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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인물은 오래된 미술의 주제다. 이 같은 전통적인 주제를 현대미술가의 '혁신'적인 시각으로 다룬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컬렉션과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들 전시는 둘 다 기업미술관이 주축이 돼 감성마케팅에 영감을 제공한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풍경, 기억을 부르는 창=작가 문성식의 풍경화는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의 초상화인동시에 추억의 그림이다.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세밀한 연필 드로잉으로 자연과 고향마을, 도시를 그려온 문성식이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시도한 사인펜 신작을 내놓았다. 작가는 "표현의 강렬함과 그리는 재미가 커졌다. 나만 보고 있었던 세계를 작품으로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형, 동네 뒷산이 등장하는 소박하고 친숙한 주제지만 숭고함과 절실함이 배어있다.
하이트컬렉션의 '풍경'전은 내년 1월26일까지 계속된다. 전시회에서는 이외에도 추상화 된 자연을 보여주는 설원기, 자연의 부분을 스냅사진처럼 표현해 기억을 기록하는 이호인,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임동식 등 굵직한 한국작가와 엘리자베스 매길, 조지 쇼 등 외국작가들의 대표작을 볼 수 있다. 특히 현재 세계미술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작가 중 하나인 헤르난 바스의 작품도 5점이나 전시됐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연상케 하는 이글거리는 풀밭에 '호밀밭의 파수꾼'의 이미지를 배치하는 등 풍경 속에 문학적 서사를 감춰두는 바스 특유의 회화가 눈길을 끈다. (02)3219-0271
◇변장, 내가 아닌 나=변장과 가장무도회를 뜻하는 '마스커레이드(Masquerade)'는 화장품의 일종인 마스카라와 어원이 같고 화장술에 근간을 둔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 11월10일까지 열리는 '마스커레이드'전에서는 자기변형과 변장, 역할극 등으로 인물의 정체성을 바꾸는 16명의 국내외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토모코 사와다의 '학창시절'은 졸업앨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체사진이지만 40여명의 학생 모두가 변장한 작가 한 사람이 연출한 것을 알면 놀라움에 웃음마저 터뜨리게 된다. 교복과 머리모양, 표정 등으로 모범생부터 날라리 학생까지 표현함으로써 작가는 정형화 된 일본여성들의 정체성에 대한 문화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영국작가 앨리슨 잭슨은 고(故) 다이애나 비로 분장해 그의 연인이었던 도디 알-파예드와 혼혈인 사생아를 안은 채 성가족(聖家族ㆍ아기 예수와 부모인 마리아,요셉)으로 사진작품에 등장한다. 진짜라고 착각할 정도인 이 불경스럽고 도발적인 작품을 통해 작가는 왕실인물ㆍ스타ㆍ정치인에 대한 루머를 궁금해하는 대중의 '관음증'을 지적한다. 싱가포르 작가 밍웅은 이탈리아 고전영화 '테오레마'를 기반으로 혼자서 5명의 등장인물로 완벽하게 변장한 5채널 영상작품을 선보였다. 가면과 화장을 통해 인종과 성별, 현실적 존재와 비현실적 존재를 넘나들며 표현한 작가들의 30여 작품들에서 한편으론 기괴함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자신을 지우고 넘어설 때 새로운 자아와 혁신을 만날 수 있다는 깨달음도 함께 얻을 수 있다. (02)547-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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