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천원전에서 이창호에게 2대0으로 패한 창하오는 패배감에 잠깐 잠겼으나 곧 컨디션을 회복했다. 아내이자 코치인 장쉔8단 덕택이었다. “실망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요. 언젠가는 이기게 되겠지. 곧 다른 무대에서 다시 만날 테니 그날을 기약하기로 해요.” 장쉔은 이렇게 말하면서 창하오를 위로해 주었다. 장쉔이 말한 다른 무대는 삼성화재배와 LG배를 가리킨 것이었다. 삼성화재배 본선은 9월7일 한국의 유성에서 열릴 예정이었고 LG배 8강전은 11월 15일에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창하오는 삼성화재배 본선1회전에서 한국의 김동엽7단을 꺾고 2회전에서 조훈현과 격돌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조훈현과의 한판 승부는 시종일관 난투였다. 그 바둑을 창하오는 백으로 1집반 이겼다. 여러 차례 패싸움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조훈현이 굉장한 이득을 거두었으나 창하오가 원래 두텁게 짜놓은 판이었으므로 뒤집어지지 않았다. 장쉔은 그 기보를 여러 차례 복기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전투할 때마다 피를 흘렸으나 전쟁은 승리로 끝났어. 이게 바로 대륙인의 저력이지. 이미 당신이 조훈현9단을 넘어섰다는 증거야.” 한달의 공백기를 거쳐 8강전이 인천에서 속개되었다. 8강전 상대는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그 사람, 바로 이창호였다. 모처럼 흑번이 된 창하오는 몇가지 포석 구성을 해가지고 대국장에 나갔는데 이창호가 백4를 삼삼에 두는 것이 아닌가 . ‘그렇다면’ 하고 창하오는 호쾌한 세력바둑을 두기로 작심을 했다. 흑9는 세력바둑의 요령. 이 수로 가에 받으면 백은 나로 벌리게 되는데 그런 진행은 기착점인 흑7이 무색하게 된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