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실적이 학자의 명성과 보상을 좌우하는 요소로 등장하면서 교수 집단은 두꺼운 서적을 찍어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유명 교수들의 출판물은 아무런 제재장치 없이 그대로 발표된다.(1장 '대학의 사명은 무엇인가', 5장 '공적 지식인이라는 허상' 中) △학문 활동이 아니라 수업에 치중하는 교수들은 승진에서 밀려나거나 기타 보상의 기회를 잃는 대가를 치른다.(3장 '흔들리는 수업의 위상' 中) △학장과 학과장 및 기타 고위 행정가들은 공식적인 준비나 관리 경험 없이 대부분 직책을 맡는다.(4장 '교수와 대학행정' 中)
저자가 미국인이고, 미국 대학에 대해 지적한 책이라고 굳이 단서를 달지 않는다면, 한국 대학의 문제를 꼬집은 글이라 해도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내용이다. 스탠퍼드 법대 교수이자 학내 윤리센터 수장인 저자는 냉철한 비판자요 교수 사회 내부 고발자로서 누구나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상아탑의 문제를 파헤친다.
'누가 왜, 무엇으로 대학을 평가하는가', '현대 학문은 왜 읽히지도 않는 난해한 글을 발표하는가', '공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지식인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적 삶을 칭송하는 교수가 왜 그런 삶을 허용하지 않는 행정직을 맡는 것인가'… 저자는 '지성 추구'가 아닌 '지위 추구'의 장(場)으로 변질되어 가는 미국 내 대학들의 현실을 송곳보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은 비판과 함께 현실적인 대안도 소개한다. 대학교수와 대학기관이 명성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며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교수협회, 관련 재단 및 비영리 단체가 언론 주도의 자의적인 대학 평가 기준을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예컨대 입학 지원자들이 재정 지원이나 졸업생 비율, 학생 참여 등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반영한 순위 등급을 자체 고안하거나 순위와는 무관한 상대 비교자료를 함께 발표하는 식으로 지금의 순위 구조가 갖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학이 계속 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무엇이 경쟁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대학 관련) 집단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핵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가진 재능을 가장 쓸모 있고 가치 있게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다른 이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지식을 추구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6장 대학의 이상과 제도 中)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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