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년 유럽은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루이 13세와 안 공주의 결혼이 깨질 위기에 놓여 있었고 런던에 온 스페인 대사는 영국 탐험가 월터 롤리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북유럽에서는 야심에 찬 스웨덴 왕이 러시아의 차르에게서 에스토니아와 리보니아를 탈취하고 프라하에서는 가톨릭 정부가 때마침 일어난 신교도의 봉기로 타도됐다. 유럽 전체가 정치ㆍ경제ㆍ사회적 혼란에 빠져 아비규환일 무렵 '30년 전쟁'은 시작됐다. 처음엔 종교간 갈등으로 시작됐지만 열강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으로 변질됐다. 이후 30년 전쟁은 유럽의 국경선을 확정한 전쟁이자 최초의 영토 전쟁으로 유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됐다. 영국의 역사학자가 쓴 책은 30년 전쟁 당시 상황을 역사적 사료와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복기했다. 1938년에 초판이 출간됐지만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증쇄를 거듭하고 있을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책의 특징은 단순히 30년 전쟁을 역사가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조명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깊이 통찰했다는 데 있다. 이는 작가가 이 책을 썼던 1930년대 후반의 시대 상황과 무관치 않은데 당시는 대공황의 여파와 히틀러 정권의 수립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때다. 현실을 지켜보던 작가는 300년 전 역사 속의 전쟁에 더욱 몰입하고 당시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책이 정책이나 상황 중심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서술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술주정과 학대는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무척 흔한 일이었다. 법은 정의롭기보다 가혹했고 행정은 효율성보다 폭력에 의지했으며 자선은 사람들의 요구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생활의 불편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너무도 자연스러웠다."(31쪽) 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돼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재현됐다. 10여개국의 복잡한 궁정 정치와 협상이 얽힌 전쟁의 줄기는 물론이고 그 뒤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용병, 가축과 곡식을 빼앗긴 농민들의 불행까지도 세밀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1963년판 책의 서문에서 "암울한 전쟁은 편협하고 비열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고위직에 있을 때 어떤 위험과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30년 전쟁에 대해 평가한다. 이어 "전쟁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며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당시 그들은 깨닫지 못했고 그 뒤로도 알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3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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