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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벌금형과 사회적 약자 배려


오영근교수


벌금형은 범죄자를 가두지 않고 그에게 일정 금액의 납부를 강제하는 형벌이다. 벌금형은 악풍 감염이나 범죄 학습과 같은 구금형의 폐단을 방지하고 범죄인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해 사회 복귀를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 아울러 일정액 납부라는 경제적 고통을 부과해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고 재범을 예방하려는 목적도 지니고 있다. 벌금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벌금 미납자를 노역장에 유치한다.

납부 어려울땐 봉사·연기 등 선택 가능

최근 벌금을 못 내 노역장에 유치돼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이자로 벌금 낼 돈을 빌려주는 곳이 생겼다고 한다. 시민 모금을 재원으로 하는 인권연대의 '장발장 은행'이다. 당장 돈이 없어 벌금을 못 내고 노역장에 유치돼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제도이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는다는 취지가 매우 좋아 보인다. 하지만 혹여 벌금을 내지 않아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람이 마치 억울한 피해자이고 국가가 이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부여하는 것처럼 본질이 왜곡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벌금은 형벌이고, 형벌은 엄격하고 공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만일 국민 성금으로 마련된 기금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 이를 갚지 않는다면 범죄인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게 되고 결국 범죄인이 납부해야 할 벌금을 범죄 피해자인 사회가 납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형벌의 일신전속성에 반하고 경제적 고통 부과를 통한 범죄 예방이라는 벌금형의 기능도 심각하게 훼손할 수밖에 없다.

현행법상에도 벌금을 즉시 납부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가 노역장에 유치되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첫째,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은 사람은 사회봉사를 통해 벌금을 납부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지난해 7,096명이 사회봉사를 신청해 6,834명이 벌금을 탕감받았다.



둘째, 벌금을 나눠 내거나 납부를 연기할 수도 있다. 기초생활수급권자, 장애인, 본인 외에 가족을 부양할 자가 없는 경우, 1개월 이상 장기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실업급여 수급자 등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이 광범위하고 벌금 액수에도 제한이 없다.

'장발장 은행' 대출 남발 땐 의미 훼손

이와 같이 벌금형을 선고받아도 조금만 성의가 있다면 노역장에 유치되지 않을 수 있다. 벌금 미납자들에 대한 노역장 유치는 이를 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에도 불구하고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국가 형벌권의 목표달성을 위한 최후 수단이다. 사회적 약자를 철창으로 몰아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벌금 미납자들에 대한 무이자 대출이야말로 위의 여러 가지 제도들을 이용할 수 없는 딱한 사람들에 한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또한 대출금을 확실하게 회수함으로써 범죄로 피해를 받은 사회가 벌금마저 부담하는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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