게 삼성관계자들이 그간 얻은 교훈이다. 노사가 동수로 참여하는 노사협의회서 품질과 인사, 노동조건등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임금 인상률은 산별 노조서 정하기 때문에 정작 사측이 실랑이를 벌여야 할 일도 별로 없다. 이방인 기업주로서는 안심되는 부분이다. 93년부터 95년까지가 안착의 해였다면 96년부터 98년까지 3년간의 제 2단계 성장전략의 원년의 해다. 첫 해 성과는 좋았다.
이제 남은 일은 「질중심」의 경영 체제를 갖추는 일이다. 오는 98년 이후에는 기술력을 배양, 본국에 대한 기술 의존도도 낮추고 다국적 기업군들과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대비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승부한다. 이렇다할 다국적 기업들도 손을 든 구 동독기업 경영. 또다른 신화의 현장으로 보였다.<베를린=박은주>
◎김인 독 전관공장 법인장/“현지인 동질감 갖게 모든 경영정보 공개”
『땅을 고르고, 상수도관을 묻는 기본 작업은 이제 끝마친 상태입니다. 이제 튼실한 집을 쌓아올리는 일만 남았다고 할까요.』
74년 삼성물산에 입사, 무역통으로 커온 김인 법인장은 요즘 한숨 돌렸다. 거물급 외국 기업들도 기권을 하고만 척박한 구동독 지역에서 삼성은 순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진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내에서 생산해 전세계로 수출한다는 것은 듣기에 좋은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지역별 생산기지를 확충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제안이 배를린 진출을 결심하게 한 요인이다. 유럽 지역 뿐 아니라 동구권 지역 진출의 교두보로도 이지역은 의미가 있다.
세계 유수 기업들도 포기한 이 지역에서의 성공 비결은.
▲삼성이 경영한 기업치고 부실기업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근거없는 자만심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본사의 기술 자금 마케팅 지원이 튼실한데다 삼성의 조직 매니지먼트 역시 수준급입니다. 독일 노총의 연수단이 삼성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단체 견학을 신청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지요.
독일 노동자들 다루기 쉽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조직관리의 비법은 무엇인지요.
▲전산네트워크 「핸드 인 핸드」시스템을 통해 사내 정보를 공개합니다. 경영층으로부터의 메시지, 아이디어 제안코너, 벼룩시장등 활발한 정보를 교환합니다. 또 매주 목요일 하오 2시30분에는 「열린 목요일」행사를 갖고, 담당 임원이 직원대표들과 자리를 함께 해 생산 실적, 시장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생일 잔치를 치러주고, 작은 선물도 해주는 한국식의 경영은 이곳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독일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우리 회사」라는 동질감을 얻어낸 것이지요.
◎비건트 독 전관공장 개선담당관/“근로자 복지향상 삼성 과감투자 놀라움”
『통일후 문닫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직원들 사이엔 불안감도 적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삼성전관이 우리 회사를 인수한다는 사실에 처음엔 당황도 했구요. 하지만 이젠 정말 「우리 회사」란 생각이 듭니다.』
회사내 노조의 요구와 회사의 의견을 절충해 의견을 제시하는 일을 맡고 있는 개선담당관(매니저 이노베이션) 페트라 비건트씨(40·여)는 올해로 이 회사에 입사한 지 23년째인 베테랑 직원.
『93년 삼성이 공식 인수한 후로 직원들의 행동양식까지도 많이 달라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동독 시절엔 그저 입조심하고, 제 할 일만하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했었다고 한다. 쓸데없는 건의로 입방아에 오르거나 혹 사람들이 자신을 「정치적」인물로 보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복지부동」은 작업 여건이나 생산성이 나아질 수 없는 구조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생산실적표를 만들어 게시하고 매일 하오 1시30분 방송을 통해 그날의 생산실적을 직원들어게 알려주는 등 회사를 가깝게 느끼게 하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직원들의 생각을 많이 바꾸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기업 인수후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자해 시설을 갖추고 직원들 복리후생에 투자하는 것을 보고 삼성의 잠재력에 놀랐다』고 말한다. 그가 보는 삼성의 경쟁력은 품질이 좋고, 가격 경쟁력이 확보됐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윗사람 한사람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으나 독일인들은 근거를 일일이 설명을 해주어야 움직이기 때문에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서 의견 조율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게 비건트씨가 털어놓는 애로사항이다.
비건트씨는 삼성과 맺은 인연에 만족하면서 자신의 소망을 밝힌다.
『직장인이 승진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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