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의 향방을 좌우할 또 다른 관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네덜란드 총선이 친(親)유럽 정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독일과 네덜란드가 주도해온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긴축정책이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르크 뤼터(사진) 네덜란드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12일(현지시간) 총선 결과 의회에서 전체 150석 중 41석을 얻어 다수당 자리를 지켜냈다. 최근 선풍적 인기를 모은 중도좌파 노동당은 39석에 그쳐 분루를 삼켰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유로안정화기구(ESM) 합헌 판정에 이어 네덜란드 총선에서도 중도정당이 승리하면서 유럽 재정위기가 일단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뤼터 총리는 선거의 윤곽이 드러난 이날 밤 헤이그 비치사이드호텔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사상최고의 승리를 거뒀다"며 "오늘밤은 승리를 즐기고 내일부터 내각구성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디데릭 삼솜 노동당 당수는 뤼터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패배를 인정하고 축하인사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총선에서 극우ㆍ극좌파 정당들이 약진한 그리스와 달리 네덜란드 유권자들은 안정을 택했다. 지난 4월 긴축정책에 반발해 연정을 해산한 반(反)이슬람 성향의 극우 자유당은 총 16석을 얻는 데 그쳐 의석이 도리어 8석이나 줄었으며 유로존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온 좌파 사회당 역시 기존 15석에서 한 석도 추가하지 못했다. 특히 "스페인ㆍ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은 '깨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며 "유로존은 물론 유럽연합(EU)에서도 탈퇴하자"고 주장해온 헤이르트 빌더스 자유당 당수는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만일 급진정당이 네덜란드 정권을 차지할 경우 간신히 모양새를 갖춘 유로존 위기의 해법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네덜란드 유권자들이 유로 회의론을 거부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칼 빌트 스웨덴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급진정당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은 명백히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연정이 어떤 식으로 구성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현재로서는 긴축정책을 지지하는 자민당과 노동당이 손잡고 안정적인 양당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크지만 두 당 모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뤼터 총리는 이날 "어느 당을 연정 파트너로 고를 것이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일각에서는 자민당이 지나치게 덩치가 커진 노동당 대신 중도 성향의 기독민주당이나 민주66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네덜란드 총선 결과는 오는 17일 공식 확정되기 때문에 연정구성 문제는 다음주께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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