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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람에 40㎞로 질주했지만 느껴지는 체감속도는 70㎞. 대각선으로 바람이 불어오자 팀원 전체가 곡예사가 된다.'
지난 19일 코리아 매치컵 세계요트대회 예선이 열린 경기도 화성의 전곡 마리나를 찾아 러시아 팀의 KM36 요트에 직접 탑승해봤다.
이날은 바람이 약해 경기가 하릴없이 지연됐다. 팀원 5명은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아이패드로 음악을 듣거나 외투까지 벗어 던지고 뱃머리에 아무렇게나 엎드려 낮잠을 잤다. 수십분쯤 지났을까. 팀원들이 일제히 복장을 갖추고 제 위치로 돌아왔다. 일반인은 감지하기도 어려운 미풍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심판정(艇)에서 경기가 곧 시작된다는 신호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대회 주관사인 세일코리아의 윤상준 차장은 "선수들은 바람의 세기나 방향을 귀신같이 읽는다"며 "바람 파악이 어려운 일반인은 갈매기를 보면 된다. 수면에 앉은 갈매기는 예외 없이 바람이 오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린다"고 말했다.
바다 위 타원형 코스에서 시작된 1대1 레이스. 러시아 팀은 출발부터 한국 팀을 멀찍이 따돌렸다. 스키퍼(선장)인 코롤레프 니콜라이는 한 손으로는 스티어링 휠(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끊임없이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바람의 세기ㆍ방향과 경쟁 요트의 추격 상황을 판단해 작전을 전달하는 스키퍼는 경험이 최고의 덕목이다. 그래서 40대 이상이 주류를 이룬다. 요트가 첫 손가락을 다투는 인기 종목인 유럽에서는 주요 팬층도 50대 이상이다. 100세 시대의 대표 레포츠인 이유다.
다시 요트 위. 뒤바람이 불자 날다시피 물살을 가른다. 시속 40㎞의 질주. 체감속도는 70㎞에 이른단다. 맞바람이 불어닥치자 카본 섬유로 된 보조 돛을 달아 잔뜩 웅크렸고 머리 위에서 대각선으로 부는 바람에는 팀원 전체가 곡예사가 됐다. 오른쪽으로 전원 이동해 상체를 요트 밖으로 완전히 내놓으며 돛에 연결된 줄을 끊어져라 잡아당겼다. 요트는 반대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 뒤집어질 듯하면서도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결국 러시아 팀의 압승. 하이파이브하는 팀원들의 모습에 뱃고물의 기자도 그제야 안전 바를 쥔 손에서 힘을 뺄 수 있었다.
세계 10위권의 강팀들이 대거 출전하는 세계요트연맹(ISAF) 코리아 매치컵 본선은 다음달 30일 개막한다.
100세 시대를 맞아 요트가 인기다. 미미했던 요트 인구는 현재 1만명에 가까워졌다. 국토해양부는 오는 2019년까지 전국에 44개의 마리나(요트 정박지)를 마련해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요트 허브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요트는 '귀족 레저'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 대에 수십억원 하는 요트는 엔진에 의지하는 '파워 요트'다. 엔진을 사실상 쓰지 않는 '세일(Sail) 요트'는 크기도 작고(선체 길이 약 11m) 문턱도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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