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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푸엔테스와 식목일

구제금융 스페인 휴가까지 줄여<br>정규직 보호로 청년실업률 50%<br>현대차는 툭하면 유급휴일 늘려<br>중국 따돌릴 생산성 향상 나서야


몇해 전 스페인에 출장을 갔다가 이슬람 건축문화의 정수라는 알람브라 궁전을 찾은 적이 있었다.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더니 일부 유적에는 천막이 둘러쳐 있어 관람 자체가 불가능했다. 현지 가이드의 말로는 몇 년째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 11%가 관광사업으로 먹고 산다는 나라가 참 한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에서는 물건 사기도 쉽지 않았다. 점원도 잘 보이지 않는데다 시큰둥한 것이 마치 살 테면 사고 말 테면 말라는 식이다. 사람들이 참 여유롭게 사는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에서는 이러다가는 곧 망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던 스페인이 얼마 전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듣자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부터 대뜸 들었다. 스페인에서는 일찍부터 푸엔테스(다리)라는 독특한 휴일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공휴일이 주 중반에 돌아오면 사흘간의 유급 휴가일을 징검다리처럼 배치해 주말까지 내리 쉬도록 만드니 툭하면 공장이 멈춰서기 마련이다. 노조에서는 올해부터 공휴일을 아예 월요일로 옮겨버려 조합원들이 푸엔테스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바꿨다고 한다. 경제가 워낙 안 좋다 보니 휴일을 줄여서라도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을 들여다 보면 여러모로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 저축은행 부실이나 부동산 거품, 지방정부의 재정 파탄 등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기업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나 경직된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은 과거 군사독재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우대하는 바람에 노조 파워가 유럽에서도 가장 강한 곳으로 유명하다. 양대 노동단체인 노조연맹(CCOO)과 노동총연맹(UGT)은 현장조직을 장악하고 정치권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규직만 물가연동 임금제를 적용 받는 등 과잉 보호가 이뤄지다 보니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는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정규직 한 명을 고용하려면 2년치 연봉을 미리 적립해야 하고 해고할 경우 퇴직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지급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대기업들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나 50%에 달하는 청년 실업률이 사회문제로 비화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도 기득권에만 집착하는 대기업 노조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현대자동차에는 노조의 요구에 따라 약정휴일이라는 것이 실시되고 있다. 오래 전에 법정 공휴일에서 빠진 식목일이나 제헌절 같은 날도 관행대로 유급휴일로 간주해 아예 공장을 세우거나 특별수당을 주고 있다. 한해 절반인 170일을 유급 휴일로 사용하고 있는데도 노조에서는 여름 휴가비와 명절 귀향비까지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조에서 라인에 투입되는 인원이나 차종, 물량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다 보니 회사로서는 시장상황에 따른 탄력적인 차량 생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 노조 간부들도 베이징공장을 직접 둘러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 공장처럼 생산라인이 돌아가는데 한가하게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베이징공장이 '현대속도'라는 신화를 창조한 것도 울산공장을 훨씬 웃도는 높은 생산성과 근로자들의 뜨거운 열의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물론 생산차종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도 대표적인 강점 중의 하나다. 베이징 공장은 몰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이달 중 3공장을 준공하고 현지 100만대 생산시대를 앞당긴다는 전의까지 불태우고 있다.

현대차 노조도 이제 소중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무엇보다 경제가 어려운데 식목일에 노는 회사가 현대차 밖에 없다는 얘기는 더 이상 듣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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