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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이 판결] <11> 통상임금

"고정성 등 요건 갖춘 상여금 통상임금이지만 소급분 청구는 신의칙 어긋나"

'소송보다 노사합의로 해결' 메시지

노동계 손 들어주면서도 재계 입장 반영 訴확대 막아

지난해 12월 '2013년 올해의 판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모은 판결이 나왔다.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다. 임금 문제는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부터 종사자가 5명이 채 안 되는 영세업체까지 모든 근로자와 회사에 해당되는 문제인 만큼 판결이 나오자마자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통상임금 판결은 사안 자체는 대중적이었지만 내용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복잡하고 난해한 측면이 있었다. 통상임금이란 개념 자체가 어려웠다. 대다수 일반 근로자는 기본급, 상여금, 보너스, 초과근로수당 등의 말은 들어봤어도 통상임금이란 말 자체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난해함 때문에 법조계 전문가조차도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분분할 정도였다.

통상임금은 정기적ㆍ일률적ㆍ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근로의 대한 대가를 말한다. 매월 받는 기본급과 가장 비슷한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기본급과 비슷하게 지급되는 임금이 있다. 격월이나 분기, 명절마다 일정하게 나오는 정기상여금이 그것이다. 정기상여금은 매달 나오는 게 아니지만 정기ㆍ일률ㆍ고정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1990년대부터 노동계에서 제기됐다.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통상임금이 연장근로ㆍ휴일근로수당 등을 계산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연장ㆍ휴일근로수당은 '통상임금×1.5배'라는 공식으로 결정된다. 결국 '사용자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초과근로수당이 적게 계산됐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었다. 반면 재계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것은 노사 합의에 따른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통상임금 범위를 놓고 기업별로 소송이 줄을 잇고 사회적 논란이 가열되자 법원이 진화에 나섰다. 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이자 다른 판결의 지침이 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판결을 앞둔 사법부의 고민도 적지 않았다. 재계와 노동계의 주장 모두 나름의 타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본급이나 다름없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는 관행이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장시간 근로를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는 노동계의 주장이나 '개별적인 임금 항목이 아닌 임금 총액을 우선적으로 결정하는 노사 관행을 봐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건 노사 간 합의된 사안'이라는 재계의 주장 모두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었다.

고심 끝에 지난해 12월 18일 내놓은 대법원의 결론은 양측 주장의 절충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단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노동계의 손을 들어줬다. '한 달(1임금지급기) 주기로 지급되는 임금만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고용노동부의 지침에 대해서도 한 달을 넘어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도 고정성ㆍ정기성ㆍ일률성이 인정되면 통상임금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재계의 고충도 반영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기로 한 노사 간 합의 혹은 관행이 있었는데도 근로자가 과거 3년치 수당까지 확대한 통상임금을 반영해 지급하라고 요구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준다면 이는 노사 간 신의칙에 어긋난다고 판시한 것이다. 과거 소급분에 대한 통상임금 확대 소송을 사실상 어렵게 한 것이다.



이상의 결론을 이끌어내기까지 법리는 복잡하고 난해했지만 사법부의 메시지는 명료했다. '과거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제외했던 것은 노사 모두가 모르고 했던 것인 만큼 책임을 되도록 묻지 말자. 다만 앞으로는 노사가 잘 합의해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는 방향으로 조정해 나가자'였다.

이 같은 논리는 이후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지난 5월 29일 한국GM 근로자 남모씨 등 5명이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서 그 동안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노조가 승소한 원심을 파기해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GM의 정기 상여금은 정기ㆍ일률ㆍ고정적으로 지급한 근로의 대가이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선고했다. 그러면서도 "GM 노사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전제 아래 임금 총액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과거 소급분 수당을 추가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통상임금 확대의 영향을 받는 생산직 근로자가 1만1,000여명에 이르고 연 700%에 달하는 정기상여금 규모를 볼 때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을 경우 노사가 합의한 임금인상률을 훨씬 초과할 수 있다고 봤다.

GM의 통상임금 소송은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의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에 "잘 해결하겠다"고 답해 통상임금 논란을 본격적으로 키운 발단이 된 건이다. 또 이번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신의칙 적용 여부를 판단한 것이었다. 이런 상징적인 소송에서 대법원이 과거 소급분 임금 청구를 사실상 막음으로써 사법부의 통상임금 판결의 메시지는 더욱 명확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같은 메시지는 현장에서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LG전자, 동국제강 등 노사합의로 통상임금 문제를 정리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노사는 지난 3월 6일 노경협의회에서 기본급의 600%에 해당하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대신 기본급 인상은 최소화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월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되 지난해 5.5%였던 임금인상률을 올해 1.9%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임금 문제는 소송보다는 노사 합의를 통해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담긴 핵심 철학"이라며 "기업 현장에서 이런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남은 관건은 초과근무가 많아 통상임금 확대의 영향이 큰 자동차 등 금속업계"라며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서 노사 합의로 서로 윈윈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 통상임금 문제 해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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